2013년 4월 8일 월요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은 말 그대로 주님의 탄생 예고를 기념하는 날이다. 예전에는 ‘성모 영보 대축일’이라고 하였는데, 영보(領報)란 천사가 성모님께 예수님의 잉태를 알렸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도 여느 사람처럼 성모님의 태중에서 아홉 달을 계셨다고 믿었기 때문에 대축일 날짜는 예수 성탄 대축일에서 아홉 달을 역산한 3월 25일이지만, 올해는 오늘로 옮겨 지낸다.
▦ 오늘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처녀인 마리아에게 구세주의 잉태 소식을 알립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도 없고, 당시의 사회적 상황 속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께서는 주님의 뜻이기에 두려움을 이겨 내고 그 말씀을 따랐습니다. 이렇게 한 여인의 순종이 있었기에 이 세상은 구세주를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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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26-38)
Behold, I am the handmaid of the Lord.
May it be done to me according to your word
말씀의 초대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되어 다윗 왕실이 위태로울 때 이사야가 아하즈 임금에게 ‘임마누엘’이라고 불리는 다윗의 후손을 통해 당신 백성을 보호하실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실현된다(제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참다운 사제로서 짐승이 아닌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시며 하느님의 뜻을 이루셨다. 이로써 시편의 예언이 이루어지고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다(제2독서). 갈릴래아의 나자렛에 사는 처녀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하느님의 부르심을 밝힌다. 그 내용은 성령의 힘으로 마리아에게서 구세주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마리아께서는 두렵기도 하셨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신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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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Piano, piano!’(천천히, 천천히!) 이탈리아에서 공부하던 시절 선생님들에게 가장 많이 듣던 말이었습니다. 외국어를 배우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초조한 마음을 가라앉히라는 뜻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방식도 이와 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오셨지만, 그 시작은 잉태부터였습니다. 그다음에는 아기로 태어나시어 옹알이와 걸음마를 배우셔야 했고, 스스로 밥 먹는 것이나 대소변 가리는 것, 말하는 것을 하나하나 배우셔야 했습니다. 이후 자라시면서 노동을 통해 경제적 활동을 하시는 것 등 많은 단계를 거치시며 30여 년을 사셨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모두 생략하신 채 하늘에서 이 땅에 오시자마자 세상을 구원하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천천히, 천천히’, 곧 한 단계씩 느긋하게 하느님의 뜻을 펼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성급하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갓 세례 받은 신자들은 대개 믿음이 튼튼하지 못하다며 조바심을 냅니다. 용서가 잘 안 된다며 마음을 졸이는 분들도 있습니다. 구역장님이나 반장님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 구역의 반이 활성화되지 않는다며 답답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천천히’ 하느님의 뜻을 이루신 예수님의 생애를 되새깁시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에서부터 시작하지, 심자마자 열매를 맺지는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도, 용서도, 사랑도 작은 데서부터 서서히 자라납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 모든 것이 주님의 뜻대로 알찬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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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을 돌아보면 매일매일 교리실마다 레지오 단원들이 모여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탁자 위에 조그만 성모상 하나, 꽃 한 송이 마련해 놓고 묵주를 손에 잡고 정성스럽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봐 주지도 않는 후미진 작은 교리실에서 이들이 바치는 기도 소리가 참 아름답게 들립니다.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의 가난한 시골 처녀, 그저 흔한 이름에 불과했던 마리아. 하느님께 기도하며 풀꽃처럼 살던 보잘것없는 이. 이 작은 이 안에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아께서 잉태되십니다. 보일 듯 말 듯, 여리고 가난한 작은 이의 소박한 기도 속에서 세상 구원의 역사가 열렸습니다.
성모님의 영성을 따르는 사람들은 성모님처럼 세상의 구원을 위해 풀꽃처럼 사는 사람들입니다. 마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말처럼, ‘사막 어디엔가에서 사막을 아름답게 해 줄 우물’이 되는 것입니다. 저 산을 생기 있게 해 줄 ‘이름 모를 풀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그들의 기도는 교회의 ‘영적 우물’이 되고, 교회 영성의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평화와 구원은 영웅호걸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묵주 한 알 한 알 정성스럽게 넘기며 기도하는 소박한 사람들이 일구어 내는 것입니다. 나자렛 성모님의 모범을 배운다면, 우리가 모두 작은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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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말입니다. 기쁨의 이유를 ‘은총’이라 하고 있습니다. 은총이 가득하면 기쁨도 가득하다는 암시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른 곳에서 기쁨을 찾습니다. 물질이 넘치고, 건강이 받쳐 주면 ‘자동적’으로 기쁘게 되는 줄 압니다. 하지만 ‘근본’은 은총입니다. 모든 것에 ‘앞서’ 은총이 있어야 함을 천사는 알려 주고 있습니다.
기도와 성사 생활에 힘쓰는 이들은 삶의 불가능을 차츰 ‘가능한 일’로 바라봅니다. 할 수 없다고 제쳐 두었던 일을 극복해 나갑니다. 하늘의 힘이 끌어 주시는 것이지요. 이러한 ‘체험 자체’가 은총입니다. 사업이든, 인간관계든 그렇게 해서 ‘생각도 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나아감을 보게 됩니다.
마리아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만났기에 삶이 바뀌십니다. 평소의 신앙생활이 어떠하셨는지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천사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세세한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높으신 분의 힘’이 하시는 일이라고만 답합니다. 그러고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아기를 가진 ‘엘리사벳’ 이야기를 합니다.
둘러보면 ‘하느님의 손길’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러기에 마리아께서는 순순히 응답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그렇게 응답하며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움직여 나가더라도 너무 서운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안에 담긴 ‘높으신 분’의 뜻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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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자식을 위해서는 어떤 십자가도 받아들이려 합니다. 오히려 그런 희생을 기쁨으로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어머니는 은총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자식의 십자가를 안고 가면서도 그의 앞날을 위해 기도하는 분이 어머니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자녀는 힘들고 괴로울 때 어머니를 먼저 떠올립니다. 자신을 대신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러한 ‘어머니의 길’을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장황한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고만 답합니다. 그러고는 노년에 아기를 가진 ‘엘리사벳’의 이야기를 합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이끄심과 깨달음이 답일 뿐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그분의 이끄심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러기에 마리아께서도 선뜻 답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역시 그렇게 답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 뜻’과 다르게 움직이는 것들 앞에서 그렇게 받아들이며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머니의 평화를 만납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반영억라파엘신부
매년 정기적인 사제 인사이동이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인사권자인 주교님께서 발표하기도 전에 신부님들 사이에는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서 누가 어디로 갈 것이라고 인사이동을 다 합니다. 그러나 막상 인사발령 공문을 받으면 의외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면서도 해마다 그것을 반복하는 것은 인사권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사제로 서품 받으면서 독신과 순명을 서약하며 그리스도를 닮은 가난한 삶을 살 것을 살 것을 권고 받습니다. 그렇다면 주교님을 통해서 주어지는 삶의 자리가 복된 곳이고 그곳에서 기쁨으로 주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주님의 뜻보다는 내 뜻을 이루려고 하는 마음이 있어 서운함을 갖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1,30)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리아는 이해되지 않는 이 말씀에 결국은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세상은 바로 마리아의 이 믿음과 믿음에 따르는 순명으로 인하여 구세주의 탄생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당시의 풍습을 생각하면 약혼한 처녀가 부모도 모르고 약혼자도 모르게 임신하여 배가 불러온다는 것은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의 응답은 죽음을 각오한 대답이었습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1,37)고 하셨지만 인간의 협력을 요구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결코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복종없이 천명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이현주). 그렇다면 내가 있는 자리가 어디이든 주님의 뜻에 기꺼이 순명할 수 있는 믿음이 있다면 그 자리에 하느님께서 분명히 역사하십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당신이 쉼을 원하시면 저는 사랑으로 쉬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일하라고 명을 내리시면 저는 일을 하면서 죽고싶습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일상 안에서 언제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더해주시기를 희망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느님의 손 안에 있는 연장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연장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도구가 되는 기쁨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루카1,35) 하였습니다. 바로 그 성령께서 우리에게 내려오시고 높으신 분의 힘이 우리를 덮어 죽기까지 순명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