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5주간 금요일>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5,12-17)

2015. 5. 8. 오전 8: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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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5주간 금요일>(2015. 5. 8. 금)(요한 15,12-17)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원로들의 회의가 끝난 다음 그들은 사람들을 뽑아 바오로 일행과 함께 안티오키아로 보낸다. 그들은 이방인 가운데 입교하는 이들에게 몇 가지 사항만을 지키라고 권고하였는데, 이 사실을 “성령과 우리”가 결정했다고 자신 있게 알린다. 안티오키아 공동체는 그 편지에 담긴 내용을 읽고 기뻐한다. (사도행전 15,22-3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시면서, 우리를 종이 아니라 친구라고 부르신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 친구인 우리를 위하여 목숨까지 내놓으신 그 사랑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신다(복음).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5,12-1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파스카의 신비>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 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 참된 어린양이시니,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즐거워하며, 하늘의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온 누리에 주 하느님 , 하늘과 땅에 가득찬 그영광 높은데서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분 찬미 받으소서, 높은데서 호산나.

 

   [묵상]

“성령과 우리는 이렇게 결정하였습니다.” 하고 신자들에게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도들이 무척 부럽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고 싶어 함께 모여 고민하고 대화하고 토론하며 투표하고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사심도 선입견도 없이 온전히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맡겨 드리고 그 결정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자신 있게 말하기에는 너무 어렵다는 것이 가난하고 초라한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도달하기에는 한참 멀어 보일지라도 예루살렘 사도 회의는 교회 안에서 의사 결정이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할지를 알려 줍니다.
어제에 이어 사도들의 결정 과정을 되짚어 보면, 바오로 측에서도 양보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코린토 1서에서 그는 올바른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것이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규정들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전혀 양보하지 않고 자기주장을 고집하였거나 아니면 누군가 나서서 피를 먹어도 된다고 끝까지 맞섰더라도, 그것이 결코 진리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더 발전된 신학을 전개하는 것일 수도 있고, 당시의 문화에 매여 있는 다른 이들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오로도 다른 누구도 그렇게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고집을 부리면서 끝까지 버텼다면 혼자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가장 위험한 일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배척하면서 나만 진실과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고 그에 따른 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계속 갈라지고, 진리를 찾는 이들은 갈 곳을 잃고 방황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래서 바오로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끝까지 관철시키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교회 공동체가 자기주장을 이해하고 수용한 뒤 그것을 함께 지켜 나갈 수 있도록 자제하면서 노력하였습니다.

  ♥피해자가족 여러분 어버이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사랑>     송영진 모세 신부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요한 15,13-14)."  

이 말씀을 뜻에 따라 다시 정리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다. 그래서 나는 너희에게 가장 큰 사랑을 주었다. 이제 너희도 나의 친구가 되어라."입니다. 

여기서 '친구' 라는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친구'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포도나무의 줄기와 가지처럼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관계, 사랑으로 일치를 이루고 있는 관계를 뜻하는 말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요한 15,5)." 그래서 지금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친구' 라는 말은, 나와 분리되어 있는 '남'이 아니라, '나의 일부'를 뜻합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라는 말씀은, 단순히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표현하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나는 '나의 일부'인 너희를 위하여 내 목숨을 내놓았다. 이것이 바로 너희에게 주는 나의 사랑이다. 더 이상의 사랑은 없다." 라는 뜻입니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라는 말씀은, "나는 너희에게 모든 것을 주었기 때문에 더 이상 줄 것이 없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 남겨 놓은 것도 없고, 또 나중에 주시려고 남겨 놓은 것도 없습니다. 목숨을 내놓는 것은 남아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입니다. 

사랑이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모든 것을 다 태우고, 다 태운 다음에 남아 있는 재까지 마저 다 태우는... 그런 사랑.)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목숨'이라는 말은 실제로 '목숨'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고, '모든 것'을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친구' 라는 말과 '종'이라는 말을 대립시켜서 사용하셨는데(요한 15,15), 예수님의 말씀에서 '종'은 명령에 복종만 하는 사람,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만 하면 되는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물론 실제 현실에서는 주인이 종을, 또 종이 주인을 사랑하는 경우가 있고, 사랑해서 목숨을 내놓는(모든 것을 바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종'이라는 말은 일반적인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고, '나의 일부'가 될 수 없는 '남'을 뜻하는 말입니다. 

(사실 주인이 정말로 종을 사랑한다면, 그 종을 종으로 놓아두지 않고 자유인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즉 종의 신분에서 해방시켜 줄 것입니다.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지 않고 종으로 놓아두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 말은 거짓말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라는 말씀은, "너희는 나의 일부이니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해서 나와 완전한 '한 몸'을 이루도록 하여라." 라는 호소입니다. 또 이 말씀은, "너희는 나와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여라." 라는 당부 말씀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 말씀은, 친구가 아닌 사람에게 친구가 되어 달라고 호소하시는 말씀은 아닙니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우리가 '당신의 일부'이기 때문에 당신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말라고 호소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떠나지 마라. 나도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요한 15,4.공동번역)."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도, 또는 처음부터 예수님을 안 믿어도, 예수님 쪽에서 손해 보는 일은 없습니다. 구원을 받지 못하는 우리 자신이 손해를 볼 뿐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구원을 받으라고 우리에게 호소하시는 것은 예수님 쪽에서 무슨 이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고, 또 떨어져 나가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사랑하기 때문에 호소하신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명령'이라는 말은, 일차적으로는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라는 계명을 가리키고, 넓은 뜻으로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주신 가르침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명령'이라고 표현되어 있긴 하지만,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명령이 아니라, 구원과 생명을 얻으려면 당연히 실천해야 하는 복음이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고,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 구원과 생명을 얻는 일은 '의무'가 아닙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간절하게 바라는 일입니다. 우리가 그 구원과 생명을 얻기 위해서 실천하는 사랑도 '의무'가 아닙니다. 우리 쪽에서 원해서 하는 일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을 구원하신 일은 예수님 쪽의 의무가 아니라 '사랑'이었습니다. 우리 쪽에서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 안에 머무르고, 그 사랑을 이웃과 나누는 일도 역시 의무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사랑이란 의무가 아닙니다. 강요한다고 사랑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또 사랑이란 거래도 아니고, 계약도 아닙니다. "사랑하니까 사랑할 뿐이다." 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말장난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이 말이 진리입니다.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여라.    반영억신부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 고 말합니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위를 통해서 증거 되어야 하고, 기회는 많지만 실제로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말하지만 자신을 죽이는 희생의 사랑보다는 자기만족을 위한 이기적인 사랑에 더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자유를 주지 못하고 일방적이며, 상대를 속박할 때가 더 많습니다. 사랑을 이유로 붙잡고 집착하며 기대를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상처를 주고받으며 후회합니다.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 안에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 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 한15,12-1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신 데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심한 모욕과 침 뱉음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도 그들을 용서하시고 아버지 하느님께 기도하시는 모습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사랑은 없다.’고 선언하시며 당신 친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벗으로 삼으시고 벗을 위해 목숨을 내 놓으셨습니다. 사실 목숨을 내 놓는다는 것은 모두를 바쳤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미 줄 수 있는 것을 다 주고 마지막 남은 것을 주는 행위입니다. 

 

사랑이란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모두를 내놓는 것입니다. 자신을 희생할 기회는 끊임없이 주어지지만 지금 놓치면 그 기회는 이미 사라진 것입니다. 다음에 오는 기회는 또 다른 기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사랑하십시오.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십시오. 그러나 나의 일방적인 방식으로 하지 말고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사랑하십시오. 너무 많은 사랑을 요구하여 무거운 짐을 지우지 말고, 아무런 구속이나 강요가 없이 자유를 주는 사랑으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이는 날로 기뻐하고 자유롭도다. 사랑은 짐을 모르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기에(성녀 젤뚜르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는 이에게 자유를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이 사랑할 수 있게 하려고 자유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자유의 유일한 존재이유는 인간이 스스로 자유롭게 사랑의 노예가 되는 데 있습니다. ” ... 사랑은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면 잘 꾸며놓은 연극, 그저 생각 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한 번 해 본 빈말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피에르신부). 자유를 주는 사랑, 고통을 감당하는 사랑에 기뻐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오늘은 어버이 날입니다. 부모님께 감사드리고, 베풀어 주신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라는 날입니다. 자식들은 1년 중에 하루를 부모님을 위해 기억하지만 부모님은 1365일을 자식들을 걱정하고, 기억할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내색은 하지 않으셔도 어머니께서는 아들 사제의 전화를 무척이나 좋아하십니다. 그렇게 좋아하시는데, 한 달에 한번 전화 드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제 나이도 이제 50이 넘었는데, 어머니는 늘 말씀하십니다. 신자들에게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 하시고, 술을 적당히 마시라고 하시고, 저녁이면 발을 씻고 자라고 하십니다. 어머니의 눈에는 언제나 자식인 것 같습니다.

 

모든 어머니가 자식들에게는 사랑을 넘치도록 주실 것입니다. 저도 어머니의 사랑 때문에 지금까지 이렇게 건강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1991823, 저는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제가 5대째 천주교를 믿는 교우 집안이어서,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 375번지, 고향의 교우 촌으로 첫 미사를 갔었습니다. 미사를 드리고 서울로 왔는데 저는 그만 유행성 출혈열이라는 손님을 데리고 왔습니다. 40도가 넘는 고열이어서 중환자실에 입원하였습니다. 당시에 김 수환 추기경님께서도 기도해 주셨고, 동창들도 병문안을 와주었습니다. 의사 선생님들이 치료를 해 주어서 저는 병이 호전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분들 중에서 가장 저를 지극 정성으로 간호해 주신 분은 어머니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입원한 날부터 난 10분도 제 곁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제 몸을 주물러 주시고, 열이 나면 수건으로 식혀 주셨습니다. 당시에 저처럼 유행성 출혈열로 입원한 분들이 5명 있었는데, 제가 가장 건강한 몸으로 퇴원을 할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퇴원을 하면서 결심하였습니다. 어머니께 매일 전화를 드리고, 한 달에 한번은 어머니가 계신 집도 방문하고, 용돈도 드리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건강해진 것은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제가 잘 나서 그리 된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집에도 명절이 되어서야 겨우 가게 되었고, 전화도 어쩌다 하게 되었습니다. 아버님은 3년 전에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이제 아버님께는 효도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홀로 계신 어머님께 조금이라도 효도를 하도록 노력하려합니다. 어머니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게 주어진 일을 조금이나마 더 충실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어쩌면 세상 모든 어머니들께서 자식들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효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낳아 주신 어머니의 사랑이 이토록 크다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사랑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당신의 외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 주셨고, 우리를 죄, ,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조재형신부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사지 말라고 합니다 담배갑보다 작은 미니어쳐 카네이션 화분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5,12)

어버이 날입니다.
모든 어머니 아버지께 축하드리며 감사인사 드립니다.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그동안의 수고에 대한 큰 선물이 되길 기원합니다.

그 어떤 어머니 아버지도 가장 큰 축복과 선물은
자식들이 서로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부모님께 용돈을 얼마나 드리지?
선물은 뭘 해 드리지?
고민하기보다는
형제들끼리 더 우애있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은 가장 기뻐하실 겁니다.

예수님도 오늘
우리에게 그런 당부를 하시네요.
제발 서로 사랑하라고. 이건 나의 명령이고 계명이라고.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나 권고가 아니라 무조건 그렇게 해야한다.
다른 건 못해도 되지만 이것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
오늘은 무조건 서로 사랑합시다.
부부간에 아무리 꼴보기 싫어도 오늘만큼은 서로 사랑합시다.
형제들 간에 미워하고있더라도 오늘만큼은 서로 사랑합시다.

그래야
어버이 날을 제대로 지내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야 부모님이 기뻐하고 예수님이 기뻐하실 테니까요.
꼭 그렇게 하실거죠?

 

오상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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