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2015. 4. 25. 토)(마르 16,15-20)

2015. 4. 25. 오전 7: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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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2015. 4. 25. 토)(마르 16,15-20)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루살렘 출신으로, 바오로 사도와 바르나바 사도가 선교 여행을 할 때 동행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사도 12,25; 13,5.13; 15,37-39; 콜로 4,10 참조). 본디 이름이 ‘요한 마르코’(사도 12,12.25 참조)인 그는 또한 베드로 사도의 제자로 일했으며(1베드 5,13), 주로 안티오키아와 키프로스, 로마에서 선교 활동을 펼쳤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기원후 64년 네로 황제의 박해가 있고 난 뒤인 65년에서 70년 사이에 주로 베드로 사도의 가르침을 기초로 삼아 로마에서 「마르코 복음서」를 기술하였다. 이 복음서가 네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저술된 것이다. 

사도행전과 바오로 서간에 따르면, 마르코는 바오로의 제1차 선교 여행에 함께하기도 했고, 바오로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도 그의 곁에 있었다. 마르코는 베드로 사도와도 가까웠기에, 베드로 1서의 마지막 인사에서는 마르코를 “나의 아들”이라 지칭한다. (베드로 1서 5,5ㄴ-14)

마르코 복음은 이렇게 사도들의 삶을 잘 알았던 요한 마르코가 썼다고 전해진다. 그는 자신이 쓴 복음서의 끝 부분에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복음을 선포하도록 제자들을 파견하셨음을 전한다. 제자들이 말씀을 전할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어 그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마르코 16,15-20복음)

 

 

 40년간 성경을 가르치신 교수 신부님이 퇴임을 앞두고 개교기념일 미사 강론에서 학생들에게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단어 하나 쉼표 하나도 온 힘을 다해서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하시면서, 아직은 그것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없더라도 언젠가는 깨닫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신부님의 오랜 삶에서 나온 말씀이기에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 신부님은 퇴임 강연 제목도 당신 이름이 아니라 요한 묵시록에 관한 토론으로 하셨습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도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사실 마르코는 우리에게 대단히 큰 은인입니다. 전해지는 신약 성경의 네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된 것이 마르코 복음이지요. 그는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은 아니었어도, 예수님과 가까운 시대에 처음으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하여 우리에게 전해 준 인물입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그리스도의 생애 안에서 일어난 사건을 엄밀한 의미에서 연대순으로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에 관한 계시와 함께, 수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으로 마감되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신학적으로 기술하여,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의 사람들이 쉽게 기쁜 소식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마르코 복음사가가 오늘 그의 축일에 바라는 것은 우리가 그를 알아보고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심혈을 기울여 기록한 복음을 우리가 한마디도 흘리지 않고 소중하게 받아 읽고 묵상해서 예수님을 알고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의 끝 부분에는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파견하여 보내시는 분은 주님이시고, 제자들은 그분의 이름으로 표징을 행합니다.
이처럼 제자들이 전하는 것은 예수님에 관한 말씀과 행적뿐이고, 제자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행한 표징들도 그분의 말씀을 확증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국 표징을 행하시는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사도들과 복음사가들, 곧 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역할은 복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이게 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모습은 늘 그 말씀 뒤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습니다.

 

<복음>      송영진 모세 신부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 16,15-16)."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하신 마지막 명령이고, 사도들뿐만 아니라 모든 신앙인에게 하신 명령입니다. 신앙인은 복음을 듣고 믿게 된 사람이고, 동시에 자기가 들은 복음과 자기의 믿음을 증언하고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온 세상'은 글자 그대로 온 세상입니다. 복음은 세상 모든 곳에 선포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종교가 국교로 정해져 있는 곳에도, 또는 감옥처럼 폐쇄되어 있는 곳에도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먼저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할 사람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뜻으로는 '모든 사람'이지만, 이 말을 글자 그대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동물과 식물을, 즉 자연을 하느님 뜻에 맞게 보살피는 일도 복음화 사업에 포함됩니다. (자연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복음'은 일차적으로는,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는다는 기쁜 소식"이고, 그 구원을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라는 것, 그리고 예수님은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셨다는 것, 우리도 그렇게 부활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 등도 모두 복음입니다.

'선포' 라는 말은, 세상에 널리 알린다는 뜻 그대로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또 공개적으로, 공공연하게 전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교는 비밀 조직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자신의 신앙을 능동적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그것은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놓는 것과 같습니다(마르 4,21). 만일에 자신의 신앙을 사람들 모르게 감추고 있다면, 즉 등불을 켜서 감춘다면, 그런 경우에는 그 등불을 잃게 될 것입니다(마르 4,25). (사람들 모르게 감추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라는 말씀은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믿는다면 믿는 사람답게 살아야 하고, 믿음을 행동으로(삶으로) 실천해야 합니다(마태 7,21). 여기서 '구원'이라는 말은, 세속적이고 현세적인 '복'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영적인 구원, 즉 영원한 생명을 뜻합니다.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단순히 "신자가 아닌 사람은 무조건 지옥에 갈 것이다." 라는 뜻이 아닙니다. 자기 탓이 아닌 이유로 신앙을 가질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도 복음을 전해 주지 않아서 못 들었거나, 또는 여러 가지 이유로 본의 아니게 신앙을 가질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라면, 그러나 정말로 착하게 산 사람들이라면, 하느님께서 분명히 정상참작을 해 주실 것이고, 어떻게든 구원하실 것입니다.

신앙인들 가운데에도 단죄를 받을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죄를 짓고,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예수님의 계명을 실천하지 않고... 그러면 단죄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구원의 진리를 갈망하던 옛날 조선의 선구자들은 누가 와서 복음을 선포하기도 전에 먼저 스스로 복음을 찾아서 헤맸고, 복음을 듣게(읽게) 된 후에는 즉시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오늘날에는 그렇게 힘들게 찾아 헤매지 않아도, 아주 쉽고 편하게 복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책들, TV, 라디오, 영화, 인터넷 등등... 그런데 너무 쉬운 일이 되어서 그만큼 절실함이 줄어든 것일까?

인터넷의 경우, 이것은 복음을 선포하는 쪽에서 볼 때에는 대단히 유용한 도구이고,

분명히 '하느님의 선물'이고 천사의 도구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사탄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기쁜 소식'이 아닌 '해로운 유혹'과 거짓 정보가 너무나도 많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책이나 TV나 라디오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도구라고 해도 천사가 사용하면 구원의 지름길이 되고, 사탄이 사용하면 멸망의 올가미가 됩니다.

어쩌면 정보가 너무 많다는 것 자체가 사탄의 유혹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분산시켜서 복음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 그것도 사탄의 입장에서는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쓸데없는 것에 한눈팔지 말아야 하고, '기쁜 소식'과 '해로운 유혹'을 잘 구분해야 하고, 우리를 구원하는 '기쁜 소식'만 찾아서 들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겉으로는 복음처럼 보여도 복음이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게 저렇게 예수님께 기도하면 (세속적인) 복을 받을 것이고, 하는 일마다 성공할 것이라고 장담하는 말...

그런 말은 요즘에 자주 듣게 되는 사탄의 유혹인데, 겉으로는 기도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세속적인 부귀영화를 추구하라고 유혹하는 말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상관이 없고, 그래서 복음이 아니고, 우리를 하느님과 예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 사탄의 유혹일 뿐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듣기에 좋은 말만, 또는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하면서 우리를 유혹하는 존재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듣기에 거북하고 불편한 말이더라도 영혼에 유익한 말이라면 받아들여야 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회개하라는 말은 현재 죄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듣기 싫은 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구원을 받으려면 들어야 할 말입니다.

 

어렵다고 포기하면  반영억신부

 

어떤 사람이 전혀 새로운 사실을 얘기하면 호기심을 가지고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되도 않는 소리라고 외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기대를 가지고 귀를 기울이는데 전혀 다른 소리를 하면 속이 상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대놓고 뭐라 하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불만을 갖게 됩니다. 누구든 자기가 기대하고 바라는 쪽으로 얘기하면 신이 나고 기분 좋아 하지만 반대로 얘기하면 못마땅해 하고 담을 쌓게 됩니다. 그러나 큰 사람은 자기의 기대를 뛰어넘는 소리에 귀 기울일 줄도 알고 거기서 깨우침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빵에 관해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신 자신을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주신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듣기에 거북해 하였습니다. 모르면 스승의 가르침을 먼저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인데 그렇지 못하고 속으로 투덜대고 있었습니다.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거부하는 사람에게 무엇인들 비위를 맞출 수 있겠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런 사람은 있습니다.

 

어른 신부님들의 말씀을 기억해 봅니다. 본당의 책임을 맡으면 적극적으로 따르는 사람이 3분의 1이라도 되면 성공이라네. 3분의 1은 관망하는 사람이고 또 3분의1은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그러니 누구의 말에 흔들리지 말고 하느님 마음에 드는 것이라면 용기를 가지고 추진하게.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에도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인간적인 나약함을 지니고 사는 신부야 오죽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요한6,67) 이 말씀은 결국 떠날 테면 떠나라. 잡지 않겠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남아있던 제자 중 시몬 베드로가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 한6,69) 하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어야 하겠습니다. 너도 떠나겠느냐? 아닙니다. 당신에 대해 아직 잘 모르지만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따르다 보면 당신을 알게 되리라 확신하며 그저 따르겠습니다. 훗날 당신을 등질지 모르지만 지금 이순간만은 당신이 나의 전부입니다. 당신만을 따르겠습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당신을 따르고 당신을 느끼기까지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당신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고 있음을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기적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당신의 살과 피를 내 주시는 것만으로도 분에 넘칩니다. 당신의 몸을 생명으로 주시지만 합당하게 모시기에도 벅찹니다. 그러나 지금 포기하면 당신을 영원히 차지할 수 없기에 당신께 매달립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6,68).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마르 16,20)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세상 곳곳에 복음을 전하라" 하셨다고 오늘 축일을 지내는 마르코 복음사가는 말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실제로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고
그 기쁜 소식을 우리도 전해듣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기쁜 소식을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주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십니다.

그런데 나쁜 소식, 음울한 소식은 함부로 전하지 마십시오.
기쁜 소식은 감춰두지 말고 지체없이 퍼트리십시오.

오늘 여러분에게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주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습니다. 저녁에는 11시 전에는 자는 편입니다. 이른바 아침형 인간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때문에 새벽미사를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아침에 기도와 묵상을 하면 하루를 풍요롭게 보낼 수 있습니다. 정해진 일들을 충실하게 하는 것은 잘하는 편이지만 창의적인 일을 하는 데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모험을 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런가 하면 제 친구 중에는 새벽 2시에서 3시까지 일을 하는 신부님이 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저녁형 인간입니다. 사람들과 친교를 잘 나누는 편이고, 술자리도 오래 하는 편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어서 새벽미사가 어렵다고 하는 편입니다. 그런가 하면 기획력이 뛰어나고, 창의적으로 일을 하는 편입니다. 우리는 도시에 살고 있고, 도시에는 밤에도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유형의 생활 습관이 좋다고 단정하기 보다는 자신의 생활 습관을 통해서 나름대로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활 습관을 가지고 계신지요?

예수님의 생애를 알려주는 복음서는 4가지가 있습니다. 초대교회에는 더 많은 복음서가 있었지만 교회는 그 중에서 마르코, 루가, 마태오, 요한의 복음서를 성서로 받아들였습니다. 4복음서는 그 상징이 사자, 황소, 사람, 독수리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는 각 복음서의 저자가 처한 공동체의 상황을 이야기 하고 있으며, 복음서의 저자들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기록된 마르코 복음서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시작합니다. 이 외침을 마치 사자의 외침처럼 이해하였습니다. 루가 복음서는 제사장 즈가리야의 이야기를 합니다. 제물로서 가장 적합한 것은 황소라고 이해하였습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예수님의 족보를 먼저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심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요한 복음서는 말씀이 태초에 있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말씀을 가장 높이 날 수 있는 독수리로 이해하였습니다. 4복음서는 서로 틀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애와 삶을 각자의 관점으로 이해하여 전해 준 것입니다. 우리는 4복음서를 통해서 예수님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기쁜 소식입니다. 교회는 시간이 지나면서 기쁜 소식을 조금씩 다르게 이해하였습니다. 초대교회에서 기쁜 소식은 예수님께서 전한 하느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께는 세상의 나라와는 다른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였고,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를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달랐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말씀과 표징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도 기쁜 소식이었지만 예수님의 말씀과 표징이 새로운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새로운 계명도 기쁜 소식이었고, 그분께서 하신 산상 설교도 기쁜 소식이었고, 그분께서 보여주신 표징들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사건들이었습니다.

죽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한 초대교회 공동체는 이제 새로운 차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였습니다. 그것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진정한 기쁜 소식은 예수님은 죽었지만 부활하여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그 믿음이 박해를 이겨낼 수 있게 하였고, 그 믿음이 순교를 영광으로 생각하게 하였고, 그 믿음이 땅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죽음을 이긴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모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무엇으로부터 구원하였을까요?

 

그것은 바로 , 죽음, 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죽으셨지만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40일 단식기도 후에 악마로부터 유혹을 받으셨지만 모두 물리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들 역시 , 죽음, 으로부터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복음의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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