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8주간 월요일> 하느님의 나라와 부자 (마르 10,17-27)

2015. 5. 24. 오후 9:31:22

글자

 

<연중 제8주간 월요일>(2015. 5. 25. 월)(마르 10,17-27)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2006년 춘계 정기 총회에서 해마다 ‘청소년 주일’(5월 마지막 주일)을 포함하여 그 전 주간을 ‘교육 주간’(올해는 오늘부터 31일까지)으로 정하였다. 가톨릭 교육에 대한 의식을 높이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마련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 것이다.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는 데 무엇보다도 교육이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이 주간에 가톨릭 정신에 따른 다양한 교육과 행사를 마련하여 많은 그리스도인이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도록 돕는다.     

집회서의 저자인 시라의 아들 예수는 율법에 충실하게 살아가려는 하느님 백성에게, 주님을 경외하는 삶을 가르친다. 하느님은 회개하는 이들을 기다리시는 자비로운 분이시다. 하느님께 돌아오면 그분께서 용서를 베푸시며 구원의 빛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집회17,24-29)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기를 원하는 부자 청년에게,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재물이 많았기 때문에 그 말씀을 따르지 못한다. 예수님 말씀대로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어렵다.(마르코10,17-27)   

 

시편 32(31),1-2.5.6.7(◎ 11ㄱ)
◎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 행복하여라, 죄를 용서받고 잘못을 씻은 이! 행복하여라, 주님이 허물을 헤아리지 않으시고, 그 영에 거짓이 없는 사람!
○ 제 잘못을 당신께 아뢰며, 제 허물을 감추지 않았나이다. “주님께 저의 죄를 고백하나이다.” 당신은 제 허물과 잘못을 용서하셨나이다.

○ 당신께 충실한 모든 이들이 곤궁할 때 기도드리나이다. 큰물이 닥친다 하여도 그에게는 미치지 못하리이다.
○ 당신은 저의 피신처. 곤경에서 저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환호로 저를 감싸시나이다.    

 

 하느님의 나라와 부자

가진 것을 팔고 나를 따라라.  (마르코  10,17-27)
그때에 17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19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20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2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3 예수님께서 주위를 둘러보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4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에 놀랐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5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6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느님의 나라와 부자>    송영진 모세 신부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자,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십계명을 잘 지키면 된다고 대답하십니다(마르 10,17-19)."

예수님의 대답을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실천해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잘 실천하면 된다." 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은(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특별한 사람들만 알 수 있는 비밀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십계명을 알고 있을 것이고, 그대로 실천하면 누구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라고 말합니다(마르 10,20).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신 것은(마르 10,21) 십계명을 다 지켜왔다는 그의 말을 인정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바리사이 같은 위선자는 아니고,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의 십계명 실천을 인정하셨다는 것은 '완전한 실천'이라는 것을 인정하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의 지향과 의도를 인정하셨다는 뜻입니다. 실천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도 지적하시고, 그 사람 자신도 느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 자신이 느끼고 있는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르 10,21-)."

그 사람은 죄를 안 지으려고 노력하고, 계명을 잘 지키면서,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는 사람이긴 한데, 그의 마음이 두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부유함과 저 세상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동시에 바라는 것,  바로 그것이 그의 '부족함'입니다. 그의 신앙생활은 '한 마음으로' 하는 생활이 아니라, '두 마음으로' 하는 생활이었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하신 말씀을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라는 말씀과 연결해서 생각할 수도 있는데, 어쩌면 그 사람은 재물을 아끼기는 해도 섬기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하느님을 잘 섬기려면 '한 마음으로 하느님만' 섬겨야 합니다. 마음의 일부가 재물 쪽으로 가 있거나, 두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라면, 십계명을 아무리 잘 지키고 있어도 완전하게 지키는 것은 아닌 것이고,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도 뭔가 부족하다고 스스로 느끼는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요구하신 일은 세 가지입니다. 1) "가진 것을 (모두) 팔아라." 이 말씀은,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희망한다면, 방해되는 모든 것들을 우선 마음속에서부터 버려야 합니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 6,21)."

2) "(재물을 모두)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아마도 그 사람은 유대교 율법과 관습에 따라 불우이웃 돕기를 잘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자기의 부유함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또는 부유함을 누리는 데에 지장이 없을 만큼만 불우이웃 돕기를 했을 것입니다. 그것도 선행이고 사랑이긴 하지만, 그러나 완전한 사랑 실천은 아닙니다. 사랑이란 "아낌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는 일"입니다(요한 15,13).

3) "나를 따라라." 이 말씀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는 말씀과 연결됩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여러 선생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유일한 주님이신 분입니다. 그러니 예수님 뒤만 잘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마르 10,22)." 이 말은, "그는 영원한 생명도 포기하지 못하고,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도 못해서 내적 갈등을 겪으면서 떠났다." 라는 뜻입니다.

만일에 그가 영원한 생명을 포기한다면, 루카복음에 있는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루카 16,19-31)'에 나오는 부자처럼 살게 될 것이고, 그리고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재물을 포기한다면(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면) 이 세상에서의 생활은 조금 고달프고 힘들 수도 있겠지만 희망한 대로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 내용에 대해서 "누가 그렇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가? 너무 심하지 않은가?" 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 텐데, 사도들도 그런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마르 10,26)" 확실히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 중요하지 않거나 덜 중요한 것은 모두 버리는 것,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르 10,25)." 라는 말씀은 '두 마음으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10,27)." 라는 말씀은 하느님(예수님)만 믿고 의지하고, 하느님(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적극적으로(능동적으로) 실천한다면 '누구든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부처님 팔상성도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마르 10,21)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이 땅의 모든 불자들에게 축하드리며 그분이 세상에 오심을 함께 경축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나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대견해하시며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말씀하시네요.
"너에게 한가지가 딱 부족하구나.
그것만 있으면 너는 깨달음을 얻어 성불할 텐데..."

그게 뭘까요?
부자 청년에게는 재산이 문제였다네요.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놓고 나누라니요!

우리가 득도하지 못하고 우매한 중생으로 살아감은
정말 별 것 아닌 것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집착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오늘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
즉 보물1호는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걸 남에게 내어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죽음이 따라올까요?
혹 생명이,
참 생명이 따라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오늘 가까운 절을 방문하여
간사한 내 마음을 잘 들여다 보고 내가 비워야 할 것,
내가 내려놓아야 할 집착이 무엇인지 묵상해 보면 어떨른지요?

[출처] 2015.05.25.|작성자 알타반

 


1. (마태 19:24)은 부자(세상의 것에 부유한 사람이나 교만한 사람)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주어진 비유입니다. 이 구절에서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로 제시되어 왔습니다.

2. 어떤 사람들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을 의미하는 "동방의 속담"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 속담을 인용해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설명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이 정말로 당시의 속담이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속담이었는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경우에도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일이 불가능할 정도록 어렵다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3. 또 어떤 사람들은 본문의 의미를 완화시키려고 시도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클레이는 바늘귀(라피도스)를 바늘 문(라피스)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라피스'는 낙타가 등을 구부리고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골짜기나 작은 출입문을 의미합니다. 바클레이는 당시 팔레스타인 성곽을 두르고 있는 도시에는 문이 두 개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두 개의 문 중에서 큰 문은 낮에 사람이나 짐수레 등이 다니는 문이었고, 작은 문은 밤에 사용하는 문으로서 사람이 허리를 구부려야만 들어갈 수 있는 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이 문을 '바늘귀 문'(라피스)이라고 불렀다고 말합니다. 바클레이는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일이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큰 짐승인 약대(camel)가 작은 바늘 문으로 통과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4. 바클레이가 바늘귀를 바늘문으로 해석한 반면, 칼빈(Calvin)은 약대(카멜론)를 밧줄(카밀론)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낙타를 가리키는 말이 "카멜로스"이며, 배에서 사용되는 '밧줄'을 가르키는 말이 '카밀로스'인 점을 들어서 이 구절에서 약대를 밧줄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점에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일은 밧줄을 바늘 구멍에 꿰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늘귀를 '바늘 문'으로, 또한 약대를 '밧줄'로 해석해도 그 의미는 변하지 않습니다. 약대가 바늘 문으로 들어가거나, 밧줄을 바늘 구멍에 꿸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로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를 완곡하게 해석하려는 시도 역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일이 어렵다는 점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5. 그러나 랑게(Lange)는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 구절에서 낙타는 문자 그대로 낙타를 가리키며, 바늘귀는 문자 그대로 날카롭고 작은 바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에수님께서 이 구절에서 교만한 부자를 육중한 몸을 가진 약대로, 그리고 교만한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는 비유로 상징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6. 많은 사람들이 본문의 의미를 완곡하게 바꾸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랑게의 견해가 예수님의 원래 교훈을 더욱 확실히 나타낼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비슷한 격언이 바벨론 탈무드에도 나오는데, 이 곳에는 '약대' 대신에 좀 더 몸집이 큰 '코끼리'가 사용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벨론에서는 코끼리가 흔했고, 또 코끼리가 가장 큰 동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교만하고 세상에 부유한 자들이 통과하기 어려운 '좁은 문'입니다. 천국은 자기 의를 포기하고 주님의 은헤를 구하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기를 의지하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운 것은 가진 것이 많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가지는 것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더 가지고자 하는 욕망에 자신의 마음을 빼앗긴 사람입니다. 가지는 것을 본질적인 가치로 여기고 가지는 것에 마음을 두는 사람입니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더 가지도록 부추기지만, 하늘나라는 끊임없이 나누도록 우리를 재촉합니다. 나눔의 초대장은 가지려는 사람들에게는 위협이 되지만, 하늘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는 본질적인 목표입니다. 

가지는 것이 행복인 부자에게는 나누는 것은 상실입니다. 더 가지려 할수록 상실에 대한 두려움만 더 커지지만, 상실을 넘어 더 나누려 할수록 모두의 행복이 커집니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는 것은 빈손으로 태어난 우리의 정체성을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재물이나 지식이나 깨달음이나 지혜나 가진 것을 나누는 만큼 우리는 하늘나라와 가깝게 됩니다. 나누려는 갈망보다 가지려는 욕망이 더 큰 만큼 우리는 하늘나라와 멀어집니다. 무엇이든 가지려고 원하는 만큼 우리는 나누고자 갈망하여야 합니다. 

나누려는 갈망은 하늘나라에 대한 갈망입니다. 하늘나라는 사는 동안 우리가 가졌던 모든 것을 다 나누어야 비로소 갈 수 있는 곳입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나누어야 갈 수 있는 곳입니다. 빈손이어야 갈 수 있는 곳입니다. 

모든 악의 본질은 재물이나 명예나 권력을 더 가지려는 부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더 가지고자 하는 잔인한 부자보다 더 나누고자 하는 자비와 연민의 부자가 그리운 요즈음입니다. 가장 작은 차를 이용하신 가난한 프란체스코 교황님께서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김종오 신부

 

부자와 하늘나라

 

“부자도 하느님 나라에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시면 마음이 참 편안할 것 같은데,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을 보면 왜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운지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가 재물이 적었다면 과감하게 버릴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물이 많고 적음의 기준은 양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질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적은 양의 재물을 소유한 사람이라도 자기 것을 기꺼이 내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어려서부터 십계명을 열심히 지켜 온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권고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과 그분을 따르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그분을 따르려면 십계명만 지키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 충고를 거부한 사람은 구원을 받기가 어렵지만 수용한 사람은 제자들처럼 커다란 보상을 받게 된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노력은 늘 이렇게 안일하고 평범한 생활에서부터 모험과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오늘 부자 청년은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났습니다. 이 청년의 가냘프고 슬픈 시선은 어떤 사람이 충분한 소질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선택을 잘못하여 실패를 자초하게 될 때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틀림없이 구원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재물과 재능과 자기 자신에 모든 것을 걸고 그것에만 의존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아마도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재물을 많이 소유하고 있을 때에는 이 세상의 물질적인 것에 마음을 고정시켜 물질적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소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얻었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더 어렵고 중요합니다. 나는 재산 관리인에 불과하다는 자세로 재물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요?

 

★ 마음 가꾸기(385) : 부처님 오신 날 봉축합니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부처님은 아름다운 계절 5월에 태어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으로 모시는 예수님께서는 추운 겨울 12월에 태어나셨습니다. 두 분의 삶을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진리에 대한 이해입니다. 부처님은 수행과 깨달음으로 진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안에는 불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찾아내면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할 수 있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는 하느님께로부터 온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시계가 고장 나면 시계 스스로 고칠 수 없듯이 이 세상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셨고, 하느님을 믿을 때 우리는 진리를 만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보통 이것을 깨달음의 종교와 계시 종교라고 말을 합니다.

두 번째 삶의 자리입니다. 부처님은 왕궁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래서 부족함이 없이 살았습니다. 좋은 교육을 받았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부처님도 세상이 주는 행복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평생 가난하게 사셨고, 비참하게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모습과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인자하고, 풍채가 좋은 모습으로 보여 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려서 고통스럽게 돌아가시는 모습으로 보여 집니다 

세 번째는 진리에 이르는 방법입니다. 부처님은 삶의 모든 고통은 욕심에서 온다고 보았습니다. 우리가 욕심을 버리면 진리에 도달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욕심을 버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보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은 순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애벌레가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되듯이, 우리가 하느님을 믿고 따르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지난 금요일에 명동성당에서 가톨릭 대학교 설립 160주년 기념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신학교 교가, 김 대건 신부님의 옥중 편지, 최 양업 신부님의 서한, 김 정훈 부제님의 유고집, 임 쓰신 가시관을 주제로 한 노래가 한편의 뮤지컬처럼 아름답게 들렸습니다. 음악회의 주제는 순교와 선교였습니다.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웅장하게 들려오는 노래는 저에게는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특히 합창으로 부르는 신학교의 교가는 신학교 생활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였습니다. ‘진세를 버렸어라, 이 몸마저 버렸어라, 깨끗이 한 청춘을 부르심에 바쳤어라!’ 김 대건 신부님, 최 양업 신부님은 그렇게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습니다 

예전에 영어 공부를 할 때 보던 책들이 있습니다. ‘성문 기초 영문법, 성문 기본 영어, 성문 핵심 영어, 성문 종합 영어입니다. 이 책들을 통해서 문법, 작문, 해석을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책은 수준과 난이도가 있었습니다. 물론 점점 어려워졌지만 그 수준을 넘어가야만 영어의 이해도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하지만 성문 종합 영어라는 벽을 넘지는 못했습니다. 그만큼 어렵고 많은 시간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사회 교리라는 주제로 연수를 하면서 십계명에 대한 이해도 새롭게 하게 되었습니다. ‘살인을 하지 말라!’는 말은 내가 누군가를 죽이지 않는 것도 포함되지만 내가 함께 하지 못해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도 살인일 수 있다고 합니다. ‘도둑질 하지 말라!’는 말은 내가 직접 다른 이의 것을 훔치지 않았다 해도, 내가 도와주지 않아서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도둑질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주일미사를 참례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지금 물질만능 주의에 빠져서 살고 있다면, 내가 돈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다면 진정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합니다. 

교황님께서는 이렇게 이야기 하십니다. ‘우리가 교회라는 울타리에 안주하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때로 힘들고, 흙탕물이 묻더라도 강도들에게 빼앗기고, 몸까지 다친 이웃들에게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강도를 맞은 사람을 외면한 바리사이파, 율법학자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라자로를 외면한 부자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조재형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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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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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8주간 수요일>제베대오의 두아들 (마르 10,32-45)15.05.27조회 48[연중 제8주간 화요일] 5월 26일 성 필립보 네리 사제기념일 (마르코 10,28-31)15.05.26조회 91<연중 제8주간 월요일> 하느님의 나라와 부자 (마르 10,17-27)15.05.24조회 46[부활 제7주간 토요일]참된 증언 (요한 21,20-25)15.05.23조회 46[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나를 따라라.” (요한 21,15-19)15.05.22조회 48[부활 제7주간 목요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요한 17,20-26)15.05.20조회 45[부활 제7주간 수요일]진리로 거룩하게 (요한 17,11ㄷ-19)15.05.20조회 46[부활 제7주간 화요일] 영원한 생명 (요한 17,1-11ㄴ)15.05.18조회 112[부활 제7주간 월요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29-33)15.05.18조회 113[부활 제6주간 토요일]청하여라 (요한 16,23ㄴ-28)15.05.16조회 90[부활 제6주간 금요일] 기쁨 (요한 16,20-23ㄱ)15.05.15조회 47<성 마티아 사도 축일>(2015. 5. 14. 목)(요한 15,9-17)15.05.14조회 45진리의 영 (요한16,12-15)15.05.13조회 64[부활 제6주간 화요일] 보호자께서 오시면(요한 16,5-11)15.05.12조회 77[부활 제6주간 월요일]진리의 영 (요한복음15,26─16,4ㄱ)15.05.10조회 84<부활 제5주간 토요일> 내 이름 때문에 (요한 15,18-21)15.05.09조회 87<부활 제5주간 금요일>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5,12-17)15.05.08조회 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