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주일]부르심과 응답 ( 마르 1,14-20)

2015. 1. 25. 오후 7: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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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25일 연중 제3주일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제1독서 요나 3,1-5.10    제2독서 1코린 7,29-31     복음 마르 1,14-20
 
 부르심과 응답    오상선바오로 신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던 것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고귀하고 값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면서 이 세상의 온갖 좋은 것도 다 가지고 싶어합니다.
예수님만으로 만족하십시오.  하느님만으로 만족하십시오.
하늘나라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오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이 아버지와 그물을 버리고 즉시 부르심에 응답하였듯이  또 오늘 개종축일을 지내는 사도 바울로가 그랬듯이 내려 놓고 가볍게 그분을 따라 나섭시다.
그것이 회개요 개종이겠지요.
오늘 여러분은 무엇을 내려놓으실래요?

http://cafe.daum.net/4thking  작은형제회 / 정동수도원

 

 

 

 

<복음과 '신망애'>

송영진 모세 신부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4-15)"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소식이 바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기쁜 소식(복음)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라는 말씀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바란다면 회개하고,

나를 믿고, 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때가 찼다는 말은 하느님께서 구원 사업을 완성하실 때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가까이 왔다는 말은 그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공간적으로, 인간 세상 근처 어딘가에 가까이 와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또 시간적으로, "하느님의 나라가 곧 올 것이다." 라는 뜻도 아닙니다.)

바리사이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써  우리 가운데에서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종말과 재림이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때입니다.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신앙인들은 이미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냥 살기만 해도 되는 것은 아니고,

그 나라의 완성을 위해서, 또 각자 '하느님 나라에서의 자기 자신의 삶'의 완성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신앙생활은  하느님 나라에서 얻게 될 영원한 생명의 완성을 위해서 노력하는 생활이고,  그 완성을 향해서 나아가는 생활입니다.

그 노력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단순히 죄를 뉘우치는 일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죄를 뉘우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희망하면서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구세주라는 것을 믿고,  예수님을 믿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받아들여서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회개를 하면서도 믿음이 없다면, 또 믿기는 하는데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내용을 '믿음, 희망, 사랑'과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장 먼저 하느님 나라를 희망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순서가 중요한 것은 아니고, 사실은 세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1) 희망 - 물질적인 복, 세속적인 부귀영화, 입신양명, 출세 같은 것만 바라고 하느님 나라의 구원, 영원한 생명, 영원한 행복 등을 희망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복음이 '기쁜 소식'으로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저 떠버리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사도 17,18)" 라는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요즘에도 그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만 생각하고, 현세의 삶만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종교와 신앙에 관한 말은 모두 먹고사는 일과 아무런 상관없는  허망한 말이라고(헛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2) 믿음 -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면서도  예수님이 아닌 다른 메시아를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사실 다른 메시아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당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다면, 예수님께서 인도하시는 하느님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로 가려고 애를 쓰게 될 텐데, 하느님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는 없기 때문에 그냥 그 나라에 못 들어가는 것으로 인생이 끝날 것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또 자신의 힘으로 공덕을 쌓아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학식과 재능만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바리사이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분의 도움이 없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이유가 없습니다. 

3) 사랑 - 희망하고 믿는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예수님의 계명들을, 특히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입으로 '주님, 주님!' 한다고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해야 들어간다고 가르치셨습니다(마태 7,21). 예수님의 계명들을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또 최후의 심판은 '사랑의 실천'을 얼마나 잘했느냐가 기준이 될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태 25,31-46). 

마르코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복음 선포 다음에 바로 시몬과 안드레아를 제자로 부르시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기록되어 있는 대로 읽는다면  시몬과 안드레아는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인 첫 번째 사람들이 됩니다.

그들이 부르심을 받자마자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라나선 것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고, 자기들의 희망이 이루어졌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온 삶으로' 예수님의 계명들을 실천하면서 살았고, 순교했습니다.

 사도들은 자기들이 믿고 희망한 대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고 있고,  또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부르심과 응답 

                                         반영억라파엘신부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에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부르심은 일상 안에서 주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삶의 자리에서 응답해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이 시간 그분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할 수 있는 기쁨을 차지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시 하나 읽어 드리겠습니다.


님께서 부르시면 달려가지요.

하던 것 멈추고, 있는 것 버리고……

님께서 부르셨으니 응답하지요.

두려움 버리고, 망설임 없이,

임이 원하시는 그 모습으로 하며. -홍요한-


예수님께서는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안드레아, 그리고 그물을 손질하고 있던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습니다…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와 삯꾼들을 배에 남겨둔 채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마르1,18-19). 이것은 일상생활에 부대끼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부르심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물을 버리고 더욱이 아버지까지 남겨둔 채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는 것은 기존의 생각, 가치관을 바꾸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만을 생각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소중한 것들을 미련 없이 떨쳐 버리고 앞을 보고 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기”(루가9,62) 때문입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다보다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습니다(창세19,26) 그래서 오늘 2독서에서 바오로사도는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1코린7,31)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물을 버리고 아버지를 남겨두는 것은 편안함과 안전, 기득권을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사실 이것이 회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1,14).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이제 생각을 바꿔라. 불의한 기존 질서를 따르지 말고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요구를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제는 내 뜻을 접고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은 멀리 있지 않고 일상 안에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구원은 믿음을 통해서 온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실천 없는 믿음이라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야고2,17). 따라서 내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마음에 들고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 늘 생각해야 하고 또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바꾼다는 것은, 회개한다는 것은 결코 일회적으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죽음에 이르기 까지 지속되어야 할 일입니다. 아내를 대하는 태도가, 남편을 대하는 태도가, 자식을 대하는 태도가, 부모를 대하는 태도가, 이웃을 대하는 태도가 과연 주님의 마음에 드실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 있다면 단호히 버려야 합니다. 잘못된 습관이 있다면 그물을 버리듯, 아버지와 삯꾼과 관계를 끊어버리듯 확실하게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곧 지난날의 생활 방식에 젖어 사람을 속이는 욕망으로 멸망해 가는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여러분의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에페4,23-24). 응답한다는 것은 결국 새로워진 회개의 삶이 전제된 것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를 모르는 것은 좁은 우물 안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고, 여름 벌레가 얼음을 모르는 건 더운 여름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래요. 한 가지만 생각하는 사람이 다른 여러 가지를 모르는 것은 그 한 가지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로 내 안에 갇히면 다른 것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내 판단이 아니라 주님의 판단이기를 바랍니다. ‘나는 잘 하고 있는 데 다른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주님의 잣대로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어머니의 위치에서 아내의 자리에서 혹은 아버지의 위치에서 가장의 자리에서, 남편의 위치에서, 직장의 상사로, 사원으로, 좋은 이웃으로……… 지금 삶의 자리에서 당신의 뜻을 행하길 원하시며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 마음에 드는 답을 하시기 바랍니다.

 

“주 하느님, 당신을 만나 뵐 수 있을 때 당신을 찾게 하소서. 당신이 계실 때 당신을 부르게 하소서……

죄인은 제 길을 버리고 불의한 사람은 제 생각을 떨쳐 버리게 하소서. 당신이 가엾이 여겨주실 때 저희가 돌아오게 하소서. 당신의 생각은 저희 생각과 같지 않고 당신의 길은 저희 길과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길은 저희 길 위에 있고 당신의 생각은 저희 생각 위에 드높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비와 눈이 땅을 적시어 싹을 틔우듯이 당신의 말씀이 저희에게 심어져 당신이 뜻하신 바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당신의 부르심을 받아들이고 뒤따라간 제자들의 대열에 저희가 들 수 있도록, 당신의 말씀이 헛되이 돌아가는 일이 없게 하소서(이사 55,6-11참조).

매 순간 부르심에 응답하는 가운데 주님을 깊이 만나시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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