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0주간 목요일 혼인예복(마태 22,1-14)

2015. 8. 20. 오전 7:5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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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0주간 목요일] 혼인예복(마태 22,1-14)
 

베르나르도 성인은 1090년 프랑스 디종의 근교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그는 시토 수도회에 입회하였고, 뒤에 클레르보 수도원의 아빠스(대수도원장)가 되었다. 베르나르도 아빠스는 몸소 모범을 보이며 수도자들을 덕행의 길로 이끌었다. 또한 그는 교회의 분열을 막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신학과 영성 생활에 관한 저서도 많이 남겼다. 1153년에 선종한 베르나르도 아빠스를 1174년 알렉산데르 3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1830년 비오 8세 교황은 성인을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암몬 사람들과 맞서 싸우던 판관 입타는, 집으로 돌아갈 때 자기를 맞으러 나오는 사람을 번제물로 바치겠다고 서원을 하는데, 그의 외동딸이 그를 맞이한다. 입타의 딸은 아버지에게 서원을 지키라고 말하며 자기를 번제물로 바치게 한다.(판관11,29-39ㄱ)

29 주님의 영이 입타에게 내렸다. 그리하여 그는 길앗과 므나쎄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길앗 미츠파로 건너갔다가, 길앗 미츠파를 떠나 암몬 자손들이 있는 곳으로 건너갔다. 30 그때에 입타는 주님께 서원을 하였다. “당신께서 암몬 자손들을 제 손에 넘겨만 주신다면, 31 제가 암몬 자손들을 이기고 무사히 돌아갈 때, 저를 맞으러 제집 문을 처음 나오는 사람은 주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을 제가 번제물로 바치겠습니다.” 32 그러고 나서 입타는 암몬 자손들에게 건너가 그들과 싸웠다. 주님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으므로, 33 그는 아로에르에서 민닛 어귀까지 그들의 성읍 스무 개를, 그리고 아벨 크라밈까지 쳐부수었다. 암몬 자손들에게 그것은 대단히 큰 타격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굴복하였다. 34 입타가 미츠파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의 딸이 손북을 들고 춤을 추면서 그를 맞으러 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었다. 입타에게 그 아이 말고는 아들도 딸도 없었다. 35 자기 딸을 본 순간 입타는 제 옷을 찢으며 말하였다. “아, 내 딸아! 네가 나를 짓눌러 버리는구나. 바로 네가 나를 비탄에 빠뜨리다니! 내가 주님께 내 입으로 약속했는데, 그것을 돌이킬 수는 없단다.” 36 그러자 딸이 입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주님께 직접 약속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아버지의 원수인 암몬 자손들에게 복수해 주셨으니, 이미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하십시오.” 37 그러고 나서 딸은 아버지에게 청하였다. “이 한 가지만 저에게 허락해 주십시오. 두 달 동안 말미를 주십시오. 동무들과 함께 길을 떠나 산으로 가서 처녀로 죽는 이 몸을 두고 곡을 하렵니다.” 38 입타는 “가거라.” 하면서 딸을 두 달 동안 떠나보냈다. 딸은 동무들과 함께 산으로 가서 처녀로 죽는 자신을 두고 곡을 하였다. 39 두 달 뒤에 딸이 아버지에게 돌아오자, 아버지는 주님께 서원한 대로 딸을 바쳤다.


시편 40(39),5.7-8ㄱㄴ.8ㄷ-9.10(◎ 8ㄴ과 9ㄱ 참조)
◎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오만한 자들과 어울리지 않고, 거짓된 자들을 따르지 않는 사람! ◎
○ 당신은 희생과 제물을 즐기지 않으시고, 도리어 저의 귀를 열어 주셨나이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바라지 않으셨나이다. 제가 아뢰었나이다. “보소서, 제가 왔나이다.” ◎
○ 두루마리에 저의 일이 적혀 있나이다. 주 하느님, 저는 당신 뜻 즐겨 이루나이다. 당신 가르침 제 가슴속에 새겨져 있나이다. ◎
○ 저는 큰 모임에서 정의를 선포하나이다. 보소서, 제 입술 다물지 않음을. 주님, 당신은 아시나이다. ◎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예복입지않은 자의 이유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임금에 비유하신다. 초대받은 이들이 초대에 응하지 않자, 임금은 아무나 잔치에 불러온다. 그러나 초대에 합당한 준비를 갖추지 않은 자는 잔치에서 쫓겨날 것이다.(마태 22,1-1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1 말씀하셨다.
2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3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4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 하고 말하여라.’ 5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6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7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8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9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10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11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12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4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2014년 8월 21일 목요일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복음(마태22,1~14)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11~12)

마태오 복음 22장 11절은 한글 새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으나, 원문에는 접속사 '데'(de; and; but)로 시작한다. 이것은 여기서부터 또 다른 국면의 사건이 전개될 것이라는 뉘앙스를 준다. 말하자면, 지금부터 임금이 등장하여 임금 중심으로  어떤 사건이 벌어질 것을 암시한다.

여기서 임금이 등장했다는 것은 이제부터 잔치가 본격화 될 것을 보여 주는 것인데, 영적으로 천국 잔치의 본격적 시작 시점심판의 때가 이르렀음을 가리킨다. 하느님의 통치는 지금 현재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리스도 재림 이후에 있을 본격적인 천국의 잔치에서 예복을 입은 자에게는 더 큰 기쁨을  누리는 날이 될 것이고, 예복을 입지 않은 자에게는 큰 슬픔의 날이 될 것이다.

여기서 '예복'으로 번역된 '엔뒤마 가무'(endyma gamu; wedding clothes)'결혼식 때 입는 옷'을 뜻한다. 본래 '엔뒤마'(endyma)'겉옷'이나 '외투'를 가리키는 단어로서 옷 위에 덧입는 옷이다. 유대인들의 혼인 잔치에는 혼주가 나누어 주는 예복을 입어야만 했다.

이들에게도 분명히 임금이 잔치에 합당한 예복을 나누어 주었을 것이다(창세45,22; 판관14,12). 하지만 한 사람이 이 예복을 입지 않은, 너무나 무례하며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임금의 잔치 석상에서 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은 심판의 자리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예복을 입지 않은 자들이 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심판의 날에 입어야 할 예복은 무엇인가? 이것은 사도 바오로의 표현대로 그리스도를 입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갈라3,27), 자기 육(肉)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고 대신 성령의 능력을 얻어 입어서(갈라5,22~24) 의로운 행위를 추구하는 삶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묵시19,8).

한편, 임금은 예복을 입지 않고 잔치에 참석한 사람을 향해 '친구'라고 부르고 있다. '친구'로 번역된 '헤타이레'(hetaire; friend) '헤타이로스'(hetairos)의 호격이다. '헤타이로스'(hetairos)는 다정한 느낌의 '동료', '동무'를 뜻하기도 하지만 (마태11,16), 문책과 심판의 대상을 지칭할 때도 사용된다. 포도밭 임자가 품꾼 중에 원망하는 자들을 부를 때 이 단어를 사용했고(마태20,13), 예수님께서도 당신을 배반하기 위해 오는 유다 이스카리옷을 부를 때이 단어를 사용하셨다(마태26,50).

따라서 여기 본문의 '친구'도 카리옷 사람 유다처럼 거짓으로 하느님의 나라의 공동체 안에 몸붙이고 있으면서도, 의(義)로움을 좇지 않고  악(惡)을 고집하는 자들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보면 무방하다. 그리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로 번역된 '에피모테'(ephimothe; was speechless)의 원형 '피모오'(phimoo)'재갈로 입을 막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임금의 질문 앞에 마치 입에 망을 씌운 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자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임금이 예복을 준비하여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어떠한 변명도 할 수 없었으며, 결국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이러한 표현은 최후의 심판 때에 그리스도 예수의 지엄하신 위엄과 그분의 책망으로 말미암아, 악인들이 겪게 될 비참한 운명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매일복음(다해) 10-08-19] - “하늘나라의 혼인 잔치에..,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코헬렛은 “서원을 하고 채우지 않는 것보다 서원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5,4)고 충고하고, 벤 시라는 “서원을 하기 전에 자신을 준비시켜 주님을 떠보는 인간처럼 되지 마라.”(집회 18,23)고 권고합니다.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고대 근동 지방을 비롯하여 이스라엘에서도 발견되는 관습이었지만, 나중에는 금지되었습니다. 자기의 서원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상하지 않고 서원을 했다는 측면에서, 입타는 진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그가 서원을 취소했어야 할까요? 하지만 아무리 신중을 다한다 해도 서원할 때 그에 뒤따르는 결과를 모두 알아서 서원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알지 못하는 미래를 내어 맡기는 것이 서원입니다. 입타 이야기는 주님께 서원한 것은 깨뜨릴 수 없다는 점을 알려 줍니다.
부부의 경우도 앞으로 일어날 일을 모두 계산해 보고 살펴본 다음에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지요. 열심히 살다가 가족 문제 등으로 어려움이 엄습할 때, 결혼 당시 예상치 않은 일이라고 해서 결혼을 취소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입타의 딸은 자기가 죽어야 할 처지인데도 아버지의 서원을 지켜 줍니다. 기상천외한 이런 일을 맞게 될 줄 몰랐다는 것이 결코 하나의 구실이 될 수 없었습니다.
모든 혼인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면서도 서약하는 것이고, 또한 자신의 약속을 끝까지 지킬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수도 서원이나 혼인 서약은, 내가 알 수 없는 미래 전부를 몽땅 하느님이나 상대방에게 맡기는 숭고한 약속입니다.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화답송 후렴).

어떤초대 -천국혼인잔치 어머니하나님-


<혼인 잔치의 비유>  송영진 모세 신부

8월 20일의 복음 말씀은 마태오복음 22장 1절-14절, '혼인 잔치의 비유'인데, 초대받은 사람들이 오지 않은 것은, 이스라엘이 메시아의 복음 선포에 응답하지 않은 것을 나타내고,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잔치에 참석하는 것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음을 나타냅니다.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쫓겨나는 이야기는, 부르심에 응답한 것으로 그치면 안 되고,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마태오복음에서 '혼인 잔치의 비유'는, 바로 앞에 있는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마태 21,33-46)와 뜻과 주제가 거의 같습니다.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에서, 소작인들이 소작료를 내지 않으려고 종들을 매질하고 죽인 일과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 잔치에 참석하기를 싫어 한 사람들이 종들을 때리고 죽인 일은 같은 일입니다. 이것은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인 이스라엘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는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데려다가 잔칫방을 채우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에서는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마태 21,43)." 라고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초대받은 사람들이 잔치에 참석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가는 것은(마태 22,5), 구원을 얻는 일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세속의 일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런 모습은 오늘날에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게 변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휴가철을 맞아서 가족들과 (또는 친구들과) 해수욕장에 가기로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느라고 어쩔 수 없이 주일을 지키지 못했다." 이것은 임금의 초대를 무시하면서 밭으로 가고, 장사하러 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주일을 지키지 못했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못 지킨 것이 아니라 안 지킨 것입니다.)

(만일에, "돌아와서 고해성사 보면 되지." 라고 처음부터 생각하고, 그런 생각으로 주일을 안 지킨 것이라면, 그것은 이중으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주일을 안 지킨 죄와 성사 모독죄.)

그런데 '혼인 잔치의 비유'를 겉으로만 보면, 처음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잔치 참석을 거부했기 때문에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초대를 받은 것처럼, 즉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했기 때문에 복음의 은총이 이방인들에게로 넘어간 것처럼 표현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는(지금의 그리스도인은) 유대인들의 대타도 아니고, 대역도 아닙니다.

만일에 이스라엘이(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복음을 받아들였다면, 그래서 모두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신자가 되었다면, 그러면 이방인들은 복음을 들을 기회조차 없게 되었을까?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루카 24,47)." 이 명령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든지 거부하든지 간에, 그것과 상관없이 사도들이 실행해야 할 명령입니다.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원래 하느님의 뜻이었고, 계획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이미 당신의 뜻을 밝히셨습니다. "...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 12,3)."

그래서 길거리에 서 있다가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처음에 초대받은 사람들 '대신에' 초대를 받은 것이 아닌 것이 됩니다. 초대장이 전달된 순서가 그렇게 되었을 뿐, 그들도 처음부터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내용을 8월 19일의 복음 말씀이었던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마태 20,1-16)와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비유를 보면 밭 주인이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 아홉 시, 열두 시, 오후 세 시, 오후 다섯 시, 이렇게 다섯 번 장터에 가는데, 아무 계획도 없이 일꾼들을 샀다가 일을 하다 보니 사람이 모자라서 다시 간 것이 아니라, '모든 일꾼들'을 다 불러 모으려고 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산 일꾼들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그 뒤에 산 일꾼들은 이방 민족들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길거리에 서 있던 사람들도 정식으로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한다면,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쫓겨난 일은 충분히 설명이 됩니다. 초대를 받은 뒤에 혼인 예복으로 갈아입을 시간이 있었는데도, 안 입었기 때문에 쫓겨났다는 것입니다.(못 입은 것이 아니라 안 입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길거리에 서 있다가 초대를 받았는데, 그 한 사람만 예복을 안 입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입고 있었던 것도 혼인 예복으로 갈아입을 시간이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예복을 안 입은 사람이 밖으로 쫓겨나는 모습에서 소금에 관한 말씀이 연상됩니다.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마태 5,13)." 혼인 예복을 안 입은 사람은 제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은 사람, 즉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초대하셨고, 모든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데, 안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과 자격을 갖추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은 못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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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에, 판관 입타가 주님께 함부로 서원을 했다가 자기 딸을 제물로 바치게 된 이야기가 나옵니다(판관 11,29-39ㄱ).

<매일미사> 책의 <오늘의 묵상>에서는 주님께 서원한 것은 절대로 취소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는 이야기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설명입니다.

입타는 자기 목숨을 걸고 서원한 것이 아니라 남의 목숨을 걸고 서원했습니다. (주님의 뜻은 생각하지도 않고, 살인을 하겠다고 자기 마음대로 서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서원은 그 자체로 무효입니다. 당연히 취소되어야 합니다.

<매일미사> 책의 <오늘의 묵상>을 쓴 사람은, 입타의 서원을 혼인 서약이나 수도 서원과 같은 서원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혼인성사의 서약이나 신품성사의 서약이나 수도 서원은 모두 자기 목숨을 걸고 하는 서약입니다. 그래서 취소할 수 없는 서약입니다.결코 입타의 서원과 같지 않습니다.

교회의 기관지에서 이런 잘못된 설명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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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나라를 위한 혼인 예복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마태 22,3)

여러분은 초대를 많이 받으시나요?
어떤 초대에는 기꺼이 가고 어떤 초대는 무시해 버리지요?

여러분은 초대를 많이 하시나요?
초대한 사람이 와 주면 기쁘지요?
그런데 꼭 와야 할 사람이 안 오면 아주 섭섭하지요?

내가 존경하고
내가 도움과 은혜를 많이 받은 분이 나를 초대하면
만사 재껴놓고 가지요.

나의 초대에 기꺼이 응해 준 사람들도
그런 분이 대부분일 겁니다.

여하튼
하느님께서 나를 초대하신다면 얼마나 가슴 뛸 일이겠어요.
신부님이 나를 초대하고 주교님이 초대해도 (ㅋ 잘 안하시지만)
얼마나 감격스러울까요.

그런데
하느님께서 나를...
맙소사! 어찌 이런 일이...
말문이 막히고 감동에 숨이 막힐 일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 초대에 못가게 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요!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나를 초대하신답니다.
그 초대에 감사히 기쁨으로 화답하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지 않아서
하느님은 속상하시대요.

오늘 나를 초대하시는 그분께
'예' 하고 기쁘게 응답하시는 날 되시길 빕니다.

[출처] 2015.08.20.|작성자 알타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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