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두 주인 (마태 6,24-34)

2015. 6. 20. 오전 6: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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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두 주인 (마태 6,24-34)


어제 독서에 이어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 받은 환시와 계시를 열거한다. 그는 셋째 하늘까지 들어 올려진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체험이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라고 밝힌 뒤, 오히려 자신의 약점을 사람들 앞에 내놓는다. 하느님의 은총은 약한 데서 드러나기 때문이다.(코린 2서 12,1-10)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하늘의 새와 들의 꽃을 돌보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살펴 주시므로, 우리는 먹고 입을 것을 찾기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찾아야 한다. (마태 6,24-34)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들꽃 세상_12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마태 6,24-3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30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바오로 사도는 자랑하려고 하면 자랑할 것이 참으로 많은 사람이었지만 일생 동안 자기 몸을 찔러 대는 가시 때문에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몸에서 이 고통이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간청하였으나 주님께서는 그가 “자만하지 않도록” 이를 허락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의 힘이 자기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자기 약점을 자랑하면서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모두 달갑게 받아들입니다.


약할 때가 오히려 강할 때라는 바오로 사도의 신념은 오늘 복음에서도 입증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공중을 나는 새가 아무 걱정 없이 날아다니고 들의 나리꽃이 활짝 필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먹고 자고 입는 것을 걱정하면서 한평생 살아가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세상살이 걱정에 찌들려 있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위로와 용기를 주십니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내일의 계획을 세우는 것을 금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서 기쁨을 모두 빼앗아 가는 근심과 두려움을 갖지 말라는 것이지요. 근심 걱정은 아무 소용이 없고 오히려 건강에 해롭기까지 합니다. 그렇지요?

하늘을 날다.
사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귀한 생명을 주셨다면, 목숨을 이어 나가는 데 필요한 것을 모두 주시리라는 것은 당연한 믿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가만히 앉아 있는 새가 아니라 공중을 힘차게 나는 새에 대해서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공중을 힘차게 날면서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새는 내일을 걱정해서도 안 되고, 또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분께서 친히 마련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말씀대로 하느님께서는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는다 하더라도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오늘도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아 나서는 하루가 되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들꽃/ 유익종


<세상 걱정과 하느님의 나라> 송영진 모세 신부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이 말씀은 인간의 '능력'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하느님의 법'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섬길 수 없다."는 "섬기면 안 된다."입니다.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은 인간들이 오직 당신만 섬기기를 바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것들만 섬기든지 그것들을 하느님과 함께 섬기든지 간에 하느님은 당신이 아닌 것들을 주님으로 섬기는 일 자체를 허락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는 말씀은 저절로 그렇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만 사랑하고 떠받들어야 하고, 하느님이 아닌 것들은 미워해야 하고 업신여겨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여기서 미워해야 하고 업신여겨야 한다는 말은 실제로 혐오해야 하고 증오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고, 하느님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기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마태 6,25)"

이 말씀을 번역되어 있는 대로 읽으면, "목숨을 부지하려고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가 되어서 앞뒤의 말이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이 말씀을,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 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라고 번역했습니다. 번역이 다르니 뜻도 다릅니다.

새번역 성경의 번역대로 "목숨을 부지하려고 걱정하지 마라."로 생각하면, 사람의 목숨은 하느님 손에 달려 있으니 사람이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면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는  "하느님께서는 너희보다 더 너희의 목숨을 소중하게 여기셔서 너희를 먹여 주신다."는 뜻이 됩니다.

공동번역 성서의 번역대로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지 마라."로 생각하면, 목숨보다 음식을 더 걱정하는 태도를 꾸짖으시는 말씀이 됩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걱정하는 것을 꾸짖으시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은 소고기를 먹을까, 돼지고기를 먹을까?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라는 식으로 고민하는 것을 꾸짖으시는 말씀.) 그러면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으냐?"는 글자 그대로 "무엇을 먹느냐? 보다 목숨 자체가 소중하다."는 뜻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모든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생각하면 새번역 성경의 번역이 맞고, 그래서 "걱정하지 마라."는 "집착하지 마라."로 해석됩니다. 현세적인 일들에 대해서는 걱정하지도 집착하지도 말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 만 생각하라는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하느님보다 재물을 더 섬기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생각하면 공동번역 성서의 번역이 맞고,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만 신경 쓰는 사람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이 됩니다.

(당장 입을 옷이 없어서 걱정하는 사람과 "오늘은 어떤 명품 브랜드의 옷을 입을까?" 라고 고민하는 사람... 예수님께서는 둘 가운데 누구를 꾸짖으실까? 아니면 둘 다 꾸짖으실까? 당장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새번역 성경의 번역과 공동번역 성서의 번역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좋거나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사실 뜻이 그렇게 크게 다른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두 가지 뜻이 다 들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먹고사는 것만 걱정하다가 하느님을 잊어버리는 사람도 있고, 잘 먹고 잘 사는 것만 추구하다가 하느님을 잊어버리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 정말로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야만 했거나 정말로 입을 것이 없어서 창피를 당했거나, 그런 일을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심정을 모릅니다. 그러면 예수님도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과 심정을 모르셔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일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이 없음을 먼저 걱정하셨고, 사람들을 가엾게 여기셨습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마태 15,32)."

그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먼저' 걱정하셨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 라는 말씀은, "너희는 '먹고사는 일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추구하여라. 그러면 너희가 먹고사는 일은 '내가 먼저' 걱정해 주겠다." 라는 뜻이 됩니다. 우리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예수님마저도 걱정하지 않으신다면 무책임한 일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내용은 부모가 자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너는 네 학비 문제와 우리 식구가 먹고사는 일은 걱정하지 말고 네가 해야 할 공부만 열심히 하여라. 너의 학비와 우리 식구가 먹고사는 문제는 부모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하면서 하늘만 쳐다보라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생활이든 먹고사는 일이든 간에 각자 자기가 할 일은 최선을 다 해서 하되 세속적이고 현세적인 일에 대해서는 집착하지 않는 것,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고 하느님께 맡겨 드리는 것, 그것이 신앙인의 올바른 태도입니다.


[띠별 오늘의운세] 2012년10월4일 오늘의 행운의숫자와 오늘의 띠별운세 무료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2코린 12,9)

여러분은 어떤 약점을 가지고 있나요?
내세울만한 강점은요?
우리는 보통 강점을 자랑하고 약점은 감추려하지요.
약점은 부끄러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바오로 사도는
반대로 이야기하네요.
"내가 나 자신을 잘 났다고 자랑하는 것은
다 부질없는 어리석은 짓이더라.
오히려 약점을 자랑하는 게 더 낫더라.
그러니 약점을 자랑하고 살련다."

내가 강할 때는 내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여기니까
주님께서 도와주시지 않던데
내가 약할 때 어려울 때
오히려 주님께서 도와주시더란 겁니다.
그러니 강점을 자랑하기보다
약점을 자랑하는 게 더 낫다는 거죠.

오늘 내 약점을 부끄러워하거나
감추려들지 말고 있는 그대로 내어 보입시다.
그리고 주님께서 나의 약함을
은총으로 북돋아주시도록
간구합시다.

약점 많은 나를
자랑하는 오늘 되십시오.
그래야 주님의 은덕을 체험할 테니까요.

[출처] 2015.06.20.|작성자 알타반




온전히 의탁하라  반영억 신부



일상을 살아가면서 근심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겉으로 평화로워 보이는 사람도 알고 보면 남모르는 걱정을 안고 살아갑니다. 사실 모두가 근심걱정을 하지만 결정적으로 무엇을 걱정하느냐가 다를 뿐입니다. 걱정해 봤자 소용없는 것을 걱정하는 어리석음은 그만둬야 하겠습니다. '메르스'라는 바이러스가 온 나라를 근심걱정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의 몫을 충직하게 감당하면 아무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것에 소홀하기 때문에 큰일을 겪게 됩니다. 물론 큰일을 겪음으로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겪지 않아도 될 것을 감당하면서 혼돈에 빠지는 것은 어리석을 뿐입니다.



한 통계에 의하면,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 22%는 사소한 사건들,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이랍니다. 나머지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이라고 합니다. 즉 96%의 걱정거리가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시편저자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여라. 그분께서 네 마음이 청하는 바를 주시리라.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께서 몸소 해 주시리라(시편37,4-5).하였습니다. 결국 믿음을 가진 사람은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어떤이는 주님께 의탁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여 근심을 끌어안고 삽니다. 그러나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입니다. 믿고 맡기며 최선에 최선을 다하고는 주님의 처분을 기다릴 뿐입니다.

 


루카복음에 보면 시중드는 일로 분주한 마르타에게 주님께서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10,41-42). 하시며 주님의 말씀을 듣는 마리아의 위치를 확인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안에 머물면 쓸데없는 일로 바쁘지 않을 것이요, 또 괜한 걱정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유지하기위한 음식과 몸을 보호하기위한 의복의 걱정에 앞서서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에 마음을 두어야 하겠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합니다. 변함없이 주님을 선택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주님의 섭리 안에 있고, 주님께서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공중의 새나 들판의 꽃들조차도 하느님의 안배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존재로 ‘만물의 영장’입니다. 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우주 만물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하느님의 돌보심을 믿고 신뢰하며 모든 근심걱정을 송두리째 맡겨야 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 이러한 물음은 인간적인 걱정입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노력으로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고 거기에 행복이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도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헛된 일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인생여정에 우선적인 선택이 주님이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을 차지하면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 의탁하고 섭리에 맡기면 모든 일이 잘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 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1베드5,7).



최선에 최선을 다하고 주님께 온전히 의탁할 때 영원한 새 삶이 시작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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