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5주간 수요일>(2015. 5. 6. 수)(요한 15,1-8)

바오로 사도가 선교 여행에서 안티오키아로 돌아온 다음, 교회는 할례 논쟁에 휩싸인다. 그가 다른 민족들도 신앙을 받아들였다고 전하자 그 소식을 들은 일부 유다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논의하려고 사도들과 원로들이 예루살렘에 모인다. (사도행전 15,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포도나무시며 아버지는 농부시라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내 안에 머물러라.” 하고 말씀하신다. 나무에 붙어 있지 않은 가지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요한 15,1-8))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4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6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어제 독서에서 안티오키아로 돌아온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하느님께서 ……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습니다. 바오로는 이것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문을 열어 주셨으니,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일은 계속될 것이고 또한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난관에 부딪힙니다. 일부에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바오로는 지금까지 선교 여행을 다니면서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었습니다. 분명 중대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안티오키아 공동체는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중심으로 하는 대표단을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으로부터 자유롭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던 바오로였지만, 자기의 주장을 고집하기보다는 예루살렘의 원로들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의 겸손하고 아름다운 태도를 우리는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관계 속에 살아갑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예수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라고 표현하셨습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줄기로부터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받듯이 예수님과 일치하여 우리는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이 감동적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일치된 생명의 유대 관계를 계속 이어 가면서 그분의 가르침을 실천한다면 우리의 기도나 소원도 들어주신다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주님과 우리를 영원히 묶어 줄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으며, 온갖 유혹으로 시달리는 세파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이 세상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길도 우리의 믿음과 그에 따른 기도입니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개인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혹시라도 같은 본당, 같은 단체 안에도 분파와 분열의 움직임이 보여 마음고생을 하고 계시다면, 이제부터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극복하는지 차분히 바라보면서 우리를 위한 거울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이든 청하여라 반영억신부
우리는 흔히 기도한다고 하면 무엇을 청하는 기도를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무엇을 달라고 합니다. 나의 바람을 정해 놓고 그것을 꼭 이루어 달라고 하소연 할 때가 많습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행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달라는 기도에 익숙해 있습니다.
레지오 마리애 선서문을 보면서 한 차원 더 높은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선서문은 “지극히 거룩하신 성령이시여, 당신의 위대한 목적을 이루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제 영혼 안에 사랑의 불을 놓으시어 이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성모님의 사랑과 뜻에 일치하게 해 주소서…..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제 안에서도 자라시게 해 주소서……이 세상과 영혼들에게 그리스도를 모셔다 드리게 해 주시고……복되신 성 삼위의 영광 안에 살게 해 주소서….당신께서 저를 받아 주시고 저를 써 주시며 저의 나약함을 굳센 힘으로 만들어 주시리라 확실히 믿으며 다짐하나이다.” 하고, 이어서 충실한 봉사와 규율에 대한 엄격한 복종을 선서합니다.
개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봉헌의 기도요, 성령께 각별한 사랑을 드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주님 안에 머물고 말씀 안에서 주님의 뜻과 일치할 때 효과적인 열매를 맺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달라고 매달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먼저 그분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느님께 빌면 무조건 이루어지리라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맹목적인 신앙논리를 펼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기도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수록 그만큼 더 가치가 있습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나의 할 일은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충성심을 바치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원의가 이루어지려면 먼저 타인 지향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바람이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것과 일치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아버지와 사랑으로 철저히 하나가 되셨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당신 스스로 인간과 하나가 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느님께 열려있고 그분과 하나 되어 살아간다면 우리의 모든 바람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기 전에 그분과의 일치의 마음을 살펴야 하겠습니다.
포도나무와 그 가지는 붙어있을 때 생명력을 지닙니다. 열매는 가지에 달리지만 가지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몸통이 튼튼하기 때문에 가지의 열매도 튼실합니다. 포도나무는 전체고 가지는 부분입니다. 부분과 전체는 나뉠 수 없는 사이입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도 그러합니다. 아버지와 아들, 아들과 제자의 관계를 이어주는 것은 ‘사랑’과 ‘순명’입니다. 우리의 관계도 그러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그의 명을 좇지 않는다면 그는 참 제자가 아닙니다. 안 될 때 안 되더라도 최선을 다하여 예수님의 가르침을 좇아 살다보면 우리 인생에 알찬 열매가 맺을 것입니다. 주님 안에 머물러 원하는 바를 다 이루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은 당신의 것, 오로지 당신의 뜻대로 그것들을 처리하소서.” 하고 기도하며 오늘을 봉헌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송영진 모세 신부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요한 15,4)."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요한 15,6)."
이 말씀에서 "내 안에 머무르다."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열매'는, 넓은 뜻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서 얻게 되는 것들, 즉 하느님 나라, 구원, 생명 등입니다. 따라서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나를 믿지 않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의 생명을 얻지 못한다."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말씀은, 예수님 없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자기 혼자 힘으로 수행을 해서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할 수도 있겠지만, 예수님에 대한 믿음 없이는 궁극적인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일도 우리의 힘으로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도 역시 예수님께서 도와주셔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도와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는 말씀이 바로 그 약속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예수님 안에 머무르는 것, 즉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 우리 스스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 노력을 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사실상 스스로 열매를 맺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못 들어가는 것은 사실상 자기가 안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노력하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데도 스스로 노력하지 않아서 못 들어가는 것은 사실상 자기가 안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내용에서 '탈렌트의 비유'가 연상됩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탈렌트를 나누어 주자, 두 종은 그것을 활용해서 각각 다섯 탈렌트와 두 탈렌트를 벌었는데, 세 번째 종은 탈렌트를 숨겨 두었다가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줍니다(마태 25,25). 그는 주인의 말을 듣지 않은 종입니다. 노력했는데도 돈을 벌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돈을 벌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예수님 안에 머무르지 않은 사람, 즉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은 가지입니다.
주인은 세 번째 종이 가지고 있던 탈렌트를 빼앗고, 그를 '바깥 어둠 속으로' 쫓아냅니다(마태 25,28-30). 이것은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를 잘라서 밖에 던지고, 불로 태워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처음의 두 종이 벌어들인 다섯 탈렌트와 두 탈렌트를 주인이 갖지 않고 그들에게 그냥 주었다는 점입니다. 처음에 나누어 주었던 한 탈렌트도 종들에게 그냥 준 것이고, 그것을 활용해서 더 벌어들인 탈렌트도 종들의 것이 됩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종들은 주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일한 것이 됩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시킨 일은 주인을 위한 일이 아니라 종들을 위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서 얻는 열매들은 우리가 갖게 됩니다. 신앙생활이란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내가' 살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고, '내가' 살기 위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사람들을 구원하게 하신 것은, 사람들에게서 무엇을 얻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중에 사람들 덕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사람들에게 참 생명과 참 행복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이 행복하게 되는 것이 하느님의 행복입니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요한 15,8)." 라는 말씀이 그것을 나타냅니다.
'탈렌트의 비유'에서 세 번째 종은 자기가 처음에 받은 한 탈렌트를 주인의 것이라고만 생각했고, 또 자기가 그것으로 돈을 더 버는 것도 주인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주인이 다 가져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일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는 원금을 손해 보는 짓만 안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신앙생활을 그런 마음으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저 죄만 안 지으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소극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거나, 지옥에 갈 짓만 안 하면 천당에 가겠지, 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거나...그러면서 하느님과 예수님과 교회와 이웃을 위해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물론 하면 안 되는 일을 안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해야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능동적으로)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지옥을 피한다고 자동적으로 천당에 가는 것이 아니라, 천당에 들어가기 위해서 스스로 능동적으로 노력해야 들어가게 됩니다.)
지난 주일에 서초동 본당에서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본당 신부님께서 성소 후원회 회원 모집을 위한 강론을 부탁하셨습니다. 2012년에 본당을 떠났으니 3년 만에 본당에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한 것입니다. 성가대, 제대 봉사자, 안내 봉사자, 주차 안내 봉사자, 커피 봉사자, 성찬 봉사자들을 보았습니다. 본당에서 주일 미사는 마치 한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물고기는 물이 있어야 자유롭게 살 수 있듯이, 오랜만에 신자들과 더불어 주일미사를 봉헌하였고, 그것이 제게는 또 다른 기쁨을 주었습니다.
성당 입구에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들의 자세’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그날의 독서와 복음은 미리 묵상하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적어도 10분 전에는 성당에 와서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성가는 기쁜 마음으로 함께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성수는 성당에 들어올 때만 찍으라고 하였습니다. 미사참례를 통해서 거룩해 졌기 때문에 나갈 때는 찍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몇 가지 더 있었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합니다. 미사에 참례하는 마음가짐에 따라서 미사의 은혜는 더욱 풍요로워지리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보다 더 가까이 있는 것이 있습니다. 언제나 내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 있습니다. 소통과 공감의 도구인 스마트 폰입니다. 저도 늘 스마트 폰을 곁에 두고 있습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몇 번의 손동작으로 답을 찾기도 합니다. 각종 약속과 일정은 스마트 폰에 저장을 해 놓았습니다. 각종 티켓을 예매할 수도 있고, 좋아하는 책을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스마트 폰을 이용해서 원하는 음식을 주문하기도 합니다. 물론 통화는 기본입니다. 그러니 스마트 폰이 없는 하루를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런 스마트 폰도 전원이 꺼져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전원이 켜져 있어도 인터넷과 연결이 안 되면 병따개 없는 콜라와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주님 곁에 머물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첫째는 말씀의 식탁에 자주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사성제를 통해서 말씀의 양식을 받을 수 있고, 성체를 모실 수 있습니다. 말씀의 양식을 잘 받기 위해서는 미리 오늘의 성서 말씀을 읽고 미사에 참례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기도하는 시간을 자주 갖는 것입니다. 내가 몸을 가꾸는 만큼 나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세수하고, 화장을 합니다. 그런 시간만큼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몸은 깨끗한데 영혼은 깨끗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피정이나 교육에 자주 참여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성경공부, 피정, 특강에 자주 참여하는 분들은 주님 곁에 머물 수 있으며 알찬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한 방울 씩 떨어지는 물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단단한 바위에 구멍을 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곁에 머물면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조재형신부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요한 15,7)
여러분이 바라고 원하는 것이 있나요?
그것을 꼭 이루고 싶나요?
그렇다면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꼭 기억하세요.
원하는 것을 이루는 방법
1) 주님 안에 머문다(기도)
2) 말씀 묵상을 한다
3) 바라는 것을 청한다.
참 쉽지요?
그런데 순서를 잘 지켜야 하고 너무 급하게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충분히 주님 안에 머무십시오.
내가 그분 안에 푹 안겨있다고 느낄 때까지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려 하기보다는
그냥 그분의 현존을 느끼도록 가만히 기다리십시오.
마치 흙탕물이 맑게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내 안에 고요가 찾아올 때까지 그분 앞에 머물러 있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 맑고 고요한 상태에서 그분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이제야 제대로 잘 들릴 겁니다.
그분이 원하시고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자연스레 바라는 것을 청하게 될 것입니다.
이상한 것을 청하지 않고
그분이 바라시고 원하시는 것을 내가 청하기에
그 바램과 청은 이루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오늘 그렇게 한번 해 보실래요?
오상선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