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5일[대 야고보 사도 축일] (마태 20,20-28)
야고보 사도는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으로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요한 사도의 형이다. 어부인 야고보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그물을 손질하다가 동생 요한과 함께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베드로 사도, 요한 사도와 더불어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세 제자 가운데 하나이다. 열두 사도에는 야고보가 둘 있는데, 오늘 축일을 지내는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 ‘작은[소] 야고보’와 구분하여 ‘큰[대] 야고보’라고도 부른다. 42년 무렵 예루살렘에서 순교하였다.
바오로 사도는 사도의 직분을 질그릇에 담긴 보물이라고 표현한다. 환난과 박해 속에서도 사도는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함으로써 그분의 생명을 드러내며,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날 것이다.(코린후24,7-15)
형제 여러분, 7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8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리하여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 13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말하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우리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14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5 이 모든 것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총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들이 예수님의 양편에 앉게 해 주실 것을 청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당신과 같은 잔을 마시게 되리라고 말씀하신다. 많은 이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 야고보 사도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먼저 순교한다. (마태 20,20-28)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술잔을 생각하시면 이해하시기가 아주 쉽습니다. 내 앞에 있는 잔은 내가 마실 분량입니다. 그래서 잔은 어떤 사람의 몫, 그의 운명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잔을 함께 마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자기들이 예수님의 잔을 마실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들이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 잔이 어떤 잔인지도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한 것일까요? 당신의 잔이 무엇인지를 아셨던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아버지께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마태 26,39)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야고보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사도들은 예수님의 잔을 결국 마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그들이 계속하고, 그분께서 선포하신 하늘 나라를 선포하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분을 하느님이시라고 고백하면, 당연히 그 잔을 마실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사도들 가운데 가장 먼저 순교한 야고보는, 그가 마실 잔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을 때에 그 잔을 거부하지 않았고 예수님의 고난을, 그분의 죽음을 함께 지고 갔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지니지 않고서는 부활을 선포할 수 없습니다. 죽음 없이는 부활이 없습니다. 은연중에 죽음 없는 부활만을 바라고 있지는 않은지, 또한 적극적인 자세로 우리의 신앙에서 십자가와 죽음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곰곰이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떨까요?
<무엇을
원하느냐?> 송영진 모세 신부
제베대오의
두 아들, 즉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의
오른쪽 자리와 왼쪽 자리를 청합니다(마태 20,20-21).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마태 19,28)."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야고보와
요한은 '열두 옥좌'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두 자리를 청한 것입니다.
사도들은 자기들 가운데에서 누구를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고(루카 22,24),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고 예수님께 물은 적도 있습니다(마태 18,1). 지금의 장면에서도 다른 사도들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그런 요청을 하는 것을 듣고 불쾌하게 여겼습니다(마태 20,24). 그런 모습들을 보면, 사도단 안에서의 서열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반석으로 삼으시고 그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신 일을(마태 16,18-19), 그를 사도단의 우두머리로 삼으신 일로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그랬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교계 제도가 확립될 때 베드로 사도의 수위권도 확립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열두 옥좌'를 약속하신 것은 글자
그대로 '예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사도들은
자기들이 나중에 틀림없이 옥좌에 앉게 될 것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높은 자리를 청하고, 서열
문제로 다투었다는 것은 그들이
세속적인 명예욕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음을 나타냅니다.
(사실
인간의 욕망 가운데에서 가장 버리기 힘든 것은 명예욕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욕망은 다 버려도 명예욕은 끝까지 버리지 못합니다. 칭찬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존경받고 싶은 욕망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
선행을 실천해서 칭찬과 존경을 받을 때 기쁨을
느끼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인데,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해 하고, 또
그래서 그 일을 하기 싫어하고, 그러면
그것은 이미 '죄가 되는 욕망'에 사로잡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야보고와 요한에게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마태 20,22)" 라고 물으십니다. 이
말씀은 거절도 아니고 꾸중도 아닙니다. 그러나
동시에 칭찬도 아니고 승낙도 아닙니다. 이
말씀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라는
말씀을 질문으로 바꾸신 것입니다.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라는 말씀은, 더
높은 자리는 더 무거운 십자가라는 것을 암시하시는 말씀으로 생각됩니다. 지금
야고보와 요한은 '자리'만 생각하고 '십자가'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들이
무엇을 청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라는 말씀은, 결과보다
과정을 먼저 생각하라는 가르침입니다.
하늘나라에
열두 옥좌가 실제로 있는지, 예수님의
오른쪽 자리와 왼쪽 자리가 실제로 가장 높은 자리인지, 또
사도단 안에서의 실제 서열이 어땠는지, 그런
것이 우리에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짜로
중요한 것은 사도들이
하늘나라에서 어떤 자리에 앉아 있든지 간에 지상에서
충실한 사도로 살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점이고, 그
'자리'가 아니라 그분들의 지상 생애를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서 야고보와
요한은 "할 수 있습니다(마태 20,22)." 라고 대답했고,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마태 20,23)." 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청한 것처럼 무엇을
마셔야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마실 수 있다고 대답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도
어떻든 그들은 나중에는 자기들이 무엇을 청했는지, 또
무엇을 약속했는지를 깨달았고, 자기들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만일에
야고보와 요한이 아니라 유다가 청했더라도 예수님께서는
같은 질문을 하셨을 텐데...유다는
"그런 자리라면 앉지 않겠습니다." 라고 대답했을 것 같습니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라는 말씀은, 두
사도가 끝까지 충실하게 당신을 따르게 된다는 것을 예언하신 말씀인데,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마태 20,23)."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무책임한 말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앞의
말씀과 모순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일의 결정권은 하느님에게만 있다는 가르침이고,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 속에 포함될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마치
자기 것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제가
이런 일을 했으니 이 자리를 저에게 주십시오." 라고
하느님께 요구할 권리가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만일에
그렇게 요구한다면, 그것은 교만입니다.
이 내용과 직접 연결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7,10)." 이 말씀은, 사도들이, 또 우리가 진짜로 쓸모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쓸모 있는' 자녀가 되지만, 그러나 우리의 '쓸모'는 우리 쪽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20,26)
옛날 예수님 시대나 지금이나
부자나 권력자들은
변함없이 "갑질"을
많이 하였나 봅니다.
성현들은 늘 우리에게
배우면 배울수록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듯이
겸손해야 함을 가르쳤건만
그 가르침에 많은 이가
고개는 끄덕이지만
실제로는 교만해지는 것이
인간의 생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많이 배우셨습니까?
아는 것이 많습니까?
그래서 남을 가르치려 듭니까?
나보다 잘 모르는 사람을
무식하다고 핀잔을 주거나
무시하지는 않습니까?
제발 너희는 그러지마라시네요.
여러분은 돈이 많습니까?
남부럽지 않게 사시나요?
그러면서 행여 나보다 가난해보이는 이를
무시하거나 깔보지는 않습니까?
제발 너희는 그러지마라시네요.
여러분은 높은 지위에 있거나
사회적으로 알아주는 직업을 갖고 있습니까?
그래서 부하직원이나
노동자들을 무시하거나 깔보지는 않습니까?
제발 너희는 그러지마라시네요.
여러분은 그렇지 않으시기에
참으로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늘 나보다 높은 지위에 있거나
더 많이 배운 사람이거나
더 많이 가진 사람에게
비굴함이 없이
나보다 더 낮은 지위에 있고
덜 배웠고
덜 가진 이를
보고 배우려 하고
존경하기에
여러분은 예수님의 참 제자입니다.◆
오늘 하루
그런 제자임을 각별히 자랑스러워하는
날 되시길 축원합니다.
[출처] 2015.07.25.|작성자 알타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