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5주간 토요일> 내 이름 때문에 (요한 15,18-21)

2015. 5. 9. 오전 6: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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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5주간 토요일>내 이름 때문에 (요한 15,18-21)

 2차전도여행

 

바오로 사도는 다시 안티오키아에서 제2차 선교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이번에는 바르나바와 함께 가지 않는다. 바르나바는 마르코와 함께 떠나고, 바오로는 실라스와 함께 다른 곳으로 간다. 리스트라에서는 티모테오가 바오로 일행과 동행하기 시작하는데, 그들은 환시를 보고 마케도니아로 떠날 방도를 찾는다.(사도행전 16,1-10)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며 세상은 그들을 미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박해한 세상은 제자들도 박해한다. 제자들은 박해에 당황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제자로서 당연히 예상하고 받아들여야 할 몫임을 알아야 한다.(요한15,18-21)   

 

시편 100(99),1-2.3.5(◎ 1)
 ◎ 온 세상아, 주님께 환성 올려라. (또는 ◎ 알렐루야.)
○ 온 세상아, 주님께 환성 올려라. 기뻐하며 주님을 섬겨라. 환호하며 그분 앞에 나아가라. ◎
○ 너희는 알아라, 주님은 하느님이시다. 그분이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분의 것, 그분의 백성, 그분 목장의 양 떼라네. ◎
○ 주님은 참으로 좋으시고, 그분 자애는 영원하시며, 그분 진실은 대대에 이르신다. ◎     

 God loves you.~`♡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20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21 그러나 그들은 내 이름 때문에 너희에게 그 모든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곳에 복음을 전하러 간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오늘 독서를 묵상하면서 깨닫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방인들의 사도로 뽑아 세우신 바오로가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과, 또 비티니아로 가는 것을 왜 성령께서 막으셨을까요? 이렇게 우리가 이해하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분명 기뻐하실 일이라고 생각하며 어떤 일을 시작하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분께서 함께해 주시지 않으시는 것 같아 길이 막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좌절하기도 하고 주님께 이의를 제기하면서 그분을 붙잡고 흔들며 매달리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음을 깨닫곤 합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의 심정이 그러했을 것입니다만 그는 흔들리지 않고 매우 평온합니다. 성령께서 한쪽 길을 막으시면 성령의 지시를 다시 받아들여 또 다른 길을 개척해 나가는 지혜가 바오로 사도에게는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생각지도 않은 마케도니아에서 하느님께서 자기를 부르신다고 확신하게 되자 곧바로 그곳으로 떠날 방도를 찾습니다. 길이 닫히는 데에 동요하거나 구애받지 않고 또 뜻밖의 길이 열리는 데에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는 바오로 사도의 이 자유로움은, 모든 것이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요한 복음은 빛과 어둠, 삶과 죽음, 진리와 거짓, 세상과 그리스도 사이에서 하나를 택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하는데, 이 선택의 기로에서 어정쩡한 중간 지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요한 복음이 저술될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심한 박해를 받고 있었는데, 오늘 복음은 그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자기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우선 반대하고 배척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소중하게 여기거나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입니다. 분명 다르다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험을 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과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송영진 모세 신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요한 15,18)." "그들은 내 이름 때문에 너희에게 그 모든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요한 15,21)."  

이 말씀들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은 나를 미워하기 때문이다." 라는 뜻입니다. 또는 "너희에 대한 미움은 사실은 나에 대한 미움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 모든 일'은 증오와 박해를 뜻합니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은, 세상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미워하는 이유를 설명하시는 말씀인데, '나를 보내신 분', 즉 하느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미워한다는 뜻입니다. "알지 못한다." 라는 말은, 믿지 않는다, 또는 섬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미워하고 박해하는 것은 그들이 하느님을 안 믿거나, 믿더라도 제대로 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안 믿고, 안 섬기는 것은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사탄은 하느님과 적대 관계에 있고, 계속해서 세상을 자기 지배 아래 두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사탄은(사탄의 지배 아래에 있는 인간들은) 하느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예수님을 미워하고, 예수님의 제자도 미워합니다.  

지금 이 내용을 구약시대 '모세'의 경우와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모세를 따라서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를 잘 따른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걸핏하면 모세를 미워했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벽돌을 만드는 문제로 조금 고생하게 되었을 때(탈출 5,19), 그들은 모세를 미워하면서 "천벌이나 받아라." 라고 그를 저주했습니다(탈출 5,21). 또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에는 이집트 땅에서 배불리 먹던 때가 더 좋았다는 말을 합니다(탈출 16,3). 그들의 말에는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왜 괜히 와서 고생시키는가?"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단순히 모세만 미워한 것이 아니라, 모세를 보내주신 하느님도 미워한 것입니다.  

또 가나안 땅 근처에 도착했을 때에는 정찰대의 보고를 듣고서 절망에 빠져서 아우성치다가 모세를 죽이고 우두머리를 새로 세우자고 의논합니다(민수 14,4).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때 여호수아와 칼렙이 백성들을 설득하려고 하자 백성들은 그 두 사람도 죽이려고 합니다(민수 14,10).  

이런 일들은 모두, 하느님을 안 믿었거나, 믿더라도 믿음이 부족했던 사람들, 또 하느님께서 모세를 보내셨다는 것을 안 믿은 사람들, 또 자기들이 고향에 도착해서 누리게 될 행복보다는 당장 눈앞의 위험과 고통만 생각한 사람들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이것은 무엇이 더 좋은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인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만일에 모세가 하느님을 제대로 섬기는 신앙을 강조하지 않고 백성들의 비위를 맞춰 주는 일만 했다면, 그렇게 미움과 박해를 안 받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안 믿고, 미워하기만 한 이유도 비슷합니다. 하느님을 안 믿는 사람들, 하느님을 믿더라도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것을 안 믿는 사람들,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행복보다는 지상에서의 부귀영화와 쾌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안 믿었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예수님을 미워했습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세속의 부귀영화만 약속하시고, 지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일만 말씀하셨다면, 또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는 말씀을 안 하셨다면, 그렇게 박해를 받고 수난을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또 최소한 회개하라는 말씀만이라도 안 하셨다면, 미움을 받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회개와 보속은 누구에게나 괴롭고 힘든 일입니다.) 

교회가 받는 미움과 박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에 교회가 세속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일만 말한다면 미움과 박해를 받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선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또 악을 물리치기 위해서 노력하고,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말하기 때문에 미움과 박해를 받게 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과 교회를 미워하고 박해하는 자들은 자기들에게 죄가 없는데도 자꾸만 회개하라는 말만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또 회개하기가 싫어서 그런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과 제자들과 교회를 미워하고 박해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죄인들'이라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자들입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신앙인들이 세상 사람들의 미움과 박해를 받는 것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고 있다는 뜻이 되고,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만일에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면서 전혀 구분되지 않는 생활을 한다면 미움과 박해를 받지 않을 텐데, 그러면 그것은 신앙인의 자격을 스스로 잃는 일이 됩니다. 그것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와 신앙인이 미움을 받는 일을 자초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충실하게 하는 과정에서 미움과 박해를 받는 일이 생기더라도, 낙담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면서(사도 5,41)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항상 신앙인들을 미워하기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와 신앙인이 호감과 존경을 얻는 경우도 많습니다(사도 2,47). 

그러나 신앙생활을 제대로 함으로써 호감과 존경을 얻는 것과 적당히 세속과 타협함으로써 세상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사탄과 타협해서 친해지는 것은 사실상 사탄의 지배 아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더 큰 사랑으로       반영ㅇ억 신부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거나 선에 대치되는 꿈과 희망은 결코 현실화 될 수 없습니다.” 꿈은 크게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룰 수 있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바라는 것에 걸 맞는 노력과 정성이 함께한다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대한 꿈을 지니되 선 안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래 전 일이지만 모 그룹 재벌회장이 술집에서 폭행을 당한 아들을 보고 너무 화가 나서 조직 폭력배를 동원하여 보복을 하였다는 얘기가 떠들썩하였습니다. 결국 그 아버지는 구속되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고귀한 마음은 나무랄 수 없지만 선에 대치되는 방법을 선택하였기에 그는 너무 많은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자식을 사랑한다는 빌미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선생님을 폭행한 학부모도 있습니다. 폭행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자녀 교육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자녀는 아버지의 전철을 밟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의 방법을 좋아하고 그것으로 자신을 내세우며 권력을 행사합니다. 그리고 그에 동조하는 사람을 자기사람으로 만들고 그것을 즐깁니다. 옳고 그렇지 않고는 상관없이, 좋고 싫고에 관심을 둡니다. 그러니 하느님께 속한 사람은 그것에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미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이 나를 미워한다고 해도 두려워할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곧 내가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것이 증거 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미움을 당하는 것은 악에 대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야 할 소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사실 사악한 세상의 미움을 받지 않고 그들과 더불어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조직폭력배와 공생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믿는이들은 누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구애 없이 선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상에서 뽑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삶이 우리 믿는이의 삶이라는 것을 일깨우는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가톨릭 신자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공동선을 추구하는 데 있어 '가장 뛰어난 형태의 자선'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온갖 부정부패로 얼룩진 정치에 참여하기란 쉽지 않다는 현실에 공감하시고 "매일 공동선이라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은 일종의 순교와 같다."말씀하셨습니다. 지저분하게 되거나 지치게 되더라도 우리는 현실 안에서 다시 선을 선택해야 합니다. 누가 나를 미워하면 더 큰 사랑으로 되 갚아주시길 다짐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한 달에 한번 예전 적성 본당의 청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처음 만난 것은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였습니다. 지난 2,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한 아이가 우연히 길에서 저를 알아보았고, 그 뒤로 만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1999년에 적성 본당의 주임신부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적성에서의 3년은 제게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가장 보람 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적성 본당으로 간 것도 저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동창 신부가 주교님께 저를 추천하였고, 저는 주교님의 명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주일미사 참례인원이 100여명인 작은 본당이지만 제게는 첫사랑과 같은 본당입니다.

 

처음에 한 일은 미사 참례를 한 신자들 중에서 번호표를 뽑는 것이었습니다. ‘은총과 봉사의 번호표였습니다. 은총의 번호에 당첨된 분들에게는 선물을 드렸습니다. 성경책, 묵주, , 바구니, 주전자와 같은 것들을 드렸습니다. 은총의 번호표에 당첨된 분들은 어린이처럼 좋아하셨습니다. 봉사의 번호에 당첨된 분들은 주보 정리를 하고, 성당 청소도 하고, 화장실 청소도 하고, 화단 정리를 하였습니다. 봉사를 하는 분들도 기쁘게 하셨습니다. 오늘은 누가 선물을 받고, 봉사를 할지 궁금해 하셨습니다.

 

두 번째 한 일은 태권도였습니다. 본당 교우 중에 도장을 운영했던 분이 있었습니다. 본당에서 도장을 만들고, 도복도 무료로 나누어주고, 수업료도 받지 않고,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성당에 와서 간식도 먹고, 태권도도 배우고, 교리를 배워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성당에 나오니 부모님들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0여명에 불과했던 주일학생들이 100여명으로 늘었습니다. 이번에 만난 청년들도 그때 성당에 태권도를 배우러 온 아이들이었습니다. 정말 신기한 것은 아이들을 위한 간식, 도복을 위한 비용들이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서울에서 여름캠프를 오면, 본당에 필요한 만큼의 비용을 주셨습니다. 예전에 군 생활을 하셨다는 분이 오셔서 감사헌금을 하기도 하셨습니다.

 

세 번째 한 일은 농산물 직거래였습니다. 신자들 중에는 포도를 재배하는 분도 있었고, 양봉을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쌀농사를 하셨습니다. 서울의 본당들과 자매결연을 하였고, 트럭으로 배달을 하였습니다. 가을에는 배추를 보내 드리기고 하였습니다. 자매결연을 한 본당에서는 사목위원들이 오셔서 피정을 하기도 하셨고, 청년들이 야유회를 오기도 하였습니다.

 

네 번째 한 일은 본당 신자들을 위한 차량운행이었습니다.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성당에 오려고 해도 여의치 않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봉사자들을 모았고, 봉고차를 가지신 분들이 주일이면 4곳으로 차량운행을 하였습니다. 본당에서 차량운행을 하기 때문에 신자들은 편하게 성당에 올 수 있었고, , 마늘, 고추, 오이, 계란 같은 것들을 가져오셨습니다. 주일미사가 끝나면 신자들이 가져오신 것으로 점심을 해서 먹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선교여행을 읽으면서 적성 본당에서의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길가의 돌들로도 충분히 놀라운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감사한다면, 우리가 희망을 가진다면, 우리가 기도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커다란 일들을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도움을 드리는, 새천년 복음화 사도직 협회는 지난 55일에 설립 25주년을 맞이하는 행사를 하였습니다. 평신도들의 힘으로 25년간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복음화 학교를 수료할 수 있게 한 것은 하느님의 크신 은총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5년을 지내면서 많은 장애물들이 있었고, 때론 시련과 아픔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런 장애물을 디딤돌로 삼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고, 지혜와 용기를 주셨습니다.

 

이제 복음화 학교는 아시아의 선교를 위해서도 노력하려 합니다. 복음화 학교의 정신과 가치를 아시아를 넘어 세계 교회에로 전하려 합니다. 교회는 세속화의 거친 물살에 넘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25년을 준비하면서 이주민과 새터민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분들에게 복음이 전해진다면 낯선 곳에서의 삶에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그분들이 하느님이 사랑을 체험한다면 가족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새터민들이 복음화 된다면 앞으로 다가올 통일의 시대에 북한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될 것입니다.

 

지난 25년 동안 복음화 학교에 베풀어 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복음화 학교뿐만 아니라, 우리들 모두는 주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는 복음화의 사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조재형가브리엘 신부

 

☆★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평화를 이루기 위한 우리의 몫은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으므로, 그들은 프리기아와 갈라티아 지방을 가로질러 갔다. 그리고 미시아에 이르러 비티니아로 가려고 하였지만, 예수님의 영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 (사도 16,6-7)

살다보면 참으로 일이 안 풀릴 때도 있습니다.
이것을 해도 안 되고 저것을 해도 안 되고
이리 막히고 저리 막히고
길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내가 이리 가려고 하는데 못가게 말립니다.
그래서 저리 가려고 하면 또 말립니다.

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살라고 하는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오늘 사도들의 길도 그렇게 막히네요.
아시아로 가려는데 안 되고
비티니아로 가려는데 또 막힙니다.

결국 생각지도 않았던
마케도니아로 가서 큰 성공을 거둡니다.

그렇습니다.
이 길이 막히면
하느님께서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저 길이 막히면
성령께서 말리신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 눈에 좋아보이는 길이 결코 가서는 안 될 길이기에
좋으신 하느님께서 말리신다고 여기면 되지 않을까요?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통해
상상치도 못하는 큰 축복을 내리십니다.

여러분도 그런 기막힌 체험을 하는
오늘 되소서.

오상선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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