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간 토요일>나를 믿는 사람은 (요한 14,7-14)
아타나시오
아타나시오 성인은 295년 무렵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알렉산데르 대주교를 수행하여 니케아 공의회(325년)에 참석하였다. 328년 알렉산데르 대주교의 후계자가 된 아타나시오 주교는 아리우스 이단과 투쟁하는 가운데 여러 차례 유배를 당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성인은 특히 정통 신앙을 옹호하는 책을 많이 남겼으며, 수도 생활의 창시자인 안토니오 성인의 전기를 써서 서방 교회에 수도 생활을 알리기도 하였다.
바오로 일행이 피시디아 안티오키아 회당에서 유다인들에게 설교한 뒤, 그다음 안식일에는 많은 이방인이 모여들어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면서 하느님을 찬양한다. 바오로는 먼저 유다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했으나, 그들이 거부하므로 이방인들에게 간 것이었다. (사도행전 13,44-5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을 알게 되었으니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요한14,7-14)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요한14,7-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예수님 시대로부터 이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유다인들이 그토록 기다려 온 메시아를 알아보지도 받아들이지도 않는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어제와 오늘의 독서도 바로 그런 모습을 전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먼저 유다인들의 회당에 가서 구약 성경을 바탕으로 예수님에 대하여 설교했습니다. 사실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이기 때문에 새로 선포되는 복음을 가장 우선적으로 들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선포된 평화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바오로가 전하는 말에 이방인들이 귀를 기울이는 것에 시기심을 느끼고 마침내는 바오로 일행을 쫓아냅니다. 이렇게 해서 복음은 이방인들을 향해 갑니다.
유다인들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께서 하느님 안에 계시고 하느님께서 예수님 안에 계시다는 그분의 말씀을 결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자연 과학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또한 어떤 경우에는 성경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의 영향으로, 종종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로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신학적인 설명만 하려는 유혹에 빠지곤 합니다. 요한 복음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많은 표징 안에서 하느님의 아드님의 영광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지난 달 우리는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요한 6,14) 하고 고백하였습니다. 과연 우리도 그러한 믿음과 깨달음에 도달했는지요?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보다는 오히려 이방인들이 그분을 믿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 놀라운 일입니다. 에페소서는 그것을 ‘신비’라고 말합니다(3,5-6 참조).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된다는 신비, 감추어져 있던 하느님의 계획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것을 뜻합니다.
신비는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하느님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신비로운 계획에 따라 우리도 이렇게 신앙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는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약속과 권고에 따라 우리는 늘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보호자이시고 협조자이신 파라클리토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송영진 모세 신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요한 14,12)." 이 말씀은 겉으로는 '약속'으로 보이지만, 뜻으로는 '명령'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내가 아버지께 가면(승천하면), 너희는 내가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하고, 그보다 더 큰 일도 해야 한다."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실 것이고, 지상에는 제자들만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은(신앙인들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들을 계속해야 합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마귀들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보살피고... 한마디로 말하면 '인류 구원 사업'입니다.
여기서 "나를 믿는 사람"이라는 말은 "나만 믿는 사람"을 뜻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돈도, 권력도, 명예도, 세속의 그 어떤 것도 믿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것에 더 의지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더 큰 일'이라는 말은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뜻합니다(마르 16,15).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그 주변 지역에서만 활동하셨지만, 이제 제자들은 온 세상에 가서 일을 하기 때문에 '더 큰 일'이라는 것입니다. (더 위대한 일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나를 믿는다면 내가 하는 일을 해야 한다."로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믿고, 자기 혼자 천당에 가는 것으로 그치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교는 그런 종교가 아닙니다.
물론 자기 자신이 구원을 받는 것이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그들을 인도하는 일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하고,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이 내용은 '사랑의 실천'과 연결됩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이웃과 함께 가기 위한 일, 즉 '이웃 사랑'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이웃 사랑 실천도 복음 선포에 포함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 실천 없이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25,41-46).
우리 교회가 여러 가지 사회 참여 활동을 하는 것은 복음 선포 활동이고,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활동이고, 이웃 사랑 실천입니다. 그런 활동들을 정치 활동이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악과 맞서 싸우는 일, 또 세상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바로잡는 일은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신앙인들에게 세상의 소금과 등불이 되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마태 5,13-16). '소금'의 첫 번째 역할은 부패를 막는 것입니다. 세상의 부패와 타락을 막는 것은 교회와 신앙인들의 의무입니다. 신앙인 자신이 부패하거나 타락하면 안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등불'의 첫 번째 역할은 어둠을 밝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둠을(악을) 물리치는 것도 교회와 신앙인들의 의무입니다.
이런 모든 일들을 우리의 힘으로만 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예수님의 힘으로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신앙인들을) 내버려두고 떠나신 분이 아니라, 언제나 항상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마태 28,20).
그리고 예수님은 함께 계실 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시는 분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마르 16,20)." 제자들이(신앙인들이) 하는 일은 사실상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 14,13)." 이 말씀은 제자들이(신앙인들이) 예수님께서 시키시는 일을 할 때, 그 일을 도와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말씀에서 '내 이름으로' 라는 말이 중요한데, 이 말은 "예수님과 일치하는 생활을 하면서, 또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일을 하면서" 예수님께 청하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무엇이든지' 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무엇이든지'가 아니고, "예수님의 뜻에 맞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입니다. 만일에 믿음도 없이 청하거나,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청하거나, 예수님께서 시키신 일은 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만 하면서 청하거나, 예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을 청한다면,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이루어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 세상의 현실을 보면, 예수님 뜻에 맞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고생하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물질적인 복만 추구하면서 이기적으로 사는 사람은 잘 먹고 잘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일을 계속 겪다 보면, 신앙인들 입장에서는 힘이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이 세속적으로 누리는 부귀영화를 예수님께서 주신 복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복이 아니라면, 그것은 사탄이 준 것이고, 사탄이 준 것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사탄과 함께 허무하게 사라질 것입니다.
필립보
처음 사제서품을 받을 때입니다. 신자 분들이 ‘신부님!’하고 부르면 참 어색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부르는 줄 알았습니다. 아직 제가 사제라는 생각을 많이 못했기 때문입니다. 24년이 지난 지금은 당연히 제가 사제라고 생각은 하지만 처음 사제서품을 받았을 때의 순수함과 열정은 많이 식은 것 같습니다.
지금은 교구의 사제가 800명이 훌쩍 넘었습니다. 가지 많은 나무가 바람 잘 날 없다고 하듯이 신부님들 중에도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건강 때문에 사목의 현장을 떠나야 했고, 어떤 분은 정신적인 어려움 때문에 치료를 받기도 했고, 어떤 분은 신자 분들과의 갈등으로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사제서품을 받고 10년이 훨씬 넘어야 본당 신부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젊은 신부님들에게는 어려움입니다.
지금은 스마트 폰이 있어서 문자를 보내고 받는 것이 쉽지만 처음 사제가 되었을 때문 그런 것들이 없었습니다. 김 수환 추기경님께서는 교구 사제들의 축일이면 전화를 하셨습니다. 추기경님의 축일 축하 전화는 제게는 놀라움이었고, 감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신부님은 추기경님의 전화를 믿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을 한 분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당신이 추기경이면 나는 교황입니다.’ 추기경님께서 전화를 하실 줄 몰랐기 때문에 얼떨결에 응답을 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 때문에 공동체가 분열되고, 사람들이 다투고, 분노와 미움이 자라는 것을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말을 조심하게 하기 위해서 ‘치아’라는 창살을 만들어 놓았고, 그것도 부족해서 입술로 덮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부모님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을 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아내를 무시하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자녀에게 말을 거칠게 하는 부모님들도 있습니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은 말의 힘에 대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시기와 질투에 가득차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바오로와 바르나바에게 비난의 말을 하였습니다.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말입니다. 인격을 모독하는 말입니다. 악의 세력으로부터 나오는 말입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담대한 말로 하느님의 구원은 모든 민족들에게 퍼져나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말입니다. 기쁨을 주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생명을 살리는 말입니다. 권위와 힘이 있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의 힘으로 병자들을 치유하였고, 말씀의 힘으로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말씀의 힘으로 5천명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말씀이 하느님이셨고, 말씀이 진리였으며, 말씀은 빛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나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은 어떤 말인지 생각합니다.
욕망을 채우려는 말이었는지, 시기와 질투를 나타내는 말이었는지, 비난과 험담으로 공동체를 파괴하는 말이었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나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이 생명을 살리고, 신뢰를 주고, 평화를 주고, 참된 진리를 알려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재형가브리엘 신부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사도 13,46)
유다인들은
선택된 민족이라고 늘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구원의 복음도 제일 먼저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복을 걷어 차 버렸습니다.
그래서 선민의 지위를 잃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복음을 전해 듣고 새로운 선민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매일같이 복음말씀이 전해지고 있지만
그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름만 하느님 백성이지
그 선민의 지위를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그런 이들이 참으로 많지요?
오늘은 냉담교우들이
다시 선민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우리 자신이 끊임없이 구원의 기쁜소식에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많은 이들에게
선민회복의 기회를 제공해주게 될 겁니다.
이렇게 선민회복자가 많아짐으로써
우리는 참으로 5월을 가장 아름답고
제일 좋은 시절이라 노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상선바오로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