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1주일]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다. (마르코복음 1,12-15).

2015. 2. 22. 오전 8:22:41

글자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다 (마르코복음 1,12-13) - 모레토 다 브레시아​ 외 3인

 [(자) 사순 제1주일]   

오늘은 사순 제1주일입니다. 사순 시기를 연 지난 재의 수요일 예식에서 우리는 머리에 재를 받으며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하는 권고를 들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까지 진리의 길을 보여 주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여정에 함께하면서 예수님 제자의 삶을 새롭게 봉헌합시다.     

 

사악한 모든 것을 쓸어버리시고 홍수를 통해 재창조를 이루신 주님께서는, 노아와 계약을 맺으시고 새 창조의 세계와 노아와 그의 후손들까지 지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제1독서창세기 9,8-15). 베드로 사도는 노아의 홍수를 세례의 원형으로 상기하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가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며 부활의 능력을 입게 할 것이라고 가르친다(제2독서베드로 1서3,18-22).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며 단련하시고,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시며 천사들의 시중을 받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세례 운동을 계승하시고자 갈릴래아로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신다. (마르코복음 1,12-15).     

 

 노아홍수와 방주  광야의 유혹

 태초에 창조의 땅 에덴에서는 햇빛이 전등이었고 구름은 승용차였다. 흙은 살갗이었고 뼈는 바위였다. 강은 핏줄이었고 나무는 피부에 난 솜털이었다. 숲은 꽃과 열매가 가득한 슈퍼마켓이자 한약방이었다. 늦게야 아담이 태어났는데 의식주가 따로 없었다. 그래서 땀 흘리는 수고도 없었고 죽음도 두려움도 없었다. 보고 들으면 그대로여서 생각도 필요하지 않았다. 하늘과 땅과 동식물과 사람은 하느님의 가족이었고, ‘평화’와 ‘행복’은 동사(動詞)였다. 하느님께서도 할 일이 없으시어 자연과 사람은 생성, 변화, 소멸의 운동이 없었다.
다만 사악한 뱀이 속삭이는 유혹의 소리를 아담이 넘지 못했다. 그 순간부터 변화가 나타났다. 태양은 빛을 잃고 강은 멈추었으며 사자에게는 이빨이 생겨났다. 사람에게는 부끄러움과 두려움과 노고가 시작되었다. 하느님께서는 꽃이 다시 피게 하시려고 당신의 아드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감언이설로 아담을 유혹했던 사탄이 거기까지 따라왔지만 하느님의 참사람이 가진 말씀에 이겨 낼 수 없었다. 메마른 광야에 다시 강이 흐르고, 사자들은 어린양과 놀며, 어린이가 독사로 장난치고, 천사들은 호위 무사를 맡았다. 평화와 행복은 다시 ‘동사’가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아담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창조의 원형을 복구하신다. 창조성이란 자기다움이다. 사순 시기는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이 자기다움의 회복을 하기 위한 수행의 시기다. 인간다움, 교회다움, 신앙인다움, 부모다움, 자식다움, 국민다움, 대통령다움 …….
나는 누구이고 나를 만든 분은 누구신가? 사람은 자신과 하느님을 알기 위해 종종 광야로 나가 자신을 담금질할 필요가 있다. 사순 시기의 수행에 주님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빈다.     

 [마태오 복음서] 4,1~25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다...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다.>     송영진 모세 신부

"그 뒤에 성령께서는 곧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또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마르 1,12-13)."

예수님께서 사십 일 동안 광야에서 단식기도를 하신 것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시기 전에 먼저 '내적 준비'를 하신 일입니다. 그러나 준비가 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고행과 수련을 하신 것은 아니고,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를 기다리시면서 하느님과 함께 지내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 때 어머니께서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을 알리시자 예수님께서는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라고 대답하셨는데(요한 2,4), 바로 그 '때'를 기다리시면서 광야에서 단식기도를 하셨을 것입니다.

또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시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신 것처럼 광야에서의 단식기도도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시기 위한 일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모범.

예수님처럼 바오로 사도도 그렇게 준비를 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바오로 사도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자마자 바로 활동을 시작한 것처럼 기록되어 있지만(사도 9장), 갈라티아서를 보면,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뒤에 바로 아라비아로 가서 삼 년 동안 지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갈라 1,17-18). 아마도 아라비아 사막에서 고행과 기도를 하면서 사도로서 활동할 준비를 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사순 시기는 예수님의 광야에서의 단식기도와 비슷합니다. 일차적으로는 부활절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 사순 시기를 지내는데, 부활절 준비만을 위한 시기는 아니고, 우리의 신앙생활을 다시 점검하고 새롭게 하는 시기입니다.

사실 "나는 평소에 잘하고 있으니 따로 사순시기가 필요 없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도 "이 정도면 된다." 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성인 성녀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더 자주 회개했습니다.  깨끗한 사람일수록 더욱더 깨끗해지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광야'는 보통 시련과 고난의 장소를 상징합니다. 동시에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 장소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시련과 고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40'이라는 숫자도 보통 시련과 고난의 시간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하느님의 은총의 시간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시련과 고난 자체가 하느님의 은총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시련과 고난 때문에하느님의 은총을 더 잘 깨닫고, 더 잘 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하느님의 은총이 얼마나 충만하게 우리에게 내리는지를 잘 알게 됩니다.

사람의 인생 자체를 하나의 사순 시기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인생'을 귀양살이로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데, 하느님 나라에서 떨어져 있다는 점만 생각한다면 귀양살이처럼 보이긴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인생은 '벌'을 받는 귀양살이는 아닙니다. 인생은 영원한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성 여행'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힘든 여행을 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함께 지내시는 동안에도 사탄이 유혹을 했다는 것은, 즉 예수님도 유혹을 받으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이 됩니다. 사탄은 언제나 어디서나 유혹하는 존재입니다. 사탄이 가지 못하는 곳은 없고, 사탄이 유혹하지 못하는 시간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유혹하고, 우리가 성전에 있을 때에도 유혹합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유혹도 더 심해집니다.

기도를 시작하려고만 하면 뭔가 급한 일이 생기거나, 기도하는 동안에 자꾸만 잡념이 생기거나...  성경을 읽으려고만 하면 졸음이 쏟아지거나...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그런 일들도 사탄의 유혹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여간에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더 열심히 기도하는 것.

유혹을 받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물리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거나 노력이 부족해서 유혹에 빠질 때,  그때부터 죄가 시작됩니다.

많은 경우에 유혹이 유혹인 줄도 모르고 유혹에 빠집니다. 바로 그 점이 유혹의 무서운 점입니다. 그래서 유혹이 다가올 때 그게 유혹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이 무척 중요한데, 방법은 "깨어 기도하는 것"뿐입니다(마태 26,41). 유혹을 알아차리는 방법도, 유혹을 물리치는 방법도 '기도'뿐입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유혹할 때, 그곳에 사탄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천사들이 예수님의 시중을 들고 있었습니다(마르 1,13). 이것은 우리가 유혹을 받을 때, 주님께서는 그 유혹을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탄이 우리 곁에 있을 때, 천사도 우리 곁에 있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유혹할 때, 천사는 그 유혹을 물리치려는 우리의 노력을 도와줍니다. 그 도움을 제대로 받는 방법도 바로 '기도'입니다.

 세례와 광야에서의 영적고독, 유혹 - 영신수련 30일 피정 후기 (12)

 

유혹은 은총의 시작이다   반영억 신부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베푸십니다.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는 용기를 통해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특별히 유혹에 관해 묵상하며 주님의 손길이 늘 우리를 지켜 주시길 기도합니다.

 

시조 한 수 읊어 드리겠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는 고려왕조를 뒤엎고 조선왕조를 창건하려는 야심을 품은 이방원이 충신 정몽주를 회유하려고 시조 한 수를 들려주면서 마음을 떠본 내용입니다. 

 칡덩굴처럼 서로 얽혀서 옛 왕조, 새 왕조 따지지 말고 오래오래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한 것입니다. 이에 정몽주가 시조 한 수를 지어 변절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표현합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결국 정몽주는 이런 충절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우리 한국천주교회는 100여년의 박해 속에 만 여명이 넘는 순교자를 낳았습니다. 온갖 유혹과 고초를 겪으면서도 “임 향한 일편단심”을 버리지 않은 분들이 순교자들입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을 향한 일편단심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세례성사를 청하면서 주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였고 온갖 허례허식과 마귀를 끊어버린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서약을 잘 지켜야 합니다. 주님을 첫 자리에 모시겠다고 약속하였지만 주님보다 세상의 소유와 지배, 재물과 권력에 마음을 빼앗길 때가 많습니다. 온갖 유혹에서 자유롭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신부가 된지 10여 년 만에 사회복지 공부를 했습니다. 조치원역에서 서울로 야간열차를 이용하며 대학원에 다녔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충남 조치원역에 새벽0시10분경에 도착하게 됩니다.

 역 앞을 나오기가 무섭게 아가씨들이 달라붙어 말합니다. “오빠, 따뜻한 방 있어요, 쉬고 가세요!” 그러면 제가 “내 방도 따뜻한데요!”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런 다음부터는 로만 칼라를 하고 다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가씨들은 여전히 달라붙었어요.

 요즘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기분이 좋았을까요? 한번 가고 싶었을까요? 여러분 좋은 대로 생각하십시오.

 

부부간에 갈등이 있고 지쳐서 집에 들어가기 싫은데 “따듯한 방 있어요!”하고 아가씨가 달라붙는다면 한번쯤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러니 남편에게 바가지 긁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아내에게 대한 신뢰와 사랑이 있는 사람이야 어디다 한 눈을 팔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악의 유혹은 달콤하게 다가오는 법입니다. 내가 약해 졌을 때를 이용하는 법입니다. 교묘하게 기회를 만들어 냅니다.

 

창세기에 보면 간교한 뱀이 여자를 유혹하는데 “여자가 나무를 쳐다보니 과연 먹음직하고 보기에 탐스러울 뿐더러 사람을 영리하게 해 줄 것 같아서 그 열매를 다 먹고 같이 사는 남편에게도 다 주었다”(창세3,6). 고 했습니다. “먹음직하고 탐스러운” 게 문제 입니다.

 다른 것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떡은 더 커 보이는 법입니다. 재물이나 명예, 권력에 대한 욕심이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밟고 올라서게 하는 죄로 이끕니다.

시기 질투하는 마음, 이기심, 미움에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식욕이 때로는 탐식하게 만들고 성적인 욕망이 음란의 죄로 이끌고, 휴식에 대한 욕망이 게으름에로 젖어들게 합니다.

 

잠언에 보면 달콤한 말로 꾀고 꿀맛 같은 말로 유혹하자 젊은이가 따라 나서는데 마치 푸줏간에 끌려가는 소와도 같이 올가미에 걸려드는 사슴같이 제 발로 창애에 걸려드는 새 꼴이 되어 언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고 따라가다가 결국 간에 화살이 박히고야 말리라(잠언 7,21-23)하고 말합니다.

 

결국 유혹이란 부정적으로 보면 어리석은 자를 꼬이는 것을 의미하고, 올바른 생활 원칙에서 돌아서게 해서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혹에 넘어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 원인이 있지만 그것은 첫째로 자만해서 입니다.  “네가 실컷 나쁜 짓을 하면서도 ‘나를 감시할 눈이 없다.’하고 자신만만이구나. 너는 지혜로운 체, 세상일을 다 아는 체하며 ‘이 세상엔 나밖에 없다’고 하다가 제 꾀에 넘어가리라”(이사47,10).  

둘째로 ‘남들이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사람의 모든 마음을 살피시고 모든 생각을 꿰뚫어 보십니다”(1역대28,9). 집회서를 보면 “어떤 생각도 그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분 앞에는 말 한 마디도 숨길 수 없다”(집회42,20).

잠언서에는“사람의 길은 주님 앞에 펼쳐져 있고, 그분께서는 그의 모든 행로를 지켜보신다”(잠언5,21)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하는 일을 남이 모른다고 생각할 때 잘못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눈 아래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기 욕심에 끌려서입니다. 더 많이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면 좋겠는데 더 많이 소유하고 지배하고 싶은 욕심이 우리를 흔듭니다. 정말이지 그칠 줄을 알면 부끄러움이 없고 분수에 맞으면 세상이 여유로운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사실은 사람이 자기 욕심에 끌려서 유혹을 당하고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가져 옵니다”(야고 1,14-15).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해 가정이 파탄되기도 하고, 재물에 눈이 어두워 속이고, 뇌물 받고 그러다가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뇌물 받아 망한 사람 많지만 요즘 대통령 주변의 많은 사람들, 심지어 국회의장, 국회의원, 경찰청장 대기업 사장 등 모든 명예를 잃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술과 도박, 권세에 집착하다가 제 명대로 못사는 분도 많습니다. 분수에 맞지 않게 카드 빚 쓰다가 감당 못해 목숨을 끊는 사람도 많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혹은 긍정적으로 볼 때 은총의 시작입니다. 이 유혹을 통해서 나의 현주소를 확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내 자신의 상태를 결정적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의 유혹은 주님께서 주시는 시험입니다. 아우구스띠노 성인은 “이 지상의 순례생활에는 유혹이 없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진보는 유혹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유혹을 당하지 않고는 아무도 자신을 완전히 알지 못합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유혹을 받지 않을 만큼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거룩하고 완벽하게 살려는 사람일수록 더 큰 유혹을 받게 마련입니다. 이 유혹에서 지면 보통사람이고, 이기면 그야말로 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마태6,11-13).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니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시고 세 제자에게 돌아와 보시니 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너희는 나와 함께 단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단 말이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마태26,40-41)한탄하셨습니다. 결국 기도함으로써 유혹을 극복하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강한 힘을 받아 굳세어 지십시오.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 하십시오.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구원의 투구를 받아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에페6,10-17)하고 권고합니다.

히브리서에서는“그분은 친히 유혹을 받으시고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모든 사람을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히브2,18).하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유혹이 없기를 바라지 말고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하겠습니다.

유혹을 통해 오히려 우리의 인격을 연마하고 우리가 주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유혹은 더없이 큰 은총입니다.

 

주님께서는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라고 대답하길 원하십니다.

따라서 어떤 유혹 앞에서도 분명히 대답하십시오. “좋은 일에는 ‘예’, 나쁜 일에는 ‘아니오’. 하느님의 뜻에는 ‘예’, 인간의 뜻에는 당연히 ‘아니오’”, 대답은 이렇게 하시면서도 속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열차를 타고 의자에 앉았는데 옆자리에 할머니께서 앉으셨답니다. 할머니께서 피곤하신지 꼬박 꼬박 졸다가 젊은이에게 기대서 주무시는 겁니다. 그래서 젊은이가 기도했습니다. “주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런데 어느 날 복이 많은지 예쁜 젊은 여자가 옆자리에 앉는 겁니다. 여인도 피곤했는지 졸더니만 급기야 젊은이 어깨에 기대어 자는 겁니다.

그래서 젊은이가 기도했습니다. “주님, 당신 뜻대로 하소서”. 혹 우리의 마음이 아닌지요?  

세례를 받은 후 더욱더 심하게 유혹을 받는다고 생각될 때, 왜 나에게는 이런 유혹이, 시련이 오느냐 투덜대지 말고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신 후 악마로부터 유혹을 받았고 또 말씀으로 물리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루카복음을 4,1-13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1). 돌더러 빵이 되게 해 보라는 악마의 경제적 유혹 앞에 “사람은 빵으로만 살지 않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하셨습니다.

2). 내 앞에 경배하면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는 정치적 유혹 앞에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3).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천사들이 떠받쳐 주리라고 하며 자신을 위해 기적을 남용하라는 유혹 앞에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마라.”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다하시며 유혹을 멀리하셨습니다.

그러나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습니다. 다음 기회를 노렸다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래도 우리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의 힘을 입어 얼마든지 유혹을 극복할 수 있고 은총의 기회로 만들 수 있음을 믿으십시오. 

바닷가에 가보면 벼랑 끝의 소나무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온갖 풍상을 다 겪으면서 뿌리를 땅 속 깊이 내리고 가지를 튼튼하게 뻗었습니다. 우리도 유혹과 시련의 시험을 통해 더 강해지기를 희망합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보내신 이유가 뭘까요? 그곳에 구원해야 할 인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목마르고 배고프고 외롭고 쓸쓸한 곳입니다. 황량한 곳입니다.

그러나 그곳이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바로 온갖 유혹이 있는 이 세상이 광야입니다. 이 세상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몸소 유혹을 받으시고 우리 인간이 처해 있는 상황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십니다.

그분이 유혹을 받으셨기에 유혹받는 우리를 이해하시고 더 큰 사랑으로 보듬어 주십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연약함을 너무 쉽게 유혹에 노출시키지 마십시오. 

 가능하면 유혹 당할 수 있는 기회를 피하십시오. 왜냐하면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흔들비쭉, 작심삼일입니다.

아무쪼록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짓지 말고, 주님의 시험으로 받아들여 은총으로 만드는 한 주간되시길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제 20일 / 31주. 광야에서 유혹 받으심  [중고등부 설교] 창세기 메시지 03 - 노아의 홍수(창 6:5-8)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마르 1,13)

세상은 우리를 유혹합니다.
온갖 맛있는 음식들이 우리의 식욕을 채우도록 유혹하고
온갖 화려한 불빛이 쾌락에 빠지도록 유혹하고
돈과 권력을 위해서는 양심도 저버리고 영혼을 팔도록 유혹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유혹을 떨쳐버리기 가장 힘드나요?
유혹을 내 힘과 능력으로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유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극히 하느님 중심적이어야 하고
하느님 말씀에 기초하는 삶을 꾸준히 살아나가야 합니다.
그 길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도 유혹 당하셨으니 우리도 유혹 당하고
때론 그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것은 정상입니다.
그러나 그 유혹에 빠져 즐기다보면 하느님 나라는 더 멀어질 뿐입니다.
그러니 회개하고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복음을 믿어야겠지요.
그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소식이 곧 기쁜 소식 아니겠습니까?

오늘 나에게
여러가지 가면을 쓰고 나타날 유혹을 하느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물리쳐 봅시다.
그럴러면
늘 하느님 말씀에 맛들이고 어떤 때에도 즉각적으로 말씀으로 답을 찾을 수 있어야겠지요.

오늘 그렇게 유혹을 물리치고 하느님이 다스리시는
하느님 나라를 조금이라도 느껴보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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