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성야>나자렛 예수님은 되살아나셨다 (마르 16,1-7)

2015. 4. 4. 오전 7:35:45

글자

    

 

 <부활 성야>(2015. 4. 4. 토)(마르 16,1-7)

 

 

부활 성야의 모든 예식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거룩한 밤을 기념하여 교회 전례에서 가장 성대하게 거행한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셨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신 날을 기념한다. 따라서 교회는 장엄한 전례를 통하여, 죽음을 이기시고 참된 승리와 해방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맞이한다.
1. 오늘 밤은 오랜 관습에 따라 주님을 기억하는(탈출 12,42) 밤이다. 루카 복음(12,35)의 권유에 따라 손에 등불을 밝혀 들고 주인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깨어 있다가 주인과 함께 식탁에 앉을 수 있도록 마음을 가다듬는 밤이다.
2. 오늘 밤의 전례는 4부로 나누어 거행한다. 제1부에서는 빛의 예식을 거행한다. 제2부 말씀 전례에서는 주 하느님께서 태초부터 당신 백성에게 행하신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며, 신뢰심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과 언약을 받아들인다. 제3부에서는 세례 예식과 세례 갱신식을 거행한다. 제4부에서는 세례로 새로 난 지체들과 함께 주님의 죽음과 부활로 마련된 주님의 만찬에 참석한다.
3. 이 모든 예식은 밤에 거행한다. 곧 밤이 되기 전에 시작하지 말아야 하며, 주일 날이 밝기 전에 마쳐야 한다.
4. 미사는 비록 자정이 되기 전에 드리더라도 부활 대축일의 미사이다. 이 밤 미사에서 영성체한 교우들도 이튿날 부활 대축일 미사에서 다시 한 번 영성체할 수 있다.
5. 밤 미사를 드렸거나 공동 집전한 사제도 이튿날 다시 미사를 드리거나 공동 집전을 할 수 있다.
6. 사제들과 부제들은 흰색 제의를 입는다. 예식에 참여하는 모든 이는 초를 준비한다.

부활 성야에는 일곱 개의 구약 독서와 신약의 서간, 그리고 복음이 선포된다. 이 독서들은 천지 창조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매 순간 인간의 역사가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이루어져 왔음을 고백한다. 당신의 선하심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부르시고, 이집트의 종살이와 바빌론 유배에서 구해 내셨다. 신약에 이르러 구원의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시고, 우리가 그 아드님과 함께 죽고 부활함으로써 죄에서 해방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다음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은 천사에게서 부활의 소식을 듣고, 그분께서 죽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다시 그들과 함께 살아 계심을 힘차게 전하게 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되살아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7
1 안식일이 지나자,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2 그리고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무덤으로 갔다. 3 그들은 “누가 그 돌을 무덤 입구에서 굴려 내 줄까요?” 하고 서로 말하였다. 4 그러고는 눈을 들어 바라보니 그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것은 매우 큰 돌이었다. 5 그들이 무덤에 들어가 보니, 웬 젊은이가 하얗고 긴 겉옷을 입고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깜짝 놀랐다. 6 젊은이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가 그분을 모셨던 곳이다. 7 그러니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렇게 일러라. ‘예수님께서는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

[세례 서약 갱신]

+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죄를 끊어 버립니까?
◎ 예, 끊어 버립니다.
+ 죄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하여 악의 유혹을 끊어 버립니까?
◎ 예, 끊어 버립니다.
+ 죄의 뿌리인 마귀를 끊어 버립니까?
◎ 예, 끊어 버립니다.
+ 천지의 창조주 전능하신 천주 성부를 믿습니까?
◎ 예, 믿습니다.
+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묻히셨으며,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성부 오른편에 앉으신 독생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 예, 믿습니다.
+ 성령과,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과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습니까?
◎ 예, 믿습니다.

 

 

부활을 알리는 여인들

 지난해 성주간 수요일(4월 16일)에는 ‘세월호 침몰’이라는 참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세월호와 함께 이 세상의 빛도, 생명도 깊은 바닷속으로 잠긴 듯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거나 경축하기도 힘든 상황이었고, 더욱이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누자고 하기도 어려운 분위기였습니다.
그렇지만 부활의 빛은 죽음의 어둠 속에서 빛납니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은 인간 역사의 빛과 어둠을 번갈아 보여 줍니다. 선하게 창조된 세상이었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고통과 죽음으로 얼룩졌습니다. 이집트의 종살이와 바빌론 유배는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어둠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오늘 부활 성야를 홀로 밝히는 부활초처럼, 하느님의 빛은 어둠 속에서 당신 백성의 길과 인류를 비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짙게 드리운 절망의 무덤에서부터 부활의 기쁜 소식은 선포되어야 합니다. 천사에게서 부활의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한 여인들은 무덤에서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부활을 전한 천사는 무덤 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집트도 바빌론도 아닌 절망의 자리, 바로 무덤에서 시작하여,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세상의 변두리’에 기쁜 소식이 전해져야 합니다. 죽음에서 살아나신 그리스도, 우리의 빛이십니다.
부활은 죽음을 이겨 낸 생명의 승리, 불신을 이겨 낸 믿음의 승리, 미움을 쳐부순 사랑의 승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을 통하여 결국 진실과 진리가 승리한다는 점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삶과 죽음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님’(퀴리오스)으로 고백합니다.     

 

 예수 부활 대축일.

<예수님의 부활, 우리의 부활>       송영진 모세 신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나서 부활하시기 전까지, 그시간 동안의 사도들의 모습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절망'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던 스승이 돌아가셨으니 슬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박해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고(요한 20,19). 그러나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있었는데 그렇게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메시아의 구원에 대한 희망도, 메시아의 나라에 대한 희망도 잃어버렸고, 그 '절망'이 사도들에게는 가장 큰 고통이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한 말을 보면 당시에 제자들이 느꼈던 절망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과 만났을 때, 그들은 침통한 표정으로(루카 24,17)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루카 24,21)."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자신들의 기대가 무너졌고, 모든 희망을 잃었음을 뜻합니다. (희망이 없었기 때문에 엠마오로 되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때 그 상황에서, 사도들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해야 할 일도 없었습니다. 만일에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 예고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다면, 또 그 말씀을 믿고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오시기를 기다렸겠지만, 그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절망 속에서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습니다. (여자들이 슬퍼하면서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그 시간에 아마도 사도들은 그냥 맥없이, 멍한 모습으로 주저앉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좌절과 절망과 슬픔과 고통과 자포자기를 한순간에 '큰 기쁨'으로 바꿔버린 대사건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이 '갈대 바다'에 막혀서 진퇴양난에 처했을 때(탈출 14장), 그들은 '완전한 절망'에 빠져버렸습니다. 뒤에는 이집트 기병대, 앞에는 바다...

앞으로 가면 물에 빠져 죽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거나 뒤로 돌아서면 이집트 기병대의 칼에 맞아 죽고...

그때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일러라(탈출 14,15)." (하느님을 믿는다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어도 안 되고, 뒤로 돌아서도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앞으로 나아가라고 명령하신 다음에 바람으로 바닷물을 밀어내셔서 바다를 마른 땅으로 만드셨고, 이스라엘은 걸어서 그 바다를 건너갔습니다(탈출 14,21). '절망'은 곧바로 '큰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만일에 그때 믿지 못해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이집트 기병대에게 항복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 군인들과 함께 죽었을 것입니다(탈출 14,28).

사도들의 '기쁨'은 단순히 돌아가신 스승이 살아서 다시 오신 것에 대한 기쁨만은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큰 기쁨이지만, '메시아의 구원'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잃었다가 되찾았다는 것도 큰 기쁨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우리도 그렇게 부활할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되었고 희망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경축하는 것은 "옛날에 그랬다더라." 하면서 과거의 사건을 기념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도 부활할 수 있음을 믿고, 희망하고, 기뻐하는 일입니다. 사실 지금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또 우리가 만나는 예수님은 '옛날에 돌아가신 예수님'이 아니라, '죽으셨지만 부활하셔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을 약속하신 예수님입니다. 따라서 부활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경축하는 날이고, 동시에 우리의 믿음과 희망을 다시 확인하면서 우리의 부활을 기뻐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갈대 바다를 건넌 이스라엘은,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난 것"을 크게 기뻐했지만, 금방 그 기쁨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물이 없다고 불평했고(탈출 15,24),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했습니다(탈출 16,3). '완전한 절망 상태'에서도 하느님의 구원을 받았으니, 물과 음식이 부족해도 하느님을 믿었어야 했는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도들은 정반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도들은 더 이상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충실하게 끝까지 '믿음의 길'을 갔습니다. 아무리 모진 박해와 고난과 시련을 겪어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부활 신앙'으로 그들은 강하고 위대한 사도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구약시대 유대인들처럼 아쉬울 때에만 주님을 찾고 편안할 때에는 잊어버리고, 또 조금만 힘들어도 불평하고... 그것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한 번 믿었으면 '끝까지' 그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부활절에 기뻐하는 것은 일 년에 하루만 하는 연례행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나 항상 부활의 기쁨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지만, 우리의 부활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하느님이신 분이 부활하신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의 부활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부활과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얻는 사람들에게만 당연한 일입니다. 신앙생활은 그 자격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생활입니다. 살면서 힘든 일, 슬픈 일, 아픈 일들을 겪을 때가 많은데, 그래도 믿음과 희망을 버리지 말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의 승리    반영억 신부

 

찬미예수님. 알렐루야! 알렐루야! 사랑합니다.

예수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여러분의 거듭 태어남을 축하드립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그리고 우리 이웃에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서로 축하의 인사를 나누십시오!

 

부활은 사랑의 승리입니다.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승리하였다는 것을 드러내준 사건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준 사건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시련과 역경,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도 이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준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주님의 수난은 현세 생활의 수고와 고통과 운명을 가리킵니다만, 주님의 부활과 그 영광은 우리가 받을 영원한 생명을 가리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사랑의 승리와 희망을 기뻐해야 하겠습니다.

 

어미 닭이 알을 품어야 부화 되어 병아리가 나옵니다. 품는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약 3주, 21일입니다. 어미가 알을 품어 온도를 맞춰 주고, 굴려주고 하면 때가 되어 병아리가 속에서 톡톡 껍질을 깨고 나오게 됩니다. 품는 수고와 깨는 아픔이 없이는 병아리가 나올 수 없습니다. 인공부화를 한다고 해도 온도와 습도를 어미 품처럼 섭씨36-37도로 맞춰야 하고 정상적 발육을 위해 알 굴리기를 해야 합니다.

 

부활의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부활은 죽음을 전제한 것입니다. 따라서 부활의 기쁨을 누리려면 먼저 죽어야 합니다. 사실 부활은 해묵은 내가 죽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욕심에 죽고 베푸는 삶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가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요,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갈라2,20) 삶을 사는 것입니다. 결국 새 삶을 위한 수고와 땀이 있어야 그만한 기쁨과 보람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품는 수고와 깨는 아픔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늘 복음을 보면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이른 아침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무덤이 비어있었고 무덤에 들어가 보니 웬 젊은이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 젊은이가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 나셨다 예전에 말씀하신 대로 너희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무덤이라는 과거에서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 갈릴래아에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갈릴래아는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신 곳입니다. 그곳에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셨습니다(마르1,14). 이제 예수님을 만나려면 그분의 삶이 있던 곳으로 가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야말로 첫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무덤의 시신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가신 길을 따름으로써 그리고 그분께서 하셨던 일을 행함으로써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이 고달프고 힘들어 보여도 그 삶이 헛되지 않음을 보여주셨으니 두려움 없이 그 길을 가야겠습니다. 그 길은 변함없는 사랑의 길이었고,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철저한 순명의 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사랑에 사랑을 더하는 오늘이 되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여 성경대로 생각하고 성경대로 사는 복된 순간이 지속되기를 희망합니다.

오늘 만큼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그분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을 행하기로 다짐하며 예수님의 빈 무덤처럼 우리의 마음도 빈 마음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매일 매 순간이 거듭나는 부활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알렐루야!

 

일년 중 유일하게 미사가 없는 날입니다.
미사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무덤에 계시니까요.

오늘은 말씀묵상도 없습니다.
침묵합시다.
깊은 침묵 속에
오로지 그분의 부활을 숨죽여 기다려봅시다.

미사 없는 것이 얼마나 갑갑한지
말씀이 없는 것이 얼마나 허전한지 체험하는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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