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21.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나를 따라라 (마태 9,9-13)
성 마태오 사도는 세리로 일하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도가 되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마태 9,9). ‘마태오 복음서’를 쓴 마태오 복음사가가 전하는 증언의 핵심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바로 복음서가 서술하는 나자렛 예수님과 동일한 분이시라는 것”(『주석 성경』 ‘마태오 복음서 입문’ 참조)이다. 전승에 따르면, 마태오 사도는 에티오피아와 페르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다.
한 분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은총을 나누어 주시지만, 어떤 이는 사도로, 어떤 이는 복음 선포자로 부르신다. 서로 다른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성령 안에서 일치하여 각자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갈 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전체가 성장하게 된다.(에페 4,1-7.11-13)
형제 여러분, 1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3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4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6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7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11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12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3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마태오는 세리였다. 바리사이들은 세리들을 죄인으로 취급했지만,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죄인들과 자리를 함께하시며 마태오를 당신의 제자로 삼으신다.(마태 9,9-13)
그때에 9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0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11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태오 사도에 대하여 복음이 전하는 내용은, 그가 세리였다는 사실과 세관에 앉아 있던 그를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그가 일어나 세리직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섰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마태오는 ‘주님의 은덕을 입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유야 어떻든, 그리고 마태오가 개인적으로 어떤 사람이었든, 그 당시 세리는 공공연하게 독사와 같은 매국노로 지탄을 받던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관에 앉아 일하던 그런 부류의 세리 마태오를 사도로 부르신 것은 뜻밖의 선택이었습니다. 부르심을 먼저 받은 다른 사도들에게도 이 일은 언짢았을 것입니다. ‘저런 인간을 우리와 한 무리가 되게 하시다니.’ 자존심이 상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아마도 어부는 세리와, 세리는 어부와 어울리고 싶지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분이신 아버지 하느님, 한 분이신 그리스도, 한 분이신 성령 안에서 어부도 세리도 부르심을 받습니다. 이렇게 부르심을 받은 이들 가운데에는 죄인도 있고 부족한 사람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의 자비를, 병든 이들을 고쳐 주시는 하느님의 능력을 선포해야 하기에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비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사도로 부르셨나 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함께 일할 사람을 이런저런 조건으로 골라 뽑는 우리의 모습이 주님 앞에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인간적 조건과 자격이 잘 갖추어져 있을수록 하느님의 자비와 능력을 체험하기가 더 힘들지 않을까요?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마태오는 본인이 저술한 마태오 복음에서 자신이 ‘세리’였음을 고백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하다고 확신하며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다고 자만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책을 느끼면서 절실하게 도움을 간청하는 사람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마태오를 부르시고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다.> 송영진 모세 신부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오를
사도로 뽑으신 것은
그가 사도가 될 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세리였기 때문에 사도로 뽑으신 것이 아니라,
세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도가 될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뽑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직업이나 과거의 생활을 보지
않으시고,
그의 현재와 미래, 또 그의 믿음과 자질을 보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 것은(마태 9,10),
그들이 세리였고 죄인들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도 '당신의 양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만 편애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신 분입니다.
"사람을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마태 22,16)
아무도 차별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세리들만 만나신 것이 아니라 바리사이들도 만나셨고,
세리들의 식사 초대만 받아들이신 것이 아니라
바리사이들의 식사 초대도
받아들이셨습니다(루카 7,36).
그렇게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바리사이들의 눈에는
세리들(죄인들)과 더
친하게 지내시는 것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빈부 차별을 하지 않으셨고, 역차별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똑같이
대하셨습니다.
그런데 부유한 사람들 눈에는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만 아끼고 보호하시는 것으로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 해설서나 강론집이나
묵상글들을 보면,
예수님께서 죄인들에게 특별히 더 관심을 기울이셨고,
또 가난한 사람들을 특별히 더 사랑하셨다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오해이고, 잘못된 설명입니다.
(특별대우를 받으면서 살았던 사람이라면,
예수님께서 자기를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대하실 때,
"나를 무시하시는구나." 라고 생각할 것이고,
반대로 사람들에게서 무시당하면서 살았던 사람이라면,
예수님께서 자기를
특별대우 해 주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세리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은 없고,
바리사이들과 부자들을 꾸짖으시고 비판하시는 말씀은 많은데,
이것은 '편애'가 아니라 '똑같은
사랑'입니다.
바리사이들과 부자들을 꾸짖으신 것도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사랑이고,
세리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감싸주신 것도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고,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셨기 때문에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 9,13)." 라는
말씀은,
"나는 모든 사람을 부르러 왔다." 라는 뜻이 됩니다.
또 이 말씀에는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다." 라는 뜻도 들어
있고,
"너희는 자신들이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오만함을 버리고,
너희도 죄인이라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회개하여라."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예수님의 구원을 받아야 할 죄인들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이 필요 없는 의인은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나는 의인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교만한 죄인입니다.
(진짜 의인은 그런 말을 하지 못합니다.
더욱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면서 회개하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마태 9,12)." 라는 말씀도 같은 뜻입니다.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이 병들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메시아가 필요 없는 '튼튼한 이들'은 없습니다.
자기가 병들었다는 것을 모르거나 부정하는 사람들은
있어도.
예수님께서 사제들과
원로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마태 21,31)."
이 말씀에서 '세리와 창녀들'은 '회개한 세리들과 창녀들'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세리와 창녀들은
하느님 나라에 못 들어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직업이 무엇이었든지 무슨 죄를 지었든지 간에
회개하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여기서 '너희보다 먼저'
라는 말은 '너희는 나중에' 라는 뜻도 되는데,
이것은 직업이나 죄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회개를 먼저 하는가? 나중에 하는가? 에
관한 말씀입니다.
교만한 사제들과 원로들도 회개하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회개를 안 하면 못 들어가는
것이고.
(세리와 창녀들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하느님 나라에 못 들어갑니다.)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그리스도교 전체로 확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이라고 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확정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고,
회개는 한 번 했다고 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라,
날마다 꾸준히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믿음'도 한
번 믿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끝까지(죽을 때까지) 계속 노력해야 하는 일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에게 했던 말,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마태 3,9)."
라는 말은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에게도
해당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있다.'고 큰소리치지 마라.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당신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자기는 회개하지 않아도 되는
의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오만함은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만큼의 가치도 없습니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마태 9,9)
예수님께서
나를부르시면
막상 "예"하며
따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나같은 보잘것없는 죄인이
어떻게...
먹고 살기도 바쁜데...
이것저것 맡고있는 일이 많아서...
본당신부님이 이런저런 직책을
좀 맡아라 하면
10에 8-9명은 이런저런 핑게를 댑니다.
단체 임원으로 선출되어도
"나는 못한다"며
수락거부하거나 아예 선거일에
나타나지도 않는 이들도 많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기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예" 하면 됩니다.
또 그렇게 "예" 했으면
임기동안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맡기신 일이니까요.
주님께서 나에게
뭔가를 맡기시려 한다면
이런저런 핑게를 대지말고
무조건 "예" 합시다.
그리고 겸손하게
최선을 다해 봉사합시다.
임기를 마치면
또 하려는 욕심 부리지 말고
다른 사람이 하도록
내려놓고 물러나
뒤에서 도와주도록 합시다.
그래야 주님의 부르심에
제대로 따르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