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5주일] 생명 주일 (요한복음 15,1-8).
5월 3일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해마다 5월의 첫 주일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죽음의 문화’의 위험성을 깨우치고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참된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생명 주일’이다. 한국 교회는 1995년부터 5월 마지막 주일을 ‘생명의 날’로 지내 오다가, 주교회의 2011년 춘계 정기 총회에서 이를 ‘생명 주일’로 바꾸며 5월의 첫 주일로 옮겼다. 교회가 이 땅에 더욱 적극적으로 ‘생명의 문화’를 건설해 나가자는 데 뜻이 있다.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사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회심한 뒤, 예루살렘을 드나들며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선포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바오로를 없애 버리려고 하자 형제들이 그것을 알고 바오로를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다마스쿠스에서나 예루살렘에서나 이렇게 그는 주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설교한다. (사도행전 9,26-31)
사랑의 새 계명을 전하는 요한 1서는,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신다고 선언한다.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깨닫는다. (요한 1서 3,18-24)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 안에 머무르라고 말씀하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듯이, 제자도 예수님 안에 머물러야 열매를 맺는다. (요한복음 15,1-8)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4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6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내 안에 머물러라.” 피정 집이나 성체 조배실 같은 곳에 특히 잘 어울리는 말씀입니다. 그러한 곳이 바로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물면서 그분께서 주시는 힘과 용기로 양육되고 성장하는 적합한 장소가 아니겠습니까! 시간을 내어 이렇게 주님의 현존 안에 머무르려는 노력 없이 그저 우리 자신의 힘만 믿고 의지하면서 어떤 일을 추진한다면 그것은 종이로 장난감 집을 짓는 일에 불과할 것입니다.
자신이 한 일을 되돌아보거나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을 곰곰이 살펴볼 때, 그 안에 포도나무의 수액이 흐르고 있는지 아니면 곧 말라 버릴 가지인지 직감적으로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가지에 붙어 있는 생명 없는 열매들을 보게 되면 참 안타깝기도 하고 황망하기도 합니다.
또한 때로는 풍성하고 화려하며 탐스럽기까지 한 포도송이를 발견하고 기뻐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포도 알이 아니라 플라스틱 장식물일 때, 씁쓸함을 느낍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살아 있기 위해서 첫째로 중요한 일은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열매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붙어 있기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신 것만이 아니라,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신다.” 하고 경고하셨습니다.
제2독서는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문다고 강조합니다. 말과 혀가 아닌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을 실천할 때 하느님의 사랑이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실 것이며, 이때 비로소 우리는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는 가지가 될 것입니다.
당신 목숨까지 내어 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뽑아 주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도 온 힘을 다해 그 수액을 열심히 뽑아 올려, 누군가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열매들을 주렁주렁 맺는 가지들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안에 머물러라 반영억 신부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당신 안에 머물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이미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머무십니다. 이 시간 주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는 은총이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어두울 땐 안 보이는 것들이 불을 켜면 나타납니다. 눈 감았을 땐 안 보이던 것들이 눈을 뜨면 나타납니다. 마찬가지로 마음 없을 땐 안 보이던 것들이 마음을 두면 나타납니다. 사실 없는 것도 마음 두면 나타나고, 있는 것도 마음을 없애니 사라집니다. 마음을 두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너무도 다릅니다. 마음 두는 것에는 시간도 거리도 필요 없습니다. 아무리 멀리 떨어지고 아무리 오래 되어도 마음을 두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사실 마음에 두면 눈을 감아도 보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있나요? 아내, 남편, 아니면 자식, 부모? 재물, 명예...“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습니다.”마음 둘 자리를 잘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2,5). 오늘은 어버이께 마음을 두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곧 어버이 날이잖아요! 하늘 아버지와 성모님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고 하셨습니다. ‘머물다’ 는 것이 핵심입니다. 결국 서로에게 마음을 둔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두어 그가 바라는 것, 기뻐하는 것을 행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2독서의 표현을 빌면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 3,24). 그리고 마침내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하기 때문에 청하는 것은 다 그분에게서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요한15,7).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는 말씀은 우리에게 큰 기쁨을 줍니다. 그러나 그분 안에 머물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아내 된 사람은 남편에게 마음을 두고, 남편 된 사람은 아내에게 마음을 두어야 ‘이심전심’, 마음이 통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화목합니다. 그러나 동상이몽도 있으니 걱정입니다.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서로에게 지킬 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 부부로써 신의를 지키는 것, 스승에 대한 존경, 그리고 제자에 대한 사랑을 지키는 것이 일상 안에서의 계명입니다. 이것을 지킬 때 주님으로부터 더 큰 복을 얻게 되고, 청하는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신 말씀은 달리 말하면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이 청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모님을 ‘은총을 가득히 받은 복된 어머니’라고 칭합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복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엘리자벳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령 복되십니다.” “믿으셨기에 복되신 분!”하고 말합니다. 성모님께서는 믿으셨기 때문에 복되십니다. 우리도 먼저 믿음으로 주님 안에 머물러야 하고, 믿음으로 청해야 소망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하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그분 말씀을 가슴에 품고 그대로 행하며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간직하며 사는 것입니다.
어느 통계를 보니까 남자는 가장 이상적인 배우자로 ‘친구 같은 아내’, ‘현모양처’형을 선호하고, 여자는 가장 이상적인 배우자로 ‘가정적인 남편’, ‘카운셀러 남편’을 꼽았습니다. 그리고 남편 된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소리는 ‘당신을 믿어요!’ 이고, 아내 된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소리는 ‘당신 너무 힘들지?’ 랍니다. 다시 태어나도 현재의 배우자를 선택하겠느냐? 는 질문에 남성은 71.5%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여성은 50.4%만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부부 불화가 생기는 원인으로는 남편과 아내 모두 서로의 일로 가정에 충실하지 않기 때문 이라는 답이 45%로 가장 많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탓이 상대방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이루는 부부도 서로의 관심이 다릅니다. 이 다름 안에서 하나가 되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주님을 가슴에 모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으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항상 예수님의 마음을 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한 생애를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예수님 곁에 서 계셨던 성모님의 마음을 간직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라고 하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나무에서 가지가 영양을 공급 받는 것이지, 가지가 나무를 풍요롭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열매는 가지에 달리지만 가지가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제자들 속에 주님께서 함께한 것은, 제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함께 하는 것과 달랐습니다. 그야말로 주님께는 이득도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가지 하나를 잘라버린다면 여전히 그 포도나무에서 다른 가지가 돋아날 것입니다. 스승은 제자를 버리지 못하지만 제자는 스승을 등지고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려진 가지는 뿌리에서 분리되므로 살 수가 없습니다. 가지는 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 없이 가지는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님 안에 머물지 않으면 결코 주님의 일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혹 무엇인가에 성공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주님과의 일치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내일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디에 머물러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사실 주님을 믿는 이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천상의 것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6,31-34).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고달픔만 더하고 좋은 열매를 못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 안에 머무르지 못하고 내 뜻을 먼저 찾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무엇이든 청하여라.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말씀에는 관심이 있지만, 바로 그 앞부분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하는 말씀을 간과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분명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이 먼저입니다.
오늘은 주님 안에 머물러 꼭 풍요로운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 안에서, 일터에서 주님 안에 머물러 기쁨을 누리시길 빕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 머물지 못한 일은 헛수고임을 일찍 깨우쳤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의 마음으로 행할 수 있는 은혜가 넘쳐나길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치매의 마지막 단계의 증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치매의 마지막 단계의 증상은‘부부사이’가 갑자기 좋아지는 것이랍니다. 자기 남편이, 자기 아내가 다른 사람인줄 알고 좋아진답니다. 서로 끝까지 사랑 안에, 항구하게 주님 안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항구하게 주님 안에 머물 수 있음이 행복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12,2)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이 있습니다. 몸과 땅은 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는 우리의 몸은 스스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물에 의해서 건강이 유지되고, 생명활동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부모님의 사랑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이라는 문화, 역사, 전통이라는 토대에서 자랐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제게 영적인 힘과 지혜를 주었습니다. 신학교는 제가 사제가 될 수 있도록 ‘못자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서울대교구는 제게는 기댈 수 있는 울타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제가 만나는 신자들은 제게 사랑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오늘 제가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저와 신앙은 둘이 아니라 하나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입니다. 여러분은 가지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농사를 많이 지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를 보셨고 아주 간단하지만 명확한 진리를 비유를 통해서 알려 주셨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가슴이 따뜻한 사람, 이웃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사람, 개인적인 욕심보다는 공익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분들은 모두 사랑과 정이 가득한 가정이라는 포도밭에서 자라났음을 알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박해하고 탄압했던 사울을 당신의 포도밭으로 인도하시고 사울을 통해서 교회가 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들 중에도 주님의 도움이 필요 없는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들 모두는 지금 당장 주님의 따뜻한 손길이 간절히 필요한 상처 입은 영혼들일지 모릅니다.
교회 공동체를 생각합니다. 과연 이곳에서 튼튼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포도나무가 자라는지, 아니면 말라서 곧 버려질 포도나무들이 자라는지 돌아봅니다. 저 자신은 성소국장으로서 교구장님께서 위임해 주신 사제양성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신앙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입니까! 우리가 참된 포도나무인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째, 혈연관계보다 예수님을 더 따라야 합니다. 세례를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과 가르침을 먼저 생각하고 따라야합니다.
둘째,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지배하고 소유하려고 한다면 신앙인으로 사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남을 탓하고 원망하는 삶의 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셋째,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버릴 수 있는 무소유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내 주위를 돌아보면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1년이 지나도록 한번 입지 않는 옷도 있습니다. 몇 년 째 듣지 않는 음반도 있습니다. 필요하지 않은 것들도 포기하지 못하는데 주님을 위해서 정말 필요한 것을 버릴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여행을 가면 따로 방을 마련해 주시는 교우들의 배려에 대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 다른 분들은 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사제라는 이유로 음식을 갖다 줄 때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자가용으로 모시러 오고, 모셔다 드려야 한다고 하는 말씀을 듣고 아니라고 지하철 타고 버스타고 간다고 말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신앙인으로서 풍성한 결실을 맺으려 한다면,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 합니다.
살기 편한 집은 있지만 따뜻한 정이 흐르는 가정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편리한 시설과 아름다운 성당 건물은 있지만 기도와 사랑이 넘치는 성당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명령하신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조재형신부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요한 15,2)
과일이 튼실하게 열리게 하기 위해
농부는 가지치기(전지작업)을 잘 해야 합니다.
웃자란 가지나 불필요한 가지는 영양만 뺏아먹기에
잘라내지 않으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영적성장이 더디다면
우리 안에 잘라버려야 할 나쁜 습관이나 악습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오늘은 '생명주일'입니다.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한 사회는 절대로 풍요로운 결실을 맺을 수 없습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무엇을 잘라버려야 할까를 고민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 예수님의 말씀과 성체를 중심으로
살아가면서 우리의 악습을 찾아내어 끊어버리려는 노력이 함께 할 때
우리는 멋지고 풍요로운 영적 결실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 생명의 빵이신 주님이시여~~
오상선신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송영진 신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1) 예수님이 '포도나무'이고 우리가 그 나무의 '가지' 라는 것은 예수님과 우리는 '한 몸'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1코린 12,12-13)."
2) 이것은 또, 우리 생명의 원천은 예수님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3-4)." 그래서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라는 말씀을 "너희는 나 없이는 살지 못한다."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로마 14,8)."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를 살리는 분도 주님이고, 죽이는 분도 주님이다." 라는 뜻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말입니다.
3) 그런데 '한 몸'이라고 해서 예수님과 우리가 대등한 관계라는 것은 아닙니다. 또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우리 때문에 세상에 오신 분이지만,
우리 덕분에 존재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우리가 있어야만 예수님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것은 우리를 통해서 무슨 이익을 얻으려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랑으로, 또 무상으로 베풀어 주시는 '은혜' 라는 뜻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루카 3,8)." 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뭔가를 한다고 해서 그것을 생색낼 수는 없습니다. 겉으로는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하는 일들처럼 보인다고 해도 실제로는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무름으로써 맺게 되는 '많은 열매'는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한 열매입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아마도 작은아들은 아버지 없이 살고 싶어서, 즉 독립하고 싶어서 집을 떠났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는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을 자유가 없는 생활이라고 생각하면서 답답하게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어서, 즉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싶어서 아버지가 안 보이는 먼 고장으로 갔을 것입니다(루카 15,13).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잃었고, 그에게 남은 것은 죄와 후회뿐이었습니다. 자유를 찾아서 떠났지만 자유도 잃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또 해야 할 일은 아버지 품으로 되돌아가는 일, 그 일 하나뿐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자기가 아버지 품을 떠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모든 것을 잃게 되지만, 아버지 품 안에 머물러 있으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고,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고 회개했든지, 아니면 회개한 다음에 그것을 깨달았든지 간에 '회개'는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는 일, 그리고 그 품 안에 계속 머물러 있으려고 노력하는 일입니다. 반대로, '죄'를 짓는 것은 아버지 품을 떠나는 일입니다. 아버지 품을 떠나는 것 자체가 죄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요한 15,7)."
이 말씀에서 에덴동산에서 살던 아담과 하와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즉 주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따르면 에덴동산에서 살면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습니다(창세 2,16).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께서 따 먹지 말라고 하신 그 열매 하나를 따 먹음으로써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잃게 되었습니다. 창세기에는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신 것으로 되어 있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아담과 하와가 스스로 나간 것과 같습니다. 주님의 말씀 안에 머무르지 않는 것은, 즉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주님 안에 머무르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라는 예수님 말씀은, 아무거나 다 청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우리도 원할 때, 그때 무엇이든지 청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청하여라."로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열매'는 궁극적으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원해야 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 그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이고, 우리가 청해야 하는 것은 그 나라에 잘 들어가기 위한 주님의 도움과 인도와 보호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것을 청하지는 않고, 그 나라에 들어가는 데에 방해되는 세속적인 것들만 원하고 청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혹시 세속에서 뭔가를 이루고, 뭔가를 얻었다고 생각되더라도, 그것이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면, 그런 것들은 그냥 먼지일 뿐입니다.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