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요한 21,1-14)

2015. 4. 10. 오전 8: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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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팔일 축제 내 금요일>(2015. 4. 10. 금)(요한 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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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이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불구자를 치유한 뒤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자, 죽은 이들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가이들은 그들을 붙잡아 가두어 두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불구자가 치유되어 일어설 수 있게 된 것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증언한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4,1-12)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많은 물고기를 잡게 하신다. 이 기적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 뵙는다. (요한 21,1-14)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4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7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8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9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11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1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오늘의묵상]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놀라운 일들이 예수님이 메시아, 주님이심을 증언합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공생활 동안 하시던 일들을 이어받아 그분의 이름으로 불구자를 자리에서 일어나게 했습니다. 그들 자신의 능력이 아닌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사두가이들은 내세도 죽은 이들의 부활도 믿지 않기에 이론적인 문제로 사도들과 충돌합니다. 제자들은 이론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기적을 근거로 사두가이들에게 맞섭니다. 사도들은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사람이 치유되었다는 사실을 통하여, 군중 심리에 의해 어처구니없이 사람들이 죽인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며,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구원이 이루어짐을 강조합니다.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한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의 지시에 따라 그물을 던지자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는 기적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 뵙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과 연결 지을 때, 요한 복음의 고기잡이는 교회의 선교 활동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던졌을 때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듯이, 사도들과 교회가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사명을 수행할 때에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결과를 보면서 제자들처럼 우리도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신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 치유와 선교를 포함하여 제자들의 모든 활동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일들을 이루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도움이 없다면 밤새 그물을 던져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오늘 복음의 “백쉰세 마리”의 고기는 온갖 종류의 고기를 말하며, 장차 온 세상 사람들이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면서 모이게 될 것임을 뜻한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여기서 그물이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때, 교회는 모든 사람, 모든 민족, 모든 나라를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보편적이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송영진 모세 신부

4월 10일의 복음 말씀은 요한복음 21장 1절-14절,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시다.'입니다. 제자들이 고기를 잡으러 갈릴래아 호수로 가는데, 그들은 밤새도록 아무것도 잡지 못합니다(요한 21,3).

이른 아침에 호숫가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지라고 말씀하시고, 제자들은 그 말씀대로 해서 큰 고기를 '백쉰세 마리나' 잡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분명히 만났다." 라는 제자들의 증언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자기들이 그분 말씀대로 해서 많은 고기를 잡은 일을 그분이 예수님이었다는 증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난 그분은 우리를 제자로 부르실 때 고기를 많이 잡게 해 주셨던 바로 그분, 예수님이셨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제자들을 부르실 때 거의 똑같은 기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에도 제자들은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루카 5,5). 예수님께서는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루카 5,4).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대로 해서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루카 5,6).

제자들 쪽에서 보면, 그들은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것 같지만, 예수님 쪽에서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당신이라는 것을 증명하시려고 기적을 행하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냥 제자들의 눈을 열어 주시기만 해도(루카 24,31)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기적은, 예수님 쪽에서 단순히 당신이라는 것을 증명하시기 위한 일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시기 위한 일이었다고 해석합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제자들을 부르실 때 행하신 기적은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신 일이기도 하고, 제자들이 앞으로 수행하게 될 사명을 암시하신 일이기도 합니다. 루카복음에서 '깊은 데로' 가라는 예수님 말씀은(루카 5,4) 먹고사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인생에서 영원하고 참된 것을 추구하는 인생으로 나아가라는 가르침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 엎드려서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라고 말한 것은(루카 5,8) 예수님의 권능에 압도되었음을 나타내기도 하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게 되었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제자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해야 하는지에 관한 가르침으로 해석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배 오른쪽'은(요한 21,6)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 또는 '예수님의 지시에 순종하는 삶'을 뜻합니다. (반대로 '배 왼쪽'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삶'을 뜻합니다.)

요한복음의 이야기에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권능에 압도되었다는 말도 없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말도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고, 예수님의 권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서 저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서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요한 21,12)." 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분이 누구인지, 또 어떤 분인지는 분명히 알고 있었으니까 그것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었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중요했다는 것입니다. 

루카복음에 있는 이야기에서 어부들이 밤새도록 한 마리도 못 잡은 일은,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을 나타냅니다. 물고기를 많이 잡으면 좋아하고, 못 잡으면 실망하고... 그냥 그것으로 그만인 일상적인 모습. 요한복음에 있는 이야기에서 제자들이 밤새도록 아무것도 못 잡은 일은, 예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또 '예수님 없이'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실패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또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요한 14,12)."

부활, 승천, 성령 강림 후에 사도들은 항상 예수님과 함께 일했고,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 큰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없이 뭔가를 하려고 시도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 가운데에 '모세 율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 때문에 많은 분쟁과 논란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사도 15,1.5).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예수님의 가르침보다는 자기들의 사상과 신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때문에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사도 회의를 열어야 했고, 새로운 규칙을 정해야만 했습니다(사도 15,6-29). 그 결과, '예수님 없이' 자기들 생각대로 일했던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실패한 일도 많고, 누가 보아도 잘못한 일들도 많습니다. 실패한 일들과 잘못한 일들을 보면, 인간들의 욕망을 예수님의 뜻이라고 착각했거나, 아니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마음대로 해석하고 왜곡했기 때문에 한 일들입니다. (예를 들면, 교회 내부에서 어떤 성인을 박해한 일들, 또는 다른 종교를 증오하고 박해한 일들, 교회가 일으킨 종교 전쟁들...)

그러면 지금은 그런 일이 없는가? 자기 혼자만의 생각을 자기 마음대로 하느님의 뜻이라고 내세우지는 않는가? '사랑 없이' 증오심으로 일하는 경우는 없는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요한 21,12)

잘 주무셨는지요?
아침식사는 잘 하시나요?
요즈은 아침식사 거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한국인의 주식은 아침식사였습니다.
어르신들의 생신상도 늘 아침상이었죠.

아침이 너무 바쁜 현대인의 삶은
아침식사를 무시하는 습관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다수의 의사들도
아침식사가 건강관리에도 아주 중요하니 거르지마라고 충고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침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여러분에게
오늘 직접 아침상을 차려 "와서 아침 먹으라~"고 초대하시네요.

오늘은 꼭 아침식사 하세요.
예수님이 직접 마련해 주신 식사라 여기고 맛잇게 드십시오.
그러면 오늘 하루 여러분의 삶은 기쁨의 생기로 넘칠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매 식사는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은혜로운 음식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는 법이 있을까요? 바람을 피우면서도 음식을 잘 만들 수 있습니다. 교통법규를 어기면서도 운전을 잘 할 수 있습니다. 교만하고 이기적이면서 청소도 잘하고, 공부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은 기술이나 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온전히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3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지식입니다. 하느님에 대해서 아는 신학적 지식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서 아는 성경적인 지식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 하느님을 전하기 어렵고, 하느님의 말씀을 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생활입니다. 교리를 배워야 합니다. 전례의 분위기를 알아야 합니다. 성당에 처음 오는 분들은 그런 신앙생활을 모르기 때문에 당황하기도 합니다. 성당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을 알아야 합니다. 성수, 고상, 성물 등과 같은 말들도 알아야 합니다.

셋째는 인격입니다. 특히 신앙인들에게는 인격이 요구됩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매일 술주정을 하고, 이웃과 싸우고, 남을 속인다면 이것은 본인은 물론 하느님을 욕보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성입니다. 영성은 지식, 생활, 인격을 하나로 묶어주는 촉매입니다. 영성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제 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와 동료 제자들은 자신들의 뜻에 따라서 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그러나 밤을 지새워도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영성이 그런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살면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다가와도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바로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붙잡아 이튿날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이미 저녁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도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가 믿게 되어,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가량이나 되었다.”

오늘의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신앙인들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제1독서 사도행전 4,1-12    복음 요한 21,1-14  송재헌 신부

오늘 복음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다른 누구보다 유독 베드로의 모습이 눈에 띱니다. 돌아가시기 전에는 그렇게 주님을 따랐던 그가 주님께서 돌아가시자 다시금 일상생활로 돌아가 버립니다.

물론 그가 느낀 상실감 또한 이해는 되지만 너무 빨리 포기해버리고 단념해버리는 모습이 과연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던 제자가 맞나하고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한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었는지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겉옷을 걸치고 물 속으로 뛰어듭니다. 차마 예수님을 마주하기가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베드로와 같이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합니다. 우리의 필요가 있을 때마다 주님을 찾고, 이내 외면해버리는 우리의 모습,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주님은 과연 어디에 계시냐고 묻는 모습. 이러한 점에서 우리의 모습은 과연 베드로와 닮아있는 것 같습니다.

또 많이 실수하고, 잘못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꾸준히 아끼시고 사랑해주시는 모습. 그러한 모습들 하나나가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이러한 모습들 중에 베드로는 또 한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바로 예수님 앞에 부끄러워 할 줄 아는 것입니다. 부끄러워 하는 것은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알고, 인정하는 자세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렇게 잘못을 알기 위해서는 자기자신을 바라보는 작업을 먼저 해야만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자신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죄를 짓고, 많은 어려움 속에서 생활하더라도 주님께서 꾸준히 사랑해주고 계심을 비로써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못나고 부족한 존재임에도 사랑해주시는 그 분의 숨결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 축제를 지내는 지금, 만약 예수님께서 제 앞에 나타나신다면 저 또한 어디론가 숨어버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마 이러한 제 자신을 바라보시며 예수님께서는 말씀해주실 것 같습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이 말씀을 주님께서는 여러분들 모두에게 지금도 하시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자신은 부끄럽지만 주님의 부르심과 초대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겠다는 묵상을 해보았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반영억 신부


우리 앞길에는 항상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놓여 있습니다. 이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오르막길은 어렵고 힘들지만 보람도 있고 기쁨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리막길은 쉽고 편하지만 밋밋하고 지루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왕이면 쉬운 길을 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거듭나는 길은 어렵고 힘든 것을 통해서 입니다. 어려움을 겪지 않고는 결코 새로 태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후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었는데 그는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도 “우리도 함께 가겠소.”하였습니다. 일상으로 돌아간 고된 삶의 현장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셨고 그래서 마음을 잡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할 수밖에요.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하며 그들에게 말하였지만 그들은 그분이 예수님인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라는 예수님의 물음은 이미 빵을 준비해 놓고 당신의 식사를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물고기의 유무를 물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의 부활 식사를 위해 너희가 할 수 있는 몫이 무엇이냐?’그분의 나눔에 우리 역시 무엇인가를 준비하기를 바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행이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식사를 위해 아무것도 준비할 수 없었습니다. 밤새 애섰으나 그들의 손에는 그 어떤 것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힘없이‘못잡았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자신들이 먹을 양식조차 구하기 힘든 무력함과 고단함이 느껴지는 이 자리에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이르셨고 이 말씀을 받아들인 순간 나눔의 자리는 풍성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하고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가 베드로에게“주님이십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덜컥 겁을 먹고 호수로 뛰어들었습니다. 자신의 힘이나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해 내지 못할 사건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내려놓는 포기를 통해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방금 잡은 고기 몇 마리를 직접 요리하시고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습니다. 제자들 가운데는 “누구십니까?”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본 것은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지고 난 후 입니다. 이른 아침 왠 젊은이가 나타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했는데 그들이 어부라는 자기의 자존심을 내세워 그대로 행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들은 여전히 주님을 알아 뵙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순명을 한 것입니다. 순명은 주님을 알아보는 눈을 뜨게 했고, 많은 고기를 낚는 기적을 낳기도 했습니다. 순명은 이성과 판단의 희생입니다. 어부의 자존심을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이 희생은 다른 어느 것보다 주님의 마음에 드는 것이었습니다. 삶이 우리 뜻대로만 되지 않는데서 오는 포기의 순간이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근심과 걱정, 실망과 좌절 속에서도 주님께서는 여전히 함께하십니다. 다만 문제에 집착해서 그분의 손길을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내 것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에 나를 맞추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제자들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예수님을 잃은 것이 더없이 큰 아픔이었지만 주님의 부활을 통해 믿음을 키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아계실 때 수 차례 당신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예고했지만 제자들은 그것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누구십니까?”하고 묻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어려움을 거듭날 수 있는 기회로 알고 기뻐하는 오늘이기를 기도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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