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9주간 목요일]용서 (마태 18,21─19,1)

2015. 8. 13. 오전 7:4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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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9주간 목요일]용서  (마태 18,21─19,1)

[더 바이블 애니메이션] 여호수아와 여리고 성 The Bible Animation - Joshua and the Battle of Jericho

모세가 세상을 떠난 다음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통수권을 맡기신다. 여호수아의 인도 아래 이스라엘은 요르단 강을 건넌다. 이집트 탈출 때에 갈대 바다에서 바닷물이 갈라졌듯이, 계약 궤를 멘 사제들의 발바닥이 요르단 강 물에 닿자 강물이 멈추어 선다.(여호 3,7-10ㄱㄴㄹ.11.13-17)
그 무렵 7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내가 온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너를 높여 주기 시작하겠다. 그러면 내가 모세와 함께 있어 준 것처럼 너와도 함께 있어 준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될 것이다. 8 너는 계약 궤를 멘 사제들에게, ‘요르단 강 물가에 다다르거든 그 요르단 강에 들어가 서 있어라.’ 하고 명령하여라.” 9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였다. “이리 가까이 와서 주 너희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라.” 10 여호수아가 말을 계속하였다. “이제 일어날 이 일로써, 살아 계신 하느님께서 너희 가운데에 계시면서, 가나안족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시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1 자, 온 땅의 주인이신 분의 계약 궤가 너희 앞에 서서 요르단을 건널 것이다. 13 온 땅의 주인이신 주님의 궤를 멘 사제들의 발바닥이 요르단 강 물에 닿으면, 위에서 내려오던 요르단 강 물이 끊어져 둑처럼 멈추어 설 것이다.” 14 백성이 요르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천막에서 떠날 때에, 계약 궤를 멘 사제들이 백성 앞에 섰다.
15 드디어 궤를 멘 이들이 요르단에 다다랐다. 수확기 내내 강 언덕까지 물이 차 있었는데, 궤를 멘 사제들이 요르단 강 물가에 발을 담그자, 16 위에서 내려오던 물이 멈추어 섰다. 아주 멀리 차르탄 곁에 있는 성읍 아담에 둑이 생겨, 아라바 바다, 곧 ‘소금 바다’로 내려가던 물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그래서 백성은 예리코 맞은쪽으로 건너갔다. 17 주님의 계약 궤를 멘 사제들이 요르단 강 한복판 마른땅에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동안, 온 이스라엘이 마른땅을 밟고 건너서, 마침내 온 겨레가 다 건너간 것이다.


시편 114(113 상),1-2.3-4.5-6
◎ 알렐루야.
○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야곱 집안이 낯선 말 하는 민족을 떠날 때, 유다는 그분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분의 나라가 되었네. ◎
○ 바다가 보고 달아났으며, 요르단이 뒤로 돌아섰네. 산들은 숫양처럼 뛰어다니고, 언덕들은 어린양처럼 뛰놀았네. ◎
○ 바다야, 너 어찌 달아나느냐? 요르단아, 어찌 뒤로 돌아서느냐? 산들아, 어찌 숫양처럼 뛰어다니고, 언덕들아, 어찌 어린양처럼 뛰노느냐? ◎     


용서하며살아요(ppt설교)

베드로가 예수님께 형제의 죄를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는지 묻자, 예수님께서는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으니, 우리도 형제의 잘못을 마음으로부터 용서해야 한다. (마태 18,21─19,1)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19,1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들을 마치시고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 건너편 유다 지방으로 가셨다.

용서란 선물..!!쉐도우님~~방가워요~^^

라삐들은 누군가에게 잘못하면 세 번까지 용서를 청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질문한 베드로는 관대한 사람에 속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곧 끝없이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무자비한 종에 관한 비유 말씀을 들려주시는데, 이 비유 안에서는 하느님의 끝없는 자비와 용서, 그리고 인간의 옹졸함과 비정함이 대조를 이룹니다. 이 비유는 신약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적인 교훈, 곧 용서받으려면 용서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전하는데, 용서와 자비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은 참으로 많습니다. 산상 설교에서 예수님께서는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하시고,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 다음에는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마태 6,14)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 서간도 “자비를 베풀지 않는 자는 가차 없는 심판을 받습니다.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2,13) 하고 강조합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용서와 우리의 용서는 나란히 갑니다.
우리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채무를 탕감받았습니다. 곧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셨으니, 하느님의 자비를 본받아 우리도 이웃을 용서해야 합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실천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누군가를 용서하기가 정말로 어렵다고 생각될 때,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하고 미사 참회 예식의 자비송을 떠올리면서 주님의 도우심을 간청하며 노력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18장 용서는 몇 번이나?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마태 18,33)

가끔 나를 모함하거나 남 앞에서 헐뜯거나
모욕을 주었거나 내 돈을 떼 먹었거나
나를 무시하는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복수하고 싶고
때려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고 분한 마음 때문에 우리는 괴로워 합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 만난 사람중에 한두 사람에 불과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에게 친절하였고 우호적이었으며
나의 실수나 잘못도 기꺼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었습니다.

사실 비밀이지만 나도 남을 무시하고 상처준 적도 있고
뒷담화를 하며 낄낄댄 적도 있습니다.

그러니
도저히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팔짝 뛸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한두 명 때문에 내가 왜 분노해야하고 짜증이 나야 합니까.
그보다는 나에게 우호적이고 너그러웠던 이들에게 감사하고
내가 너그럽지 못해던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하지는 못해도 너그러이 한번 봐 줍시다.

그래야 하느님의 아들이고 딸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출처] 2015.08.13.|작성자 알타반

화해라는 꽃말을 가진 개망초~


은혜를 기억하라 반영억라파엘신부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많은 은혜를 입으며 삽니다. 부모나 스승의 은혜뿐 아니라 이웃의 은혜도 큽니다. 그리고 자연의 은혜는 더욱 큽니다. 그러나 이 은혜로움에 대하여 잊고 지낼 때가 많습니다.“내가 남에게 베푼 것은 새겨 두지 말고 남이 내게 베푼 것은 잊지 말라”고 말하지만 그 반대로 살 때가 있습니다. 은혜를 입은 것을 생각하면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니 마음이 박해 집니다. 뿐만 아니라 은혜를 베풀었으면 그 보답을 바라지 말고, 남에게 주었으면 후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미움이 생기지 않습니다. 기대하게 되면 기대하는 만큼 “네가 그럴 수 있나?”하는 서운함만 커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 베드로에게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억지로 눈감아 주고 참아줄 수 있는 한계를 일곱 번으로 표현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넘어 자비심으로 용서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한없이, 기꺼이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용서해야 할 대상을 바라보면 용서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바라보면 용서가 가능합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은혜를 입었고 앞으로도 입게 될 것이고 죽음에 이르러서도 남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의 허물에 대하여 용서를 베푸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못 박은 원수를 위해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가23,34).하고 기도하고 용서하시기를 하느님 아버지께 청했다면 그분을 따르는 우리 역시 예수님의 힘을 입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선행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용기 있는 사람이 용서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용서할 수 있습니다.

탈출기34,6-7에는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풀고 죄악과 악행과 잘못을 용서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허물에 대하여 끊임없는 자애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한없는 은혜를 기억하며 나도 은혜를 베풀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용서가 필요한 죄인, 사랑받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타인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이미 많은 용서를 받았고 은혜를 입었다는 것을 인정할 때 남에게 관대해 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생에 있어서도 허물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약함을 지녔다는 사실을 안다면 용서 안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말로는 용서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내가 옳았다는 말을 듣고 싶고, 아직도 사과와 해명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더 나아가 용서를 베풀어 주었다는 것에 대해 칭찬 받고 싶은 마음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용서는 그것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콜로3,12-13).

“사랑하는 여러분, 스스로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성경에서도 ‘복수는 내가 할 일, 내가 보복하리라’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히려‘그대의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 하거든 마실 것을 주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대가 숯불을 그의 머리에 놓는 셈입니다. 악에게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로마12,19-21).

바오로 사도의 말대로 악에게 굴복당하지 않고 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런저런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먼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은혜, 받을 은혜를 기억하는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용서할 사람은 용서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빚을 탕감해 주셨으니 이제는 내가 이웃의 빚을 탕감해 주어야 할 때입니다. 당신의 은혜를 돌 판에 새기렵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정몽구-현정은 회장 화해는 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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