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간 목요일]고기잡이 기적 (루카 5,1-11)
(9월 3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540년 무렵 로마의 부유하고 신심 깊은 가문에서 태어났다. 법학을 비롯한 귀족 계층의 고등 교육을 받은 그는 로마의 고위 공직자를 지낼 정도였으나, 모든 재산을 교회에 기증하고 수도원에 들어가 사제가 되었다. 590년에 교황으로 뽑힌 그레고리오는 교황을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라고 표현한 최초의 교황이다. 교황권을 ‘지배하는 특권’이 아니라 ‘봉사하는 특전’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도 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듯이 그레고리오 교황은 전례 음악에 조예가 깊었을 뿐 아니라 신앙과 윤리에 관한 책을 많이 남기고 604년에 선종하였다.
콜로새서 첫 부분에는 콜로새 신자들을 위한 바오로 사도의 기도가 들어 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으니, 영적 지혜로 하느님의 뜻을 알아 거기에 부응하여 합당하게 살아가게 되기를 기도한다.(콜로 1,9-14)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 관한 9 소식을 들은 날부터 여러분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며 간청하고 있습니다. 곧 여러분이 모든 영적 지혜와 깨달음 덕분에 하느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져, 10 주님께 합당하게 살아감으로써 모든 면에서 그분 마음에 들고 온갖 선행으로 열매를 맺으며 하느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기를 빕니다.
11 또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에서 오는 모든 힘을 받아 강해져서, 모든 것을 참고 견디어 내기를 빕니다. 기쁜 마음으로, 12 성도들이 빛의 나라에서 받는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여러분에게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13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14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부였던 시몬을 당신 제자로 부르신다. 그분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던진 베드로는 많은 물고기를 잡는다. 이제 사도가 되어 신앙을 전파하는 데에도 그러할 것이다.(루카 5,1-11)
1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 군중은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 2 그분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놓은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거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4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5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6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7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8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9 사실 베드로도,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 10 시몬의 동업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11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오늘 복음을 이해하는 데 실마리가 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고기잡이는 베드로가 소명을 받은 사도의 직분을 나타냅니다.
어부였던 시몬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겐네사렛 호숫가에서 예수님을 만나 그분을 알게 되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됩니다.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헛수고만 한 그들이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자, 그분이 누구신지를 깨닫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어제 복음의 카파르나움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붙잡으려 하지 않고, 이상하게도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하고 고백합니다. 베드로의 겸손한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서 떠나가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를 당신 곁으로 부르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베드로는 그물질로 잔뼈가 굵어진 어부였지만, 지난밤에는 그의 풍부한 경험도 아무 소용이 없었고, 밤새도록 인내하면서 최선의 노력을 한 것도 헛일이었습니다.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리라고 자신만만해 하던 그가 한계를 느낀 하루였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물고기를 잘 잡을 수 있으니 저를 뽑아 주십시오! 거룩하신 주님을 제대로 모실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으니, 제 배로 반드시 오셔야 합니다.” 하는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로 택하지 않으십니다. 자신이 약하고 부당하다는 점을 잘 알아서, 예수님의 말씀에만 의지하면서 그물을 던지는 사람만이 사람을 낚는 주님의 사도가 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스승이요,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지존한 신적 능력을 체험한 베드로는 한편으로는 그분께로 이끌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분을 떠나고 싶은 충동을 받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신비를 대하거나 체험할 때, 성인 성녀들은 경외심에 가까운 두려움과 동시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인생의 여러 가지 일로 매우 지쳐 있다면, 베드로처럼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고백하면서 오늘도 그물을 다시 던지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기잡이
기적 -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다.>송영진 모세 신부
예수님께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던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신 일은, 전에
만난 적도 없는 그들을 보시자마자 갑자기 부르신 일이 아닙니다. (어부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처음
본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시자마자 응답한 일이 아닙니다.) 부르심을
받기 전에 이미 그 어부들은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제자로 부르신 이야기 앞에,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으로 가셔서 그의
장모를 고쳐 주신 이야기가 있습니다(루카 4,38-39).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으로 가신 것은 식사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아마도
분명히 시몬이 예수님을 초대한 것일 텐데, 예수님을
믿었고, 복음을 받아들였으니까 초대한 것입니다. (식사를
하려고 가셨는데, 마침
시몬의 장모가 병에 걸려서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요한 1,35-42).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뽑으시는 장면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서 사도로 삼으셨습니다(루카 6,13). 어부들을
부르신 일은 그들을 사도로 뽑으신 일이 아닙니다. 그들을
나중에 사도로 삼으시려고 마음속으로 계획하셨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제자들을 부르신 일'과 '사도들을 뽑으신 일'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일'과 '예수님을 따르는 일'과 '예수님께서
맡겨 주신 사도직을 수행하는 일'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부들은
예수님을 믿고 있었지만 아직 따르지는 않는 상태였고, 그런
그들을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라." 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경우에는 세례성사를 '예수님의 부르심'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세례를 받기 전에도 예수님을 믿고 있을 수 있는데, 예수님을
믿기는 하지만 신앙생활은 하지 않는 상태로 지내다가 세례성사를
받음으로써, 즉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함으로써 비로소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세례를 받는다고 해서 모든 신앙인이 어부들처럼 실제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일을 실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고...) 신앙인으로서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성소'를
특수 성소와 일반 성소로 구분해서 말하는데, 성직자나
수도자로 살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특수 성소를 받은 것으로, 평신도로
사는 사람들은 일반 성소를 받은 것으로 표현합니다. 어떻든
'성소'를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셨고, 그 부르심에 응답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서는 신자들과 제자들을 구분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은 곧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는 것이고, 당연히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기 전에 행하신 기적은(루카 5,4-7), 당신이
어떤 분인지를 보여주신 일이기도 하고, 제자들이
앞으로 하게 될 일을 상징적으로 미리 가르쳐 주신 일이기도 합니다.
시몬이 예수님을 부를 때 사용한 호칭이 기적 전에는 '스승님'이었는데, 기적 후에는 '주님'으로 바뀐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시몬의 배에 앉아서 가르치셨기 때문에 시몬도(어부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고 있었더라도 말씀만 들었을 때에는 예수님은 그냥 '스승님', 즉 율법학자였습니다. 그러나 기적을 체험하게 되자 예수님은 하느님과 같으신 분, '주님이신 분'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또
'주님'이라는 호칭은 시몬이 예수님을 따라갈 준비가 되었음을, 또
신앙을 위해서 인생을 바칠 준비가 되었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8)." 라는
시몬의 말은, 주님의 초자연적인 권능에 압도되었음을 나타내는 말이고, 진짜로
자기에게서 떠나 달라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깊은 데로 저어 나가라."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루카 5,4), 기적은 호수 깊은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호숫가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던 군중은 기적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는 기적을 안 보여주시고 어부들에게만 보여주셨을까? 그것은
아마도 군중은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일에
군중이 보는 앞에서 기적을 행하셨다면, 그들은
예수님은 안 믿고 '표징'을 보고 놀라는 것으로 그쳤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루카 5,10)." 라는 말씀은, "지금까지는
먹고살기 위해서 물고기를 잡는 일만 했지만 이제부터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라는 뜻이고, 다시
이 말은, "지금까지는 너 자신이 먹고사는 것만을 생각하면서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하느님을 위한 일과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일을 하면서 살게 될 것이다." 라는 뜻이 됩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신앙인은 예수님의 제자이기 때문에 "모든 신앙인은 예외 없이 사람을 낚는 어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은 누구나 신앙에 인생 전부를 건 사람들이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이고,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을 하는 제자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루카 5,11)
여러분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나요?
당장 집에 불이 났다면
꼭 챙겨야 할 것 다섯가지만 골라보세요.
집에 있는 것 중에서
1년 동안 한번도 쓰지 않은 것을
한번 꺼내 보세요.
사실 별 필요 없는 게
참 많습니다.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가벼워야 하는가 봅니다.
모든 것을 버리지는 못해도
정말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나머지는 내어 놓아야
홀가분하게 그분을 잘 따를 수 있답니다.
오늘은
가을맞이 대청소를 해보면 어떨까요?
맑고 깨끗하게
주님을 따르기 위해~~^^
[출처] 2015.09.03.|작성자 알타반
<밤새도록 애썼지만> -故유광수 신부-
교회란 무엇인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 군중은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라고 말씀하신 대로 몰려온 군중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해주는 곳이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싶으면 교회에 와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 일을 하는 것이 교회이다.
교회가 말씀을 전하는 것을 복음 선포라고 하고 또는 사도직이라고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전할 사명을 갖은 사람들이다. 언제 어디에서든 자기에게 몰려온 사람들에게 복음을 들려 주어야 한다.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할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일이다. 이 일은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오늘 복음은 교회가 또는 내가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가에 대한 가르침이다.
예수님은 어부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러 나갔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허탈한 마음으로 그물을 씻고 있는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예수님이 타고 있는 배는 교회를 상징한다. 그리고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라는 말은 권위 있게 가르치시는 스승의 모습을 말한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는 곳이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예수님은 군중들에게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앞으로 사도로서 복음을 전해야 할 시몬에게 복음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가? 라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다. 아니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도록 그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훈련시키신다.
우선 예수님은 시몬에게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하고 이르셨다. 이 말을 듣고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분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하고 대답하고 이어서 그들이 그렇게 하자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묵상할 것이 많이 있다.
첫째, 똑같은 장소, 똑같은 도구(배, 그물), 똑같은 사람이 고기를 잡았으나 결과는 너무 달랐다. 한쪽은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하였고 또 다른 한쪽은 "그들이 그렇게 하자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쪽은 허탈감, 빈곤함, 절망감이 감돌았고 다른 한 쪽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의 풍요로움, 일한 보람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기쁨이 넘치는 분위기였다. 다시 말해서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도구를 가지고 똑같은 장소에서 고기를 잡았지만 한쪽은 빈곤함과 허탈감이요 절망감이었다면 다른 한 쪽은 풍요로움과 기쁨이 가득찼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가져오게 하였는가?
어떻게 하면 열심히 일했지만 결과가 비참해지고 빈곤함만 남게되고 어떻게 하면 생각하지 못한 많은 풍요로움을 가져오고 기쁨을 누릴 수 있는가? 그 차이가 무엇인가? 그 비결은 지극히 간단하다. 즉 복음을 전한다고 할 때 인간적인 노력과 인간적인 방법에 의존하는? 아니면 말씀에 의존하는가? 에 달려 있다.
시몬과 그의 동료들은 어릴 때부터 어부로서 살았고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다른 일은 몰라도 고기 잡는 일만큼은 자기들이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으로 먹고 사는 직업인들이다. 그러니까 고기 잡는 일에 있어서 만큼은 그 누구의 도움이나 의견을 들을 필요없이 자기들이 알고 있는 상식과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는데도 한 마리도 잡지 못하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반대로 이번에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물을 내리었더니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고기가 잡혔다는 것이다.
무엇을 말하는가?
복음을 전하는 일은 인간적인 노력과 방법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인간적인 노력을 많이 해도 말씀이 없으면 또 말씀대로 하지 않고 자기 노력과 방법대로 한다면 아무 결실을 맺지 못한다는 것이다. 복음선포는 나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말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시몬과 그의 동료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을 때에 오는 절망감, 허탈감, 피곤함, 공허함 등은 인간적으로 볼 때에는 모든 것들이 비극이요, 부정적인 상황들이지만 그것은 또한 예수님을 알아보고 자신의 모습을 알아보게 하는 은총의 시간이고,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이다.
만일 시몬과 그의 동료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그런 고통을 겪지 않았다면 시몬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보지도 못하였을 것이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아보고 무릎을 꿇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셋째,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할 때 그 결과는 비참해진다는 것이다. 시몬과 그의 동료 어부들은 장차 사람낚는 어부들이 될 사람들이다. 고기잡는 일이 그들의 일이 아니라 사람들을 낚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사람낚는 어부로서 살아가지 않고 고기 잡는 일에 매달릴 때 그 결과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쓰라린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라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도록 불리움을 받은 사람은 복음을 전할 때 기쁨을 맛보고 많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넷째, 복음을 전하는 일은 믿음의 행위이지 인간적인 행위가 아니다. 예수님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시몬에게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고 했을 때 "스승님의 분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그물을 내렸다는 것은 믿음의 행동이다.
우리 같으면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물을 내리겠는가?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무척 자존심이 상하는 일로서 쉽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몬은 "스승님의 분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하고 그물을 내렸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