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간 수요일] 12사도 (마태 10,1-7)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이집트로 팔려 가지만, 하느님께서 내려 주시는 지혜에 힘입어 그곳에서 재상이 된다. 온 땅에 기근이 들자 요셉의 형들은 양식을 구하러 이집트로 내려간다.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고 그들을 시험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형들은 과거의 잘못을 깨닫는다. ( 창세 41,55-57; 42,5-7ㄴ.17-24ㄱ)
복음을 선포하며 병자들을 고쳐 주시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함께 선포할 제자들을 부르신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더러운 영을 쫓아낼 권한을 주신다. (마태 10,1-7)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마태 10,1-7)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3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4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예수님의 열두 제자단을 구성하였는데, 그들 가운데 마태오는 매국노처럼 지탄을 받던 세리였고, 시몬은 조국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다짐한 열혈당원이었습니다. 이처럼 극단적인 사람들도 모였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어제 복음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느님께 일꾼들을 청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보내 주신 일꾼들이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도들입니다. 그들의 출신을 보면,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부유한 사람, 학벌이 좋은 사람,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얼마나 큰 뜻을 가졌느냐에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평범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그분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을 어제 복음과 연결시켜 살펴보고 싶습니다. 일꾼으로 파견된 사도들이 수확할 것이 많은 밭을 보았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농부가 수확할 것이 너무 많아 다 거두어들이지 못한다면, 그는 수확할 것이 많다고 한탄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거두어들일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안타까워할 것입니다.
병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이 많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들과 같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농부와 마찬가지로 사도들도, 예수님께서 명하신 대로 고쳐 주고 돌보아 주어야 할 수많은 ‘사도직 대상’이 그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일거리로는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육체적인 질병뿐 아니라 정신적인 소외로 기가 꺾인 가엾은 양 떼였는데, 이들이야말로 하느님 나라로 거두어들여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교회 내에서 사도직에 온전히 종사하거나 여러 가지 방식으로 봉사하는 우리 모두가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을 지니고 기꺼이 자신을 내어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선교활동> 송영진 모세 신부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파견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마태 10,5-6)." 예수님은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오신 분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이스라엘만을 편애하시는 말씀으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1)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하느님의
구원 사업의 순서를 말씀하신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가장 먼저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에서 태어나셨고,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선포하셨고, 사도들을
유대인들 가운데에서 뽑으셨습니다.
"우리
민족을 선택하시지 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나?" 라고
불평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는데, 그런 불평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가장
먼저 하느님을 찾았고, 가장 먼저 하느님을 믿은 민족이 이스라엘이었다는
것은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가장 먼저 복음이 선포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뒤에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루카 24,47)." 예루살렘은,
또 이스라엘 민족은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선택되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선포되는 순서가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차별적으로 특혜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모든 민족, 모든 사람에게 다 똑같습니다.
2)
사도들의 활동 단계를 말씀하신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즉 가족과 친구와 친지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라는 지시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열성적으로 선교활동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자기 가족의 신앙생활은 돌보지 않고 다른 집만 찾아다니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교회 지도자의 자격에 관해서 말할 때 "자녀들도 신자이어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티토 1,6). 자기 가족이 비신자라면, 다른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당신 가족부터 구원하시오." 라고 비웃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동족인 이스라엘 민족에 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나의
양심도 성령 안에서 증언해 줍니다. 그것은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이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로마 9,1-3)."
이 말은, 선교활동을 열심히 하면서도 자기 가족은 신앙인으로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의 괴로운 심정을 대변하는 말과 같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 선교를 담당했지만, 동족인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간절하게 소망했고, 실제로 어떤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을 먼저 만났는데,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복음을 거부했고, 바오로 사도는 그것을 무척 안타까워했습니다.
이처럼
가족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했는데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은 것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억지로 믿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고, 신앙인이 되는 것은 각자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떻든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은 선교활동의
중요한 원칙입니다.
3)
예수님의 말씀을,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해 주어라." 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석한다면, 다른 민족들과 사마리아인들에게 가지 말라는 말씀은 아예
가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나중에' 가라는 뜻이 됩니다. 선교활동이란,
안 믿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믿으려고 하는(믿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우선
먼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말씀의 씨를 온 세상의 모든 땅에 뿌려야 하지만, 땅의
상태를 보지 않고 무턱대고 뿌릴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지만, 아무에게나
윽박지르듯이 억지로 전하면 안 되고, 받아들이라고
강요해도 안 됩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거부감과 적대감만 생길 것입니다.
열성적으로
선교활동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열성이
너무 지나쳐서 '어리석은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복음을
전해 주기는커녕 하느님과
예수님과 복음이 모독당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는 먼저 사람들의 호감과 존경을 얻고,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등의 단계를 거치는 일이 필요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이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는 말이 나오고(사도 2,47), 백성들이 사도들을 존경했다는 말도 나옵니다(사도 5,13). 초대 교회의 예루살렘 선교활동이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성령께서 하신 일이지만, 사도들과 신자들이 백성들에게서 호감과 존경을 얻은 것도 중요한 요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죗값을 받는 것이 틀림없어. 그 애가 우리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할 때, 우리는 그 고통을 보면서도 들어 주지 않았지. 그래서 이제 이런 괴로움이 우리에게 닥친 거야.”> (창세 42,21)
내가 고통을 받고 있을 때
누군가 나를 위로해 주길 바랍니다.
누군가 고통을 받고 있을 때
그를 위로해주지 않고 외면하거나
그 사람 탓으로 돌려버리면
언젠가는 그 업보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요셉의 형들이 그랬습니다.
세월호 참사나 일본이나 중국 등
외국에서 일어난 대형참사를 바라보면서
그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위로하는 마음없이
그저 돈만 밝힌다는 둥
무시하고 폄훼하는 행위는
그들을 두번 죽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나에게도
그런 유사한 일이 생기게 되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 누가 압니까?
그러니 형제여,
오늘 누군가 고통받고 있으면
그에게 따뜻한 위로를 보내자구요.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근거도 없는 카더라 통신에 의지하지 말고
그저 측은지심으로 함께 아파해 줍시다.
그래야 내가 어렵고 힘들 때
나도 다른 이들로부터 따뜻한 위로를 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될테니까요.
[출처] 2015.07.08.|작성자 알타반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12사도의 명단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제자단을 구성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제 자신들에게 맡겨진 복음 선포의 과업을 충실하게 수행할 것입니다. 작년 이 즈음에는 교황님의 방한을 준비하면서 바쁘게 지냈습니다. 교황 방한 준비위원회는 몇 개의 부서로 구성되었습니다. ‘기획, 재정, 의전, 대외협력, 행사, 의무, 봉사자, 영성, 홍보, 문화’ 분과가 있었습니다. 회의를 많이 하였고, 어려움도 있었지만 보람된 시간들이었습니다. 저는 영성분과를 맡았기 때문에 저에게 주어진 일들을 했습니다. 교황 방한을 위한 기도문을 제작하였고, 순교자 영성에 대한 이해, 시복식의 의미를 알려주는 책자를 제작했습니다. 외국인들을 위해서 영어, 이태리어, 일본어, 중국어로 된 안내책자도 제작하였습니다.
서울교구는 세계청년대회를 유치하려고 합니다. 이제 곧 세계청년대회를 위한 준비위원회가 구성될 것입니다. 누군가는 행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릴 될 수 있도록 봉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세계청년대회이기에 아무래도 청소년 사목을 전문으로 하는 분들이 많이 참여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제게도 또 어떤 자리가 주어진다면 피하지 않고 해야 되겠지요.
우리의 봉사는 밭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심으면 사랑의 꽃이 필 것입니다. 희망을 심으면 희망이 열매 맺습니다. 봉사를 심으면 밭이 풍성하고 아름답게 변화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제자들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셨습니다.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습니다.’ 우리들 역시 세례와 견진을 통해서 예수님께로부터 그와 같은 권한과 능력을 받았습니다.
야곱의 아들 중에서 요셉은 예수님과 비슷한 점이 많아서, 예수님의 ‘패러다임’이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점이 예수님과 비슷할까요? 하느님의 사랑 받는 아들이라는 점입니다. 요셉은 형제인 유다에 의해 은 20에 팔렸고, 예수님은 제자 가롯 유다에 의해 은 30에 팔렸습니다. 요셉은 주인의 아내로부터 유혹을 받았지만 이겨냈고,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유혹을 받았지만 이겨냈습니다. 요셉도 부당하게 고소당하였고, 예수님께서도 부당하게 고소당하였습니다. 요셉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기근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사람들은 영적인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청했을 때 용서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였고,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야곱은 12명의 아들이 있었고, 이 아들들은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12명의 제자를 부르셨고, 12명의 제자들은 사도가 되어서 교회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오늘 복음에서 나온 12명의 제자와 같은 사도직을 받았습니다. 누군가가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조재형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