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일'에수님과 자케오 '
+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3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4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5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7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루카 19,1-10)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만나는 자캐오는 키가 작아서 적잖이 무시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열등감이 쌓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열등감을 이겨 내고자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키는 작지만, 오히려 사람들 위에 군림하면 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곧 세관장이 되어 사람들의 돈을 착취하여 떵떵거리는 부자가 되면, 아무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은 그를 더욱 증오하였습니다.
자캐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는 사실은 이 모든 것의 상징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돌무화과나무의 열매는 일반 무화과만은 못해서 가축 사료로 많이 사용되었고, 그나마 단맛이 나기 때문에 가난한 이들의 식량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간 것은 서민들을 밟고 높은 자리에 올라갔음을 상징합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자기를 우러러볼 것이라고, 자기도 예수님처럼 귀한 분을 떳떳이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키가 크든 작든, 죄인이든 의인이든, 부족하든 풍족하든 상관하지 않으시는 예수님께서 그냥 내려오라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자캐오는 사랑받고자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려오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예수님을 참되게 만나는 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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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캐오 회심사건
+양승국신부+
복음서 안에서 가장 극적인 삶의 전환을 이룬 사람들이 있다면 어떤 인물이 있을까요? 가장 드라마틱한 삶의 전환을 이룬 사람이라면 아마도 ‘우도’이겠지요. 그는 살아생전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으면 법정에서 사형 언도를 받았습니다.
우도가 좌도에게 한 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 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는 말을 통해 그가 얼마나 인생을 잘 못 살았는지가 확실히 드러났습니다. 그야말로 천벌 받을 짓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숨 거두기 10분 전쯤에 예수님께 청합니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보십시오. 우도는 그야말로 인생 막판에 대박 로또를 터트린 것입니다. ‘우도 직천당’ 사건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우도 직천당 사건’에 버금가는 사건이 또 하나 있었는데, 그 사건이 바로 ‘세관장 자캐오 회심 사건’입니다.
자캐오는 키만 작았을 뿐이지 세리들 가운데 두목이었습니다. 당시 속담 가운데 ‘세리가 지나가면 집이 두려워 떤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들은 하류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수많은 부정적인 수식어들이 따라다녔습니다. 매국노, 수전노, 인간말종, 구제불능...한마디로 세리들에게 구원의 가능성은 전혀 없었습니다. 하느님도 포기한 인간도 아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길을 지나가시다가 돌무화과나무 위에 몸을 숨기고 있는 자캐오에게 다가가십니다. 그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의 집을 방문하셔서 머무십니다. 그의 친구가 되신 것입니다.
이 사건은 당대 정말이지 깜짝 놀랄 사건,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는 사건이었습니다. 구세주 하느님께서 죄인 중의 죄인이자 구제불능의 인간 자캐오와 한 식탁에 앉으신 것입니다. 식탁에 앉으신 것뿐만 아니라 회개하는 자캐오에게 확실한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지캐오 회심사건은 하느님의 부드러움이 인간의 냉랭함을 완전히 녹여버린 특별한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친밀하고 따뜻한 접근은 순식간에 자캐오의 닫힌 마음을 활짝 열게 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의 지갑과 곡간까지 활짝 열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자캐오는 구원을 확증받기에 이릅니다. 구원 가능성 제로에서 100% 구원을 얻은 자캐오의 인생 역전은 우리에게도 큰 희망으로 다가옵니다.
자캐오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질책이나 처벌, 법의 잣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들, 그래서 돌무화과나무 잎사귀 뒤에 몸을 웅크리고 숨어있는 우리들 앞에 서실 것입니다. 그리고 큰 목소리, 그러나 다정한 친구의 음성으로 우리를 부르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캐오처럼 힘찬 우리 편의 응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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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today I must stay at your house.
제2독서 2테살 1,11─2,2
복음 루카 19,1-10
계속 내리는 빗방울이 우산 틈 사이를 통해 계속 들어오고 있었고, 1시간 정도의 미사 시간 동안 신자들은 젖은 땅에 앉을 수 없어 모두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산 때문에 제대 쪽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단지 말소리만 들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최악의 상태의 미사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아는 교우들을 몇 분 만났는데, 하나같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신부님, 비가 와서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오늘 미사 너무나 좋았습니다.”
비 오고, 사람 많고, 다리 아파서 나빴다고 이야기를 해야만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좋았다고 말하는 것이 참 이상했지요. 그런데 모든 환경이 만족스러운 본당에서의 미사를 떠올려 봅니다. 본당에서는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비 맞지 않고 미사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우산 때문에 제대가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춥지도 않습니다. 어제 위령의 날 미사에 비교한다면, 본당에서 행해지는 미사는 정말로 가장 좋은 미사라고 말해야 합니다. 하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이 미사가 힘든지, 영성체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돌아가십니다.
주변의 환경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내 마음이 열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바로 주님을 맞아들이려는 마음에 따라 가장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짜증을 낼 수 있고, 가장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행복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자캐오를 보십시오. 그는 부자였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경멸하는 세관장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키가 작아서 예수님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체면에도 상관없이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그가 오른 돌무화과나무 역시 그렇게 중요한 나무가 아닌, 아주 보잘 것 없는 나무입니다.
모든 상황이 안 좋았습니다. 그러나 자캐오는 이렇게 안 좋은 상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고 구원이라는 큰 선물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크고 대단한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주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없다면 어떤 좋은 상황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캐오처럼 간절한 마음, 자신의 단점과 부족함을 극복하려는 노력,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내어 놓은 열린 마음 등이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의 길에 들어 설 수 있게 합니다.
지금 내 모습을 생각해보세요. 혹시 좋은 상황에서도 부정적인 마음으로 나쁜 상황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또 나쁜 상황에 놓였다고 그냥 포기하고 주저앉은 것은 아닌가요? 자캐오의 모습을 닮아 구원을 향해 힘차게 걸어가는 우리가 되도록 합시다.
천막 속에서의 미사. 주교님 강론 중.
우리 인간 역시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에 길들여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그 물질적인 것들이 없다고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그러한 식으로 길들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길들입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이지만 그 안에서 희망을 간직할 수 있도록 길들입니다.
이러한 주님을 두고 누구를 쫓겠습니까? 주님이 아닌 세상의 것들에 길들여져 있었던 내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주님께 철저하게 길들여져 있을 수 있도록 그래서 가장 행복한 내가 되었으면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