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대축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청소년주일) 마태 28,16-20

2015. 5. 31. 오전 6:36:21

글자

 

2015년 5월 31일 [삼위일체 대축일. 청소년주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마태 28,16-20)

5월18일 삼위일체 대축일 /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 / 성 요한 1세 교황 순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기념 없음 (청소년 주일)
교회는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주일을 삼위일체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 고백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마태 28,19 참조)에 따라 초기 교회 때부터 이어져 왔다. 삼위일체 대축일이 로마 전례력에 들어온 것은 14세기 요한 22세 교황 때였다.
한국 교회는 해마다 5월의 마지막 주일을 ‘청소년 주일’로 지낸다. 청소년들이 우정과 정의, 평화에 대한 열망을 키우며 자라도록 도와주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청소년들에게 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을 전함으로써 교회가 그들과 함께하며,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그들과 함께 노력하겠다는 교회의 다짐이기도 하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85년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세계 젊은이의 날’을 제정하였는데, 우리나라는 1989년부터 5월의 마지막 주일을 이날로 지내 오다가 1993년부터 ‘청소년 주일’로 이름을 바꾸었다.


신명기는 하느님이 오직 한 분이심을 강조한다.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 다른 누구도 보여 준 일이 없는 지극한 사랑을 보여 주심으로써 당신만이 하느님이심을 알게 하신다. 주님과 당신 백성 사이의 관계는 유일한 사랑의 관계이다. (신명기 4,32-34.39-40)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성령의 힘으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의 상속자가 된다고 선포한다. (로마서8,14-17)

 마태오 복음의 마지막 단락에서 예수님께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신다. ((마태 28,16-20))    

 

시편 33(32),4-5.6과 9.18-19.20과 22(◎ 12ㄴ 참조)
◎ 행복하여라, 주님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 주님의 말씀은 바르고, 그 하신 일 모두 진실하다. 주님은 정의와 공정을 좋아하시네. 그분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
○ 주님은 말씀으로 하늘을 여시고, 당신 입김으로 천상 만군 만드셨네. 그분이 말씀하시자 이루어지고, 그분이 명령하시자 생겨났네. ◎
○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 죽음에서 그들의 목숨 건지시고, 굶주릴 때 살리려 하심이네. ◎
○ 주님은 우리 도움, 우리 방패. 우리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네. 주님, 저희가 당신께 바라는 그대로, 당신 자애를 저희에게 베푸소서. ◎     

 

삼위일체 ~ 사은찬미가( 떼데움 Te Deum)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 마태오 28,16-20
그때에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5월18일 삼위일체 대축일 /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 / 성 요한 1세 교황 순교

우리는 날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든 기도를 시작하고 끝맺습니다. 삼위일체 신비! 분명 이것은 믿음의 대상이지 지식이나 이해의 대상은 아닙니다. 육체를 지니고 있는 한, 우리는 이 지고한 신비를 올바로 이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반이성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반이성적이 아니라 오히려 이성을 초월하는 초이성적, 초자연적 진리입니다. 그렇다고 이 신비의 오묘함과 풍요로움 때문에 우리가 충분히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조건 덮어 두기만 한다면, 아주 귀중한 보물을 땅 밑에 묻어 두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독서를 중심으로 해서 이 심오한 신비의 한 조각만이라도 맛보았으면 합니다.
오늘은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라는 이 한 구절만 묵상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데에 이미 오래 전부터 익숙해져 있지만, 그것이 그렇게 당연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느님을 이스라엘의 아버지라고 지칭하기도 했지만, 한 사람 한 사람 각 개인이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합당하게 부를 수 있는 분은 본디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뿐이셨습니다.
물론 우리말 표현들 안에서는 그 차이점이 명확하게 구별되지는 않지만, 교리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예수님은 본성에 의하여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우리는 입양에 의하여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차이가 분명히 있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도 “나의 아버지”와 “너희의 아버지”를 구분하셨습니다. 오늘 본기도에서 정확히 표현하듯이 우리는 “외아드님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참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지, 예수님 없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두려움 없이 자녀다운 자유로움으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해 주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성령을 보내 주셨기에,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예수님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성자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알려 주시고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인도하십니다. 그 성자와 성령께서 아버지와 한 본체이신 같은 하느님이시라는 것, 이것이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경우,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세 위격 모두와 관련된 삼위일체 신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거룩한 삼위일체

 

삼위일체 대축일 (마태28,16-20)   반영억라파엘 신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사랑으로 우리를 빚어 만드셨고 아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도 당신의 사랑으로 살기를 기대하며 또 살수 있도록 일깨워 주십니다.

이 시간 성부, 성자, 성령의 위격으로 계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기쁨을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성그레고리오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어떻게 한 분이십니까? 하는 질문에 세 개의 등불이 가까이 있다면 그 사이에는 빛이 하나로 섞여 세 개의 빛이 뭉쳐졌다고 하지 않고 빛이 밝다고 하듯이 신성(神性)도 그렇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태양자체를 성부로, 지구까지 오는 빛을 성자로 그 빛이 따뜻하게 하고 자라게 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을 성령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 다 부족합니다. 삼위일체 신비는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아버지는 우리 앞에 계시는 분으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 곧 생명을 주신 모든 것의 근원이시고 목표이시며 시작이요 마침이십니다.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세상을 위해 아들을 넘겨주신 분입니다.

 

아들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십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자신을 바치신 분으로 존경과 순명을 가르치신 분입니다. 죄인의 대변자요, 억압 받고 소외 받는 이들의 변호자 이십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속에 머물도록 이끌어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알게 하며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해 주시고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며 우리를 대신해서 탄식해 주시고 새로움을 더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각기 역할이 구별되면서도 하나이신 하느님을 사랑 안에서 만나시길 기도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416). 그래서 사랑이 있으면 천국이요, 사랑이 없으면 지옥입니다(까롤로 까레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면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함께 계신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큰 기쁨입니다. 더욱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으신 분으로서 함께 계신다니 가슴 벅찬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약의 예언자들에게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레미야가 아, 주 하느님 저는 아이라서 말할 줄 모릅니다(예레미야1,6)하며 예언자 직무를 거절할 때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주리라(예레미야1,8)고 하셨고, 모세도 저는 입도 무디고 혀도 무딥니다(탈출4,10)하고 직무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내가 너희를 도와 주겠다(탈출4,15)고 하셨습니다. 에제키엘서 2-3장에 보면 에제키엘이 소명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도 두려워하지 마라 하시며 내가 너에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배를 불리고 속을 채워라 하셨고 에제키엘은 그것을 먹으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는 약속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복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일입니다. 사실 눈으로 보았다고 해서 저절로 믿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주님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침을 지키게 하라는 할 일을 주시고 함께 있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약속을 믿고 맡겨진 일을 성실히 감당한 사람은 믿음의 눈이 새롭게 열렸습니다. 사도행전이 바로 그것을 증언하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사도행전을 꼭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믿음은 주님의 말씀을 따름으로써 더욱 다져지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커지길 원하는 사람은 말씀을 사십시오. 큰 믿음을 소유하고 싶은 사람은 사랑하십시오.

 

우리는 흔히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라고 합니다. 물론 동상이몽(同床異夢)인 분도 계시겠지만 일심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면 한마음(일심)이 되고 한마음이 되면 두 몸은 이미 한 몸(동체)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한마음, 한 몸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극복할 힘이 있습니다. 가난해도 풍요로울 수 있고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더욱 의지 하고 더욱 일치합니다. 힘들면 힘이 들수록 더 큰 사랑이 요구됨을 압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멋진 집에 살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높은 지위에 있어도 외롭고 쓸쓸하게 됩니다. 사랑이 없으면 그 어느 것으로도 일치할 수가 없습니다. 이 관계는 부부사이의 관계만이 아니라 인간 삶의 모든 관계가 그렇습니다. 부자관계도 사제관계도 우리 이웃과의 관계도 사랑으로 일치하지 않으면 혼란과 많은 상처가 남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사실 주님께서 명하신 가장 큰 계명이 사랑입니다.

 

서로간의 관계에 이해타산이 끼어들면 힘들어집니다. 나도 피곤하고 상대도 피곤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 성령이 사랑으로 하나이듯 우리도 서로 사랑하여 하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그곳에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사랑하는 가운데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운데 믿음이 생길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운데 더 많이 행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이 사랑하십시오. 많이 행하게 될 것이고 주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만약 내가 아직 주님이 함께하심을 느끼지 못한다면 더 많이 사랑하십시오. 그분께서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커다란 맛을 느끼는데 있지 않고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는 결단을 내리는데 있습니다(소화 데레사).

 

아무리 좋은 가전제품도 전기 코드를 빼어 놓으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 입니다. 주님께서 아무리 많은 은총을 주시고자 해도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코드를 빼놓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먼저 주님과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 사랑할 수 있는 오늘이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힘들고 지쳤을 때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고 약속하신 주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연세 많은 할아버지께서 외출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손자,손녀들이 집으로 오시는 길에 H.O.T 음반을 사다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손바닥에 H.O.T 라고 쓰고 외출을 하셨습니다. 집으로 급히 돌아오다가 손주들하고 약속한 것이 생각나 손바닥을 봤습니다. H.O.T,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H=호떡, 0=오뎅, T=튀김을 사가지고 집으로 가셨습니다. 그날 할아버지께서 몹시 고독하셨답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면의 일치, 마음의 하나가 됨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요? 더욱이 주님의 마음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고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5월18일 삼위일체 대축일 /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 / 성 요한 1세 교황 순교   5월 30일 삼위일체 대축일 성무일도

 

요즘 우리나라는 길이 잘 만들어져있습니다. 그 길 위로 차와 사람이 다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길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 사람, 두 사람 걷다보니 길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논리적으로 부모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온 몸으로 부모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자라납니다. 어머니의 역할과 사명이 무엇인지 몰라도 우리들의 어머니는 가정을 돌보고, 자녀들을 사랑합니다.

 

박해를 받던 초대교회는 하느님을 체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는 하느님이 있음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고, 이집트 땅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이끄셨음을 체험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음을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 표징, 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복음을 전하였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언제나 함께 계셨습니다.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은 놀라운 체험을 하였습니다. 바로 성령의 강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협조자이신 성령께서 함께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교리가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체험으로 느꼈습니다. 그리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저는 2001년 지금은 의정부 교구에 속한 적성 본당에 있었습니다. 14년이 지났지만 그때 어린아이들이 쓴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제목 : 우리 성당

이름 : 구건회(안드레아) 마지 초등학교 4학년 210

오늘은 우리 성당 5주년! 우리 성당의 다섯 번째 생일이다. 제대 앞엔 선물들이 주루룩 줄서있고... 나도 오늘 이 성당 온지 5주년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마음속으론 이 성당이 100200년 동안이라도 지속되고 보존되길 그리고 신자수가 1000명이 넘을 수 있도록 기도한다. 내가 성당에 대한 바람은 수없이 많다. 태권도장을 넓혀라. 태권도장에 최고급 시설을 설치하라.. 등등 여러 가지 바람이 있다. 그래도 난 이 성당이 부족함 없는 훌륭한 성당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성당이 세계에서 버금가는 성당이 되길 기대한다.

 

제목 : 우리 성당

이름 : 홍석진(도미니꼬) 노곡 초등학교 4학년

오늘은 우리 성당이 5살 되는 해입니다. 제 동생도 5살입니다. 저도 그래서 이글로 선물 줄 것입니다. 한번 열심히 해서 좋은 글을 쓰겠습니다.

성당에서 5가지 규칙

1) 욕을 하지 말 것

2) 소리 지르지 말 것

3) 제대에 함부로 올라가지 말 것

4) 미사 때 떠들지 말 것

5) 주일 때 빠지지 말 것

 

이렇게 5가지가 있다. 이중에서 나는 내가 고쳐야 할 것도 있다. 다음은 태권도다. 태권도는 내가 좋아하는 운동이다. 국기원에 가는 날도 별로 남지 않았다. 그때동안 열심히 해서 1품을 딸 거다. 우리 성당은 참 좋다. 태권도도 무료로 하고..... 100년 동안 계속 우리 성당이 있기를 바란다.

 

제목 : 우리 사범님

이름 : 박한솔 노곡 초등학교 1학년

얍 기압을 넣으며 태권도를 배워요. 운동을 하고 태권도를 해요. 사범님은 우리들을 가르키며 땀이 뻘뻘 흘려요. 우리는 열심히 사범님을 쫓차해요. 운동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운동은 우리들 몸에 좋은 것이니까요. 사범님은 땀 방울이 기합으로 들어가요. 사범님을 기쁘게 해드리자. 사범님을 기쁘게 해 드려면 우리가 열심히 해야겠서요. 사범님은 우리의 사범님이예요. 우리를 가르키니까요. 우리 사범님은 검은 띠에요. 우리는 몇 명씩 늘어지면서 사범님과 함께 가르치고 그러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건강에 좋아지니까요. 밥도 골고루 먹어요. 사범님도 골고루 먹지요. 어쩔땐 않나올 수 있지요. 뭐냐하면 밥이 않나올 수 있지요.

 

제목 : 사부님

이름 : 홍예진(스콜라 스티카) 노곡 초등학교 2학년

얍 기도소리에 우리들을 가르치는 사부님 땀방울이 우리에 노력으로 사부님 땀방울이 열심히 하라는 뻘뻘 흐르는 사부님은 땀방울 우리에 기합으로 사부님을 기쁘게 하자. 사부님은 내 마음속에 들어가 태권도 연습을 하네 우리들의 힘으로 사부님을 기쁘게 하자. 내 마음은 사부님 사부님 마음은 나 사부님 쉰 목소리에 우리들 심한 장난이 사부님 쉰 목소리에 들어가 있어요. 우리는 사부님 너무 조아요.

 

제목 : 신부님

이름 : 신 지혜(비비안나) 마지 초등학교 4학년

매일 마다 정성스럽게 미사를 드리는 우리 신부님, 우리들이 성당에 오면 환한 얼굴로 반겨주신다. 달콤한 사랑과 깔끔한 배려와 고소한 겸손이 담긴 신부님 마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같이 마음 고우신 신부님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

 

제목 : 신부님

이름 : 공민정(율리아) 마지 초등학교 5학년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 신부님 언제나 남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우리 신부님 그런 신부님이 나는 좋아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지금은 아이들이 저보다 머리하나는 더 크게 자랐지만 그 아이들의 마음에는 어린 시절 성당에서의 추억과 기억이 늘 함께 하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성당, 사부님, 신부님을 논리로 알지 못하였지만 삶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느니, 그때 보는 것은 예전에 보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의 하느님께서는 어떤 관계일까요? 끊임없이 서로에게 내어주는 관계입니다. 성부는 성자에게 모든 권한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성자는 성부에게 모든 영광과 기쁨을 드렸습니다. 성자는 성령에게 십자가와 죽음으로 세운 교회를 맡겨 드렸습니다. 성령은 모든 은사를 교회에게 주셨습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신학적으로 교리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삼위일체의 신비는 내어줌의 눈으로, 겸손의 눈으로 보면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하느님, 위로의 하느님, 용서의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서로 위로하십시오, 서로 용서하십시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삼위일체대축일 / 오상선바오로 신부님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로마 8,15)

여러분에게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우리가 착하게 잘 사는지 아닌지 지켜보시고

상벌을 내리시는 그런 분이신가요?
그래서 내가 살아오면서 지은 죄와 잘못 때문에

죄스럽고 용서받지 못할까 두려우신가요?

옛적에 유대인들이 하느님을 그런 분이라 여겼지요.
지금도 사실 많은 사람들이

 신을 그런 존재로 파악하고 있지요.
"상선벌악의 하느님!"

그런데 예수님은
하느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라네요.
하느님은 우리를 죄의 종살이에 매여 살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아빠, 아버지 같은 분이시라네요.
아들이 잘못될까 늘 노심초사하시며
행여 잘못을 저지른다해도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책벌하신다 해도
속으로는 마음아파하시는 정말 사랑많으신 아버지같은 분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내 죄와 허물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만끽하며 살아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느님을 무서운 심판자로 여기지 않고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로 여기게 해 주신답니다.

오늘 삼위일체대축일은
이렇게 좋으신 하느님의 자녀가 됨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마음껏 부르며
공원에서 놀고있는 아이처럼
그렇게 해맑게 기뻐하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출처] 2015.05.31.|작성자 알타반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주일복음강론

목록 전체보기 →
<연중 제11주일>겨자씨 비유 (마르 4,26-34)15.06.13조회 58[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2015. 6. 7.)(마르 14,12-16.22-26)15.06.06조회 446[삼위일체 대축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청소년주일) 마태 28,16-2015.05.31조회 476(2015. 5. 29. 금)(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루카 9,23-26)15.05.29조회 60<성령 강림 대축일>성령을 받아라 (요한 20,19-23)15.05.23조회 602015. 5. 17.[예수 승천 대축일 (홍보 주일)] (마르 16,15-20)15.05.17조회 57[부활 제6주일]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9-17)15.05.10조회 58[부활5주일] 생명 주일 (요한복음 15,1-8).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15.05.03조회 55[부활 제4주일] (성소주일 ·이민의 날) 착한목자 (요한 10,11-18).15.04.26조회 57[부활 제3주일] 증인이다 (루카 24,35-48)15.04.19조회 115[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요한 20,19-31)15.04.12조회 56[예수 부활 대축일] 알렐루야!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요한 20,1-9)15.04.05조회 57<부활 성야>나자렛 예수님은 되살아나셨다 (마르 16,1-7)15.04.04조회 53[ 주님 수난 성금요일] 십자가 (요한 18,1-19,42)15.04.03조회 113[주님 만찬 성목요일]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요한 13,1-15)15.04.02조회 59<주님 수난 성지 주일>너의 임금님이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요한 12, 13-19)15.03.29조회 54[나해사순 제5주일] 한알의 밀알 (요한 12,20-33)15.03.22조회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