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3주간 월요일 (장애인의 날)] (요한 6,22-29)

2015. 4. 20. 오전 8:2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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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3주간 월요일 (장애인의 날)] (요한 6,22-29)  

 

 

해마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지위를 향상하고 사기 진작을 위하여 우리나라가 기념일로 정한 ‘장애인의 날’이다. 한국 천주교회도 2000년부터 매해 이날을 장애인의 날로 지내며, 장애인들의 복지와 인권에 대한 관심을 더욱 기울이기로 하였다. 이날 각 교구에서는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고자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다. 

식탁 봉사를 위해 뽑힌 스테파노 부제에 관한 기록이 이어진다. 유다인들은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이지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그에게 대항할 수 없었으므로, 사람들을 선동하여 그를 붙잡아 끌고 간다. 스테파노가 유다인들에게 박해받는 주된 원인은 율법과 성전에 대한 태도였다. (사도행전 6,8-15)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다음 날 사람들이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 예수님을 찾아 나선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썩어 없어질 양식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찾으라고 말씀하신다. (요한 6,22-29)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 요한 6,22-29)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뒤, 제자들은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았다. 22 이튿날, 호수 건너편에 남아 있던 군중은, 그곳에 배가 한 척밖에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를 타고 가지 않으시고 제자들만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3 그런데 티베리아스에서 배 몇 척이, 주님께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 빵을 나누어 먹이신 곳에 가까이 와 닿았다. 24 군중은 거기에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그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25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왜, 무엇 때문에 군중은 애써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 예수님을 찾아 나섰을까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빵의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보지 못한 채 오직 빵 자체만을 보았고 따라서 그분을 단순히 빵을 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하였습니다. 부활 달걀은 보되 부활은 믿지 못하고, 성탄 선물은 받되 성탄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빵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주님의 기도에서 아버지께 매일의 빵을 청하라고 하셨고, 바오로 사도도 묵묵히 일하여 양식을 벌어먹으라고 권고합니다(2테살 3,12 참조). 그러나 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하느님을 찾거나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공관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의 중심 메시지가 ‘하느님 나라’에 관한 것이라면, 요한 복음의 중심 메시지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구하려고 애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히 살게 하는 양식을 얻도록 힘쓰라고 이르십니다.

이 말씀의 해답을 오늘 독서의 스테파노에게서 발견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그분께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체험한 스테파노는 하느님의 은총과 성령의 힘을 가득히 받아 백성 앞에서 놀라운 일들을 하였고, 부활하신 주님을 선포하다가 순교까지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은 바로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 부활하신 주님, 생명의 빵이신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     

 

 

사랑의 일치  반영억 신부


사람은 음식을 먹지 않으면 살지 못합니다. 무엇을 먹든 먹어야 합니다. 다른 방법으로 영양을 보충할 수 있겠지만 일시적입니다. 단식을 한다고 해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위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영양을 보충 시켜야 합니다. 음식을 통해서든 다른 방법을 통해서든 영양을 섭취하지 않으면 육체를 지탱할 수가 없습니다. 사순절이 되면 40일 동안 단식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정신이 맑아지고 물 한 컵, 주스 한 잔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힘이 없어서 그야말로 맑아졌던 정신도 혼미할 때도 있었다." 사람은 무엇을 먹어야 삽니다. 영양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산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밥을 먹는 것 보다 하느님의 말씀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 모든 것이 있기 때문에 항상 말씀이 먼저 입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삽니다(마 태4,4). 그리고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행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도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을 실천하는 가운데 하느님을 만나고 구원을 완성하게 됩니다. 요한 일서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1요한 2,5). “우리의 육신에 영양을 주기 위하여 빵을 먹어야 하듯이, 우리의 영혼을 위하여 성체를 모셔야 합니다”(성 가롤로 보르메오).

지상의 양식도 중요하지만 천상의 양식이 더 소중한데 그 천상양식을 얻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아들을 믿는 것입니다.(요한6,29). 결국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동의를 통해서 완성됩니다. 하느님의 선물을 인간이 거부할 수 있으니 신앙은 하느님의 일인 동시에 인간의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 합니다. 남들이 성경에 관해 많이 알고 통성기도를 잘 하는 것을 보면 부러워합니다. 특히 전교에 동분서주하는 개신교 신자들을 보면서 열성을 부러워하고 말 잘하는 그들을 보며 주눅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성경을 읽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텔레비전 앞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습니다. 노력하지 않으면서 거저 얻으려는 마음이 너무 큽니다.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면 왜 그 말씀을 듣기를 주저하고 실천하기를 두려워합니까? 그야말로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입니다. 은총은 풍부하지만 인간의 협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썩어 없어질 세상 것에는 눈이 번쩍 뜨이면서도 천상의 영원한 생명에는 굼뜬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성 베르나르도는 하느님의 위안은 다른 위로를 찾는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습니다. 진실한 것이 헛된 것과, 영신적인 것이 육신적인 것과, 최고의 것과 최저의 것과 혼동되기도 하지만 천상의 것과 지상의 것을 똑같이 맛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하 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천상의 것을 추구하십시오. 지상에 살면서도 지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십시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자주 접하고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주님을 미사 안에서의 영성체로써 신앙의 건강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영성체보다 더 깊고 완전한 사랑의 일치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분 안에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습니까?”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썩어 없어질 인생을 살지 말고>   송영진 모세 신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요한 6,26-27)."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요한 6,29)."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로 오천 명 이상의 군중을 먹이신 일은 당신을 '생명의 빵'으로 계시하신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이 배불리 먹었다는 것만 생각하고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요한 6,15). 그들은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한 끼 식사를 해결해 줄 빵만 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셨는데, 그래도 그들은 계속 예수님을 찾아다녔습니다(요한 6,22-24).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은, "너희는 빵을 배불리 먹었다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그 기적의 의미를 깨달아라." 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빵의 기적'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것은 지적 능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현세적인 것만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라는 말씀은, "너희는 썩어 없어질 허무한 인생을 살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기 위해서 힘쓰는 인생을 살아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는 것은 '헛심'을 쓰는 것입니다. 인생을 낭비하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얻는다고 해도 허무하게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은, 영원한 생명은 '예수님만' 주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인정하셨다는 말은, 예수님만이 유일한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라는 말씀은, "나를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출세, 성공, 부귀영화를 희망하면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 끈질기게 노력합니다. 그래서 얻으면 자기는 성공했다고 생각하면서 만족하고, 얻지 못하면 자기의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면서 좌절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이 세상에서 원하는 것을 얻었든지 얻지 못했든지 간에 양쪽 다 실패한 인생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면 모든 것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현세적인 것만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마태 6,19-20)." 이 말씀은, "땅에 쌓아 둔 것은 언젠가는 허무하게 사라지겠지만, 하늘에 쌓아 둔 것은 영원하다." 라는 뜻입니다. 보물을 땅에만 쌓아 두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야고보서 저자는 탐욕스러운 부자들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자 이제, 부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닥쳐오는 재난을 생각하며 소리 높여 우십시오. 그대들의 재물은 썩었고 그대들의 옷은 좀먹었습니다. 그대들의 금과 은은 녹슬었으며, 그 녹이 그대들을 고발하는 증거가 되고 불처럼 그대들의 살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그대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재물을 쌓기만 하였습니다(야고 5,1-3)."

우리는 실제로는 금과 은이 녹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 없이' 탐욕으로 쌓아 둔 금과 은은 하느님의 심판 때에는 허망하게 녹슬어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쓰레기가 될 것입니다. 그냥 가치가 없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탐욕과 불의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과 야고보서 저자의 말은 부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경고가 아닙니다. 가난하더라도 탐욕과 집착을 버리지 않는다면, 불의한 부자들과 다를 것이 없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잘할수록 세속적인 복을 더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비웃을 것입니다(루카 16,14). 실제로 그런 사고방식으로 설교를 하는 이들이 있고,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루카 18,25)." 이 말씀에서 '부자' 라는 말은 부유한 사람들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부유하든지 가난하든지 간에, 내세는 생각하지 않고 현세에서의 '부와 권력'만 추구하는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예 못 들어간다는 것이 예수님 말씀의 뜻입니다.

 

 

 

<그러자 최고 의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스테파노를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 (사도 6,15)

오늘 장애인의 날입니다.
여러 장애인들이 많지만 특히 지적장애인들은 천사라 불립니다.
좀 모자라 보이지만 늘 잘 웃고 맑아 보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모습인가요?
어떤 때는 천사같은 얼굴인데,
또 어떤 때는 마귀같은 모습으로 보일 때도 있지요?
지금 거울 한번 보실래요?

내가 인간적인 욕심이나 다른 사심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내 모습은 미워 보입니다.
그러나 내가 늘 하느님 나라를 생각하고 맑고 선한 마음이 되어 있으면
내가 봐도 흐뭇할 정도로 내 모습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오늘 천사같은 얼굴을 되찾으시길 축원합니다.
우리는 천의 얼굴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모습이 되느냐는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무얼 보고 무얼 느끼고 무얼 생각하며 사는지에 따라
천사의 모습도 되고 마귀의 모습도 됩니다.

원래 천사보다 더 귀하게 태어난
하느님 모습을 닮은 우리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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