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3주간 화요일] 내가 생명의 빵이다. (요한 6,30-35)

2015. 4. 21. 오전 8: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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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간 화요일] 내가 생명의 빵이다. (요한 6,30-35) 안셀모축일(4.21)

 

거짓 증언에 의해 고발당한 스테파노가 최고 의회에서 백성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설교한다. 그는 이스라엘이 지난날에 저지른 불순종을 상기시키는데, 오늘 독서는 그 설교의 끝 부분으로서, 이스라엘이 구약 시대부터 예언자들을 죽여 왔고 이제는 의로우신 분 예수 그리스도마저 죽였음을 말한다. 스테파노는 결국 돌에 맞아 순교한다.(사도행전 7,51―8,1ㄱ).   예수님께서는 빵을 많게 하신 표징을 설명하신다. 표징을 보는 이들은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생명의 빵이시며,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이 되신다. (요한 6,30-35)     

 

 

시편 31(30),3ㄷㄹ-4.6과 7ㄴ과 8ㄱ.17과 21ㄱㄴ(◎ 6ㄱ 참조)
◎ 주님, 제 목숨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또는 ◎ 알렐루야.)
○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원할 성채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성채이시니, 당신 이름 위하여 저를 이끌어 주소서. ◎
○ 제 목숨 당신 손에 맡기오니, 주님, 진실하신 하느님, 저를 구원하소서. 오로지 주님만 믿나이다. 당신 자애로 저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
○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비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당신 앞 피신처에 그들을 감추시어, 사람들의 음모에서 구해 내소서. ◎

 

 광야에서 만나와메추라기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그때에 군중이 예수님께 30 물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31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33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34 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성전과 율법을 거스르는 말을 하였다고 최고 의회에 끌려온 스테파노가 지혜와 성령으로 가득 차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합니다. 스테파노의 순교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최고 의회에서 심문을 받으신 사실과 십자가의 죽음 장면, 그분에 대한 거짓 증언 등 비슷한 점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시절 하느님께서 구원자로 보내신 모세에게도 순종하려 하지 않았고, 예언자들 가운데 그들이 박해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며, 마지막에는 그 예언자들이 오시리라고 예언한 그분마저 죽였다고 스테파노는 목숨을 걸고 질타합니다. 지금 최고 의회는 율법을 내세워 스테파노를 고발하고 단죄하지만 사실 그들은 조상들처럼 일찌감치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 부활 시기에 우리는 사도행전을 묵상하면서, 특히 오늘 교회의 첫 순교자 스테파노의 용감한 행동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스 말로 ‘순교’(마르티리아)라는 단어는 본디 ‘증언’을 뜻하지요. 사도행전에서는 ‘증인’들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데 그들은 모두 순교자들이었습니다. 자신이 믿고 고백하는 진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릴 수 없다면 결코 증인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뇌물을 받고 재판에서 거짓 증언을 하는 사람처럼 다른 무엇을 위해 타협하거나 진리를 버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스테파노처럼 순교를 각오한 그 증언이 참되고 힘이 있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생명의 빵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빵을 먹지 않고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빵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물론 영적인 생명을 뜻합니다. 영적인 생명이란 하느님과의 새로운 관계, 곧 신뢰, 순종, 사랑 등을 말합니다. 이 관계는 오직 예수님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생명의 빵을 모실 때에만 이루어지고 완성될 수 있습니다.     

 

 

<믿음, 표징>    송영진 모세 신부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요한 6,30-31)."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주신 '기적의 빵'을 먹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들이 믿을 수 있도록 표징을 일으켜 보라고 요구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로 오천 명 이상의 군중을 먹이신 일을 특별한 기적(표징)으로 생각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1)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주신 (또는 제자들이 나누어 준) 빵을 받아먹었습니다(요한 6,11). 그래서 그들의 눈에는 그 빵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온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탈출 16,14). 누가 보아도 그것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빵 다섯 개를 굉장히 많은 양으로 늘리셨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당시 사람들도 그 과정을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과정을 모르는 채로 기적의 결과물인 빵을 받아먹기만 했으니 자기들 눈앞에서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떻든 우리가 보기에는 예수님의 빵이 더 놀라운 기적으로 보이는데, 당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만나'만큼 놀라운 기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왜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을까?

2) 적은 양의 빵으로 많은 사람이 먹은 일은 예수님께서 처음 하신 일이 아니라, 구약성경에도 이미 기록되어 있는 일입니다. 예언자 엘리사는 보리 빵 스무 개로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먹였습니다(2열왕 4,42-44).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빵의 기적'을 엘리사가 행한 기적과 같은 것으로, 또 예수님을 엘리사급 예언자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한 것은 엘리사와 같은 지도자가 되어 달라고 요구한 일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요한 6,32-33)." 사람들이 인용한 시편 78장 24절,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 라는 말에서 '그분'은 원래는 하느님을 가리키는 말인데, 사람들은 '모세'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면서 '만나'를 내리게 한 모세처럼 표징을 보이라고 예수님께 요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지적하시면서 하늘에서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라고 바로잡으셨습니다.

또 예수님의 말씀에는, '만나'는 하느님께서 당신이 하느님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내려주신 표징이 아니라는 가르침도 들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만나'를 내려주신 것은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고 있었기 때문이지 당신을 증명하시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구약시대 백성들이 '만나' 때문에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믿은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만나'가 내리기 전에도 하느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사람들이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하면서 '만나'를 예로 들고 있는 것은, '만나'를 그런 표징으로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도 그런 요구를 할 때가 있습니다. "당신이 정말로 하느님이라면...", 또는 "당신이 정말로 구세주라면..." 이라는 말을 하면서 뭔가를 청하는 기도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께 그런 식으로 청한 적이 있습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마태 14,28)." 이 말은, "당신이 정말로 주님이시라면, 저에게 물 위를 걷는 능력을 주십시오."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그런 일을 통해서 진짜로 주님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라고 요구하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제자들의 믿음이 아직 부족한 때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나중에는 위대한 믿음의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표징을 통해서 증명해 보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자신에게 믿음이 없음을 드러내는 일이 됩니다. 믿는 사람들은 그런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그냥 믿을 뿐입니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믿음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고, 말씀을 듣고 배워서 믿게 되거나 체험을 통해서 믿게 되는데, 믿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표징이 없어도 믿게 되지만, 믿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리 놀라운 표징을 보아도 더욱 의심하면서 안 믿게 됩니다.

믿음도 은총입니다. 은총은 원래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지만, 받으려고 하는 사람만 받게 됩니다. 은총이 은총으로 작용하려면 받는 사람 쪽에서도 잘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에 들어 있는 세 번째 가르침은, 이제는 몸의 배를 부르게 하는 것으로 그치는 빵만 찾지 말고, 참 생명을 주는 영적인 빵을 청하라는, 또 그것을 추구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만나'는 분명히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하느님의 빵이었지만, 그것을 그냥 지상의 빵처럼 먹은 사람들은 '썩어 없어질 양식'을 먹었을 뿐입니다(요한 6,49). 바로 이어서 하신 말씀, "내가 생명의 빵이다(요한 6,35)."는 당신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천상의 양식을 갈망하라     반영억라파엘 신부

 

오래 전의 일입니다. 세례식 미사에서 성체와 성혈을 모실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몇 일 뒤 한 분이 신부님, 미사 때 사용하는 포도주는 일반 포도주와 무엇이 다릅니까?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십니까? 했더니 첫 영성체를 할 때 그 맛이 너무 감미로워서 미사 때 사용한다는 포도주 마주앙을 사다 마셔봤는데 그 때 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얼마나 맛이 좋았으면 그런 생각을 다 하였을까? 생각해 보지만 분명 술이 아니라 주님의 피이 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허물을 용서 받고 새롭게 태어나며 첫 영성체를 하였으니 그 감동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어떤 감각적인 것에만 마음을 빼앗기면 안 됩니다. 주님께서 특별히 마음의 뜨거운 감동과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 한6,35).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하필 당신을 빵으로 표현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빵을 찾아 나선 군중에게 빵으로 다가 가시기 위해서입니다. 빵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는 군중에게 스스로 빵이 되겠다는 일종의 ‘눈높이’식의 깨우침을 주시려는 것입니다(박병규). 예수님께서는 빵인 당신을 통해 군중이 배부르게 되길 바라십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두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친히 생명의 빵으로 음식이 되어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너무 높은 분으로 계시면 우리가 감히 접근하기가 어렵고 일회적으로 오시면 잊어버릴 수가 있기에 늘 우리와 함께하심을 기억하도록 성체성사를 통해서 안배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가까운 분으로 계십니다. 그러니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멀리 찾지 마십시오. 어디 계시냐? 고 묻는 바로 여러분 앞에 사랑으로 계십니다.

성 비오10세는 영성체는 천국으로 가는데 가장 빠른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가장 쉽고 안전하고 빠른 길은 성체를 모시는 일입니다.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미사에 참례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천상 영복의 즐거운 맛을 보게 될 것입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결코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도록 해 주시며 천상행복을 주시는 주님을 모시는 일에 더 열심 해야 하겠습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병중에 영성체를 한 감동을 작은 성체 조각을 영하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것조차 삼키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모시게 된 기쁨에 얼마나 행복했는지! 첫 영성체 날처럼 울었습니다. 하고 적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체를 모실 때마다 그런 마음이기를 바라며 앞으로 우리 모두가 이런 뜨거운 마음으로 생명의 빵을 모시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 어떤 세상의 양식보다도 천상의 양식을 갈망하게 되기를 희망하며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사도 7,60)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 사람이 죄인이 아닙니다.
저를 사랑하고 아낀 것이 저 사람의 잘못일 뿐입니다.
그 사랑을 더 큰 사랑으로 보듬어 안지 못하고
말과 행동으로 더 큰 아픔만 안겨 주는 제가 큰 죄인입니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에게 돌리지 마소서.
저 사람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제가 그리 만들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저 사람에겐 위로와 축복만 주시고 저를 벌하시옵소서.

오늘따라 저를 아끼고 사랑한 탓에
수많은 아픔을 겪어야만 했을 저 사람들을 떠올려봅니다.

그리고 용서를 구합니다.
제가 결코 드릴 수 없는 하느님의 크신 은총과 축복이 함께하길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상처 깨끗이 씻고 새로이 부활하시길 빌고 또 빕니다.

 

 

오상선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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