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간 화요일]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요한 10,22-30)

2015. 4. 28. 오전 6:4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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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간 화요일]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요한 10,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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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로 흩어진 신자들은 여러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한다. 안티오키아에 교회가 세워지고, 신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된다. 바르나바가 바오로를 안티오키아로 데려오는데, 안티오키아 교회는 장차 이방인들을 향한 선교 기지가 될 것이다. (사도행전 11,19-26)    예수님께서 성전 봉헌 축제 때 성전에서 유다인들의 질문에 대답하신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이미 분명히 밝히셨고 또한 그분께서 하시는 일도 그분을 증언하지만, 유다인들은 믿기를 거부한다, (요한 10,22-30)     

 시편 87(86),1-3.4-5.6-7(◎ 117〔116〕,1ㄱ)
◎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민족들아. (또는 ◎ 알렐루야.)
○ 거룩한 산 위에 세운 그 터전, 주님이 야곱의 어느 거처보다, 시온의 성문들을 사랑하시니, 하느님의 도성아, 너를 두고 영광을 이야기하는구나. ◎
○ 나는 라합과 바빌론도 나를 아는 자로 여긴다. 보라, 에티오피아와 함께 필리스티아와 티로를 두고, “그는 거기에서 태어났다.” 하는구나. 시온을 두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여기서 태어났으며, 지극히 높으신 분이 몸소 이를 굳게 세우셨다.” ◎
○ 주님이 백성들을 적어 가며 헤아리신다. “이자는 거기에서 태어났다.” 노래하는 이도 춤추는 이도 말하는구나. “나의 샘은 모두 네 안에 있네.” ◎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22 그때에 예루살렘에서는 성전 봉헌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때는 겨울이었다. 23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에 있는 솔로몬 주랑을 거닐고 계셨는데, 24 유다인들이 그분을 둘러싸고 말하였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26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Culture] Happy Hanukkah!

 

<나를 믿고 따라라. 그러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송영진 모세 신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그러면서 예수님께 적대적인 유대인들이 이렇게 요구합니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요한 10,24)." 이 말은, 믿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한 분명한 근거를 얻기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그들의 요구대로 "나는 메시아다." 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면, 그들은 바로 가서 예수님을 고발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직접 "나는 메시아다." 라고 말씀하신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암시나 비유를 통해서, 또 여러 가지 기적을 통해서 당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드러내신 일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직접 분명하게 말씀하시지 않은 것은 고발당하지 않으려고 그러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메시아(그리스도)이신 분이다." 라는 말은, 예수님의 선언을 그대로 받아서 반복해도 되는 말이 아니라, 우리 쪽에서 먼저 깨닫고 믿어서, 믿음으로 고백해야 할 신앙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가짜 메시아들은 "나는 메시아다." 라고 자기들이 먼저 말합니다. 그들은 메시아로서 해야 할 일들은 하지 못하면서 자기들의 말을 믿으라고 강요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시는 '메시아의 일들'을 보고 당신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요한 10,25)."

"내가 이미 말하였다." 라는 말씀은, 당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드러내신 비유나 설교, 특히 말씀으로 기적을 일으키신 일들을 가리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하느님의 일들'이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일들을 보고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믿은 사람들도 많지만, 예수님을 믿기가 싫어서 증거 자체를 외면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요한 10,26)." 이 말씀은, 당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이기도 하고, "나를 믿고 내 양이 되어라." 라는 호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믿는 사람들만을 위한 목자가 아니고, '모든 사람'의 목자이신 분이고, '모든 사람'은 목자이신 예수님의 양들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를 거부하는 '안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양이 되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는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안 믿는다."가 아니라, "너희도 내 양인데, 나를 안 믿음으로써 너희 스스로 나의 양이 되기를 거부하고 있다."입니다.)

예수님의 양이 되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것은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안 받겠다고 스스로 거부하는 것입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요한 10,27-28)." 이 말씀을 간단하게 줄이면, "나를 믿고 따라라. 그러면 내가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입니다.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보호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아무도'는 '그 어떤 것도'입니다. 어떤 고난과 시련도, 사탄도, 죽음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을 빼앗아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따른다면, 아무리 심한 고난과 시련을 겪어도, 그러다가 죽게 되어도,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요한 10,29)." 이 말씀에서 '두려움'에 관한 다음 말씀이 연상됩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 10,28)."

박해자들(독재자들)은 신앙인의 육신을 죽일 수는 있어도 영혼을 죽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박해자들(독재자들)의 육신과 영혼을 모두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입니다.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라는 말은 그 어떤 것도 하느님보다 강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종교 박해뿐만 아니라 자연재해, 질병, 전쟁... 등등 인간을 위협하는 '모든 악'에 다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은(섬겨야 할 분은) 하느님뿐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영혼의 멸망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만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은 예수님만 두려워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30)." 하느님께서는 모든 권한을 예수님께 주셨습니다(요한 3,35). 그래서 하느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혹시 사람들 가운데에는 "하느님만 믿으면 되고 예수는 안 믿어도 된다.", 또는 "예수님만 믿으면 되고, 하느님은 안 믿어도 된다." 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예수님에 대한 신앙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양들(요한 21,15)'은 곧 '하느님의 양들'이고, 예수님께서 양들에게 주시는 생명은 곧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입니다.

 유대인 절기 &quot;하누카(Hanukkah)&quot; - 이스라엘 빛의 축제

요한 복음 5―10장에서는 예수님께서 구약 시대부터 지내 오던 축제들과 관련하여 가르침과 표징을 보여 주시기 때문에, 어떤 축제가 배경으로 제시되는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배경은 예루살렘에서 거행되던 성전 봉헌 축제입니다. 이는 기원전 164년,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 통치 시절에 막강한 외국의 압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정복하고 그곳에서 이교 신에게 제물을 바치며 성전을 모독했을 때, 유다 마카베오가 그 성전을 되찾아 정화한 다음 다시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이 축제 때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에서, 당신이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선언하십니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요한 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에 나타나는 메시아의 비밀 사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당신이 누군지를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그렇지만 믿지 않는 유다인들에게 그러한 주장은 신성 모독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이어지는 단락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보내신 내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다 해서”(요한 10,36)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말할 수 없다고 응답하십니다. 여기서는 성전 모독과 성전 봉헌의 문제가 되풀이됩니다. 유다 마카베오가 성전을 하느님께 다시 바쳤듯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성을 주장하시며 새롭게 그 축제의 주인이 되십니다. 아울러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가리켜 성전이라 하셨습니다(요한 2,21 참조).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신성 문제, 지금의 우리에게는 그저 당연한 교리의 한 부분이 된 듯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에게 그 주장은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하는 이유가 되었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 믿음이 순교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이 부활 시기를 지내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고백하는 우리 신앙의 핵심을 다시 되새겨 보면 좋겠습니다.

 

언제까지 속을 태울 작정이냐?    반영억 신부

 

중남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이 위경련과 인두염 증세를 보여 1~2일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청와대가 밝힌 것을 놓고 야당 대변인은 "국가 원수인 박 대통령의 신변 정보가 이번처럼 낱낱이 공개된 사례가 있었는지에 대해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대통령의 건강 상태 등 신변에 관한 사항은 대통령 경호뿐 아니라 국가의 안위, 외국인 투자 등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대 사안"이라며 "대통령의 신변 정보를 함부로 공개한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청와대의 신중한 처신을 당부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여당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청와대는) 병명은 물론 구체적인 신변 정보를 언급한 적이 없다"며 "국민들의 관심이 지대하고 걱정이 큰 탓에 증상만 간략히 설명 드린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한 것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일까요? 혹 '링거 남미순방'이라는 것을 먼저 얘기하여 동정을 받으려 한 것은 아닐까요? 또한 그것이 못마땅해서 흔드는 것은 아닐까요? 같은 내용을 보는 시각은 자기 입장에 따라 너무 다릅니다. 

지난 25일 발생한 네팔 대지진으로 사망자가 네팔에서만 4000명을 넘어섰다고 네팔 경찰은 밝혔습니다. 또 지진으로 인한 눈사태로 에베레스트산 베이스캠프에서 18명이 사망했으며 주변국 인도에서 61명, 중국 티베트 자치구에서 25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피해가 더 커지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들도 우리의 이웃입니다. 이들을 위한 기도와 도움의 손길이 우선 필요합니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던진 질문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예수님께서 ‘너는 언제까지 내 속을 태울 작정이냐?’하고 유다인을 향해 하셔야 할 말씀이었습니다. 말썽쟁이 자녀를 둔 어버이 마음입니다. 여러 표징을 보여주면서 이미 다 말하였는데도 믿지 않으면서 진리를 알고 싶어 하는 소망이 있는 것처럼 교묘히 말하는 그들을 모를 리 없으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이 말씀은 입으로 이런 소리 저런 소리 하지 말고 내가 지금까지 한 일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먼저 믿어라. 그리고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좋은 소리도 내가 마음을 닫으면 들리지 않습니다. 들리지 않는 것뿐 아니라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들려서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고 하신 말씀은 믿지 않는 유다인들에게 걸림돌이 됩니다. 어떤 것에 대한 자기의 지식, 기대나 생각, 바람, 선입견이 그를 귀먹고 눈멀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먼저 나를 버려야 합니다. 내가 마음을 비우고 상대의 것을 내 안에 담아주지 않는 한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된 것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목숨을 내 놓은 아들의 순명에서 온 것입니다.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 놓은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22,42).

내 뜻을 이루려다 보면 무리가 생기는 법입니다. 그리고 거짓 포장과 술수가 지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속을 태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하느님과 하나가 되신 예수님을 본받아 내 뜻을 접고 주님의 뜻을 헤아려야 하겠습니다. 지금은 마음의 문을 열어 예수님을 가슴에 모셔드려야 할 때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달려 있는 듯이 하십시오! 또한 모든 것이 하느님께 달려 있는 듯이 기다리십시오”(성 이냐시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복음을 전하시며

저는 한국인입니다. 한국에서는 실감을 많이 못하지만 외국에 나가면 제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를 인정해주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에서 발행한 여권입니다. 여권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이 여권을 소지한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최대한 편의를 제공해 주기 바랍니다.’ 한국에서는 당연히 한국말을 하고, 외모도 비슷하고, 먹는 음식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한국의 역사, 문화, 전통을 배웠고, 같은 사건, 경험, 시대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함께 감동하고, 감께 울고, 함께 기뻐하게 됩니다.

 

하지만 외국에서 생활하면 많은 것들이 바뀝니다. 언어도 다르고, 음식도 다르고, 문화도 다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적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도 2년 동안 캐나다에서 지냈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컸습니다. 맵고, 칼칼한 음식을 좋아하는 저는 심심하고, 담백한 음식들 때문에 고생했습니다. 2006년 월드컵 경기에서 한국과 프랑스의 경기가 있었고, 당시에 캐나다 토론토에 있던 한국 사람들은 모두 함께 응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거의 난민촌에 가까운 수준이었습니다. 춥고, 배고프고,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거치면서 산업화를 이루었고, 그런 과정에서 우리는 거의 병영 수준의 사회를 경험했습니다. 학교에서는 보건체조를 하였고, 조회를 하였습니다. 교련을 배워야 했고, 정부는 산아제한을 하였고, 기생충 박멸운동을 하였습니다. 머리가 길면 잘랐고, 치마가 짧으면 단속을 받았습니다. 노래와 시도 국가의 통제를 받아야 했습니다. 노동자의 권리 주장은 강력하게 통제되었습니다. 국가의 통제는 거의 군대의 수준과 비슷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국민 스스로의 힘으로 광장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장과 권리를 광장에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지도자를 선출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지난 60년 동안 대한민국이 거쳐 온 시대 상황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은 그 사람들은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요? 그리스도인은 누구의 보호를 받고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사람입니다. 혈연의 틀을 벗어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은 여권으로 자신을 보호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세상의 논리와 세상의 것들에 복종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말씀 그리고 그분의 표징을 본 받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분은 끊임없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 하느님의 거룩함이 드러나는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느님께서 거룩한 분이신 것처럼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그분은 권위가 있으셨지만 권위적이지 않으셨습니다.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었지만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소유하려는 욕망에서 자유로울 때, 참된 진리를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나누고 연대한다면 분명 이 땅에서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분은 몸소 십자가를 지고 가심으로써 그리스도인이 가야할 길을 명확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과정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3가지를 당부하셨습니다.

첫째는 병자들을 고쳐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병자입니까? 하느님을 믿었으면서도 세상의 욕심 때문에 하느님과 멀어지는 사람들이 병자입니다. 육신은 건강해도 우리는 모두 조금씩 영적으로 병들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어째서 남의 눈에 있는 작은 티는 보면서 내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 또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하느님과 함께하면 영적인 치유가 일어납니다. 사도들은 바로 그런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둘째는 마귀들을 쫓아내라는 것이었습니다. 마귀는 머리에 뿔이 달린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아닙니다. 머리를 풀고 하얀 소복을 입고 길에 서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신앙인들 중에도 마귀의 유혹 때문에 흔들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귀는 달콤한 유혹으로 우리들의 신앙이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돈 마귀 때문에 성당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 마귀 때문에 친구를 배반하고, 양심을 속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 마귀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만의 마귀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가족들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면서도 사람이 되셨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하느님께 순종하셨습니다. 교만함은 우리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커다란 마귀의 유혹입니다.

 

세 번째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기쁜 소식은 내가 기뻐야 전할 수 있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고, 세상의 명예로 얻을 수 없는 참된 기쁨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이 기쁨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이웃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바르나바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르나바 사도는 예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따랐습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병자를 고쳐 주었으며, 마귀들을 쫓아내었습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하루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우리가 받은 것들을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재형신부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30)

내가 누군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그 사람 안에 온전히 흡수된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사랑의 관계일 때만 하나가 될 수 있겠지요.

부부가 하나라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서로 사랑하며
자신을 온전히 상대에게 내어준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고 하시네요.
아버지와 나는
그 누구보다 더 완전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고백이지요.

여러분은 누구와 하나입니까?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누군가와 하나됨을 체험한 사람은
하느님과 하나됨이 무엇을 말하는지 더 명료하게 알게 됩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런 분들이길 소망합니다.
그 완전한 사랑을 위해
끊임없이 내어주는 훈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오상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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