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1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고향 (마태 13,54-58)

2015. 7. 31. 오전 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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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1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고향 (마태 13,54-58)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은 1491년 스페인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군인이 된 그는 전쟁에서 입은 부상을 치료받다가 현세의 허무함을 깨닫고 깊은 신앙 체험을 하였다. 늦은 나이에 신학 공부를 시작한 이냐시오는 마흔여섯 살에 사제가 되었고, 이후 동료들과 함께 예수회를 설립하여 오랫동안 총장을 맡았다. 그는 『영신 수련』 등 많은 저술과 교육으로 사도직을 수행하였으며, 교회 개혁에도 크게 이바지하였다. 1556년 로마에서 선종하였고, 1622년에 시성되었다.


2005년 10월 07일 이스라엘의 절기(레위기23장 1-8절) 3대 절기의 축복 = 유월절(성자), 오순절(성신), 초막절(성부),

레위기 23장은 이스라엘의 축일들에 대한 규정이다. 이스라엘은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여 파스카와 무교절을 지내고, 수확의 맏물을 바치는 주간절을 지내며, 광야 생활을 기억하는 초막절을 지낸다. 이러한 축일들에는 생업을 멈추고 거룩한 모임을 갖는다(레위 23,1.4-11.15-16.27.34ㄴ-37)
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4 “너희가 정해진 때에 소집해야 하는 거룩한 모임, 곧 주님의 축일들은 이러하다. 5 첫째 달 열나흗날 저녁 어스름에 주님의 파스카를 지켜야 한다. 6 이달 보름에는 주님의 무교절을 지내는데, 너희는 이레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7 첫날에는 거룩한 모임을 열고, 생업으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8 그리고 이레 동안 주님에게 화제물을 바쳐야 한다. 이레째 되는 날에는 다시 거룩한 모임을 열고, 생업으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9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10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으로 들어가서 수확을 거두어들일 때, 너희 수확의 맏물인 곡식 단을 사제에게 가져와야 한다. 11 사제는 그 곡식 단이 너희를 위하여 호의로 받아들여지도록 주님 앞에 흔들어 바친다. 사제는 그것을 안식일 다음 날 흔들어 바친다. 15 너희는 안식일 다음 날부터, 곧 곡식 단을 흔들어 바친 날부터 일곱 주간을 꽉 차게 헤아린다. 16 이렇게 일곱째 안식일 다음 날까지 오십 일을 헤아려, 새로운 곡식 제물을 주님에게 바친다.’ 27 또한 일곱째 달 초열흘날은 속죄일이다. 너희는 거룩한 모임을 열고 고행하며, 주님에게 화제물을 바쳐야 한다. 34 ‘이 일곱째 달 보름날부터 이레 동안은 주님을 위한 초막절이다. 35 그 첫날에는 거룩한 모임을 열고, 생업으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36 너희는 이레 동안 주님에게 화제물을 바친다. 여드레째 되는 날에는 다시 거룩한 모임을 열고, 주님에게 화제물을 바친다. 이날은 집회일이므로, 너희는 생업으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37 이는 너희가 거룩한 모임을 소집해야 하는 주님의 축일들로서, 이때 너희는 그날그날에 맞는 번제물과 곡식 제물과 희생 제물과 제주를 주님에게 화제물로 바쳐야 한다.’”


시편 81(80),3-4.5-6ㄱㄴ.10-11ㄱㄴ(◎ 2ㄱ)
◎ 환호하여라, 우리의 힘 하느님께!
○ 드높이 노래하여라, 손북을 쳐라. 고운 가락 비파와 수금을 타라. 나팔을 불어라, 초하루에, 보름에, 우리의 축제 날에. ◎
○ 이것은 야곱의 하느님이 내리신 명령이요, 이스라엘에 세우신 규정이라네. 이집트 땅에서 나올 때, 그분이 요셉에게 주신 법이라네. ◎
○ 너에게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는 낯선 신을 경배해서는 안 된다. 내가 주님, 너의 하느님이다. 너를 이집트 땅에서 끌어 올렸다. ◎     


아고라 종교방은 유대인의 회당인 현대판 회당

예수님께서 고향의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시자, 고향 사람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분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분을 알아 뵙지 못하는 것이다.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한다.(마태 13,54-58)
그때에 54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55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56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57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8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성경의 절기중 수장절에 대하여

“생업으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생업에 푹 파묻혀 살아갈 때에는 놓치기가 아주 쉬운 것들을 기억하려는 것입니다.
파스카와 무교절에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겪었던 힘겨운 종살이를 회상하면서, 그 고통의 질곡에서 건져 주신 하느님을 기억합니다. 이집트 땅에서 급히 떠나느라 빵의 누룩이 부풀기를 기다릴 수 없었던 절박한 상황을 기억하는 것이 무교절이지요. 추수절에는 땅을 주시고 한 해의 농사를 가능하게 해 주신 하느님을 기억합니다. 초막절에는 광야의 떠돌이 생활을 되돌아보면서 또한 천막 성소를 지었던 일을 기억합니다.


축제는 혼자가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 공동으로 지내게 됩니다. 설이며 추석에 가족이 모이듯, 이스라엘의 축일들은 공동체가 함께 모여 기뻐하는 날입니다. 가족이 모이지만, 축일 거행을 위한 규칙들에는 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염려와 배려가 들어 있습니다. 축제 때는 음식을 풍성하게 준비하는데, 그 음식들을 먹을 것 없는 이들, 고아와 과부와 떠돌이들, 또는 가난한 레위인들을 초대하여 함께 먹고 나누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축일에 생업을 멈추는 것은 결국 내가 먹고 살기 바빠서 잊고 살았던 하느님과, 내 일을 하느라고 바빠서 돌보지 못한 이웃을 기억하려는 것입니다. 일요일, 곧 주님의 날인 주일!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려고 일을 멈추고 쉬는 그 자리에는 하느님과 이웃이 들어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맞이하여 그동안 밀린 일과 취미생활 등도 해야 하겠지만, 촌각을 다투며 살아가는 일상에서 잊고 살았던 하느님과 이웃을 기억하는 시간을 배정하면 좋겠습니다.   
  


유대인을 흉내 내는 사탄의 회당들 [이스라엘] 유대인 회당 [로뎀의성지순례]

나자렛에서 무시를 당하시다. 사제 송영진 모세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에 가셔서 사람들을 가르치시자,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마태 13,54-56)."

마태오복음서 저자는 나자렛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면서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고 기록했습니다(마태 13,57).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라는 번역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루카복음을 보면,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안 믿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루카 4,29).

나자렛 사람들이 한 말을 간단하게 줄이면, "우리는 저 사람을 어린 시절부터 잘 알고 있는데, 저 사람은 '하느님의 예언자'가 아니다."입니다. 이 말은 하느님의 예언자라고 믿을 만한 점이 예수님에게는 없다는 것을 자기들이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예수님의 어린 시절은 아주 평범하게만 보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실제로 예수님의 어린 시절은 다른 어린이들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겉으로만 보면...)

그리고 나자렛 사람들의 말 속에는 '목수의 아들'이 하느님의 예언자가 될 리가 없다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활동을 시작하시기 전부터 요셉과 마리아와 예수님의 성가정을 무시하고 천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나자렛 사람들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예루살렘 주민들도 자기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안 믿었습니다.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요한 7,27)"

그들은 예수님이 갈릴래아 출신이고, 나자렛의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에 관해서 뒷조사를 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주민들이 한 말은 나자렛 사람들의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에 관해서 조사를 해 보니 메시아라고 믿을 만한 점이 없었다."

만일에 예루살렘 주민들의 생각처럼 예수님께서 사람들 모르게 어떤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세상에 오셨다면, 그러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었을까? 그랬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어디에서 온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실제로 예수님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지역의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가다라인들이 자기들 지역에서 떠나라고 예수님께 요구한 일(마태 8,34), 또 어떤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께서 자기들의 마을로 들어오시는 것을 막은 일(루카 9,53) 등은 아마도 잘 모르는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중요한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잘 안다고 생각해서 예수님을 안 믿은 사람들이나, 잘 몰라서 안 믿은 사람들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양쪽 다 예수님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고, 정말로 알아야 할 것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도 잘못이지만, 제대로 알기 위한 노력을 안 하는 것과 자기들이 잘 알고 있다고 자만하는 것이 더 큰 잘못입니다. '니코데모'가 바로 그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요한 7,51)"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정리하면, 예수님을 알거나 모르거나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오늘날의 우리에게 적용하면, 성경과 신학을 잘 알거나 잘 모르거나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됩니다. 인간적인 지식은 '신앙'과 상관이 없습니다. 성서학과 신학에 관한 지식이 많다고 신앙생활을 더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지식이 없다고 신앙생활을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을 희망하는가?"입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현세적인 복 같은 것을 원했던 것 같습니다(루카 4,23). 그래서 자기들이 예수님을 잘 알고 있다는 그들의 말은, "우리가 알기로는 예수는 우리가 바라는 그런 복을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라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예루살렘 주민들은, 특히 기득권층 사람들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것만을 원했습니다(요한 11,48-50). 그래서 그들이 한 말에는 "우리가 조사해서 알아보니 예수는 우리의 기득권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라는 뜻도 들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27)."

오늘날에도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사는 동안 부귀영화를 누리는 일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또 성경 말씀을 싫어합니다.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주겠다는 약속은 없고, 회개나 십자가 같은 듣기 싫은 말만 있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더라도 이기적인 기복신앙에 빠져 있다면, 즉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이익만 추구한다면, 그것도 역시 예수님을 제대로 믿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콘스탄틴의 유대교회당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마태 13,56-57)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나요?

내가 잘 아는 사람이나
나보다 여러가지 면에서
나아보이는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면 축하해 줍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보다 못한 사람이거나
맘에 안드는 사람이라면
보통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아무리 못나 보이는 사람이라 해도
하느님의 축복과 은혜로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역사가 이를 증명해 줍니다.
예수님을 비롯한
많은 성인들과 위인들은
오히려 대다수가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무지랭이 같은 나도
하느님의 작은 축복으로
위대한 사람이 될 가능성은
언제나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보잘것없어 보이는
어떤 사람이 좋은 일을 하거나
좋은 말을 하게 되면
하느님의 은혜에
함께 감사드려야겠지요.

오늘 보잘것없는 나를
큰 사람으로 축복해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내가 만나는 다른 사람의 축복을
함께 기뻐해 주는
그런 날 되시길 축원합니다.


[출처] 2015.07.31.|작성자 알타반




 이스라엘 3대 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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