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간 월요일] <나는 양들의 문이다.>(요한10,1-10)

2015. 4. 27. 오전 8: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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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4주간 월요일] <나는 양들의 문이다.>(요한10,1-10)  

 

할례 받은 신자들은 베드로에게, 그가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었다는 것을 비난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일이 주님의 명에 따른 것임을 설명한다. 베드로 또한 처음에는 이방인의 집에 가거나 그들에게 세례를 주려는 마음이 없었으나, 환시를 통해 하느님께서 그들을 부정하게 여기지 않으심을 알고 로마인 코르넬리우스에게 세례를 준 것이다.(사도행전 11,1-18)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양들이 생명을 얻게 하려고 오셨으며, 당신을 통하여 모든 이가 구원되기를 바라신다. 예수님은 구원에 이르는 문이시다. (요한10,1-10)   

 

시편 42(41),2-3; 43(42),3.4(◎ 42〔41〕,3ㄱㄴ 참조)
◎ 제 영혼이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또는 알렐루야.)
○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 가서 뵈오리이까? 
○ 당신의 빛과 진리를 보내시어, 저를 인도하게 하소서. 당신의 거룩한 산, 당신의 거처로 데려가게 하소서. 
○ 저는 하느님의 제단으로 나아가오리다. 제 기쁨과 즐거움이신 하느님께 나아가오리다. 하느님, 저의 하느님, 비파 타며 당신을 찬송하오리다.     

 양의 문

<나는 양들의 문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2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3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4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양의 문 (요한복음 10장 1절 ~ 10절) 조약돌 묵상

우리는 모두 유다인이 아닌 이방인입니다. 그러니 베드로나 예루살렘 신자들보다 코르넬리우스의 처지에서 다음 얘기를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겠습니다.
헌혈을 하러 갔더니 어떤 지역에 살았다고 “영구 배제”랍니다. ‘영구 배제’, 그 표현이 너무 강해서 5년이 지났는데도 잊히지 않습니다. 유다인과 이방인의 관계에서 이방인의 위치가 바로 ‘영구 배제’였습니다. 우리는 본디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 그래서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이 함께 식사라도 하면 부정을 타게 될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도 유다인이었고, 그래서 이방인의 집에는 가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처음에는 사도들을 비롯한 유다인들이 ‘영구 배제’ 대상이던 우리 이방인들을 초기 교회 공동체 안에 어렵사리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환시에서 본 짐승들을 잡아먹지 않으려 했다는 것은, 이방인들을 공동체에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인간적 저항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장벽을 무너뜨리십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사도 10,15). 양들의 목자이며 문이신 예수님께서는 양들이 모두 그 안으로 들어와 생명을 얻어 누리기를 바라십니다.

우리 모두가 ‘영구 배제’였다가 교회에 받아들여진 이방인들임을 생각하며, 교회와 교회 안의 모든 공동체는 상대방을 사려 깊게 받아들임으로써 사람들 사이의 분열과 배척을 극복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드러내는 도구 역할을 해야 하겠습니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그분이 누구인지 알 뿐 아니라, 그분 말씀의 의미를 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분을 따라나서서 그 말씀을 실천할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새롭게 시작되고, 그 덤으로 평화를 넘치게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송영진 모세 신부

"나는 양들의 문이다.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7-10)."

우리 앞에는 우리가 열고 들어갈 수 있는 많은 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문'은 하나뿐입니다. 그 문을 제외하고 다른 문은 모두 '죽음과 멸망의 문'입니다.

'문'이라는 표현에서 '좁은 문'에 관한 예수님 말씀이 연상됩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마태 7,13-14)."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문입니다. 그런데 그 문은 인간적으로는 재미도 없고, 힘들 때가 많고, 그래서 들어가기가 어렵게만 느껴지는 '좁은 문'입니다. 그래도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살고 싶다면 그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합니다. 

반대로 다른 문은 지금 당장 재미있고, 편하고, 들어가는 것이 쉽다고 생각되는 넓은 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황홀한 쾌락을 준다고 해도 마약은 마약일 뿐입니다. 지금 당장 재미있고 즐겁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정신을 잃으면 안 되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멸망을 피해서 생명을 얻으려면, 재미없고 힘든 일이라고 해도 나만 믿어라." 라고 호소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양들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온 도둑은 양들에게 "나는 도둑이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도둑은 양들에게 "내가 진짜 목자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양들이 바라는 것들을 주겠다고 하면서 유혹합니다. 그래서 그를 따라가는 양들은 그가 목자인 줄 알고 따라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거짓 메시아와 거짓 예언자들은 도둑이며 강도다." 라고 말씀하시는데, 실제 상황에서는 거짓 메시아나 거짓 예언자들이 "나는 가짜다." 라고 말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사탄이 "나는 사탄이다." 라고 말하는 경우도 없습니다.) 그들은 항상 "내가 진짜다." 라고 주장하고, 여러 가지 그럴듯한 방법으로 그것을 증명하는 척 하면서 사람들을 속입니다.

사실 가짜라는 것을 안다면, 거짓 메시아나 거짓 예언자를 믿고 따라갈 사람은 없습니다. 진짜라고 믿으니까 믿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짜를 잘 식별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겉으로는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물질적인 부귀영화만 추구하라고 부추기는 사람, 세속적인 쾌락을 즐기라고 권하는 사람, 하느님의 계명을 거스르는 일을 하게 만드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모두 가짜입니다. 아무리 지금 당장 우리를 즐겁게 하고, 뭔가를 많이 준다고 해도, 그들은 우리를 멸망으로 끌고 가는 사탄입니다.

"... 그는(목자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요한 10,4-5)."

이 말씀은 "도둑을 따라가지 마라. 그리고 목자만 잘 따라가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여기서 "목소리를 안다." 라는 말은 "목소리를 알아야 한다."로 해석되고, 이 말은 다시, "생명의 말씀과 사탄의 유혹을 잘 구별해서, 생명의 말씀만 따라야 한다."로 해석됩니다. "알지 못한다." 라는 말은 "들으면 안 된다."로 해석됩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도둑과 강도를(거짓 메시아와 거짓 예언자를) '낯선 사람'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실제 상황에서는 '낯익은 사람'일 때가 많습니다. 진짜로 낯선 사람이라면 우리 쪽에서 먼저 경계할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를 유혹하는 자들은 평소에 잘 알고 있었던 사람, 친하게 지내는 사람, 바로 옆에 있는 사람, 평소에 믿는 사람입니다. 모르는 사람이나 친하지 않은 사람이 와서 유혹하면, 그 유혹에 잘 안 넘어가겠지만, 잘 아는 사람이나 친한 사람이 와서 진심으로 권고하는 것처럼 유혹하면 아주 쉽게 그 유혹에 넘어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마태 10,36)." 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과장된 말씀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 또는 함께 사는 식구가 신앙생활을 방해하거나 박해하는 원수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골적으로 박해하지는 않더라도 유혹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보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하는 말에 더 귀를 기울일 때가 있고, 교회의 가르침보다 정부에서 하는 말을 더 믿을 때도 있습니다. 또 흔히 티브이나 라디오에서 하는 말은 의심하지 않고 그냥 믿습니다. 지금 이 말은, 정부나 언론이 항상 거짓말만 한다는 뜻은 아니고, 아무리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이라고 해도, 또 아무리 듣기에 좋은 말이라고 해도  예수님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말이라면 듣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도둑을 피하고 목자만 잘 따라가려면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1테살 5,6)." "모든 것을 분별하여, 좋은 것은 간직하고 악한 것은 무엇이든 멀리하십시오(1테살 5,21-22)."

 

 

 

차고 넘치게 하시는 주님  반영억 신부

 

한 신부님이 많은 돈과 귀한 보석을 선물로 받았답니다. 갑자기 너무 많은 재물이 생겨서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우선 보관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아무리 궁리해도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러다 ‘성체를 모시는 감실에 두면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리라’는 기발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래도 불안하여 감실 앞에 “예수님께서 이곳에 계시느니라.”하고 써 붙였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아침에 나와 보니 누군가 감실 문을 열고 보석을 몽땅 가져간 것입니다. 그리고 종이쪽지에다가 “예수님은 부활하시어 이곳에 안 계시는 도다”하고 써 놓았더랍니다.

쌓아 놓으면 쌓아 놓을수록 줄 것이 없고, 주면 줄수록 줄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무엇이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 놓으면 주님께서 더 풍요롭게 해 주십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목숨을 내 놓기까지 모든 것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담을 그릇을 준비하지 않으면 그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공것이라면 비상도 먹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공것이라면 매우 좋아하여 가리지 않고 덤빈다는 말입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상으로 은총을 주십니다. 그런데 왜 주님께 달아 들지 않는지 안타깝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얻고자 한다면, 풀밭을 얻으려 한다면 먼저 예수님을 통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방법이며, 충만한 생명을 체험하는 지름길입니다. 따라서 말씀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하고,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가운데 오신 예수님, 곧 미사 안에서 성체를 자주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성체가 모셔져 있는 감실 앞으로 가서 쉴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야 합니다. 사실 “성체 조배는 예수님과 살기 위한, 예수님 안에서 참된 인격을 형성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알베리오네 신부)이 됩니다. 성체 조배를 통하여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지신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게 되기 바랍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 말씀을 따라 걸어가야 합니다. 들음은 행동, 곧 실천으로 옮겨져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기존의 삶에 안주하고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스승은 항상 당당하고 참된 제자는 그를 따릅니다. 스승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그저 따를 뿐입니다. 따름으로써 스승을 완전하게 알게 됩니다. 우리의 스승 예수님, 밥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충실히 따르는 가운데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양의 문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요한 10,9)

우리 주위엔
문이 참 많지요?
집에만 해도
대문이나 현관문이 있고
방마다 실마다 문이 있고
또 창문도 있습니다.

왠 문이 이렇게 많을까 할 징도로
세어보면 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
다 필요하니까 있겠지요.

문은 분리와 차단,
사생활 보호의 역할을 합니다.
보기 흉한 부분을
감추어 주고 소음을 방지하는 역할도 합니다.
창문은 햇빛을 받아들이고
신선한 바람이 들어오게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문이라고 하십니다.
양들이 안전하게
마음놓고 먹고 놀 수 있게 해 주시겠답니다.

여러분은 부족함이나 걱정스러운 것,
두렵거나 아쉬운 것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문이신 주님께 가십시오.
그 문 안으로 들어가시면
안전하고 행복하고
평화를 누립니다.

오늘 문을 바라보며
문이신 주님을 묵상하며
여러분도 다른 사람을 위한
작은 문이 되어드리는
멋진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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