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2주간 금요일]나병 환자 치유 (마태 8,1-4)

2015. 6. 26. 오전 6:32:02

글자


 


<연중 제12주간 금요일>나병 환자 치유 (마태 8,1-4)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다시 한 번 후손을 약속하시며, 아브라함의 후손과 맺는 계약의 표지로 할례를 제정하신다. 아브라함은 사라에게서 아들이 태어나리라는 약속을 믿기 어려워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이사악을 통하여 그 약속을 이루신다.(창세 17,1.9-10.15-22)

산상 설교 후에 예수님께서는 말씀뿐만 아니라 당신의 행적으로도 하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신다. 나병 환자를 낫게 하신 기적은, 하늘 나라가 인간성이 온전히 회복되는 곳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마태 8,1-4)


시편 128(127),1-2.3.4-5(◎ 4 참조)
◎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복을 받으리라.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 네 손으로 벌어 네가 먹으리니, 너는 행복하여라, 너는 복을 받으리라. ◎
○ 너의 집 안방에 있는 아내는 풍성한 포도나무 같고, 너의 밥상에 둘러앉은 아들들은 올리브 나무 햇순 같구나. ◎
○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렇듯 복을 받으리라. 주님은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너는 한평생 모든 날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리라. ◎    

 

나병환자를 치유해주시는 예수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마태 8,1-4) 
1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2 그때에 어떤 나병 환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그의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4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마태오 복음 제 8장 1절 - 34절 : 나병 환자를 고치시다

산상 설교를 마치신 예수님께서 나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이 기적으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가 죽은 다음에 갈 수 있는 천국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이미 시작되었음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늘 나라는 나병 환자가 깨끗하게 되는 곳입니다. 여러 이유로 훼손된 인간성이 온전하게 회복되는 곳이며 상태이기도 합니다.
장례 미사에 다녀왔습니다. 열흘 전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기억하는 저에게, 깨끗한 영정 사진은 오히려 위로였습니다.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라는 사도신경의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일그러진 얼굴 표정과 주사로 멍들고 혈관이 튀어나온 팔이 아닌, 움직일 수 없는 지체가 아닌 온전한 모습이겠지요. 그것이 하늘 나라의 상황입니다.
마태오 복음에서 첫 번째 기적으로 소개되는 오늘 나병 환자의 치유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보여 주십니다. 마태오 복음 5장에서 참된 행복을 선포하시며 하늘 나라에 관한 소식을 알려 주시던 예수님께서는 이제 당신의 행적을 통하여, 당신께서 오심으로써 그 하늘 나라가 우리에게 이미 와 있음을 드러내십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나병 환자를 낫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조차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의 간청을 들으시고 그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인간성을 본디 상태로 회복시켜 주고자 하시고 그에게 온전함을 되찾게 할 능력을 지니신 분께서 여기 와 계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병 환자 같은 믿음입니다. 
    


[말씀이 있는 그림] (49) 나병 환자의 치유

<깨끗하게 해 주십시오.>  송영진 모세 신부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태 8,2)."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태 8,3)."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는 "저의 병을 고쳐 주십시오."이고, "깨끗하게 되어라."는 "건강하게 되어라."입니다. 여기서 '하고자 하시면'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권능은 믿고 있지만, 예수님의 의향이 어떤지는 아직 모르고 있음을 나타내고,  '하고자 하니' 라는 말씀은, 사람들을 고쳐 주는 일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람들이 청하기 때문에 마지못해서 응답하시는 일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해 달라는 간청에서 바로 생각나는 시편이 있습니다.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의 죄악을 지워 주소서. 저의 죄에서 저를 말끔히 씻으시고, 저의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하소서(시편 51,3-4)." 죄 속에 있는 것은 '더러운 상태'이고,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은 것은 '깨끗한 상태'가 된 일입니다. (이 시편은 다윗이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면서 바친 기도인데, 회개는 사람 쪽에서 할 일이고, 죄인을 깨끗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일은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다윗의 기도를 생각하면, 복음 말씀에 있는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라는 말을 '병의 치유'뿐만 아니라 '죄의 용서'도 청하는 말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깨끗하게 되어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를 고쳐 주신 일에 대해서도 그 두 가지 은총을 동시에 주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병이 죄의 결과라는(죄를 지어서 병에 걸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쩌면 그 병자는 병 때문에 자기의 죄를 더 잘 의식했을지도 모릅니다. (병에 걸려서 누워 있을 때 자신이 지은 죄가 계속 떠오르는 것은 누구든지 경험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 병자에게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태 9,2)."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온 것은 병을 고쳐 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죄의 용서'를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그 병자가 병의 치유보다 죄의 용서를 더 원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그 병자의 병을 고쳐 주는 일보다 그의 죄를 용서하는 일이 더 급하고 더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묵시록에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묵시 7,14)." 이 말은 예수님에 의해서 깨끗해진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은총도 있어야 하고, 자기 자신의 노력도 있어야 합니다.)

또 묵시록에 있는 '사르디스 신자들에게 보내는 말씀'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사르디스에는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 몇 있다. 그들은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이다.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승리하는 사람은 이처럼 흰옷을 입을 것이다(묵시 3,4-5ㄱ)." 이 말에서 우리는 '깨끗하지 않은 사람'은 곧 자기 스스로 자기를 '더럽힌'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서간문들을 보면,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심판 받기 위해서 하느님 앞에 설 때에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서겠지만, 티와 흠이 있는 사람, 즉 죄를 깨끗이 다 씻지 않은 사람은 몹시 두려워하게 될 것이고, 자신의 더러움을 의식하고 너무나도 부끄러워서 숨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권고하십니다. "... 흰옷을 사 입어 너의 수치스러운 알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여라(묵시 3,18)." 이 말씀은, 심판을 받기 전에 (지금 당장) 자기 자신을 제대로 성찰하고 회개해서, 참으로 깨끗한 사람이 되라는 권고입니다.

흰옷을 입어 수치스러운 알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라는 말씀은, 하느님 앞에서 부끄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 진짜로 깨끗한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안약을 발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라는 말씀은, 양심 성찰과 회개를 제대로 하라는 뜻입니다. 뜻을 생각하면, 제대로 보는 일이 먼저입니다.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를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티와 흠을 없애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래서 진짜로 깨끗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생활입니다. (깨끗해졌다면 그 깨끗함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생활입니다.) 그저 복이나 빌고, 바라는 대로 복을 받으면 만족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깨끗해진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기가 이미 너무 더럽혀져서 깨끗해질 가능성이 없다고 스스로 포기해도 안 되고, 자기는 이미 충분히 깨끗해졌다고 자만해도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아들의 비유'에서 사제들과 원로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마태 21,31)."

세리와 창녀들이 사제들과 원로들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들이 사제들과 원로들보다 '먼저' 회개했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모습을 보시는 분입니다. 전에는 깨끗했는데 지금 더럽다면 더러운 것이고, 전에는 더러웠지만 씻었기 때문에 지금 깨끗하다면 깨끗한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 -아브라함의 웃음- 이수철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기도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인 나병환자나 독서의 주인공인 아브라함 역시 기도의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으로 정의되는 분도회 수도자들 역시 기도의 사람입니다. 기도의 맛, 기도의 기쁨, 기도의 재미로 살아가는 기도의 사람인 수도자입니다. 수도자의 삶에서 기도를 빼버리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비단 수도자만 아니라 진정 믿는 모든이가 기도의 사람입니다.


아, 정말 아브라함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어제는 오늘 1독서 창세기를 읽고 묵상하며 하느님이 재미있어 웃었습니다. 

지난 월요일 창세기에서 고향집을 떠날 때 아브람은 나이 75세의 노령이었는데 

오늘 독서에서는 99세의 노인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 아브람입니다. 

나이를 초월하여 영원한 젊음을 사는 아브람이구나, 

아 이것이 기도의 효과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독서에 나오는 내용은 빙산의 일각일뿐 하느님과 아브라함은 늘 끊임없는 소통의 대화 중에, 기도 중에 살았음을 감지합니다.

'아브람의 나이가 아흔아홉살이 되었을 때,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하느님이다. 너는 내 앞에서 살아가며 흠 없는 이가 되어라"’

아브람에게는 모든 속내를 털어 놓으시는 하느님이요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 앞에서 흠 없는 삶을 살았던 아브람이었습니다. 


오늘 아브람은 하느님을 만나 이름도 아브라함으로 바뀝니다. 

사라이의 사라로의 개명과 더불어 출산 예고를 들은 아브라함의 반응도 재미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웃으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나이 백살이 된 자에게서 아이가 태어난다고? 

그리고 아흔 살이 된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있단 말인가?'-

마치 하느님의 유머처럼 유쾌하기 짝이 없습니다. 

얼마나 재미있는 하느님이신지요. 

그대로 하느님의 전능을, 자유를 상징합니다. 


아브라함의 웃음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두분 간의 대화인 기도가 너무 자연스럽습니다.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며 때로 웃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통해 끊임없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아브라함입니다. 

주님과의 끊임없는 대화인 기도가 나이를 초월하여 영원한 젊음을 살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다.‘

독서의 마지막 구절 역시 은혜롭습니다. 

기도가 바로 축복의 원천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과 깊어지는 우정의 관계와 더불어 

끊임없이 확장되는 마음의 깊이와 넓이요, 마음의 순수와 겸손, 온유입니다. 


어제 수도원 식당 창밖 무수히 피어나는 태산목泰山木 희고 큰 꽃들을 보며 쓴 글을 나눕니다. 

그대로 기도의 사람, 아브라함을 상징합니다.

참, 크다

고요하다/우아하다

기품있다/향기롭다 

아, 깊다

태산목泰山木꽃들

아브라함과 더불어 복음의 나병환자 역시 기도의 사람입니다. 

천형天刑과 같은 나병은 주님을 만날 때 천복天福으로 바뀌어 치유됨을 봅니다. 

나병이 상징하는바 우리의 영육의 병입니다. 


나름대로 천형과도 같이 안고 사는 영육의 질병을 지닌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치유의 지름길은 기도뿐입니다. 

복음의 나병환자처럼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최고의 의사이십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나병환자의 간절한 기도에 즉각적인 주님의 치유의 응답입니다. 

친히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그의 나병이 깨끗이 낫습니다. 

나병환자의 간절한 믿음과 주님의 사랑의 스킨십, 은총의 말씀이 

삼위일체 하나되어 발생한 치유의 기적입니다. 

하고자 하시면 못하실 일이 없으신,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파스카의 주님이십니다. 파스카의 예수님과 우리의 우정이 깊어가면서 저절로 치유되는 영육의 질병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의 영육의 질병을 치유해 주시며 당신과의 우정을 깊게 해 주십니다.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복을 받으리라."(시편128,4참조). 


아멘.

코시모 로셀리 / 나병 환자를 치유하신 예수님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마태8,3)

우리의 사랑을 깨끗하게 하시는
주님을 오늘복음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치유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치유를 불러일으키는 사랑은

자신을 결코  속이지 않습니다.

가장 정직한 언어가
가장 생생한 기도가  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가장 정직한 사랑으로
우리 영혼을 치유하여 주십니다.

진실한 치유는
진실된 사랑이 되기때문입니다.

주님의 정직한 사랑은
우리의 자존감을 다시 찾게 합니다.

자존감은
상처와 아픔까지 봉헌하게 합니다.

사랑의 정화와 우리의 자존감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치유의 기쁨은
사랑의 기쁨입니다.

우리의 오늘또한
우리의 사랑을 깨끗이 치유하는
은총의 날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치유는
주님의 가장 확실한 사랑의 뜻입니다.

치유와 사랑은
가장 아름다운 생명의 손길임을 기억합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

 


치유받은 나병환자의 기도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마태 8,2)

여러분은 기도를 많이 하시나요?
무엇을 청하시나요?
누구를 위해 청하시나요?

그런데도 기도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은가요?
어떤 때는 들어주시는 것 같고
어떤 때는 안들어 주시는 것 같지요.

주님께서 내 기도에
기꺼이 응답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떻게 하면
주님이 내 청에 움직이시게
할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하실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 필요하답니다.
그분이 하고자 하시면
내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고
그분이 원하시는 때가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겠지요.

그러니 기도가 안 이루어질 때도
섭섭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때가
아닌가보다 생각하면 되겠지요.

오늘 겸손하게
우리의 필요를 아룁시다.
그리고 나병환자처럼
하고자 하시면
이루어주시리라고 믿고
그분께 내맡기고
기다려봅시다.

그분이 원하시는 때에
꼭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 되길 빕니다. 아멘.

[출처] 2015.06.26.|작성자 알타반




깨끗하게 되어라   반영억 신부

 

 

어떤 나병환자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자 예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하시며 깨끗이 낫게 해 주셨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든 병의 원인이 무조건 환자 자신의 죄나 부모, 또는 조상의 죄로 말미암은 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병자나 불구자는 그 자체로 죄인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들은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괴로움을 받았습니다. 더구나 나병환자는 격리되어 지내야 했습니다. 가족은 물론 사회에서도 소외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불치의 병이고 전염성이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소록도, 안양 나자로 마을, 대구 칠곡 등에 따로 모여 살아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철저히 소외시키고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의 몸에 대시면서 고쳐주셨습니다. 보통사람이면 감염의 위험 때문에 결코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결핵이 한참 유행할 때 ‘폐병’이라고 해서 그의 곁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요즘 ‘메르스’라는 바이러스 때문에 고통이 심한데 감염되어 치료받는 사람뿐 아니라 의료인들도 사람들의 시선과 싸워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넘어서서 환자들에게 치유의 손길을 내밀어 고쳐주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을 거두어 준 것이 아니라 죄인이라는 종교적 단죄에서 그리고 사회적 소외에서 해방시켜준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 덕분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치유방법은 고통 중에 있는 그 사람의 한 부분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 모두를 치유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치유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할 일도 생각합니다. 능력의 주님께서 기적을 보여주셨는데 그 바탕에는 나병환자의 믿음이 한몫 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하고자 하시면’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말에 예수님께서“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라고 응답하시며 고쳐주셨으니 나병환자는 자신의 믿음으로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도와드린 것입니다. 믿고 구할 때 주님께서는 그 간절한 청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내가 바라는 시기와 그분께서 은총의 열매를 허락하시는 시기가 다를 뿐입니다.

 

 

외적인 나병을 치유 받아야 하지만 우리 영혼의 치유가 선행 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꼬이면 그것이 겉으로 드러납니다. 드러난 병보다 마음의 병이 더 무서운 것이고 그래서 그 병을 깨끗이 치유 받아야 합니다. 알게 모르게 쌓여만 가는 교만함과 나태함, 이기적인 습성들을 인정함으로써 새로 나야하겠습니다. ‘하고자 하시면 낫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을 모시고 산다는 것이 우리의 큰 기쁨이기를 바랍니다.

 

‘보통의사는 병의 증세를 보고 그것을 다스리지만 명의는 병의 뿌리를 다스린다.’고 합니다. 뿌리를 다스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있으니 죄의 용서를 통해 마음의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죄의식으로 말미암은 병은 죄의식을 없애서 고쳐야 하고, 잘못된 생활습성 때문에 생긴 병은 그것을 바로잡아서 고칠 일’(이현주)입니다. ‘더 큰 사랑으로’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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