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화요일>(2015. 3. 31. 화)(요한 13,21ㄴ-33.36-38)
'주님의 종’의 둘째 노래에서는 종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밝혀 준다. 하느님께서는 종을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준비시키셨다. 그 종은 이스라엘을 주님께 돌아오게 할 뿐 아니라, 주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하는 민족들의 빛이 된다. (이사야서 49,1-6)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 장면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당신을 팔아넘길 것을 예고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유다임을 알고 계신다. (요한13,21ㄴ-33.36-38)
시편 71(70),1-2.3과 4ㄱㄷ.5-6ㄱㄴ.15ㄴㄷ과 17(◎ 15ㄴㄷ 참조)
◎ 주님, 제 입은 당신 구원의 행적을 이야기하리이다.
○ 주님, 제가 당신께 피신하오니,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 의로움으로 저를 건져 구하소서. 제게 귀를 기울이소서, 저를 구원하소서. ◎
○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할 산성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보루시옵니다. 저의 하느님, 악인의 손에서 저를 구원하소서. ◎
○ 주 하느님, 당신은 저의 희망, 어릴 적부터 당신만을 믿었나이다. 저는 태중에서부터 당신께 의지해 왔나이다. 어미 배 속에서부터 당신은 저의 보호자시옵니다. ◎
○ 당신 의로움, 당신 구원의 행적을 저의 입은 온종일 이야기하리이다. 하느님, 당신은 저를 어릴 때부터 가르치셨고, 저는 이제껏 당신의 기적을 전하여 왔나이다. ◎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그때에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신 예수님께서는 21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23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 24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여쭈어 보게 하였다. 25 그 제자가 예수님께 더 다가가,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27 유다가 그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28 식탁에 함께 앉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그에게 축제에 필요한 것을 사라고 하셨거나, 또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30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33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너희는 나를 찾을 터인데, 내가 유다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이제 너희에게도 말한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36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37 베드로가 다시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하자, 38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유다, 베드로> 송영진 모세 신부
예수님께서 제자의 배반을 예고하시자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바라보기만 합니다(요한 13,22). 제자들이 유다의 배반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또는 유다를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이 유다를 믿고 있었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제자들은 서로 믿는 사이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의 배반을 예고하셨을 때 제자들이 근심하면서 저마다 "저는 아니겠지요?" 라고 물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마태 26,22; 마르 14,19). 제자들은 동료를 의심하지 않고 각자 자기 자신을 의심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다가 예수님만 배반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믿고 있는 동료 사도들도 배반했음을 나타냅니다.
요한이 예수님께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라고 대답하시면서,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유다에게 주십니다(요한 13,25-26). 이것은 예수님과 제자들은 함께 식사를 하는 '식사 공동체' 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식사 공동체'는 사실상 '가족 공동체'입니다. 유다는 자기를 사랑하는 가족을 배반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유다가 완전히 예수님을 떠나는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요한 13,30)." 예수님께서 그에게 주신 빵은 회개하라는 '부르심'이기도 하고, 그를 사랑하신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빵을 받고 밖으로 나갔다." 라는 말의 뜻을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지만 배반하고 떠났다."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때는 밤이었다." 라는 말은 실제 시간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고, 유다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빛' 속에 있었던 그가 '사탄의 어둠' 속으로 갔다는 것을 나타내는데, 사실 그는 몸이 '예수님의 빛' 속에 있었을 때에도 마음은 이미 어둠 속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빛'과 '어둠'에 관해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요한 3,19-20)."
유다도 처음에는 충실한 사도였습니다. 그가 언제 무슨 이유로 변절해서 어둠을 더 사랑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수난 예고 말씀을 하실 때 그 말씀을 듣고 나서 흔들리기 시작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여간에 예수님께서 그를 사도로 뽑으신 것은 그에게 그만한 자격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 자신이 스스로 자격을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세 번이나 당신을 모른다고 할 것도 예고하십니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요한 13,38)."
그런데 공관복음에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한 것은 아니고 자기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는 말만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뜻으로는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는 말은 예수님과 관계가 없다는 뜻이고,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는 뜻도 됩니다.
어떻든 베드로의 행동도 '배반'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유다가 배반한 것과는 다릅니다. 유다의 배반은 믿음을 잃어서 예수님을 팔아넘긴 일이고, 베드로의 배반은 용기가 부족해서 관계를 부인한 일입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유다는 그냥 가버렸고, 베드로는 곧바로 회개하고 돌아왔다는 점입니다.
'닭이 울기 전'은 '아침이 되기 전'이고, '새벽'을 뜻합니다. 새벽은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되기 전, 어둠과 빛의 경계선입니다. 아직 어둡지만 빛이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은 아니었음을 뜻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할 때에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그 어둠은 금방 지나갔고, 그는 바로 밝은 빛 속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베드로는 ...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마태 26,75)."
예수님의 수난은 제자들에게도 가혹한 시련의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예고도 하셨습니다. "오늘 밤에 너희는 모두 나에게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 성경에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 떼가 흩어지리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마태 26,31)."
당시에 제자들의 상황은 목자를 잃고 흩어진 양들과 같았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하는 베드로의 모습도 목자를 잃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양의 모습일 뿐입니다.
만일에 우리에게도 그런 시련이 닥치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상투적인 말 같지만, 정답은 '믿음'과 '기도'입니다. 헤로데가 교회를 박해하면서 야고보가 순교하고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목자를 잃은 신자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기도'뿐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사도 12,5)." 사실 '기도'는 우리가 해야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첫 번째 일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좋은 일입니다.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 무수한 추측과 상상과 신학과 연민을 불러일으켜 온 인물입니다. 세상 끝 날까지 논쟁거리가 될 인물인 듯합니다.
복음서에 따라 조금씩 강조점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요한 복음에서 분명한 것은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수동적으로 배반을 당하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늘 복음에 따르면, 유다가 먼저 예수님을 배반하고 그다음에 예수님께서 누가 배반했는지 아시게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먼저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신 다음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아시면서도, 유다에게 그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라고 이르십니다. 또한 빵을 함께 나누는 벗이 배반하리라는 내용은 시편 41편 10절을 암시하고 있어서, 유다의 배반이 이미 구약에 예언되었고 따라서 하느님의 계획 안에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이런 행동을 막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당신의 수난을 향하여 나아가십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에도, 요한 복음에서는 유다가 입맞춤으로 예수님임을 표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먼저 당신 자신을 밝히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피해 가려 하지 않으십니다. 당신 뜻을 거슬러 그들이 강제로 죽이도록 당신을 내맡기지도 않으십니다. 또한 끝까지 피하려 하셨다면 피할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다의 계획을 막으실 수 없었겠습니까? 당신께서 하고자 하셨다면, 사람들이 요구하던 대로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길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기에(요한 15,13 참조),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사랑으로 죽음을 받아들이십니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이사 49,3)
주님의 종은 어떤 사람일까요?
어제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는 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두번 째 주님의 종의 노래는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이'라고 하네요.
여러분은 어떻게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나요?
나의 영광을 드러내기에 급급하진 않나요?
어떻게 해야 나의 영광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이가 될 수 있을까요?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49,4)
나의 권리와 보상은 내가 요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닌데
그걸 얻겠다고 용을 쓰며 산 것이 헛고생이었다네요.
내 권리와 내 보상은 주님께 있음을 잊지 말아야
늘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답니다.
오늘 내 권리를 누리고 내 보상을 받으려고 애쓰기보단
모든 공로와 영광을 주님께 돌려드림으로써
참다운 나의 권리와 보상을 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