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4.성 십자가 현양 축일]주님의 십자가!’ (요한 3,13-17)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속죄하시려고 지신 십자가를 묵상하고 경배하는 날이다. 이 축일의 기원은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성녀의 노력으로 발견되었다. 황제는 이를 기념하고자 335년 무렵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의 무덤 곁에 성전을 지어 봉헌하였다. 그 뒤로 십자가 경배는 널리 전파되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9월 14일로 이 축일이 고정되었다.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이 황량하고 거친 광야의 생활을 인내하지 못하고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자, 하느님께서는 불 뱀들을 보내시어 그들을 벌하셨다. 그들이 죄를 뉘우치자 하느님께서는 구리 뱀을 높이 달아 그 뱀을 쳐다보면 살아날 수 있게 해 주셨다'(민수21,4ㄴ-9)
4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5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6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을 우리에게서 치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8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9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높이 매달았던 구리 뱀처럼 십자 나무에 들어 올려지신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의 외아드님을 내어 주셨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그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한 3,13-17)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광야의 구리 뱀과 주님의 십자가!’
독서의 말씀은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예표로 이해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어, 당신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암시하셨습니다.
그런데 집안에서 누군가 부당하게 수치스러운 형벌을 받고 죽었다면, 그 일을 자랑하시겠습니까? 더욱이 처형 도구로 사용된 형구를 다른 이들이 볼 수 있도록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시겠습니까?
로마 시대, 극악무도한 정치범이나 흉악범의 사형을 집행할 때 십자가형에 처하였는데, 고통이나 그 방법 면에서 너무 수치스럽고 끔찍해서 로마인에게는 적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 죄수에게 사형을 집행할 때 십자가 외에도 여러 도구가 사용되었는데, 바오로 사도는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참수로 순교했습니다. 그나마 그래도 로마인의 명예를 존중해 준 것이었으니, 바오로 사도는 이른바 명예사한 것이지요!
이와는 달리, 한순간에 목숨을 끊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 극도의 고통을 겪으면서 서서히 죽어 가게 하는 십자가형은, 단순히 큰 죄에 대한 벌로서만이 아니라 그 형벌을 내리는 편에서 볼 때, 절대적인 힘과 권위를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도 하였지요. 절대 권력에 도전하는 사람의 최후는 반드시 이러할 것이라는 일종의 교육적인 효과도 고려하여, 십자가형은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집행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다고 선언하였고(갈라 6,14 참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수치스러운 처형 도구인 십자가를 곳곳에 걸어 놓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피하고 싶어 하는 그 길을 생명의 길이라고 고백합니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내는 오늘, 이렇게 끔찍한 십자가가 그리스도교의 상징이 되었다는 커다란 역설을 기억하면서 십자 성호를 긋거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거기에 담긴 심오한 의미도 함께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2015.09.14. 성 십자가 현양 축일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요한 3,17)
우리나라만큼
십자가가 많이 보이는 나라도 없다고 합니다.
그만큼 성당과 예배당이 많고
눈에 뜨일 정도로 크다는 말이겠지요.
실제로 큰 도시라면
밤에 건물 옥상에서 바라보면
적어도 수십개의 십자가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즘은 십자가를
악세사리로도 많이 이용하지요.
십자가를 많이 볼 수 있고
십자가를 애용하는 한국민들이
많은 것은 감사할 일이지요.
그런데 십자가가 단지 장식이고
악세사리에 불과하다면
아무리 많아도
우리 국민들의 구원과 성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집에는
십자가가 몇 개나 있나요?
그 십자가는 부적이요 장식품으로
걸려있지는 않나요?
오늘 길에서나 성당에서나
집에서나 십자가를 보면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인사올려 봅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을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주님의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과 믿음으로
기도할 때만
그 십자가는
우리의 구원과 성장에 도움이 됩니다.
<십자가> 송영진 모세 신부
바오로 사도는 '십자가'에
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1코린
1,18)."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1코린 1,22-24)."
유대인들이 표징을 요구한다는
말은,
그들이 바라는 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권능'뿐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강한 힘으로 적들을 제압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시고...
그렇게 되기만을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그리스도로(구세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스인들이 지혜를 찾는다는
말은,
그들은 상식적으로 이해되는 것만,
또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는 것만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구세주가 패배자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죽으신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고,
그분을 구세주로 믿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신앙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하느님의 그리스도로(구세주로) 믿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것은 바로 '부활'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은,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선포합니다." 라는 뜻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복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 (1코린 15,3-4)"
자신이 전해 준
'복음', 즉 '기쁜 소식'은
예수님께서 되살아나셨다는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오순절 날 베드로 사도가
성령을 받자마자 행한 설교의 핵심도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사도 2,23-24)."
따라서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은,
사실은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
"왜 십자가인가? 다른
방법은 없었는가? 꼭 그런 식으로 했어야만 했는가?"
이 질문은 안 믿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들도 하게 되는
질문입니다.
정답은 "모른다."입니다.
부활과 생명으로 가는 길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하나뿐인 길이라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십자가의 길로 간 것이라면,
그것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니 그 길이 아니더라도 다른 길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떻든 결과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인간들이
저지른 범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범죄를 뒤집어서 당신의 선을 이루셨습니다(로마 8,28).
다시 정리하면, 우리가
십자가를 중요하게 여기고, 경배하고, 현양하는 것은
부활하신 분의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십자가는 그냥 끔찍한 사형 도구로만 남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십자가는 고통과 죽음의 도구가
아닌,
사랑과 희생과 구원과 생명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안 믿었기 때문에 십자가를 '걸림돌'로만 여겼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안 믿었기 때문에
십자가를 어리석은 일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봅니다.
그리고 그 희생은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는
'하느님의 어린양의 희생'이었음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에게는 십자가는 특별하고 위대한 상징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상징으로만
그치면 안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할 신앙 행위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8,34)."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날마다 실천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일도 날마다 실천해야 하는 일입니다.
십자가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거부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일도 역시
우리 자신의 '부활'을 믿기 때문에 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십자가가 십자가로만 끝난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뒤에 부활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십자가 뒤에도 부활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십자가를
받아들입니다.
이 말은, 부활과 생명으로
이어지지 않는 무의미한 고통이라면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모든 고통이 다 십자가가 되는 것은 아니고, 물리쳐야
할 '악'인 경우도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