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수요일(마태오 6,1-6.16-18)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2013. 2. 13. 오전 7:45:17

글자


2013년 2월 13일 재의 수요일

오늘 ‘재의 수요일’은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첫날이다. 교회가 이날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축복하여 머리에 얹는 예식을 거행하는 데에서 ‘재의 수요일’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이 재의 예식에서는 지난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축복한 나뭇가지를 태워 만든 재를 신자들의 이마나 머리에 얹음으로써, ‘사람은 흙에서 왔고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창세 3,19 참조)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오늘은 단식과 금육을 함께 지킨다.

▦ 회개의 사순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순례의 길을 걸으며 노예의 근성을 버리고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신분에 맞갖은 삶을 익혔습니다. 우리 또한 40일의 여정을 보내며 자신의 죄를 깊이 뉘우치고 하느님 자녀의 삶을 새롭게 다지도록 초대받았습니다. 이 초대에 기꺼이 응합시다.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그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마태오 6,1-6.16-18)

말씀의 초대

스승 엘리야와 제자 엘리사의 이별은 눈물겹지만, 스승의 마지막은 신비스럽다. 엘리사는 스승이 지닌 예언자적 영감을 이어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예언자적 영은 엘리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나온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엘리야는 다만 제자의 예언자적 영감에 관한 표징만 일러 줄 뿐이다(제1독서). 자선과 기도와 단식은 하느님과 이웃과 자신의 관계를 드러내는 그리스도인의 행위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실천의 가치를 부인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 실천이 진정한 것이 되게 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신다. 자선은 나누는 행위이고, 기도는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이며, 단식은 자기중심주의를 버리는 결단의 행위이다(복음).

☆☆☆

 오늘의 묵상

자선과 기도와 단식은 우리 마음을 낱낱이 알고 계시는 아버지의 자녀들이 하는 덕행입니다.
자선은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행위입니다. 자선은 자신의 이기적인 소유욕을 이겨 냄으로써 올바른 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습니다. 칭찬받으려고 자선을 베푸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섬기는 것이 되기 때문에 ‘거짓 자선’에 불과합니다.
기도는 주님과 나누는 대화입니다. 기도를 바칠 때에는 자신의 온몸과 마음을 대화의 상대자인 하느님께 향해야 합니다. 그분을 유일하신 주님으로 인정하고, 자신은 피조물임을 고백하여 자만심을 없애야 합니다. 자기를 중심에 두거나 칭찬받으려고 바치는 기도는 ‘거짓 기도’에 불과합니다.
단식은 자기중심주의를 버리고 오로지 주님만을 삶의 중심에 두겠다는 의지의 행위입니다. 단식은 자신의 현세적 욕망, 물질적 경제적으로 성공하겠다는 욕심을 과감하게 끊어 버리는 행위입니다. 그리하여 참된 인간으로 성장하고 주님의 뜻에 따라서 새로운 삶을 실현하려는 데에 전적으로 투신하는 행위입니다. 남에게 보이려고 단식을 한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단식의 본의미를 한꺼번에 다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숨은 일도 다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겸손한 마음으로 남모르게 하는 선행을 기뻐하십니다.

☆☆☆

 “적선(積善)하는 사람은 귀신도 두려워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적선에는 하늘의 힘이 담겨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불안하면 점을 보고 부적을 붙이고 액을 쫓는 데에만 열중했지 적선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말은 쉬워도 행동은 예로부터 어려웠던 것입니다.
남을 돕는다고 모두가 적선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참된 적선은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합니다. 복음 말씀처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적선을 금전과 연관 짓습니다. 돈으로 도와야 적선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남을 돕는 일이 어찌 금전뿐이겠습니까?
불교의 보시(布施)에는 세 등급이 있습니다. 첫째가 무외시(無畏施)입니다. 삶의 두려움을 없애 주는 것을 최고의 적선으로 보았습니다. 두 번째는 가르침을 베푸는 법시(法施)입니다. 제일 낮은 것이 재시(財施)입니다. 재물로 도우는 것을 적선의 기본으로 본 것이지요.
그러니 진정 요구되는 것은 돈과 재물이 아니라 애정입니다. 때로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강렬한 적선이 됩니다. ‘다정한 눈빛 하나’가 어떤 행위보다 힘 있는 자선이 됩니다. 베풀면 반드시 은총이 옵니다. 하늘의 힘이 그와 그의 주변을 지켜 줍니다.

☆☆☆

자선과 기도, 단식은 우리가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올바른 자선과 기도, 단식이란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남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숨은 일도 보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우리는 짐짓 옳고 멋진 사람이라는 걸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자선과 기도, 단식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드러내 보여야만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숨은 일도 모두 보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전능하심을 먼저 인정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선행이나 악행은 하느님께 결코 숨길 수 없습니다. 사람을 속일 수는 있으나 하느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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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보이려고>(마태 6, 1-6)

 

-유광수 신부-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게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오늘 복음을 보면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나팔을 불지 마라/ ...해서는 안 된다/ ...빈 말을 되풀이 하지 마라/ ...표정을 짓지 마라." 는 부정적인 단어들이 많이 나오고 반면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너는 금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는 긍정적인 단어들이 나온다.

즉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해야할 것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왜 이런 구분을 지으면서 살아야 하는가? 과연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 부정적인 모습이 많은가? 아니면 긍정적인 모습이 많은가?

우리는 비교적 "... 하지 마라"는 것은 하고, 반대로 "..하라"는 것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 각자 "..하지 마라."는 것 중에 내가 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 하라"고 한 것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우리의 생활을 돌아보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된다.

아무튼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는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가? 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고, 다른 사람들한테 칭찬을 받고 싶어하고, 내가 하는 선행을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예뻐 보이려고 화장도 하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화려한 경력이나 학력을 내세우기를 좋아한다. 이런 모든 행동들은 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기 때문에 나오는 행동들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행동들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고 또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 잘 사는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은 늘 경쟁의 대상이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이기려고 하니까 늘 다른 사람들보다는 모든 면에서 앞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여기에서 질투가 생기고, 미움이 생기고, 급기야는 원수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이와는 정반대의 삶을 요구하신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잘 보이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칭찬을 받으려고 하지도 말고,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금식할 때에는 애처로운 표정을 짓지도 말고 오히려 남이 알아보지 못하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고 까지 말씀하신다.

도대체 이런 사람은 어떤 인생관을 갖고 살아가는가? 이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 않을 만큼 모든 것에서 초월한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어제 복음에서 우리는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다.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완덕을 추구하는 사람의 삶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무렇게 살아서 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해야할 것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완전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항상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느님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의 삶의 목표는 어떻게 하면 완전하신 아버지를 닮을 수 있는 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삶의 원칙은 분명하다.

즉 아버지를 닮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피할 것이고 아버지를 닮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취할 것이다. 반대로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 삶의 목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사람은 자신을 위한 것은 취하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취하지 않을 것이다.

즉 하느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늘 하느님 중심으로 살아갈 것이고 자기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늘 자기 중심으로 살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하느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섬기는 자세가 아니라 자신을 섬기는 자세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남들한테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 하고 모든 관심은 다른 사람들한테 칭찬 받고 존경받는 것에 있다.

이런 사람의 마음 안에는 하느님이 안 계시기 때문에 마음이 허전하고 그래서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한테 관심과 사랑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늘 바쁘다. 그리고 여기 저기 쫓아다녀야 하고 좋은 것을 입어야 하고 항상 최고의 것을 지향한다. 그래야 남한테 칭찬받고 의롭다는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힘이 분산되고 산만하다. 안정되지 못하고 늘 쫓기며 불안해 한다.

반면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오직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살아가기 때문에 조용하면서도 모든 힘을 한 곳으로 모은다. 따라서 시간 낭비가 없고 힘이 분산되지 않으며 한 곳에 투신할 수 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과는 소원하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쳐 투신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하느님한테서 힘을 받고, 그 힘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 사랑으로 발산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한테 힘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힘을 얻기 때문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시는 아버지께 기도한다.

사람이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삶의 방식이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세 가지 관계를 맺고 있다. 하나는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이고 두 번째는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이고 세 번째는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이다. 이 세 가지 관계는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관계는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이다.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가 잘 이루어 져야 다른 관계도 원만하게 이루어 지고 삶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우리가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피하고 해야할 것은 최선을 다할 할 때 완덕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한발작 더 가까이 나아갈 것이다.



재의 수요일에

 반영억라파엘신부

부활의 기쁨을 준비하는 사순절입니다. 사순이라는 말은 40일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중대한 사건을 두고 그를 준비하는 기간을 상징합니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전 40일간 재를 지켰고, 엘리야도 호렙산에 갈 때 천사가 주는 음식만 먹으며 40일을 걸었으며, 예수님께서도 공생활 전 40일 동안 단식과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인 부활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 40일간의 기간을 정하여 기도와 희생으로 재를 지키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부활의 영광이 없다면 그 믿음은 헛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몸소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에게 부활의 희망을 안겨주셨습니다. 따라서 부활의 기쁨이 큰 만큼 거기에 걸 맞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은 그것을 자선과 기도, 단식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단식은 자신에 대한 절제와 극기의 상징입니다. 그냥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한 부분입니다. 단식을 함으로써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겪으신 배고픔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그 순간부터 배고픈 이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며 온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돕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내가 허기져봐야 굶주린 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됩니다.

기도는 내 삶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알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함으로써 하느님과 통교하게 됩니다. 마치 전등이 발전기와 연결됨으로써 빛을 발하듯 기도는 우리를 하느님과 연결시켜 줍니다(구엔 반 투안 대주교). “기도는 심장과 심장의 만남입니다.” 사실 기도는 사람들이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안에 살려면 호흡을 하듯이 기도해야 합니다. 왜 호흡을 해야 합니까? 하지 않으면 이미 죽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기도하지 않으면 이미 신앙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수록 그만큼 더 가치가 있습니다(샤를 드 푸코).

자선은 단식과 기도의 자연스런 결과입니다. 기도의 열매는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풀어야 합니다.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하고 또 민첩하게 해야 합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누가 보든 그렇지 않든 자선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바치는 좋은 예물입니다. “자선으로 씨를 뿌리면 열매는 천국에서 넘치도록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저함이 없이 베푸십시오. 주님께서는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 하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기도와 단식, 그리고 자선은 서로를 보완해 주고 있습니다. 어느 하나가 빠지면 다른 것이 불완전 해 집니다. 그러므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재의 수요일을 맞으면서 기도하고 단식을 지켰는가? 그렇게 하셨다면 그 희생을 누구를 위해 사용하려고 마음먹었는가? 사실 아침을 굶고 나니 배가 고파요. 그래서 점심을 평소보다 더 많이 잡수셨어요. 그렇게 한다면 알맹이가 빠진 것이지요. 평소에는 굶어도 굶었다는 생각도 없이 지나치는데 사순절이 되면 유난히 배가 고파 옵니다. 합동 판공성사에 다니다 보면 알게 모르게 살이 올라요. 가는 곳마다 오랜만에 오신 신부님 대접한다고 고기에, 회에 넘치도록 챙겨주시거든요. 마음을 먹고 무엇인가 하려고 할 때 유혹의 빌미는 항상 생기게 마련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해요. 그러면서 하루세끼 식사는 꼭 챙겨 드시려고 하거든요. 오히려 너무 바빠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바빠서 제 길을 걷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내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리고 자선은 베풀면 베풀수록 줄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아쉽고 아까운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시면 하실수록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나중에 한꺼번에 좋은 일을 하겠다고 하시는 분은 평생 아무 일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일상생활의 작은 일에서부터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순절을 맞이하여 외적인 기도와 단식, 자선에 앞서 마음의 단식과 자선, 그리고 기도에도 소홀함이 없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은혜로운 때, 구원의 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합니다.

 

<가장 큰 보속>

 양승국신부

복음서에 나오는 등장인물들 가운데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야단을 많이 맞는 사람이 있다면 단연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위선자들)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을 비롯해서 마태오 복음 23장이나 마르코 복음 7장, 루가 복음 11장은 온통 그들을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예수님의 질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책망의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말만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워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투는 또 얼마나 위협적이고 섬뜩한지요. "이 위선자들아! 이 눈먼 인도자들아! 이 회칠한 무덤 같은 자들아! 이 뱀 같은 자들아! 이 독사의 족속들아!"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 못지않게 복음서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베드로 사도 못지않게 자주 예수님을 만났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주변에 맴돌면서 주의 깊게 예수님을 관찰하면서 예수님과 삶을 나누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때로 서로 깊이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는가 하면 서로의 논리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관계가 심상찮게 악화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너무나도 그릇이 크신 분, 너무나도 새로우신 분, 너무나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파격적인 존재였기에 마음깊이 수용하는데 실패하고 맙니다. 일생일대의 실수를 범한 것이지요.

복음사가들은 왜 한결같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로 대변되는 위선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강도 높은 질책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신랄하게 고발하는데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을까요?
바로 우리들 보고 들으라는 것입니다. 특히 가르치는 사람들, 지도층 인사들, 교사들, 부모들 어른들을 향해 듣고 심각하게 반성하라는 의도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위선자들을 무섭게 몰아세우면서 야단을 치고 계시는데, 이 복음을 묵상하면서 그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같은 마음으로 야단만 맞고 있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아닌 듯 합니다. 강한 질타 이면에 긷든 예수님의 의도를 파악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질타가 오늘 우리에게 주려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하겠습니다.

해답은 이것인 듯 합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위선적인 삶과 정 반대에 서있는 그 누군가를 찾아내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참된 신앙인의 상, 참된 지도자상을 찾아내는 일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인 듯 합니다.
이 사순시기 우리가 추구해야할 참된 신앙인의 모습, 참 지도자의 모습은 위선이나 가식과는 거리가 먼 사람, 다시 말해서 꾸밈없는 사람, 순수한 사람, 솔직한 사람, 자연스런 사람,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이겠습니다.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신의 존재 중심에 굳게 자리하고 계시기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에 연연해하지 않는 사람이겠습니다.
꼭 필요한 말만 하면서, 자신이 내뱉은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되 결코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한 사람이겠습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오니 아이들이 다들 무사해서 너무나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또한 아이들이 환한 얼굴로 반겨주니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재의 수요일에 저희 수도원 공동체 형제들은 공동 보속으로 사순절 기간동안 간식 및 음료수, 술 안마시기로 정했습니다. 다른 것은 그럭저럭 지키겠는데, 술 안 마시기는 너무나 과중한 형벌이어서 벌써 걱정이 앞섭니다. 보속을 통해서 절약한 돈은 모아서 선교지에서 고생하는 신부님들을 위해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사순시기 가장 큰 보속은 뭐니 뭐니 해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잘 견디는 일인 듯 합니다. 마음 크게 먹고, 때로 봐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르는 척 하는 일이겠습니다. 이웃을 해치는 말이 나오려할 때 입을 자주 틀어쥐는 일이겠습니다.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허전한 뒷모습에 연민의 정을 느껴보려는 넉넉한 마음을 먹는 일이겠습니다.
   

 

재가 되려면 뜨겁게 타올라야 한다

 

 

한 해 동안 십자가 곁을 지켜온 성지(聖枝)가 뜨겁게 타오른다. 재가 되려면 타올라야 한다. 온전히 다 태우고 새하얀 재가 돼야 비로소 부활을 기다릴 수 있다. 한 해 동안 신앙인으로 살아온 우리는 얼마나 뜨겁게 주님을 사랑했는가. 재의 수요일. 성지와 같이 뜨겁게 타올라 재가 되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며 올해도 머리에 재를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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