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3주간 목요일]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 (요한 6,44-51)

2015. 4. 23. 오전 8: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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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간 목요일]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 (요한 6,44-51)

필리포스는 가자로 내려가는 길에서 에티오피아의 내시를 만난다. 그가 구약의 이사야서를 읽으면서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필리포스는 그 말씀에서 시작하여 그에게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설명해 준다. 그가 세례를 받음으로써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지게 된다. (사도행전 8,26-40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당신께 올 수 없으며 당신을 믿는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생명의 빵이 되어 주시기 때문이다. (요한6,44-51)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사랑의 빵, 생명의 양식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45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46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4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50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생명의 빵

 

<너희 조상들은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송영진 모세 신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 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요한 6,44-45)."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따라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은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이끌어 주시는데도 그 인도를 거부하는 사람은"입니다.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는 "나에게 오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입니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하느님의 이끄심에 응답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나에게 오는 사람"입니다.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는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는 "사람들을 모두 구원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고,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이끌어 주신다."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여서 응답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희망하는 사람"입니다. "누구나 나에게 온다."는 "누구나 나에게 와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입니다.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한 6,46-47)." 이 말씀은,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세주이시고, 예수님만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예수님만) 믿는 사람"입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요한 6,48-50)."

1) '만나'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려고 내려주신 빵이 아닙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고 있기 때문에 주신 빵입니다. 그래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라는 말씀은 "만나는 지상에서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빵이었지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한 빵은 아니었다." 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서 내려온 '생명의 빵'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빵'은 '만나'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위대한 빵입니다.

'생명의 빵'은 육신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빵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성체 하나를 먹는다고 배가 부르지도 않고, 또 배가 부를 정도로 성체를 주는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에 순전히 육신의 배고픔 때문에 영성체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영성체가 아니고, 그 사람은 아마도 분명히 영성체를 한 다음에 크게 실망할 것입니다. 이 말은 신앙생활 전반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은 지상에서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일입니다.

2)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는 말을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은 '만나' 때문에 죽었다는 뜻도 아니고, '만나'가 쓸모가 없었다는 뜻도 아닙니다. '만나'는 분명히 하느님께서 주신 양식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양식인 '만나'를 먹고도 죽은 사람들 가운데에는 죽을 때가 되어서 죽은 사람들도 있고, 벌을 받아서 멸망을 당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충실하게 하느님을 섬기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 죽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고성소에 가셨을 때 구원을 받았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멸망을 당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는 동안 기다리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다가 처형당한 사람들도 있고, 하느님과 모세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처형당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도 '만나'를 먹은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 경우에는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지만, 제대로 응답하지도 않았고, 믿음도 부족했고, 죄만 지었기 때문에 멸망을 당했다." 라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이 말은 그대로 '성체'에도 적용됩니다. 날마다 영성체를 해도, 그 성체가 자동적으로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영성체를 하는 사람답게 제대로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체는 누구에게나 자동적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마법의 음식이 아닙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  이 말씀을 글자 그대로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해하기가 어려운 말씀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예수님을 먹어야 한다는 표현, 또는 예수님의 살을 먹어야 한다는 표현 때문에 유대인들은 말다툼을 벌였고(요한 6,52), 제자들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떠나버렸습니다(요한 6,66).

예수님을 먹는다, 또는 예수님의 살을 먹는다는 말은 예수님의 생명력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 생명력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오고,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도 오고, '성체성사'를 통해서도 오고, 다른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올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것, 온 마음으로, 또 온 삶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줄기를 통해서 공급되는 생명력을 받아먹지 않는 가지는 말라 죽는 것처럼(요한 15,4)  예수님에게서만 오는 생명력을 받지 않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사랑의 빵, 생명의 양식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이 구절에서 사용된 ‘이끌다’라는 단어는 멀리서 인도한다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붙잡아 끌어당긴다는 뜻입니다. 그물로 물고기를 끌어 올리거나 사람을 붙잡아 강제로 끌고 가는 것 등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에 대해 말씀하시다가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이라는 조건을 붙이십니다. 특정한 사람들을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고, 그들만 당신께 올 수 있다는 뜻일까요? 갑자기 예정설 같은 분위기가 풍깁니다. 이끌어 주지 않으시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으며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라는 말씀은 또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말 한마디만을 떼어 놓고 볼 것이 아니라 인간 구원에 관한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 비추어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이 말씀은 아마도, 나 스스로 믿음을 선택하고 내 발로 하느님께 나아가기 이전에 하느님 편에서 먼저 손을 내미시어 나를 당신께 이끌어 주신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우리 자신도 어떻게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 또 그 믿음이 어떻게 성장하였는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에티오피아의 내시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경우도 열심히 살아서라기보다는 아버지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과 부활, 승천과 성령 강림을 통하여 우리의 구세주 그리스도가 되신 동시에 믿는 모든 이에게 생명의 빵이 되셨습니다. 여기서 빵을 주시는 분은 더 이상 아버지 하느님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빵은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몸과 피를 말합니다. 요한 복음이 쓰인 당시의 사람들이 이 부분을 묵상할 때 그들은 곧바로 성체성사 안에 계신 생명의 빵을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신앙은 선물입니다      반영억신부


저의 어린 시절 신앙생활은 신부님께서 상주하지 않으시는 공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몰랐지만 주일이면 성당에 가라고 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때로는 가기 싫었지만 꾸중을 듣지 않기 위해서 갔고, 밭에 나가서 풀을 뽑는다든지 집안일을 도와야 하는 때가 되면 그것이 하기 싫어서 성당에 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에게는 본이 아니게 열심한 사람처럼 보여 졌습니다.

이제는 잘 보이려고 정말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공소회장님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신부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직 먼 미래의 일이었지만 저는 지금 신부가 되었습니다. 함께 어울리며 지내던 회장님 아들도 신부가 되었고 한 자매는 수녀님이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작은 시골 공소였지만 결코 작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웃을 통하여 저를 신앙에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결국 하느님께 이끌리는 것은 선물입니다. 믿음은 나도 모르게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물론 인간적인 응답의 책임이 주어지지만 하느님은 한 순간, 순간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하여 우리를 믿음에로 부르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요한6,44).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먼저 불러주셨기에 응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부름을 주님의 초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야말로 은총입니다. 일상의 평범한 삶 안에서 나를 부르시는 하느님 아버지를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선물을 통하여 생명의 빵으로 다가 오시는 아들 예수님을 새롭게 영접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한6,47)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생명의 빵이다..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 한6,48,51).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빵으로 오신 이유는 우리에 대한 ‘눈높이’ 사랑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드러내는 참 하느님이시고 이 땅에 살과 뼈를 지니신 채 사셨던 분으로 우리 곁에 가까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성체성사를 통하여 영적 양식을 제공하여 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당신 안에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선포하시며 우리를 부르셔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비로소 효과 있는 은총으로 역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세상은 하늘이 되었고 하늘은 이미 여기서 열렸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총리 토마스 모어는 매일 미사참례를 하였고 영성체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수많은 국정의 임무를 맡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내 가 신경을 써야 할 일은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나는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생각을 정리하기가 쉽습니다. 하느님을 거스르게 될 기회들도 많지만 나는 매일 예수님께로부터 힘을 얻어서 그 악의 기회들을 멀리할 수 있습니다.

나는 매우 어려운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 빛과 지혜가 필요한데 매일 영성체를 통해 예수님과 그것을 상의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나의 위대한 스승이십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주님을 모심으로써 그 안에서 빛과 지혜를 얻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생명의 빵

 

저는 오늘 두 가지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하나는 현직 총리의 사퇴의사 표명입니다. 총리는 대통령 다음으로 막강한 권한과 책임을 지닌 사람입니다. 대통령의 유고시에는 대통령의 권한대행으로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 총리가 불미스러운 일과 연관이 있다는 의혹으로 사퇴를 표명했습니다. 총리가 사퇴를 하게 된 배경에는 언론의 힘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거의 매일 신문과 방송은 총리의 거취문제를 다루었고,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기 전에 이미 총리는 국정을 수행할 동력을 상실했습니다. 다시금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지중해에서 있었던 난민선의 침몰입니다. 난민을 태운 배가 침몰하였고, 많은 난민들이 죽었습니다. 지중해는 아름다운 바다입니다. 지중해는 유럽 문명이 시작된 곳입니다. 인류의 지성을 잉태하였던 지중해입니다. 그런 지중해에서 가난한, 배고픈 난민들이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철학, 문학, 예술이 꽃피운 곳에서 사람들이 허망하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로 여기며, 신앙생활을 천년이상 해온 지중해에서 여러분 중에 가장 가난하고, 병들고, 헐벗은 이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입니다.’라는 주님의 말씀이 무색하게 되었습니다. 유럽의 지성들은 더 이상 지중해가 난민들의 무덤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교황님께서도 가난한 이들의 외침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말씀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은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는, 오지도 않은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충실한 삶이 과거가 되는 것이고, 지금의 행복한 삶이 미래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시간과 공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영원한 삶은 신앙 안에서 지금을 충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물리학적인 시간, 생물학적인 시간은 유한합니다. 그러나 순간을 말씀 안에서 충실하게 사는 사람은 신앙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끝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그 끝은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바로 순간을 영원처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제나 감사하십시오. 매일 기도하십시오. 항상 기뻐하십시오.’

 조재형가브리엘신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요한 6,44)

여러분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습니까?
당연하겠지요.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답은 '믿음'이랍니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답니다.
우선 영원한 생명이 가능하다고 믿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가 되지요.
예수가 나를 위해 죽었다고 믿는 이는 그가 부활하였슴도 믿습니다.
그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임을 믿습니다.
그래서 그 빵을 먹고 실제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웃기고 있네"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게 됩니다.

옛말에 "밑져 봐야 본전"이라 했나요?
그러니 믿어보세요. 믿는대로 될 것입니다.

오늘은 무조건 믿어 봅시다.
모두가 잘 될 거라고 믿읍시다.
하느님께서 나를 버리실 리 없다고 믿으십시오.
밀로 만든 조그만 제병이 축성되어 그리스도의 몸,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 되심을 믿읍시다.
그러면 그대로 됩니다.

믿지 않는 이에게는 보잘것없는 밀떡으로 남지만
믿는 이에게는 거룩한 성체가 됩니다.

믿는 자가 참으로 복됩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믿음의 축복을 듬뿍 누리시는 오늘 되소서~~^^

 

오상선바오로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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