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열병 (루카 4,38-44)

2015. 9. 2. 오전 7: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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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열병 (루카 4,38-44)


콜로새서의 첫 부분에서 바오로 사도는 콜로새 신자들의 믿음과 사랑을 칭송한다. 그 믿음과 사랑은 그들이 복음을 통해 들은 희망, 곧 그들을 위하여 하늘에 마련되어 있는 것에 대한 희망에 근거한다.(콜로1,1-8)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와 티모테오 형제가 2 콜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형제 신자들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3 우리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할 때면 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4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가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5 그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마련되어 있는 것에 대한 희망에 근거합니다. 이 희망은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통하여 이미 들은 것입니다. 6 이 복음은 여러분에게 다다라 여러분이 그 진리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듣고 깨달은 날부터, 온 세상에서 그러하듯이 여러분에게서도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7 여러분은 하느님의 그 은총을 우리가 사랑하는 동료 종 에파프라스에게 배웠습니다. 그는 여러분을 위하여 일하는 그리스도의 충실한 일꾼이며, 8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 준 사람입니다.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심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집에 가시어 그의 장모의 열을 내리게 하시고, 온갖 병자를 고쳐 주신다. 군중은 예수님께 그들 곁에 계셔 주시기를 청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하려고 떠나신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하여 파견되셨다.(루카 4,38-44)
38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39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
41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시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2 날이 새자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곳으로 가셨다.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4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44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카파르나움에서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외딴곳에 계신 그분을 발견하고서는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 하고 매달립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떠나 다른 고을로 가십니다.
군중은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권위를 보았고, 마귀를 쫓아내시며 시몬의 장모를 낫게 하시는 그분의 능력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선포하신 “주님의 은혜로운 해”(루카 4,19)가 이미 벌써 도래했구나 하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이런 평가가 주님께는 적절하지도 않고 커다란 결례가 되겠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의 사명을 아주 출중하게 수행하고 계셨습니다! 시쳇말로 인기 짱이십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한 곳에 머물려고 하지는 않으십니다. 한 장소에, 특정한 사람들에게 매이는 것을 거부하십니다. 그들만의 구원자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그들만을 당신의 지지자로 만들려고도 하지 않으십니다.
어느 날 홀연 떠나서 다른 이들에게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매정하게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여기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러 나선 사람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곧 기쁜 소식이 아닌 ‘나’를 중심에 세우고 내 주위에 세력을 형성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복음을 전하려고 파견된 사람은 카파르나움에만 남아 있으려 해도 안 되고, 어디를 가든지 늘 카파르나움 사람만 데리고 다녀도 안 됩니다. 물론 이것은 신심 단체 활동을 열심히 하는 분들에게도 해당됩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은 자기선전이 아니라, 치유받은 시몬의 장모처럼 조용히 봉사함으로써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해방자 예수님>  송영진 모세 신부

9월 2일의 복음 말씀은, "시몬의 병든 장모를 고치시다. 많은 병자를 고치시다. 전도 여행을 떠나시다."(루카 4,38-44)인데, 이 이야기들은, "예수님은 우리를 온갖 고통에서 해방시키려고 오신 분" 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통들 가운데에서 일상적으로, 또 가장 많이 우리를 괴롭히는 고통은 질병의 고통일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서에 자주 나오는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 주신 이야기들"은, 병에 걸렸을 때 병원이나 약국에 갈 필요 없이 예수님만 믿고 예수님께 기도만 하면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의학과 약학의 발달도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신앙인으로서 기도하는 것은 평소에도 '늘' 해야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된다고 고집 부리면서 병원에도 안 가고, 약국에도 안 가고, 기도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의학과 약학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을 기도의 힘으로 고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어서 하느님(예수님)께서 해 주신 일이지 의학과 약학이 쓸모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일은 아닙니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것이 옳습니다.

병을 고치지 못하고 그냥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일을 겪더라도, 즉 사랑하는 사람을 질병으로 잃더라도, 하느님(예수님)의 사랑을 의심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정말로 사랑하셨던 어머니와 제자들도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을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람의 인생이 이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쪽 세상에도 있다고 믿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본입니다.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나든지 어떤 사고나 질병으로 떠나든지 간에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간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별을 슬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잠깐 동안의 이별일 뿐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1) 이 이야기들에서 병자들 자신들이 병을 고쳐 달라고 청한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가족이나 친구나 친지가 병자의 병을 고쳐 달라고 청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서에는 병자 자신이 직접 청하는 이야기들도 있지만, 여기서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청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루카 4,38)."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루카 4,40)."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또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파서 누워 있는 병자라면, 병자 자신이 직접 예수님께 청할 수 없으니 옆에 있는 누군가가 대신 청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정도가 아니더라도 병자를 도와주는 것은 누구나 당연히 실천해야 하는 '사랑'입니다.

특별하고 위대한 사랑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하는 사랑은 거의 항상 당연하고 평범한 일입니다. 작고 평범하고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표시도 안 나고, 생색도 안 나지만, 그런 사랑을 통해서 공동체가 유지되고, 개인의 성덕이 쌓입니다. 또 평소에 그렇게 작고 평범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어떤 특별한 순간에 위대한 사랑을 실천하게 됩니다.

2)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 주시는 이야기 속에 마귀들을 쫓아내는 이야기도 들어 있는 것은 '마귀 들린 상태'도 일종의 병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마귀 때문에 몸과 마음과 영혼의 건강을 잃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것도 병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질병은 마귀의 짓이다." 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늙고 병드는 것은 지상에서 살고 있는 '인간의 한계'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은 그 한계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입니다.

3) 예수님께서 당시의 모든 병자들을 다 고쳐 주신 것도 아니고, 모든 질병을 다 없애 주신 것도 아니고, 의학과 약학을 발달시켜 주신 것도 아닙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어도 인간의 생로병사는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 주신 일은 당신의 신원과 정체를 드러내신 '계시'와도 같은 일입니다.(물론 병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이기도 하고.) 또 하느님 나라는 모든 고통에서 해방된 상태라는 것을 가르쳐 주신 '계시'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병자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일, 의학과 약학을 발달시키는 일, 그래서 이 세상의 질병들을 극복하는 일 등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입니다. 이 숙제는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 꾸준히 진행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4) 사람들이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어도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한다면서 예수님께서 다른 고을로 떠나신 것은(루카 4,42-44), 몸의 해방보다 영혼의 해방이 더 중요하다는 가르침입니다.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고 중요한 일이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영혼이 구원을 얻는 일입니다. 만일에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몸의 건강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5) 예수님께서 한 고을에 머물러 계시지 않고 계속 돌아다니신 것은, 복음이란 '가서' 전해야 하는 기쁜 소식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선교활동이란,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찾아가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회개를 선포한 세례자 요한은 돌아다니지 않고,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기만 했는데, 이것은 '회개'란, 회개하려는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Albert Hay Malotte/ The Lord&apos;s Prayer 주님의 기도

<우리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할 때면 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가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콜로 1,3-4)

신부님, 목사님, 스님, 교무님이
신도들 때문에
하느님께 참으로 감사드릴 때는
언제일까요?

재정적 어려움이 있을 때
그 어려움을 해결해 줄 때 일까요?
주일을 잘 지키고
십일조를 잘 바치고
이런저런 행사에 적극 동참해 줄 때 일까요?
강론이나 설교, 법문을 듣고
고맙다고 인사할 때 일까요?

물론 감사할 일이지요.

하지만 그보다는
수많은 삶의 애환에도 불구하고
믿음 때문에 희망과 기쁨을 잃지 않고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에게
관심과 사랑을 베푸는 것을 볼 때
가장 감사드리지 않을까요?

나의 종교가 무엇이든
그 종교를 통해
올바른 믿음과
다른 이웃에 대한 사랑이
성장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고
성직자들과 가깝다하더라도
별 볼 일 없는 신앙인입니다.

여러분은 참 신앙인이요
참 종교인이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의 사람이고
믿음과 희망의 사람이시기에
축하드립니다.

내가 아는 분들 중에
많은 이들이 그런 분들이기에
오늘 하느님께 더 깊이 감사드리는 날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출처] 2015.09.02.|작성자 알타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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