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7주간 월요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29-33)

2015. 5. 18. 오전 5:4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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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7주간 월요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29-33)

 지구상에서 불가사의한 것으로 여겨지는 7가지 -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 터키 여행정보(2008.)

 아폴로가 코린토에 있는 동안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로 내려간다. 그곳에도 제자들이 있었으나 요한의 세례만을 받았기 때문에 바오로는 그들에게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 그러자 그들에게도 성령이 내린다.( 사도19,1-8)

요한 복음 16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하느님에게서 나오셨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을 버려두고 흩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지만, 스승이신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셨기에 그들은 용기를 가질 수 있다.(요한 16,29-33)

시편 68(67),2-3.4와 5ㄱㄷ.6-7ㄱㄴ(◎ 33ㄱㄴ)
◎ 세상의 나라들아, 하느님께 노래하여라. (또는 ◎ 알렐루야.)
○ 하느님이 일어나시니, 그분의 적들은 흩어지고, 원수들은 그 앞에서 도망치네. 연기가 흩날리듯 그들은 흩어지고, 불길에 밀초가 녹아내리듯, 악인들은 하느님 앞에서 사라져 가네. ◎
○ 의인들은 기뻐하며 춤을 추리라. 하느님 앞에서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너희는 하느님께 노래하여라. 그 이름을 찬송하여라. 그 이름 주님이시다. ◎
○ 고아들의 아버지, 과부들의 보호자, 하느님은 거룩한 거처에 계시네. 하느님은 외로운 이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시고, 사로잡힌 이들을 행복으로 이끄시네. ◎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29-33)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29 말하였다. “이제는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시고 비유는 말씀하지 않으시는군요. 30 저희는 스승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누가 스승님께 물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이로써 저희는 스승님께서 하느님에게서 나오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 그러나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온다. 아니, 이미 왔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33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2부)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언젠가 학생들과 피정을 하면서 이 구절을 큰 글씨로 써서 벽에 붙이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벽에 붙어 있는 글자를 보니, “그러나”는 빠져 있고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만 붙어 있었습니다. 글자를 잃어버렸는지, 떨어졌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러나”라는 한 마디 안에는 앞으로 제자들이 겪어야 할 모든 고난이, 그들의 공포와 두려움과 순교를 포함한 온갖 종류의 박해가 응축되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일이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분이 세상을 이겼다고 말씀하시니 무슨 뜻일까요? 제자들이 주님을 버려두고 흩어질 것이고, 또 그들이 고난을 겪으리라는 것을 예고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평화와 용기를 말씀하실 수 있으셨을까요?
이 말씀을 하신 뒤에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세상을 이겼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당신과 제자들을 죽이기까지 하는 이 세상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완전히 제압하셨다는 뜻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세상이 당신께 어떠한 폭력과 고문과 악행을 저지를 것인지 분명히 아시면서도 이 참혹한 상황을 외면하시거나 회피하지 않으시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과묵하게 현실을 받아들이심으로써 이 세상의 주인이 되셨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세상의 죄악은 절정에 달하여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분께서는 죽음을 쳐 이기시고 부활하시어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혼자 버려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지더라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으시고 평온하실 수 있으셨던 것은, 이러한 참담한 현실 앞에서도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으시고 그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의 나약함을 알고 계셨고 그들이 당신을 배반할 것도 아셨습니다. 인간의 최악의 상태를 알고 계셨지만, 그럼에도 그분께서는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러한 제자들을 신뢰하셨다는 점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나약함을 지적하신 뒤, 낙심하지 말라고 위로하시면서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성장에서 부활 승천하시기 까지

<내가 세상을 이겼다.>      송영진 모세 신부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 때에 제자들이 당신을 버려두고 모두 흩어지는 상황을 예고하시면서도 "아버지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에 나는 혼자가 아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요한 16,32).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패배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슬퍼하고 두려워하면서 흩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싸움은 예수님의 패배가 아니라 승리로 끝나는 싸움입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싸움은 사실은 하느님의 싸움이고, 그래서 패배할 수 없는 싸움입니다. 그 어떤 것도 하느님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은 승리로 가기 위한 과정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예수님께서 아직 수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승리를 먼저 말씀하신 것은 제자들에게 믿음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공관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는 말씀을 하실 때마다 부활도 예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부활 예고 말씀은 흘려들었고, 수난 예고 말씀만 생각하면서 두려워했고, 평화를 잃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도 됩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현실을 가리킵니다. 박해를 받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슬프고 두려운 일을 겪을 수도 있고, 먹고사는 일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용기를 내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일들은 최종 승리로 가는 과정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앞으로 승리하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다." 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을 나타냅니다. 수난과 죽음만 보면 패배하신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고, 승천하셨기 때문에 승리자이신 분입니다.

그러면 왜 신앙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난을 겪고 있는가? 우리의 승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인생은 승리를 향해서 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신앙생활은 승리자이신 예수님의 승리에 참여하기 위해서 '이미 이긴 싸움'에 동참하는 생활입니다.

그러면 사탄은, 또는 사탄의 지배 아래에 있는 인간들은 왜 아직도 신앙인들을 괴롭히고 있는가? 그것은 말하자면 패잔병들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그래서 항복하기를 거부하면서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사탄 따위를 두려워하면 안 되고, 또 사탄의 유혹에(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세속의 유혹에) 넘어가도 안 됩니다. 승리자 편에 선 사람들이 패배자의 유혹에 넘어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바오로 사도가 체포되어서 감옥에 갇혔을 때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사도 23,11)." 바오로 사도가 죄수 신분이 되어서 로마로 끌려간 것은 사실은 로마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주님의 계획에 의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왜 바오로 사도를 일반적인 방법으로 로마로 보내시지 않고 죄수로 끌려가게 하셨을까?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보면, 바오로 사도가 어떤 식으로 로마로 갔든지 간에 그는 로마에서 복음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과정을 보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결과를 보면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로마로 가는 도중에 폭풍을 만나서 배에 타고 있는 사람이 모두 죽을지도 모를 상황에 처했을 때, 바오로 사도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배만 잃을 뿐 여러분 가운데에서 아무도 목숨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나의 주님이시고 또 내가 섬기는 하느님의 천사가 지난밤에 나에게 와서, '바오로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황제 앞에 서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너와 함께 항해하는 모든 사람도 너에게 맡기셨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용기를 내십시오. 나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천사가 나에게 말한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섬에 좌초하게 되어 있습니다(사도 27,22-25)."

이 상황에 대해서도, "주님께서는 그냥 편안하게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지 않고, 왜 그렇게 고생하도록 내버려 두셨을까?"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역시 정답은 "모른다."이지만, 아마도 믿음을 더욱 순수하고 강하게 만들기 위한 '단련'일 것입니다(1베드 1,7). 어떻든 결과를 미리 알고 있다면, 과정이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견디고 극복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결과를 미리 알고 하는 생활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결과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인생 여정이 더 힘들 수도 있고, 덜 힘들 수도 있지만, 신앙인의 최종 목적지는 같고, 얻는 결과도 같습니다. 그러니 끝까지 믿음, 희망,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김명준님의 사진.

영적승리의 삶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신부

 

수도원 십자로의 예수부활상과 그 배경의 느티나무의 조화가 장관입니다. 

이젠 느티나무 없는 예수부활상, 예수부활상 없는 느티나무는 상상하기 힘듭니다. 어제 써놓은 글입니다.

예수 부활상  배경의 푸르른 단풍나무

나 예수님 배경이 되어드리면

예수님 역시 내 배경이 되어 주신다

내 방패가 되어 주신다

예수부활상과 느티나무, 둘이자 하나요 하나이자 둘의 관계입니다. 

바로 아버지와 예수님의 관계가, 예수님과 성모님의 관계가, 예수님과 바오로의 관계가 그러합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온다. 아니 이미 왔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애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6,31-32).

위기시 살 길을 찾아 제각기 흩어지는 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아버지께서 늘 배경이요 방패가 되어주셨기에 그 평화로 언제나 영적승리의 삶을 살았던 예수님이셨습니다. 

오늘날 고난을 겪고있는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 말씀입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십자로 중앙의 예수부활상 아래 돌판에는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주님 말씀이 새겨져 있지만 위 말씀으로 대치해도 좋겠습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세상을 이기신 파스카의 주님이십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고난과 죽음에 합류하여 주님과 하나가 되어 살 때 내적평화와 더불어 부활승리의 삶입니다. 

바로 이의 생생한 증거가 바오로입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바오로의 전 삶을 요약하는 이 말씀은 제 사제서품 25주년 은경축 상본의 성구이기도 합니다. 

얼마전 읽은 기사가 생각납니다. 그 유명한 늦봄 故 문익환 목사님의 아우 문동환 목사님에 대한 일화입니다.

'2015.5.12.일 6시 30분 연지동 기독교회관에서 문동환 박사님의 「예수냐 바울이냐?」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95세 나이에 책을 쓰시다니! 더구나 정정하고 열정적인 음성으로 책 이야기를 펼치시는 강연이라니! 

알츠하이머가 심한 부인 문혜린 여사를 모시고 나와서 옆에 앉히셨고, 당신 나이 42세였을 적에 25세 처녀로 시집와서 아직까지 함께하는 아내에게 책을 바치신다는 말씀도 하셨다.‘ (휴천재에서 전순란 글 인용).

'예수냐 바울이냐?' 책 제목처럼 양자선택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 없는 바오로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늘 바오로의 배경이자 방패가 되어 주셨기에 오늘 사도행전에서처럼 복음선포에 항구하며 영적승리의 삶을 살 수 있었음을 봅니다.

'바오로는 석 달 동안 회당에 드나들며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토론하고 설득하면서 담대히 설교하였다.‘

문동환 목사님이 95세에 책을 출판할 수 있었음 역시 영적승리의 생생한 표지입니다. 분명 파스카의 주님과 늘 일치되어 사셨을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하루하루 계속되는 영적전쟁의 삶입니다. 

우리 수도생활이 바로 그러합니다. 죽어야 비로소 승리의 안식이자 휴식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의 자작시 마지막 연이 영적승리의 삶의 비결을 보여줍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처럼 살았습니다.

저희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당신의 참 좋은 평화를 선사하시어 

오늘 하루도 영적승리의 삶을 살 수 있게 하십니다. 

아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매일미사, 요한 16,29-33

 내가 세상을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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