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설 (루가12,35-40)

2013. 2. 10. 오전 6:49:52

글자


2013년 2월 10일 연중5주일(설)

 ▦ 오늘은 우리 민족의 크나큰 명절인 설입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한 해를 맞이하며 ‘삼가고 조심하라’는 의미에서 ‘설’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조상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서 이제 또 다른 한 해를 주셨습니다. 경건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돌아가신 분들의 영원한 안식을 청합시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루가12,35-40)


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셨다. 그래서 레위 지파의 사제들을 통하여 당신 백성에게 복을 내려 주셨다(제1독서). 인간은 내일 일에 대해 알지 못하며 그 생명 또한 한 줄기 연기와 같다. 그러니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하며 살아야 한다(제2독서). 밤중에 주인이 혼인 잔치에서 돌아온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종은 주인을 기다리며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주인께서는 종을 사랑하시는 분이시므로 깨어 있는 종을 보실 때에 그를 식탁에 앉게 하신 다음 시중들어 주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설을 맞이해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깨어 있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는 데에는 우리말에서 ‘깨’로 시작하는 낱말들을 곰곰이 관찰해 볼 수 있습니다. 깨끗하다, 깨다, 깨뜨리다, 깨닫다, 깨우치다, ……. 이러한 낱말들의 공통점은 ‘깨’라는 말이 무언가 부수거나 치워 버리는 것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의미에서 ‘깨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과거의 묵은 자기 자신을 깨뜨리는 것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깨부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온갖 허물을 깨끗이 치우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지난 한 해의 낡은 삶에서 깨어나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주인이신 예수님을 맞이하려면 언제나 깨끗함을 유지해야 하며, 자신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러할 때에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 기쁜 마음으로 주님과 친교를 맺을 수 있습니다.

☆☆☆

사람들에게 행복할 때가 언제인가 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답을 해 왔습니다. 하루 일을 끝냈을 때, 아침 이슬을 머금은 꽃잎을 볼 때, 냇가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때,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을 바라볼 때, 작은 칭찬을 들을 때,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때 등 ……. 사람들의 행복은 큰 것에 있지 않았습니다. 물결처럼 잔잔히 흐르는 삶을 바라보고 느끼며 경탄할 때 행복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깨어 산다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거창한 삶을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우리 삶의 순간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주님께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새날을 열어 주신 것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에는 오늘 하루 주님께서 어떻게 내 삶을 이끌어 주셨는지 살피며 감사의 마음을 주님께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깨어 있는 종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등불을 켜고 살아가는 깨어 있는 사람은 주님의 큰 부르심이 있을 때도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나설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이렇게 등불을 켜고 깨어 사는 신앙인들이 여전히 참 많이 있습니다. 이들이 있어 교회가 아름답고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

 

인생은 긴 안목에서 보면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을 기다리고, 젊은 시절에는 사랑하는 이를 기다립니다. 나이 들면 누구나 자녀들을 보고 싶어 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기다림에는 늘 아쉬움이 함께합니다. 계산과 계획대로 사람들이 따라와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실망을 느끼고 운명을 생각하며 자식 사랑에
모든 것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느님을 향해 눈뜨라는 메시지입니다. 인생에 외로움이 없으면 쉽게 주님을 찾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확실한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다는 것은 이러한 믿음을 갖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쉽게 잊어버리지만 주님께서는 작은 선행도 기억하시며 갚아 주십니다. 부족한 기도라도 언젠가는 들어주십니다. 먼저 이 사실을 감사하며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자신의 느낌을 감추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께는 그렇게 할 이유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드러내며 기도해야 합니다. 가끔은 감실 앞에서 자신의
일상사를 보고해야 합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씀의 실천입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말씀의 실천이 곧 행복입니다.

 축복의 원인은 주님이시다. 사제가 아무리 복을 빌어도 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소용없는 일이다.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이스라엘을 축복하면 당신도 함께하실 것이라고(1독서). 사람의 앞날은 주님께 속해 있다. 본인은 모르지만 주님께서 허락하시기에 건강한 미래가 있는 것이다. 내일 일은 언제나 주님께 맡겨야 한다. 그래야 그분의 축복이 떠나지 않는다(2독서). 주인은 느닷없이 찾아온다고 하신다. 주님께서도 그렇게 오실 것이다. 그러니 준비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매일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자. 신앙생활에서 명하는 것을 충실히 실천하자. 이러한 삶이 준비하는 생활의 기초가 된다(복음).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라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는 갑자기 오십니다. 그분께서 주시는 은총 역시 갑자기 옵니다. 그렇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면 어느새 곁에 와 있는 은총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음은 원숭이를 생포하는 고전적인 방법인데 아직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원숭이가 잘 노는 곳에 커다란 통을 가져다 놓습니다. 통 속에는 맛있는 것들이 잔뜩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통의 아가리는 주먹 하나 들어갈 정도로 작게 만들어 놓습니다. 사냥꾼은 통 속에서 맛있는 것을 하나씩 꺼내 먹습니다. 그러다 숲 속의 원숭이가 보고 있다는 느낌이 오면 통을 그대로 둔 채 슬그머니 딴 곳으로 가 버립니다.
원숭이는 잽싸게 달려와 통 속에 있는 맛있는 것을 꺼내 먹습니다. 처음에는 하나씩 꺼내다 욕심이 생기면 잔뜩 쥐고 꺼내려 합니다. 그러나 아가리가 작아 꺼내지를 못합니다. 그때 사냥꾼은 원숭이에게 다가갑니다. 놀라 도망치려 하지만 통 안에 갇힌 손 때문에 바동거리기만 합니다. 손을 놓으면 될 텐데도 그렇게 하지를 못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원숭이가 아닙니다. 그러나 때로는 원숭이와 같은 행동을 합니다. 놓고 물러서야 하는데도 놓지를 않습니다. 놓고 물러서면 삶이 훨씬 수월해지는데도 그렇게 하지를 못합니다. 벌써 손을 놓았어야 하는데도 아직도 붙잡고 있는 것이 없는지 가만히 돌아보아야겠습니다. 놓으면 은총이 옵니다 
 

복을 빌어주는 사람

 반영억신부

구정 명절을 맞이하여 하느님의 복을 풍성히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설은 본디 신일(愼日) 이라고 하여 근신하고 조심하는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는 데에 근신하고 조심하는 마음이 우선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이날 조상님께 차례를 올리고 웃어른께 세배를 드리며 조상의 묘를 찾아 성묘합니다. 부모님들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설빔을 해 주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큰절을 받고 세뱃돈을 주며 가정의 화목과 평화, 부와 안녕을 기원하였고 한 해를 살아갈 덕담을 해 주셨습니다.

설 명절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하느님의 복을 풍성히 받으시길 기원하며 저는 오늘‘통통,통통’복을 선물로 드립니다. 1.의사소통, 2.운수대통, 3.만사형통. 4.쓰레기통입니다. 서로의 의사소통을 잘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길 바라며 하느님과의 소통을 잘하시길 빕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길을 활짝 열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열어주신 길을 가는데 있어서 하는 일 마다 잘 되기를 희망합니다. 모든 것을 담고 품는 쓰레기통 같은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예전에는 세뱃돈과 설빔을 받는 기쁨이 있었는데 지금은 서로의 만남에 의미를 두고 고향을 찾게 됩니다. ‘명절 증후군’이라는 병이 생기기도 했지만 고유명절은 그래도 가족의 유대관계를 확인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저는 명절이 되면 도심으로 나가있던 삼촌과 누나를 기다렸습니다. 명절에는 손에 선물꾸러미를 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용돈을 얻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선물이나 돈의 액수가 줄어들면 마음속으로는 서운해 하였습니다. 그저 공짜로 받는 주제에 주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 크게 받으면 다음에 받을 때는 더 많이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게 되고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 받았으나 감사할 수 없으니 줄때도 잘 줘야 하고 받을 때도 잘 받아야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축복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공짜로 언제든지 주십니다. 알맞게 주십니다. 그러나 내 잣대로 재고는 받았네, 못 받았네 하면서 투덜댑니다. 그러나 분명 주님께서는 각자에게 알맞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지금 받은 것에 감사하면 감당할 수 있는 축복이 또 주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복을 받는 길입니다.

명절의 의미는 바로 감사하는 생활을 일깨우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고향을 방문하여 조상들을 기리며 차례를 지내고 부모형제, 친척과 어른들을 찾아뵙는 것은 감사드림의 한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에게는 감사의 원천인 하느님께로 먼저 눈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혈족만이 아니라 모든 이웃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하느님의 작품이요, 사랑받는 존재이고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 민수기(6,22-27)를 보면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빌면 주님께서 몸소 복을 내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복을 받는 일은 먼저 복을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복을 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을 달라고 하기 전에 주님의 이름으로 복을 베푸는 몫을 차지해야 합니다.

명절의 두 번째 의미는 복을 빌어주는 생활입니다. 어르신께 세배를 하면서 한 해의 건강과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덕담을 받고 이웃형제와 서로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인사하는 것이 오늘 하루만의 인사 치례가 되어서도 덕담으로 끝나서도 안 되겠습니다. 복을 빌어주는 만큼 삶의 모범으로 진정으로 복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복을 받는 사람도 복 받을 만한 그릇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축복하는 삶, 생활로써 복을 함께 나누고 지켜주면서 감사의 마음을 키워갈 때 우리 주변은 더욱 빛나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기는 아름다운 환경이 조성될 것입니다. 감사와 축복의 날에 주님께서는 충성스런 종과 불충한 종의 비유를 통해서 “너희는 준비하고 있어라.”(루카12,40)고 말씀하십니다. 등불을 켜고 주인을 기다리는 충직한 종처럼 감사와 축복으로 매일을, 순간순간을 늘 깨어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상을 위해 기도하고 서로에게 복을 빌어주며 이웃과 더불어 만남을 기뻐하는 날, 정월 초하루! 모두 모두 주님의 복을 많이 받으십시오.

옛날부터 사람이 살아가면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다섯 가지의 복을 오복(五福)이라고 했습니다. 중국 유교의 5대 경전 중 하나인 《서경(書經)》 1편인 <홍범(洪範)>에 나오는 오복(五福)을 보면, 오복의 첫번째는 수(壽)로서 천수(天壽)를 다 누리다가 가는 장수(長壽)의 복(福)을 말했고, 두번째는 부(富)로서 살아가는데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풍요로운 부(富)의 복(福)을 말했으며 세번째로는 강령(康寧)으로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깨끗한 상태에서 편안하게 사는 복(福)을 말했습니다. 또, 네 번째로는 유호덕(攸好德)으로서 남에게 많은 것을 베풀고 돕는 선행과 덕을 쌓는 복(福)을 말했고 마지막 다섯 번째로는 고종명(考終命)으로서 일생을 건강하게 살다가 고통없이 평안하게 생을 마칠 수 있는 죽음의 복(福)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처럼 큰 행복으로 여겼던 이 오복(五福)을 염원하기 위해 새 집을 지으면서 상량(上梁)을 할 때는 대들보 밑에다가 "하늘의 세 가지 빛에 응하여 인간 세계엔 오복을 갖춘다"는 뜻의 "응천상지삼광(應天上之三光) 비인간지오복(備人間之五福)"이라는 글귀를 써 넣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서민들이 원했던 또 다른 오복(五福)으로는 1. 치아가 좋은 것 2. 자손이 많은 것 3. 부부가 해로하는 것 4. 손님을 대접할 만한 재산이 있는 것 5. 명당에 묻히는 것을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이 세상에서 끝나고 맙니다. 그러니 아무리 많은 복을 받았다 해도 일시적입니다. 믿는이들은 영원한 복을 추구합니다. 참으로 복 중의 복은 하느님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복을 주관하시고 천상의 복을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 하느님의 나라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믿는 이들에게 주시는 복은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기뻐하십시오, 이미 하느님을 차지하시고 섬기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복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신명기에는 “너희가 주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이 모든 복이 내려 너희 머리위에 머무를 것이다. 너희는 성읍 안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의 광주리와 반죽통도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는 들어올 때에도 복을 받고 나갈 때에도 복을 받을 것이다.”(신명28,2-6)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러니 말씀에 순명함으로써 복을 받으시길 희망합니다.

시편에서는“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시편1,1-3).고 하였습니다. 만사형통하려면 주님의 말씀을 되새기고 살아야 합니다.

시편저자는 말합니다.“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님은 도움이며 방패이시다. 주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시어 복을 내리시리라. 이스라엘 집안에 복을 내리시고 아론 집안에 복을 내리시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낮은 사람들에게도 높은 사람에게도 복을 내리시리라. 주님께서 너희를, 너희와 너희자손들을 번성하게 하시리라. 너희는 주님께 복을 받으리라. 하늘과 땅을 만드신 그분께(시편115,11-15). 복을 주시는 분은 주 하느님이심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복은 하느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복을 충만히 받으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유다인들의 명절에 대해 함께 묵상해 봅니다.

명절

어느 민족에게나 그 민족의 고유한 명절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아주 오랜 옛날부터 설명절과 추석명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때에는 서로 고향을 찾고 부모 형제를 만나고 조상들을 기억하며 서로 가족으로서의 친밀한 관계를 확인하게 됩니다. 옛날에는 지금보다 명절을 더 귀하게 생각하고 준비를 하여 가족과 이웃과 함께 서로 간에 복을 빌며 사랑을 주었습니다. 오늘도 길이 막히고 어려워도 고향을 향하는 마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만남의 기쁨이 있기에 세월이 흐르고 문화가 발달하여도 명절의 전통을 바꿀 수 없는 것 같습니다.

1. 유다인들도 명절을 보냈습니다.

유다인들에게는 3대 명절이 있습니다. ①유월절이라는 무교절(봄철 축제) ②맥추절이라고 하는 오순절(여름에 곡식의 맏물을 바치는 축제) ③초막절이라고 하는 추수감사절입니다.(가을에 모든 곡식을 거두어드리는 추수감사)

2. 어떻게 지냈는가?

이 삼대 절기에는 의무적으로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성전에서 하느님 앞에 감사하며 예물을 드리고 한 주간씩 축제를 하였습니다. 이때야말로 흩어져 사는 유다인들이 가족과 친지와 모두를 만나서 기쁨을 나누며 서로 축복하는 절기였습니다. 하느님은 유다인들에게 명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든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각 나라마다 민족마다 내려오는 명절이 있습니다. 이것은 무조건 부인하지 말고 성경적 입장에서 하느님의 뜻 가운데 해석을 해야 합니다.

3. 유다인들의 무교절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무교절은 ①새로운 역사를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집트에서 하느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기쁨과 감사의 절기입니다. 고달팠던 지난날을 생각하고 민족의 쇄신을 이루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의 새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유다인들은 다 무교절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그 이듬해 첫째 달, 주님께서 시나이 광야에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정해진 때에 파스카 축제를 지내야 한다. 너희는 정해진 때, 곧 이달 열나흗날 저녁 어스름에 파스카 축제를 지내야 한다. 관련된 모든 규정과 법규에 다라 지내야 한다.’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파스카 축제를 지내라고 일렀다. 그래서 그들은 시나이 광야에서 첫째 달 열나흗날 저녁 어스름에 파스카축제를 지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다”(민수9,1-5).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새로운 역사를 위하여 하느님께서 축제를 드리는 날입니다. 이들은 평생 그리고 대대로 잊지 않고 내려오면서 이 절기를 지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봄철축제인 과월절에는 새끼양을 축제의 제물로 바쳤는데 훗날 이를 누룩없는 빵의 축제와 일치시키게 되었습니다. 신약에서 축제 중의 축제는 부활축일입니다. 파스카신비 안에서 종말론적인 의미를 확인시켜 줍니다. 천상축제를 지향하는 주간의 시작인 주일은 그리스도인의 핵심축일입니다. 함께 모여 주님을 찬미하고 영성체로써 그분과 일치를 이루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4. 그리스도인들은 설 명절을 어떻게 지켜야 하나요?

우리나라의 설 명절은 유다인들의 무교절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한 해를 은혜 가운데 보내고 하느님께서 새로운 한 해를 펼쳐 주신 것을 감사하며 하느님의 가르침을 지켜야 합니다. 하느님 은혜를 생각하지만 동시에 조상들의 은덕도 생각하고 서로간의 만남 안에서 사랑을 확인하는 날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유다인들이 무교절을 지킨 것과 같이 1).구원의 은혜 감사 2).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신 은혜 감사 3).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신 하느님께 감사(적당한 절기, 경제, 문화, 건강, 물질) 4). 또 한 해도 하느님께서 자녀 된 우리를 지켜주실 것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 않고 거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5).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느냐?....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마라. 이러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6).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25-34). 그러므로 설 명절에는 서로 한 해를 축복하고 주님의 나라에 대한 희망을 나눠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자녀들도 부모님들의 안녕을 기원하고 천상에 대한 희망 안에 기뻐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5. 맥추절(오순절)은

그리스어로 50이라는 서수로 표현하고 있는데 주간절이라고도 합니다. 농업관련 축제로 이스라엘백성은 그해 새로 거둬들인 곡식을 제단에 바치고 축복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희생제사를 바쳤습니다(신명16,9-12. 민수28). 이 축제일은 파스카 축제와 무교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기쁨과 감사의 축제인 오순절은 1세기 후에 하느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을 기념하는 축제로 바뀌었고 신약의 오순절은 성령강림과 관련을 맺으면서 그리스도교에서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오순절에 성령강림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성령을 보내겠다고 하신 예수님의 약속이 실현되었습니다(루카24,49. 요한16,7. 사도1,4-5.8).

6. 초막절(추수감사)

초막절은 주님의 축제라고도 불렸습니다. 기쁨의 축제로 농업적인 요소와 역사적인 요소가 섞여 있습니다. 1년 농사의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에서 살았던 것을 기억하며 하느님께서 보호해 주신 은혜를 감사했습니다. 초막은 사막에서 지냈을 때의 궁핍함과 비참함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열기와 폭풍우를 피할 수 있는 피난처를 의미했고 하느님의 보호하심을 상징했습니다(시편27,5. 이사4,6). 유다인들은 이 절기를 하느님의 말씀대로 잘 지킴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이 축제 때에 남자들은 예루살렘을 순례하고 축제의 첫날과 마지막 날은 일상의 노동을 중지하고 쉬었으며 거룩한 모임을 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미사를 봉헌하며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미를 드림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오늘을 사는 신약시대의 그리스도교인들도 명절을 지키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은 유다인의 절기처럼 하느님께 감사하는 절기로 옛날의 수고와 땀을 추억하면서 오늘의 풍성한 은혜를 감사하면서 축제를 지내야 합니다. 설 명절에는 조상들을 기억하며 하느님의 자비를 빌어드리고 흩어졌던 가족들이 고향을 찾아 부모 형제 친척 친지들과의 기쁘고 즐거운 만남을 이루며 서로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전하는 절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민속의 날

조재형(가브리엘)신부

오늘은 우리 민족의 커다란 명절인 설날입니다. 아침에 떡국들 드시고 오셨습니까! 설날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많이 있지요. 세배, 설빔, 제사, 민속놀이, 가족들과 함께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귀성길의 긴 차량들 등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설날에 어른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듬뿍 담긴 덕담을 듣기도 합니다. 저도 어제 어머니가 계시는 의정부엘 다녀왔습니다.

어릴 때, 미술 시간이 생각납니다. 크레파스와 스케치북, 물감을 가지고 미술시간에 여러 가지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저는 미술 실력이 워낙 없어서 곧잘 그림을 망치곤 했습니다. 도화지는 없고, 그림은 망치고 참 난감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 옆에 있던 부자 집 친구가 자신의 스케치북에서 도화지를 한 장 주면 고맙게도 다시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지금도 그 때 그 친구를 생각하면 그 따뜻한 마음 씀에 고마운 생각이 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한해를 덤으로 주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지난 한해 인생의 그림을 성공적으로 그렸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분들은 지난 한해 시작부터 인생의 그림을 망치고 후회와 번민 속에서 한해를 마쳤을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잘 그리던 인생의 그림이 끝에 가서 그만 엉망이 되어버린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우리들에게 새로운 한해라는 흰 색의 도화지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런 하느님의 배려와 따뜻하신 사랑에 감사를 드리면서 새로운 한해 열심히 인생의 그림을 그려야겠습니다.

사랑이라는 색을 칠하고, 믿음이라는 색을 칠하고 희망이라는 색을 칠해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그런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며칠 전에 읽은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많이 아는 것보다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 좋고 서로 사랑하는 것 보다는 함께 즐기는 것이 더 좋다.’ 새로운 정부에서 함께 일할 사람들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많이 아는 것으로는 부족함이 없지만 서로 사랑할 수 있는,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새해에는 제가 아는 것만큼 그것들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진심으로 즐기려고 합니다.

이제 곧 봄이 옵니다. 봄이 되면 많은 꽃들이 필 것입니다. 그런 꽃들 모두는 추운 겨울을 온 몸으로 견디어냈습니다. 눈의 무게에 가지들이 꺾이기도 했고, 매서운 겨울바람을 피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 꽃은 피는 것입니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우리의 삶도 그만큼 상처와 아픔이 있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넘어진 일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서 앞을 바라보는 용기입니다.

2013년은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 정한 ‘신앙의 해’입니다. 서울대교구는 신앙의 해를 맞이해서 5가지의 실천과제를 정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으로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고, 하느님께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교구에서 정한 실천과제를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
둘째, 기도로 자라나는 신앙
셋째, 교회 가르침으로 다져지는 신앙
넷째, 미사로 하나 되는 신앙
다섯째,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

2013년도에는 이 다섯 가지 실천과제를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에는 남의 탓과 남의 허물을 이야기하기 전에 좀 더 신중할 수 있도록 될 수 있으면 남의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자신의 신앙생활을 더욱 성실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시고, 소망하시는 모든 일들이 다 이루어지시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마음

문성호 바오로 신부 / 구포성당 주임

오늘은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날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허물로 누벼놓은 낡은 지난 한 해를 가져가시고, 새로운 삶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백지와 같은 새로운 한 해를 우리 모두에게 주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부디 새해에는 소망하는 모든 일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설날은 특별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함께 만나는 날인 동시에 또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이게끔 이끌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조상님들께 차례를 통해서 만나고 성당에서 위령미사를 통해서 만납니다. 이렇게 설날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나신 분들과 살아 있는 우리들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새해가 시작되는 오늘 손아랫사람은 웃어른께 세배를 드리고, 웃어른은 아랫사람에게 덕담을 들려주며 서로에게 복을 빌어줍니다. 지금까지 가정과 사회를 돌보고 자녀를 길러준 부모세대와 앞으로 가정과 사회를 이끌어갈 다음세대가 한 해를 시작하면서 서로의 앞날을 위해서 축원을 해주는 날입니다.
사실 물리적으로 보면 새해 첫날인 오늘은 여느 날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설날을 맞이하는 우리 마음가짐은 여느 때와 분명히 다르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오늘 참으로 새로운 마음, 설레는 마음, 기쁜 마음, 벅찬 기대감으로 새롭게 시작되는 이 한 해를 시작합니다. 오늘 우리가 가지는 이 마음은 ‘깨어 있음’입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긴장의 끈을 조이고 나에게 주어진 나날을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자세가 바로 깨어 있는 자세가 아닐는지요?
늘 새롭고 기대에 찬 마음으로 일상을 살 수 있을 때, 나태함과 지루함, 게으름 등으로 나타나는 일상에 함몰되지 않고 늘 새롭게 살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제와 조금도 다름없는 오늘을 어제와 전혀 다른 새로운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깨어 있는 자세로 살아야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 나오는, 언제 올지 모르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한 해를 항상 깨어 있는 자세로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보람찬 한 해를 맞으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나의 이름을 부르면... 복을 내리겠다>

(2013. 02. 10 민수 6,22-27; 야고 4,13-15; 루카 12,35-40)

 장재봉 신부

주일과 설날이 겹친 사실만으로 사제는 기분이 좋습니다.
뿔뿔이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미사에 참례하는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정말 행복해집니다.

사실 명절 귀향길은 고생길입니다. 그럼에도 선뜻 포기하려 들지 않습니다.
길이 막혀서 고생할 줄 뻔히 알면서도 그렇습니다. 고향을 향한 마음, 부모님을 뵙고 가족을 만나려는 간절함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겠지요.

믿음의 길도 매한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길이 결코 수월치 않은 줄 알면서도 힘들고 어렵고 고달플 것을 예상하면서도 더러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지라도 ‘그분을 뵙고 그분을 만나겠다’는 신념이 있다면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더러 방해에 부딪히고 시련이 있을 줄 예상하면서도 주님을 향한 길에서 돌아서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길에서는 진정한 기쁨과 위로, 평화와 사랑을 얻을 수 있습니다.
꾸준하고 성실하게 나아간 그 길의 종착지에서 참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때문에 믿음인은 도중에 차가 밀릴 것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고생스러울 것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는”(2코린 4,8-9) 희망을 살아갑니다.
언젠가 “세상에서 사탄이 가장 성공한 일은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사랑할 여력이 없는 나약한 존재로 여기게 만든 것”이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의 능력을 비하시켜 자신은 예수님의 명령을 말씀대로 살아갈 재간이 없는 존재로 생각하는 일이야말로 사탄의 꼬드김임을 명심해야 한다는 요지였습니다.

이 글에서 교회의 소임을 적극적으로 사양하는 일이 겸손이 아니라 사탄의 농간에 휘둘리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솔직히 사랑뿐이신 주님을 믿는다면서도 그분께서 맡기신 사랑의 사명은 전혀 자신의 몫이 아닌 양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흔히 자신은 한참 부족하고 모자란다고 주저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내는 것은
그저 사제나 수도자들처럼 특별한 신분에서 가능하다 오해하며 지레 ‘포기’하려 듭니다.
주님께서 이르신 완덕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끝없는 신뢰와 끊임없는 도전, 그에 더해서 끈기와 용기가 필요한 이유일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엄청난 사항을
‘무조건’ 실천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누구나 할 수 없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그 특별한 삶을 살아내라고 강권하십니다. 정말로 ‘폭군’ 같습니다... 하 갑갑해서 이 좁아 터진 생각을 넓히려 마음을 쫙 잡아 당겨봅니다.

만약에 사랑을 살아가는 것에 대단한 전문성이 필요하다면 주님께서는 먼저 ‘사랑의 자격시험’을 치르게 했을 것이라 싶습니다. 꼼꼼하게 점수를 매기고 철저하게 적성검사까지 마친 후에 ‘사랑 자격증’을 주셨을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무 과정없이
무조건 무작위로 우리를 뽑아 사랑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이야말로 우리 속에 사랑의 능력이 잠재되어 있다는 귀띔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우리 안에 마르지 않는 당신 사랑을 푸지게 공급해 주실 것이란 약속임을 깨닫습니다.

우리 안에는 이미 당신께서 넣어주신 사랑의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일깨움을 얻습니다. 우리가 기술이 아닌 진심으로, 술수가 아닌 진정으로 세상을 사랑으로 꾸려 갈 것을 기대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읽습니다. 주님께 얻은 사랑을 마음껏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놓칠 수 없는 최고의 기쁨임을 기억합니다.

이 능력을 사용할 의지를 잃고 미적대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우리 모습에 주님께서 얼마나 안타깝고 안쓰러워하실지 충분히 헤아려집니다.
이야말로 우리가 그곳에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눈 빠지게 기다리시는 주님을 실망시키는 ‘나쁜 짓’이라는 걸 깊이 새깁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사장된 우리에게 귀한 축복의 언어를 일러주십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불러 축복해주면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고 언약하십니다.

기쁜 설, 아직 복음을 모르는 친지와 가족들에게 이 축복을 고스란히 전해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꼭 돌아가야 할 ‘아버지 집’ 이야기도 들려주는 은혜의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먼 길 고생을 마다않고 꼭 가야 할 ‘아버지 집’이 있습니다.  모두모두 새해에는 더 큰 복 누리십시오!


 

새해 많이 받으십시오.!

                 ~**^*^**~로마노올림 ~**^*^**~

.*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주일복음강론

목록 전체보기 →
사순 제1주일(루카 4,1-13)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13.02.17조회 62재의 수요일(마태오 6,1-6.16-18) 사람들에게 보이려고13.02.13조회 60<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설 (루가12,35-40)13.02.10조회 174연중 제4주일 (루카 4,21-30)13.02.02조회 62연중 제3주일(해외 원조 주일) (루카. 1,1-4; 4,14-21)13.01.27조회 64연중 제 2 주일 ]가나에서 당신의 첫기적을 행하셨다(요한 2,1-12)13.01.20조회 62주님 세례 축일 (루카 3,15-16.21-22)13.01.13조회 59주님 공현 대축일(마태오 2,1-12)13.01.06조회 602013년 1월 1일 화요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세계 평화의 날)(루카 2,16-21)13.01.01조회 61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루카 2,41-52)12.12.30조회 55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요한 1,1-18)12.12.25조회 59대림4주일. 말씀을 믿으신 분!”(루카 1,39-45)12.12.23조회 60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나누어 주어라. (루카 3,10-18)12.12.16조회 591대림 제2주일(인권주일, 사회교리주간) 회개촉구(루카 3,1-6)12.12.09조회 61대림 제1주일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25-28.34-36)12.12.02조회 58연중34주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성서주간) - 요한 18,33ㄴ-3712.11.25조회 1,300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 - 마르코 13,24-3212.11.18조회 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