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부활 대축일] 보고 믿었다 (요한 20,1-9)

2013. 3. 31. 오전 9:20:43

글자

2013 3 31 예수 부활 대축일

<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9
< 또는 루카 24,1-12 또는 저녁 미사에서는 루카 24,13-35>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9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요한 20,1-9)

  
 “They have taken the Lord from the tomb,
and we don’t know where they put him.”


 

말씀의 초대

 베드로가 코르넬리우스의 집에서 예수님에 관하여 증언한다. 주님과 함께 수행한 일뿐 아니라, 그분께서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사도들과 함께 계셨던 순간을 전한다(제1독서). 신앙인은 부활을 체험한 이들이다. 그러기에 지상의 것에 얽매여 천상 생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제2독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이른 아침에 주님의 무덤을 찾아갔다가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지고 시신이 없어졌음을 보고 놀란다. 이 소식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에 가 보았으나 과연 무덤이 비어 있었다. 이로써 이들은 주님의 부활을 체험하는 첫걸음을 내디뎠다(복음).

☆☆☆

 

오늘의 묵상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증거는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곧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습니다. 이는 부활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일러 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곧 부활이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돌을 치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병아리가 달걀의 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거인의 정원’이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거인이 집을 비운 사이 어린이들이 그의 정원에서 날마다 뛰어놀았습니다. 7년 만에 집에 돌아온 거인은 자기의 정원이 어린이들의 놀이터로 변해 있는 것을 보고는 화가 나서 정원 둘레에 높은 담을 쌓았습니다. 아이들이 더 이상 그 정원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꽃들도, 새들도 더 이상 어린이들을 볼 수가 없어서 사라져 버렸고, 그 정원은 일 년 내내 겨울이기만 하였습니다.
거인은 봄이 찾아오지 않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봄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세월이 지난 어느 날 그 정원에 봄이 찾아왔습니다. 거인이 창문을 열고 봄을 반기려고 하는데, 뜻밖에도 그 정원에서 아이들을 보게 됩니다. 담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어린이들이 놀러 온 것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이 없으면 봄도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거인은 그제야 정원 둘레에 친 높은 담을 헐어 버리고 언제든지 아이들이 놀러 올 수 있게 하였습니다.
삶의 울타리를 높이 세우고 그 속에 자기를 가두는 사람은 부활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당신을 가둔 무덤의 돌을 치우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의 첫걸음은 우리를 가두는 장벽을 허무는 것입니다.

☆☆☆

다 이루어졌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이 한마디 말씀 안에 예수님의 생애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꺼번에 다가옵니다. 한 인간으로서 겪어야 했던 온갖 유혹,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 십자가의 수모와 고통, 이 모든 것을 견디며 마지막까지 아버지의 뜻을 놓을 수 없었던 예수님. 이제 그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한 생애를 마감하며, “이제 다 이루었다.”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고 하셨지만 그분께서 떠난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골고타 언덕 위에는 또 다른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리는 십자가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 그분께서 묻히신 자리마저도 텅 비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도,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도, 그들이 다다른 곳은 텅 빈 무덤이었습니다. 스승 예수님을 따르고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
그런데 무엇을 다 이루셨을까요? 사랑은 모습도 색깔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텅 빈 무덤처럼 자신을 온전히 내어 준 텅 빈 흔적만이 남는 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삶에서 온전한 사랑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래서 텅 빈 무덤은 사랑을 완성한 흔적이면서 부활의 표징이 됩니다. 텅 빈 무덤 안에서 부활과 사랑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
우리 인생 여정도 텅 빈 무덤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세상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출세하고 자식 잘 키우고 호위호식하며 사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자신을 비우고 내어 주는 사랑을 목표로 삼습니다. 세상 것은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허무하게 끝나지만, 주님의 것은 빈 무덤과 함께 영원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구원이라고 부릅니다.

☆☆☆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마리아 막달레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이 치워졌기 때문입니다. 한달음에 그녀는 베드로에게 달려갔습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놀란 베드로와 요한은 달음질쳐 갑니다. 그들은 스승의 수의만을 발견합니다. ‘이럴 수가? 시신이 없어지다니.’ 그들은 아직도 예수님의 부활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도단의 대표인 베드로도 스승의 부활을 몰랐습니다. 그도 처음에는 이랬는데 어찌 우리가 부활을 한순간에 알 수 있겠습니까? 모르는 것이 정상입니다. 별다른 느낌 없이 부활 대축일을 맞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부활은 신비입니다. 이론과 지식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부활은 교과서의 한 내용이 아닌 것입니다. 은총 없이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부활의 깨달음에 닿을 수 있겠습니까?
마리아 막달레나의 행동 속에 가르침이 숨어 있습니다. 그녀는 이른 새벽 예수님을 만나러 무덤으로 갑니다. 돌아가셨다고 믿어지지 않는 스승입니다. 마음속에는 여전히 살아 계시는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러기에 무덤으로 가는 길에는 걱정이 없습니다. 스승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 그녀를 움직였고, 마침내 부활 사건과 부딪히게 한 것입니다.



 


염수정 대주교 2013년 부활 메시지

“삶의 현장에서 신앙인으로서 충실히 살 때, 주님 부활을 느끼게 될 것”

명동대성당 성삼일ㆍ부활 대축일 주요 전례 일정 안내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을 성대하게 기념하는 ‘예수 부활 대축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는 31일인 ‘예수 부활 대축일’은 모든 그리스도교 축일 중 가장 큰 축일로 성대하게 경축합니다.

 

‘예수 부활 대축일’은 해마다 그 날짜가 다른데, 춘분(春分)이 지난 만월(滿月) 이후의 첫 주일을 ‘예수 부활 대축일’로 지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2013년 예수부활 대축일은 3월 31일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을 잘 맞이하기 위해 머리에 재를 얹는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 전까지의 주일을 제외한 40일간을 ‘사순시기’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주님 만찬 성목요일(3월 28일)’, 수난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 수난 성금요일(29일)’, 예수님의 부활을 기다리는 ‘성 토요일(30일)’을 가장 거룩하게 보냅니다. 이 3일을 성삼일(聖三日)이라고 합니다.

 

또한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聖靈 降臨 大祝日, 2013년 5월 19일)’까지의 50일간을 부활 시기로 지내며 부활의 기쁨과 찬미를 드러냅니다.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시기 막바지

전국 성당에서 성삼일 전례ㆍ예수 부활 대축일 미사 봉헌

 

성삼일과 예수 부활 대축일을 맞아 전국 1,700여개 성당에서는 성삼일 전례와 예수 부활 대축일 미사를 봉헌합니다. 서울대교구 주교좌(主敎座) 성당인 명동대성당의 성주간ㆍ부활 대축일 전례 일정을 알려드립니다.

 

명동대성당 성주간ㆍ부활 대축일 전례 일정

일 시

내 용

주 례

비 고

3월 28일

성목요일

오전 10시

성유 축성 미사

염수정 대주교

 

오후 8시

주님 만찬 미사

염수정 대주교

미사 중 발씻김 예식

미사 후 수난감실 조배

3월 29일

성금요일

오후 3시

십자가의 길

여형구 신부

(명동대성당 주임)

오후 3시 : 예수님이

숨을 거두신 시각

오후 8시

주님 수난 예식

조규만 주교

 

3월 30일

성토요일

오후 8시

부활 성야 미사

염수정 대주교

 

3월 31일

예수 부활 대축일

낮 12시

예수 부활 대축일

미사

염수정 대주교

명동대성당 부활미사

: 오전 9,10,11,12시,

오후 4,5,6,7,9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는 명동대성당에서 30일(토) 오후 8시 ‘부활 성야 미사’와 31일(일) 낮 12시 ‘예수 부활 대축일 미사’를 주례합니다. 염 대주교는 이 미사에서 부활 대축일 메시지를 발표합니다(메시지 전문 첨부). 염 대주교의 부활 메시지 전문은 서울대교구 주간 소식지인 ‘서울주보’ 3월 31일자에 실립니다. 서울주보는 선교문화봉사국 홈페이지(https://cc.catholic.or.kr)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염 대주교는 부활 메시지에서 “주님의 부활은 죽음이 모든 것의 종말인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에서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알게 해주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게 되었다.”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며, 살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기쁜 소식이 된다.”고 부활의 의미를 전했습니다.

 

또한 사순 시기에 선출된 새 교황에 대해 “새 교황님께서 인종과 종교를 초월해 전 세계의 영적 지도자로서, 청빈과 겸손의 모범을 보이셨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을 본받아 우리 교회를 사랑과 일치, 진리와 희망, 빛과 기쁨을 가져오는 ‘평화의 도구’가 되도록 이끌어주실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절실한 이 때, ‘평화의 도구’가 되기 위해 신앙인들이 해야 할 일로서 “예수님의 부활을 온 마음으로 믿고, 그 부활을 신앙으로 사는 것.”이라고 강조한 염 대주교는 “먼저 미사참례, 기도와 성경 묵상처럼 기본적인 신앙생활을 성실히 하면서 하느님 안에 머물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전하고, 이어“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시간과 재능, 재물을 이웃과 나누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기꺼이 도와주며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할 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교구민들에게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신앙인으로 충실히 살아갈 때 많은 이들이 도처에서 주님 부활의 숨결을 느끼고, 그리스도의 평화와 성령의 열매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부활하신 주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믿고 체험한다면 모든 것은 변화되고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라고 전했습니다.

 

다음은 2013년 부활 메시지 전문(全文)입니다.

2013년 부활 메시지

 

“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 기쁨이 온 땅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 그리고 북녘땅 갈라진 형제들에게 주님 부활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인들의 손에 넘어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죽음이 모든 것의 종말인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에서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인 우리들이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로 무죄 선언을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은총을 거저 얻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우리의 부활이 되었습니다.(1코린 15,20-22 참조) 따라서 주님의 부활은 죽음을 이긴 생명, 영원한 생명이 인간과 세상의 희망이며 미래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며, 살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기쁜 소식이 됩니다.

부활을 향한 사순 시기 여정 중에 우리는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뒤를 이어, 새 교황 프란치스코를 사도 베드로로부터 이어 내려오는 교회의 최고 목자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새 교황님께서 인종과 종교를 초월해 전 세계의 영적 지도자로서, 청빈과 겸손의 모범을 보이셨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을 본받아 우리 교회를 사랑과 일치, 진리와 희망, 빛과 기쁨을 가져오는 ‘평화의 도구’가 되도록 이끌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절실합니다. 평화가 이 땅에서 이뤄지도록, 도구로 쓰일 신앙인의 역할도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날 세상은 곳곳에서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는 분쟁이 계속되고, 물질만능주의와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 생명경시풍조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실도 불안정한 정치상황과 북한의 위협으로 완전한 평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또한 계속되는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서민들의 삶은 더욱 고단해지고 어려움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도자들은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기본적인 의무를 뒷전에 둔 채 정쟁에 빠져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국민들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고 양보하고 타협하여 우리 사회가 진정한 평화를 누리도록 공존의 길을 찾아주기를 기원합니다.

 

‘평화의 도구’가 되기 위해 우리 신앙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먼저 예수님의 부활을 온 마음으로 믿고, 그 부활을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계속되는 세상의 악과 고통 속에서도 굳은 신앙으로 그리스도 안에 머물면서, 자신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다른 이의 십자가를 함께 나누는 것이 부활의 삶입니다.

부활의 삶을 산다는 것은 우리 생활 안에서 구체적인 방법으로,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먼저 미사참례, 기도와 성경 묵상처럼 기본적인 신앙생활을 성실히 하면서 하느님 안에 머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시간과 재능, 재물을 이웃과 나누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기꺼이 도와주며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할 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신앙인으로 충실히 살아갈 때 많은 이들이 도처에서 주님 부활의 숨결을 느끼고, 그리스도의 평화와 성령의 열매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2천 년 전에 일어난 과거형의 사건이 아닙니다. 부활의 진정한 의미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믿고 체험한다면 모든 것은 변화되고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영광스러운 주님의 부활을 맞아 여러분과 우리 사회에 주님의 평화가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우리나라와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꽃필 수 있도록,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천상의 모든 성인의 전구를 청하며 기도드립니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2013년 3월 31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염수정 대주교

2013년 부활 담화문

 

“보고 믿었다”(요한 20,8)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부활 대축일을 맞이하여,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소식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요한 20,6.8).

 

2.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무엇을 보고 믿었습니까? 주님께서 돌아가신 후 빈 무덤과 주님의 시신을 감쌌던 아마포가 잘 개켜져 있는 사실을 처음 목격한 사람은 마리아 막달레나였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 20,2)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놀라서 무덤으로 달려갔고, 무덤에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 빈 무덤과 잘 개켜진 수의는 인간의 이성이나 자연법칙으로 잘 설명하거나 파악될 수 없는 신비입니다. 그래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갔고,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다.’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주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는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달아’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지거나 다른 데로 옮겨진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표지로 믿었습니다(요한 20,1-8참조).

 

3. 제자들이 목격한 예수님의 빈 무덤과 시신을 감쌌던 아마포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예수님의 빈 무덤이나 시신을 감쌌던 아마포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것은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들에게는 어리석음이지만, 믿는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1고린 1,23-25 참조).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1코린 1,21).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시어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필리 2,8)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으며,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1요한 3,16) 내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하느님과 이웃을 철저히 사랑한 ‘비움과 내어줌’의 삶이었습니다. 따라서 빈 무덤과 잘 개켜진 아마포는 하느님의 지혜에 따라, 자신을 비우고 내어주는 십자가 신비인 동시에 ‘그분이 들어 높여지심’(구원에 이르는 고통, 22항)을 예표하는 부활의 상징입니다.

 

4.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디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우리 신앙선조들은 예수님 부활의 표지인 빈 무덤이나 잘 개켜진 아마포를 보지 못하였으나, 예수님의 부활을 굳게 믿고 모진 박해 속에서도 목숨을 바쳐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특히 금년 탄생 200주년을 맞는 황석두 루카 성인은 1813년 충청도 연풍 병방골에서 태어나 천주교 도리를 접해 입교한 후 모진 고문 중에도 “비록 만 번 죽더라도 천주를 배반하는 것은 불가합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렇게 순교자들이 목숨을 바쳐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굳건한 부활 신앙 때문입니다. 신앙 선조들에게 뿐만 우리 모두에게도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신앙의 근원이요 희망의 원천입니다. 그러하기에 교회 공동체는 소리를 높여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나이다.”(부활삼종기도) 하며 경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 신앙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어디서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느님 백성의 영적보화인 ‘말씀’과 ‘성체’입니다. 우리는 ‘말씀’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또한 구원의 성사인 성체성사를 거행할 때마다 더욱 탁월한 방법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우리의 신앙을 견고케 합니다.

 

5. 우리는 어떻게 부활 신앙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 사회는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의 확산으로 종교와 구원에 대한 무관심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는 텔레비전, 인터넷,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영상미디어의 눈부신 발달과 보급,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과학적 사고를 초월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와 부활 신앙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회피하거나 무관심해 가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경향은 가정에서부터 가족들이 함께 모여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의 부재 현상을 통해서 드러나고, 교회의 미래인 젊은이들이 교회를 속속 빠져나가는 현상을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근거한 부활 신앙은 우리 신앙의 기초요 핵심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에 뿌리를 둔 부활 신앙은 우리 삶의 참 기쁨과 희망의 원천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구원의 빛을 되찾은 우리는, ‘비움과 내어줌’의 사랑을 가정에서부터 실천하고 증거하여 신앙의 해에 더욱 담대하고 용기 있게 ‘믿음의 문’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부활 영성은 이웃의 호의에 감사하고 자신의 탓을 인정하는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하여 성체성사의 ‘내어줌의’ 삶을 살아감을 의미합니다. ‘성체성사의 삶’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삶의 첫 자리에 모시는 말씀 중심의 삶입니다. 또한 성체성사의 삶은 구체적인 말씀 실천의 삶을 통해 ‘임마누엘 하느님’의 현존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는’ 체험 중심의 삶입니다. 신앙의 해에 말씀과 성체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체험하여 신앙의 활력을 찾고, 우리 모두 확신과 기쁨을 가지고 부활하신 주님을 이웃과 우리 사회에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6. 예수님은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써 죄와 죽음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장차 부활하리라는 희망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오늘의 시련을 이겨내고 ‘비움과 내어줌’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부활을 경축하며 부활의 기쁨과 희망이 신자 여러분의 가정과 지역사회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013년 3월 31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청주교구장 장 봉 훈 가브리엘 주교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주일복음강론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