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0주간 화요일]세상의 소금과 빛 (마태 5,13-16)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를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상황이 바뀌자 그 계획을 변경하였다. 그러자 코린토 신자들은 바오로에게 불평한다. 그러나 바오로는 자신의 행동이 변덕이나 속된 동기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밝히고 오히려 자신의 행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하였음을 역설한다. (코린토 2서 1,18-2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세상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빛은 감추어질 수 없다. 제자들의 선함은 사람들 앞에 드러나 사람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해야 한다. ( 마태오 5,13-16)
119(118),129.130.131.132.133.135(◎ 135ㄱ 참조)
◎ 주님,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빛나게 하소서.
○ 당신의 법 하도 놀라워, 제 영혼 그 법을 따르나이다. ◎
○ 당신 말씀 밝히시면 그 빛으로, 미련한 이들을 깨우치나이다. ◎
○ 당신 계명을 열망하기에, 저는 입을 벌리고 헐떡이나이다. ◎
○ 당신 이름을 사랑하는 이에게 약속하신 대로, 저를 돌아보시고 자비를 베푸소서. ◎
○ 당신 말씀대로 제 발걸음을 굳건히 하시고, 어떠한 불의도 저를 짓누르지 못하게 하소서. ◎
○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빛나게 하시고, 당신 법령을 저에게 가르쳐 주소서. ◎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마태오 5,13-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15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16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며 떠오르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순수함’과 ‘투명함’입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예!” 하면서 “아니요!”라고도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지요. 그들의 속마음은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그들이 앞에서는 아무리 우아하고 친절한 행동을 보이더라도 그저 미심쩍을 뿐입니다. 아마도 오늘 독서 앞부분에서 바오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속된 동기”가 그들의 진심을 알아볼 수 없도록 가리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가 하면 누군가 설령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어 줄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는데,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처럼, 등경 위의 등불처럼 그들의 말과 행실이 맑고 투명하기 때문입니다. ‘소금과 같은 사람’이라는 표현은 험난한 이 세상에서 감정에 좌우되는 일이 없이 늘 변함이 없고,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옳고 선한 일을 골라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에 대한 최고의 찬사입니다.
“태양과 소금보다 더 유용한 것은 없다.”는 로마 속담대로 예로부터 소금은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소금은 순수함과 순결의 상징이었습니다. 깨끗한 바다에서 비롯된 염분이 태양 빛을 받아 소금이 되기 때문이겠지요. 또한 예로부터 소금은 부패를 막아 주는 방부제 역할을 해 왔지요. 기후가 변화무쌍한 팔레스티나에서 소금은 음식을 보존할 때 절대적으로 필요하여 소금 한 부대는 한 사람의 생명을 의미하기도 하였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를 청결케 하는 방부제 역할을 하여 선한 사회를 이룩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소금의 특성 가운데 가장 분명한 것은 음식에 맛을 주는 것이겠지요.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도 주변 동료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면서 인생의 맛을 제공하는 신앙과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9,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빛이신 그리스도를 반사하는 빛, 적어도 거울 역할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또한 빛의 속성은 안내 역할을 하는 것이니, 신앙의 모범을 통하여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소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세상의 빛이 되라는 말씀에는 필요한 경우에 형제적 충고를 서슴없이 하라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만연한 악을 보고도 침묵하는 태도는 암묵적으로 긍정하는 것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대로 그런 사람은 하느님을 뵐 것입니다. 내 마음과 내 눈이 깨끗해져서 언제나 사람들의 선함 안에서 하느님을 알아 뵈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 송영진 모세 신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마태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라는 말씀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어라." 라는 명령입니다. 소금의 역할은 보통 두 가지입니다. 맛을 내는 일과 부패를 막는 일. 신앙인은 이 세상의 부패와 타락을 막고, 이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키는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이라는 말씀은 "신앙인이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이라는 뜻인데, 껍데기는 신앙인이지만 속으로는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심판과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제 역할을 하지 않는 신앙인은, 또는 세속 사람들보다 더 세속적인 인간이 되는 신앙인은, 또는 안 믿는 사람들보다 더 부패하고 타락한 신앙인은 하느님께도 사람들에게도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밖'은 '하느님 나라의 밖'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앙인들에게 이런 경고를 하셨습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루카 12,47-48)." 신앙인들에 대한 심판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심판보다 더 엄할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라는 말씀은, 겉으로만 보면 "구제불능이다.", 또는 "'제 맛을 잃은 소금'을 원래 상태로 회복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라는 말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고, 불가능한 일이 없으신 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제 맛을 잃은 소금'도 원래 상태로 회복시키실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에(마태 12,20), '제 맛을 잃은 소금'도 고쳐서 원래대로 회복시켜 주시는 분입니다. 문제는 본인의 의지입니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려고 노력한다면, 하느님과 예수님의 은총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데, 스스로 회개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밖에 버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라는 말씀은 좀 더 길게 풀어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인이 제 맛을 잃은 소금처럼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회개하고,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노력하면 된다. 그러나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떠나버린다면... (아무 쓸모가 없으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라는 말씀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어라." 라는 명령입니다. "감추어질 수 없다."는 "감추지 마라."이고, "모든 사람을 비춘다."는 "모든 사람을 비추어라."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너 혼자서만 믿고, 너 혼자서만 착하게 살다가, 너 혼자서만 하늘나라에 들어가려고 하지 마라." 라는 가르침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빛(등불)의 역할은 두 가지입니다. 어둠을 밝히는 일과 사람들을 인도하는 일. 만일에 등불을 켜서 함지 속에 감춘다면 (혼자서만 신앙생활을 한다면) 어둠을 밝힐 수도 없고, 사람들을 인도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등불을 켠 것이 아니고, 사실상 끈 것이고, '제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은 것이 되어버립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과 신앙인들이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고(사도 2,47), 백성이 그들을 '존경'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사도 5,13). 이것은 당시의 교회와 신앙인들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실천했음을 나타냅니다. 그 '호감'과 '존경'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졌고, 그래서 새로 신자가 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것이 박해를 받으면서도 신자 수가 늘어난 이유입니다. (물론 그 전에 성령의 인도가 있었기 때문이지만.)
조선시대 때에도, 극심한 종교 박해 속에서 제대로 선교활동을 할 수가 없었는데도 계속 신자 수가 늘어난 것은 당시의 신자들의 '삶'을 보고 조선의 백성들이 감화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신자들의 삶'이 사람들을 인도하는 빛과 소금이 된 것입니다.
만일에 교회에, 또 신앙인들 사이에 다툼, 갈등, 분열이 생긴다면, 서로 사랑하기는커녕 서로 미워한다면, 또는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지는 않고 신앙인들끼리만 뭉쳐서 집단 이기주의의 모습만 보인다면,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교회와 신앙인들을 경멸하게 된다면, 신자가 되겠다고 자기 발로 찾아올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외부의 박해보다 교회 자신의 분열과 부패와 타락이 언제나 항상 더 위험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마태 5,13)
여러분은 음식을 짜게 먹는 편인가요?
아주 싱겁게 먹는 편인가요?
요즘은 건강을 위해서는 저염식을 하라고 권하지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음식을 짜게 먹더군요.
우리 어르신들도
늘 식탁옆에 소금통을 두시고
싱겁다 하시면서 자꾸만 소금을 더 넣습니다.
아마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미각이 떨어지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어르신들은 소금도 많이 넣으시고
커피도 달달하게 설탕을 듬뿍 넣으시지요.
여하튼
소금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황금 못지 않은 소금이 아니겠어요.
실제로 사람이 소금을 먹지 못하면 면역력이 결핍되어 죽고만다지요.
그맇다고 필요한 것이라고
욕심부려 듬뿍 넣어 먹게 되면
그것도 고혈압과 당뇨로 건강을 크게 해치게 되지요.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라네요.
그만큼 세상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가 되라는 뜻이겠지요.
정말로 유익한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절제의 미덕이 필요하답니다.
오늘 음식을 먹으면서
소금의 맛을 한번 느껴 봅시다.
그리고
세상의 소금이 되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겨 봅시다.
너무 짜게 드시진 마세요~~^^
질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오늘 되소서.
[출처] 2015.06.09.|작성자 알타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