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간 목요일](2015. 7. 9. 목)(마태 10,7-15)

2015. 7. 9. 오전 6:5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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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4주간 목요일>(2015. 7. 9. 목)(마태 10,7-15)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예수님

요셉은 형들을 시험하려고 막냇동생 벤야민의 자루에 자신의 은잔을 넣는다. 이것 때문에 벤야민이 이집트에 종으로 남아야 한다고 하자, 유다는 그를 대신하여 자기가 종으로 남아 있겠다고 자청한다. 유다에게서 아버지 야곱이 살아 있다는 말을 들은 요셉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는데, 그는 이 모든 일이 하느님의 계획으로 이루어진 일임을 알아본다. (창세 44,18-21.23ㄴ-29; 45,1-5)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돈이나 옷을 미리 준비하지 않고 하느님께 의탁해야 한다. (마태 10,7-15)

[연중 제11주일] -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파견하셨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 10,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이집트왕자2 요셉 이야기

요셉이 자기 형들에게 말합니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창세 50,20에 이르면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요셉은 결코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형들이 그를 질투하여 구덩이에 던져두었다가 상인들에게 팔았고, 상인들은 그를 이집트로 끌고 갔습니다. 이집트에서는 종으로 팔려 갔고, 포티파르의 아내의 유혹에 저항하여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습니다. 감옥에서 그의 도움을 받은 시종장은 그의 은혜를 까맣게 잊어버리다가 이 년이 지난 뒤에야 그를 기억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요셉은 시기와 질투, 심지어 자기에게 해악을 저지른 형들의 만행 안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알아봅니다. 모든 불행이 형들의 음모 때문에 시작되어 전개되었고, 그들의 악의가 요셉이 오랜 기간 동안 고통과 시련의 늪에서 곤혹스럽게 살아가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형들을 탓하지 않을 뿐 아니라,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말라고 합니다. 요셉은 이 모든 일이, 한 개인의 역사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지켜 주시고 구원하시려는 하느님 계획의 일부로 이해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저지른 불의나 나에게 입힌 상처, 그래서 내가 겪어야 했던 억울한 고통이나 섭섭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하느님의 계획 전체 안에서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도 요셉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만한 지혜가 아직 주어지지 않았다면, 온갖 불행과 악에서 구해 주신 그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신뢰를 갖고 신비이신 하느님 앞에 조용히 머물러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파견하셨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 10,8)

우리가 받아 누리는 것 중
일부는 우리 노력과 수고의 댓가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사실 그마저도
거저 받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컷 뼈 빠지게 일해주고도
제대로 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나 하청업체들도
많다고들 합니다.

그러니 내 노력보다
적게 받고있다 여긴다 해도
그것도 못받고 있는 사람을 생각하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 외에 우리 삶을 위해
더욱 중요한 햇빛과 맑은 공기,
물과 나무 등은
거저 공짜로 누리고 있는
선물들입니다.

내가 남에게 베푸는 것을
아까워하는 사람은
내가 무상으로 받은 선물들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모르고
당연한 것으로만 여기기 때문일 겁니다.

남에게 베풀고 나누어 주는 것이
아깝지 않은 사람은
하느님의 선물에
늘 고마워하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런 분이라 믿습니다.
오늘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무상으로 베풀어 주시는
선물들을 충만히 받고
기뻐 즐거워하는 날 되소서.
그래서 남 주기 아까워하는
쫌생이같은 종지가 되지 말고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풍성히 나누는
큰 대야같은 그릇 되소서.



[출처] 2015.07.09.|작성자 알타반


성경 속 요셉과 야곱의 이야기

저는 가족력이 있어서 혈압이 높은 편입니다. 한참 높을 때는 190까지 올라갔습니다. 약을 먹어도 혈압이 내려가지 않아서 고생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게 혈압이 정상이 될 수 있도록 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1999년 저는 당시는 서울교구였던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에 있는 적성성당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불평과 원망이 있었습니다. 적성본당에 있던 동창 신부님이 저를 주교님께 추천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서울에서 멀기 때문에 동창들을 만나기도 힘들었습니다. 주일헌금은 30만원 정도였습니다. 본당의 재정도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적성에서의 생활은 제게는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공기가 좋았습니다. 성당의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사목하는 것도 수월했습니다. 신자 분들이 두릅도 따다 주시고, 임진강에서 붕어도 잡아 주셨습니다. 직접 농사지은 채소를 가져다주기도 하셨습니다. 일의 양은 많지 않았고, 좋은 음식을 먹었고, 마음이 편해서인지 혈압도 정상이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저를 위해서 마련해 주신 은총인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 때의 추억입니다. 친구들과 함께 여름날 강촌엘 갔습니다. 당시에는 강촌에는 사람만이 건널 수 있는 구름다리가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강변에 텐트를 치고, 저녁을 먹었습니다. 우리는 밤이었고, 강물이 당연히 깨끗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강물을 떠서 밥을 해 먹었습니다. 모두들 맛있게 먹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강물을 보니, 밥을 해 먹을 정도로 깨끗한 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때 함께 여행을 갔었던 친구들이 아직은 모두 건강한 것을 보면 친구들이 워낙 건강체질기도 하겠지만, 모르고 먹었기 때문에 별 탈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사마리아로도 가지 말고, 이방인들의 동네에도 가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가십시오.’ 본당 신부는 관할 본당 신자들을 우선적으로 도와드려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정말 도움이 필요한 분이라면 관할 구역이 아니라 해도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스라엘은 어느 지역이 아닙니다. 지금 병들고, 지금 가난하고, 지금 헐벗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렇다면 어디가 사마리아이고, 어디가 이방인 동네일까요? 굳이 사제의 도움이 없어도 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성한 사람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지만 아픈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나는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을 위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지치고 힘든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와서 쉬십시오. 나의 멍에는 편하고 가볍습니다.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 나를 편안하게 해 주는 사람, 내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은 관할 구역을 정확하게 지키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 내가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 내가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은 관할 구역이 좀 다르더라도 함께 해주면 좋겠습니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은 고쳐주고, 죽은 이들은 일으켜 주어라, 나병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송영진 모세 신부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마태 10,12-15)."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한 집'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집입니다. '마땅하지 않은 집'은 복음을 거부하는 집입니다. 여기서 '평화'는 구원과 생명을 포함해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총체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라는 말씀은, "어떤 집이 복음을 거부해도 그것은 너희의 책임이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선교활동을 하다 보면, 복음을 거부하거나 복음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생기는 결과는, 즉 구원과 생명과 평화를 얻지 못하는 것은 그들 자신들의 책임이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책임은 아닙니다.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는 것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뜻합니다. 구원을 받게 된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한 생명을 얻지만, 자기 스스로 구원과 생명을 거부한 사람들은 먼지처럼 허무하게 흩어지고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라는 말씀은, 최후의 심판이 그만큼 무서운 일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하게 되는 사람들의 운명은 다 똑같습니다. 견디기 쉬울 것도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어차피 먼지처럼 흩어지고 사라질 테니까...) 그래서 이 말씀은, 좀 더 강하게 경고하기 위해서 일종의 과장법을 사용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입장을 바꿔서 "나는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한 사람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미 복음을 받아들였고, 예수님을 믿고 있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보다는 자기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영원한 하느님 나라보다는 세속의 허무한 것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사랑'보다는 '이기적인 욕심'이 더 큰 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렇다면 평화를 누리기에는 마땅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땅을 언급하신 예수님 말씀에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연상됩니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분가를 제안했을 때 롯은 소돔과 고모라가 있는 들판을 선택하고 옮겨 갔습니다(창세 13,11). 창세기 저자는 그 일을 전하면서, "소돔 사람들은 악인들이었고, 주님께 큰 죄인들이었다(창세 13,13)." 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롯이 소돔 사람들의 상태는 보지 않고, 물질적으로 풍요롭다는 것만 보고 그곳으로 옮겨 갔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기에 적당한 곳을 선택하지 않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곳을 선택한 롯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 전 재산을 잃고 겨우 목숨만 건지게 됩니다(창세 19장). 창세기 저자는 롯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난 것은 그 자신의 성덕 덕분이 아니라, 아브라함 덕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들판의 성읍들을 멸망시키실 때, 아브라함을 기억하셨다. 그래서 롯이 살고 있던 성읍들을 멸망시키실 때, 롯을 그 멸망의 한가운데에서 내보내 주셨다(창세 19,29)." 아브라함의 조카가 아니었다면 소돔이 멸망당할 때 롯도 함께 멸망당했을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도, 롯처럼 물질적인 복만 바라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표시가 안 나도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속마음을 보시는 분입니다.) 그런 속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도 잘 먹고 잘 살게 되는 일이 많고, 그것을 하느님께서 복을 내려 주신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과연 하느님께서, 또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실까?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실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고 '빈손으로' 가라고 지시하신 것을 잘 묵상해야 합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마태 10,9-10)." 이 말씀은, 사람들에게 금과 은과 돈을 나누어 주라고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신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에게서 받아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것은 복음과 치유의 은총뿐입니다(마태 10,7-8).

태어날 때부터 장애자였던 어떤 사람이 성전으로 들어가려는 베드로 사도와 요한 사도를 보고 자선을 청한 일이 있습니다(사도 3,3). 그때 베드로 사도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사도 3,6)." 그러면서 그의 몸을 고쳐 주었습니다(사도 3,7). (그 사람은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보다 좀 더 긴 대화를 사도들과 나누면서 그들이 예수님의 사도들이라는 것을 알고 돈보다 더 중요하고 더 귀한 것을 달라고 간청의 내용을 바꾸었을지도 모릅니다.)

만일에 그 사람이 다른 것은 필요 없고 그냥 '돈이나' 달라고 고집을 부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가장 좋은 것을 주는데도 안 받겠다고 거부하면 못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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