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5주간 화요일] 내 평화를 준다 (요한 14,27-31ㄱ)

2015. 5. 5. 오전 5:57:01

글자

 

2015. 5. 5 [부활 제5주간 화요일] 평화 (요한 14,27-31ㄱ)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온에서 바오로를 박해하던 이들은 리스트라까지 찾아와 그에게 돌을 던진다. 바오로는 죽은 사람처럼 도시 밖에 버려졌으나, 다시 일어나 복음을 전하며 제자들의 힘을 북돋아 준다. 그 뒤 그는 선교 여행의 출발지였던 안티오키아로 돌아가, 하느님께서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이루어 주신 일을 전한다. (사도행전 14,19-28)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평화를 남겨 주시는데, 그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 예수님께서 수난과 죽음을 겪게 되신다 하더라도 평화를 선물로 받은 제자들은 이를 기억하면서 결코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아버지의 명에 따라 모든 것을 행하신다. ( (요한 14,27-31ㄱ)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9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30 나는 너희와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 31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예비 신자들의 입교 동기 일 순위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런 분들에게 오늘 복음을 읽어 드리면 예비 신자 교리반 등록을 취소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평화는 긍정적인 가치입니다. 늘 “평화를 빕니다!”(‘샬롬’)라는 말로 서로 인사하던 성경의 인물들에게도, 예수님께도, 평화는 갈구하는 대상이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은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평화를 주고 간다고 말씀하시지만, 이 세상의 눈으로 볼 때에 예수님은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오신 분(마태 10,34 참조)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옳아 보입니다.
요한 복음에서 오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제자들과 마지막 저녁 식사를 드시고 나서 하신 ‘고별사’(13―17장)에 속합니다.
이 말씀을 마치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잡혀가시겠지만(18장), 그래도 제자들은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아가고 채찍질하고 죽일지라도 세상은 예수님께 결정적으로 아무런 권한을 행사할 수가 없습니다. 이 모든 일은 세상이 예수님을 지배해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사랑하셔서 아버지의 뜻대로 스스로 행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자원하여 아버지께 가시는 것을 오히려 기뻐해야 합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스승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것을 보면서 기쁨과 평화를 지닐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그렇게 할 수 있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평화와는 다른 당신의 평화를 주고 가시며, 어제 복음에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의 보호자시며 우리에게 당신 말씀을 기억하게 해 주실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한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그 모든 것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그야말로 돌에 맞아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렀던 바오로 사도도 의식을 되찾고 데르베와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을 거쳐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로 돌아가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제자들을 격려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박해를 받는 것을 기쁨과 영광으로 삼던 사도들은 이렇게 죽을 위험을 넘기면서도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부활하신 주님의 선물, 진정한 평화 덕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평화>  송영진 모세 신부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신다고 말씀하시는데, '평화'가 무슨 물건도 아니고, 어떻게 주신다는 것인지, 또 어떻게 받아야 하는 것인지?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는 말씀은, "나를 믿으면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로 해석됩니다. 믿음 속에서 평화를 누리는 것은, 믿음을 통해서 '평화' 라는 은총을 받는 것이고, 또 이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평화' 라는 은총을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얻는 평화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총이기 때문에 믿음 없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화, 즉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을 수가 없습니다. 

1) 예수님의 평화는 '영혼의 평화'이고, 세상의 평화는 '몸의 편안함'입니다. 신앙인들은 신앙생활 때문에 박해를 받기도 하고, 시련과 고난을 겪기도 하지만, 영혼의 평화를 누립니다. 몸은 고달프고 힘들어도 영혼은 행복합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은 '몸의 편안함'만 추구합니다. 그러면서 아무 일도 없는 것을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죄를 짓게 만드는 욕망, 죄의식, 마음속의 의심, 불안 등에서 해방되지 않으면, 아무리 몸이 편안해도 그것을 평화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2) 예수님의 평화는 '공동체의 평화'이고, 세상의 평화는 '혼자만의 편안함'입니다. 신앙인들은 모두가 함께 누리는 평화를 추구합니다. 내가 먼저 양보하고, 내가 먼저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함께 행복할 때 '참 평화'가 옵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은 남이야 어떻게 살든 말든 내가 편안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불행한 처지에 놓여 있는데 혼자서만 편안한 것은 평화가 아닙니다. 지금 당장 자신에게 아무 일이 없더라도 전쟁터 한가운데에 있다면 그것을 평화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 혼자만의 안전을 위해서 높은 성벽을 쌓고 그 속에 숨어 있다고 해도, 감옥에서 사는 것과 같은 그 상태는 평화가 아닙니다.

3) 예수님의 평화는 '넘치는 생명력'이고, 세상의 평화는 '죽음의 고요함'입니다. 신앙인들이 추구하는 평화는 '생명의 기쁨'입니다. '참 평화'가 있는 곳에는 생명력, 생기, 활기가 흘러넘칩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의 평화는 공동묘지의 침묵과 같습니다. 다들 편안하게 누워 있지만, 그곳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고요하고 편안하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의 평화는 '하느님 나라의 기쁨'이고, 세상의 평화는 '어둠 속의 적막함'입니다. 신앙인들은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과 함께 누리는 '기쁨'을 추구합니다. 그 기쁨이 바로 평화입니다. 우리가 나중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면,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떻게 살게 되는지는 모릅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그곳에는 항상 기쁨만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 기쁨'이 아니라, 당장 재미있고 즐거운 일만 찾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순간적으로 느끼는 쾌락을 행복과 평화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면 더욱 쓸쓸해질 뿐입니다. 그래서 더 큰 재미와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됩니다.  

5) 예수님의 평화는 '영원'이고, 세상의 평화는 '허무'입니다. 신앙인들은 '영원한 것'을 믿고, 희망하고,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순간'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고 욕심내지 않습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들은 모두 버리게 됩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은 '영원'을 믿지 않고, 눈앞에 있는 것만 봅니다. 그래서 많은 것들을 움켜쥐려고 하고, 한 번 움켜쥔 것은 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평화와 안전이라고 착각합니다.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더욱 허무해지지만, 그 허무감에서 벗어나려고 더욱 집착합니다. 그 악순환을 끊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허무하게 잃을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평화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느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완전한 평화, 또 완성된 평화를 누리는 때는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입니다. 지금 하는 신앙생활은 그 완성을 향해서 가는 여행입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믿음과 희망입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완전한 평화를 누리게 될 때가 온다는 믿음과 희망, 누구든지 노력하면 그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 그 믿음과 희망이 있다면, 지금 고난과 시련을 겪어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지금 겪는 고난과 시련은 스쳐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들이고, 우리가 얻게 될 평화는 영원하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두려움을 극복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믿음과 희망 자체가 바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언제인지 모르는 먼 훗날이 되어서야 얻게 되는 막연한 은총이 아니라, 지금 믿고 희망함으로써 누구든지 그 평화를 나중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미리 얻어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요한 14,27)

오늘은 어린이날입니다.
모든 아이들이 예외없이 사랑과 축하를 받는 기쁜 날이 되길 기원합니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 주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일까요?
아이들이 갖고싶어하는 모든 것을 해주면 좋아할테죠.
하지만 우리가 아이들에게 진정 물려주어야 할 것은 평화로운 세상이 아닐까요.

예수님은 부활하시어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시면서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선물은 남겨두고 가십니다.
그게 돈도 아니고 장수도 아닙니다.
평화는 그 어떤 물질적인 것으로 살 수 없는 귀한 가치입니다.

우리도 어린이날에
우리 후손을 위해 물려 줄 가장 귀한 선물은 바로 평화임을 잊지맙시다.

오늘 내가 거쳐 지나간 곳엔 평화가 남겨지도록 합시다.
평화를 남겨두는 사람은 참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오상선 신부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부활 제5주간 목요일]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요한 15,9-11)15.05.07조회 121<부활 제5주간 수요일> 나는 참포도나무요 (요한 15,1-8)15.05.06조회 45[부활 제5주간 화요일] 내 평화를 준다 (요한 14,27-31ㄱ)15.05.05조회 462015. 5. 4. 월<부활 제5주간 월요일>사랑 (요한 14,21-26)15.05.04조회 45<부활 제4주간 토요일>성 아타나시오 축일 (요한 14,7-14)15.05.02조회 462015년 5월 1일 노동자의 주보 성 요셉 축일 (마태오 13,54-58)15.05.01조회 45[부활 제4주간 목요일] 나를 보내신 분 (요한 13,16-20)15.04.30조회 45[부활 제4주간 수요일]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요한 12,44-50)15.04.29조회 99[부활 제4주간 화요일]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요한 10,22-30)15.04.28조회 98[부활 제4주간 월요일] <나는 양들의 문이다.>(요한10,1-10)15.04.27조회 45[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2015. 4. 25. 토)(마르 16,15-20)15.04.25조회 104[부활 제3주간 금요일] 살과 피 (요한 6,52-59)15.04.24조회 125[부활 제3주간 목요일]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 (요한 6,44-51)15.04.23조회 46[부활 제3주간 수요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요한 6,35-40)15.04.22조회 43[부활 제3주간 화요일] 내가 생명의 빵이다. (요한 6,30-35)15.04.21조회 121[부활 제3주간 월요일 (장애인의 날)] (요한 6,22-29)15.04.20조회 102[부활 제2주간 토요일] 물 위를 걸으시다 (요한 6,16-21)15.04.18조회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