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5주간 월요일>사랑(2015. 5. 4. 월)(요한 14,21-26)
바오로와 바르나바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 쫓겨난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이코니온으로 갔다. 그곳에서도 사람들이 돌을 던져 자기들을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그들은 리스트라로 가서 복음을 전한다. 바오로가 앉은뱅이를 치유하는 것을 목격한 다음, 군중이 자기들을 신으로 생각하여 모시려 하자 그들은 군중을 말리며, 자신들은 다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라고 밝힌다. (사도행전 14,5-18) 예수님께서는 수난을 앞두시고 성령을 약속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가시지만 보호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오시어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요한 14,21-26)
시편 115(113 하),1-2.3-4.15-16(◎ 1ㄱㄴ 참조)
◎ 주님, 저희가 아니라 오직 당신 이름에 영광을 돌리소서. (또는 ◎ 알렐루야.)
○ 저희가 아니라, 주님, 저희에게가 아니라 오직 당신 이름에 영광을 돌리소서. 당신은 자애롭고 진실하시옵니다. “저들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민족들이 이렇게 말해서야 되리이까? ◎
○ 우리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며, 뜻하시는 모든 것 다 이루셨네. 저들의 우상은 은과 금, 사람 손이 만든 것이라네. ◎
○ 너희는 주님께 복을 받으리라.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다. 하늘은 주님의 하늘, 땅은 사람에게 주셨네. ◎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1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22 이스카리옷이 아닌 다른 유다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자,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오늘 독서와 내일 독서의 앞부분을 이어서 묵상하면 두 부분의 대조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자기들에게 주어지는 예찬과 영광을 거부합니다.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할 따름입니다.” 사람들은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사람 모습으로 나타난 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오로가 앉은뱅이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바오로의 믿음이나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앉은뱅이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늘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많은 경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신자들 사이에서 환대와 존경을 받곤 합니다. 하기야 성경도 훌륭한 원로들, 특별히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에 애쓰는 이들은 존대를 받아 마땅하다고 권고하기도 합니다(1티모 5,17 참조). 그러나 분명한 것은 환영을 받아야 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의 경우에는 환영을 받기보다는 주로 박해를 받았습니다. 피시디아 안티오키아에서 쫓겨났고, 이코니온에서는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고까지 했으며, 지금 리스트라에서는 환영을 받지만 내일 독서에서는 이코니온에서 온 사람들이 그를 돌로 치고는 죽은 줄로 생각하고 도시 밖으로 끌어내다 버릴 것입니다.
이때에 바오로는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면서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합니다. 이것은 믿음과 신뢰심을 갖고 하느님을 찾는 사람에게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을 보여 주시고 그를 지켜 주실 것이라는 바오로 사도의 확신에 찬 믿음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진리 안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실 것이고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도록 도와주실 것이며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유혹과 시련을 당할 때, 주님의 말씀이나 시편의 한 구절, 또는 어떤 가르침 등이 마음에 번쩍 떠오른다면, 그것 역시 바로 성령의 역사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사랑> 송영진 모세 신부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요한 14,21)."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라는 '새 계명'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요한 14,15)." 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라는 말씀을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또는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서로 사랑하여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 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 사랑하여라." 라는 말씀은 "너희끼리만 서로 사랑하여라."가 아닙니다. 사랑에는 울타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서로 사랑하여라."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여라."입니다. 우리는 집단 이기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은 '사랑' 속에 현존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면,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면, 또는 예수님과 함께 살고 싶다면,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을 반대로 말하면,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만날 수 없다."입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한 1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1요한 4,12)."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 4,16)."
이 말은,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하느님을 볼 수 있다는, 또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를 거꾸로 말하면, "사랑이 곧 하느님이다."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다시, "미움은 사탄이다." 라는 말이 됩니다. 사탄은 우리를 이간질하고, 그래서 서로 미워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미움과 증오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사탄에게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우상숭배와 싸운다는 명목으로, 또 사탄과 싸운다는 명목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미움과 증오심에 사로잡혀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사탄과 싸우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들 자신들이 이미 사탄에게 사로잡혀 있습니다. 물론 자기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자체는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없고 증오심만 있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고, 신앙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것이 무의미해집니다.
여기서도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 라는 말이 적용됩니다. ("사탄은 미워하되 마귀 들린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 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들을 만나기만 하면 바로 쫓아내셨는데, 그것은 마귀 들린 사람들을 마귀들에게서 해방시켜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귀들을 쫓아내신 일은, 마귀들에 대한 미움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요즘에도 정치적인 신념 같은 것에 사로잡혀서 자기와 의견과 사상이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수니 진보니 하면서, 또는 우익이니 좌익이니 하면서... 그 자체는 옳은 것이라고 해도 그 신념을 실현하는 방법이 미움이라면, 그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미움과 증오심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파괴할 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이스카리옷이 아닌 다른 유다'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요한 14,22)" 라고 질문합니다. 그가 보기에 예수님께서 일부러 믿음 없는 사람들에게는 당신의 모습을 감추시는 것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라고 대답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내가 일부러 내 모습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은(예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분인데, 사랑이 없는 사람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미움과 증오심을 통해서 사탄만 만나게 될 뿐입니다.
천국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 있는 곳입니다. 지옥은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만 있는 곳입니다. 천국에는 사랑만 있고, 지옥에는 미움만 있습니다.
이 말은 이 세상에도 그대로 해당됩니다.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면,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러나 미워하기만 한다면,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지옥입니다. 결국 천국과 지옥은 우리가 만드는 셈입니다.
원칙 조재형신부
저는 물을 좋아해서 ‘스쿠버 다이빙’을 배웠습니다. 물속에서 중성부력을 유지하면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중성부력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공기를 너무 넣으면 쉽게 물위로 올라가버립니다. 반대로 공기를 너무 많이 빼버리면 바다 속 깊이 빠질 수 있습니다. 물속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중성부력을 자유롭게 유지할 수 있도록 많은 연습을 해야 합니다.
사람은 물속에서는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남은 공기의 양을 점검해야 합니다. 긴급한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늘 짝과 함께 다녀야 합니다. 연습을 많이 하고, 원칙과 규칙을 정확하게 지킬 수 있다면 누구나 아름다운 바다 세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지만, 예전에는 줄을 서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새치기 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힘이 센 사람이 먼저 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어릴 때 저는 학교 가는 버스를 놓치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줄을 서지 않고 버스가 오면 모두들 작은 입구를 향해 달려가기 때문입니다. 체구가 작고 힘이 없었던 저는 버스를 타는 것을 포기하고 걸어서 학교를 간 적도 있습니다. 어렵게 버스를 타서도 내릴 때가 힘든 적도 있었습니다. 버스 안에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그 사람들을 뚫고서 출입구에 나오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지켜야 할 원칙과 규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고, 모두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원칙과 규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힘이 있는 사람, 양심을 속이는 사람들만이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규칙과 원칙을 어기게 되면 사회는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게 되고, 사람들은 정의와 양심의 힘을 믿지 못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한 가지 원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바로 그 원칙을 지키면서 살아야 합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벗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것,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 사람들의 발을 씻겨 주는 것,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주고, 묶인 이를 풀어 주는 것, 갇힌 이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와 바르나바 사도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충실하게 지키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람들이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신’으로 섬기려 할 때, 두 사도는 단호하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할 따름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헛된 것들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또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원칙과 규칙을 지키는 것이 때로는 손해를 보고, 어리석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성공한 사람들은, 인류 문명에 공헌한 사람들은 모두 원칙과 규칙에 충실했던 사람들입니다. 새로운 한 주일을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신앙인으로서 나에게 주어진 사랑의 계명을 지키며 힘차게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왜 이런 짓을 하십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할 따름입니다.> (사도 14,15)
많은 사람들은
성직자, 수도자들을 존경합니다.
때론 그 존경심이 과하여 마치 성자처럼,
신의 대리자처럼 떠받들 때도 있지요?
오늘날엔 언론매체들이 스타들을 만들어내고 있고
성직자들도 그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소위 유명인사가 되고 교주처럼 행세하기도 합니다.
오늘 바오로와 바르나바도
신으로 떠받드는 존경을 받습니다.
교주가 되고도 남을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옷을 찢고
우리는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일 뿐이라고 강변합니다.
칭찬 앞에 참으로 겸허할 줄 알아야
복음은 힘을 발휘합니다.
오늘 내가 행여라도 받게 될 존경이나 공처사가 있으면
정말 나는 보잘 것 없는 죄인일 따름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 자신이
남들로부터 과도한 칭찬을 받으면 흐뭇해 하고
반대로 칭찬받지 못하면 실망하며
스스로 자기 칭찬을 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올바른 복음선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상선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