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6주간 화요일] 보호자께서 오시면(요한 16,5-11)

2015. 5. 12. 오전 7: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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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6주간 화요일] 보호자께서 오시면(요한 16,5-11)

 사도 바오로의발자취를 따라서 - 제3차 전도여행 [22] 사도 바오로의 2차 전도여행

바오로와 실라스는 필리피에서 감옥에 갇혔다. 그들이 점 귀신 들린 하녀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어 그 주인들이 돈벌이를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녀의 주인들이 그들을 고발하자 행정관들은 그들을 매질하고 가두었다. 그러나 밤중에 지진이 일어나 감옥 문이 열린다. (사도16,22-34)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제자들을 떠나시는 것이 그들에게 이롭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떠나지 않으시면 보호자 성령께서 오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요한복음16,5-11)   

 

시편 138(137),1과 2ㄴ.2ㄱㄷ과 3.7ㄹ-8(◎ 7ㄹ 참조)
◎ 주님, 당신 오른손으로 저를 구하소서. (또는 ◎ 알렐루야.)
○ 주님,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제 입의 말씀을 들어 주시기에, 천사들 앞에서 찬미 노래 부르나이다. 거룩한 성전 앞에 엎드리나이다. ◎
○ 당신은 자애롭고 진실하시니, 당신 이름 찬송하나이다. 제가 부르짖던 날, 당신이 응답하시고, 저를 당당하게 세우시니, 제 영혼에 힘이 솟았나이다. ◎
○ 주님은 오른손으로 저를 구하시나이다.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리라! 주님, 당신 자애는 영원하시옵니다. 당신 손수 빚으신 것들 저버리지 마소서. ◎    

 

 성령강림대축일(성령칠은, 아홉가지 열매) 2014년 6월 8일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요한 20, 21-22)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요한복음16,5-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5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그런데도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 아무도 없다. 6 오히려 내가 이 말을 하였기 때문에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찼다. 7 그러나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9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10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11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요한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수난사’(18―19장) 바로 전에 그분의 ‘고별사’(13―17장)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분께서 부활하신 다음인 부활 시기에 이 고별사를 읽으면서 묵상하다 보니, 마치 이 말씀들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발현하시어 당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제자들이 좀 더 쉽게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비록 예수님께서는 떠나가시지만 곧 성령께서 오시리라고 믿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야기한 대로 이 고별사는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떠나가신다는 말씀에 제자들이 근심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지금까지는 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중심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 말고는 어떤 공통점도 없는 열두 사람이, 그분께서 떠나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제자들의 앞날은 그저 불안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고 하십니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훌륭한 교황님 한 분만 계셔도 교회의 모습이 얼마나 달라지고, 훌륭한 지도자 한 사람만 있어도 본당과 단체가 얼마나 활기를 띠게 되는지를 우리가 이미 체험하였는데, 예수님께서 떠나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과연 이로울 수가 있을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분명 그렇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보호자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눈에 보이는 방법으로 그들과 함께 계시면서 이끌어 주시기를 더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이제부터는 너희 안에서 활동하실 성령께 귀를 기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시간과 공간 안에서 활동하셨다면 성령께서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시면서 어느 곳에서든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계속 수행하시는 보호자 역할을 하실 것입니다. 보호자 성령께서 함께하신다면 오늘 독서의 바오로와 실라스처럼 탈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 칠흑같이 어두운 상황에서도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오실 위로자 성령을 기다립시다.

 

 성령의 충만을 위해

<성령께서 오시면>   송영진 모세 신부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요한 16,8-11)." 

우리말 번역이 많이 이상한데, 어떻든 이 말씀은, 성령께서 오셔서 이런 진리를 가르쳐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죄이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것은 예수님이 의로우신 분이라는 증거이고, 예수님의 죽음은 심판을 받은 일이 아니며, 진짜로 심판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가담한 자들(사탄의 지배 아래에 있는 자들)이다." 

그런데 성령께서 진리를 가르쳐 주신다는 말씀은,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성령께서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 주신다는 뜻은 아니고, 성령을 받으면 저절로 진리를 알게 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바꿔서 생각해야 합니다. "나를 믿지 않는 것 자체가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나를 믿어서 의롭게 되도록(구원을 받도록) 노력해야 하고, 심판을 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일이다." 

성령을 받으면, 또는 성령의 은사나 인도를 받으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모든 일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믿는 것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이고,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 가는 것도 '내가' 해야 하는 일이고, 구원과 생명을 얻는 것도 '내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성령은 그런 노력을 하는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지 우리를 로봇으로 만들어서 끌고 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1)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일이 죄가 된다는 말씀은, 예수님과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생명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알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 또는 믿을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 죄인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믿을 기회가 있었고, 복음을 들었는데도 자기 스스로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 죄입니다. '믿음으로' 얻게 되는 구원과 생명을 거부하는 것은 스스로 멸망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멸망'은 심판 때에 죄인들이 당하게 되는 일입니다. 따라서 지금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일은 스스로 죄인이 되어서 죄인의 운명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2)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일 때, 그들이 내세운 죄목은 "예수는 하느님을 모독했다."입니다(마태 26,65). 그들이 주장한 대로 예수님이 하느님을 모독했다면, 예수님의 부활도 승천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은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이시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 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고, 우리가 부활과 승천을 믿는 것도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메시아라는 것을 믿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부활과 승천을 믿는 것도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믿을 수가 없어서 못 믿은 것이 아니라, 아예 믿으려는 노력과 시도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부활의 은총과 영원한 생명을 거부한 것입니다.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그렇게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는데도 안 받겠다고 하면, 못 받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죽음은 겉으로만 보면 한 죄수가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된 일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일을 하느님의 심판을 받은 일, 즉 천벌을 받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느님의 심판과 처벌을 집행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 자체가 하느님을 모독하는 죄가 됩니다.) 오늘날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죽음만 보고 심판과 천벌을 받은 것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는 자들이 있고, 또는 자기들이 죄인들을 직접 처단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의인이 정녕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하느님께서 그를 도우시어 적대자들의 손에서 그를 구해 주실 것이다. 그러니 그를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 보자. ... 자기 말로 하느님께서 돌보신다고 하니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지혜 2,18-20)." 어리석은 사람들은 의인들이 겪는 고난과 죽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정말로 하느님이 계신다면,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지상에서부터 복을 받아서 행복한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최후의 심판은 아직 오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는 그 일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지 모릅니다. 그리고 왜 의인들은 고난을 겪고 악인들은 부귀영화를 누리는 경우가 많은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은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사탄이)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부활과 승천은 예수님의 승리이고, 그것은 곧 사탄의 패배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은 사탄이 '이미' 심판을 받았고, '이미' 멸망했음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사탄이 완전히 멸망하게 되는 때는 최후의 심판 때입니다.) 

사탄이 이미 심판을 받았다면, 사탄의 지배 아래에 있는 인간들도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고, 멸망을 향해서 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탄의 지배 아래에 있다."는 말은 예수님의 반대쪽에서, 구원에 대한 믿음도 희망도 없이 자기의 욕망대로 쾌락만 추구하면서 사는 것을 뜻합니다.

 

 

 

떠나보면 알거야     반영억 신부

 

봄은 분명 생명력이 넘칩니다. 이 생명은 겨울의 쓸쓸함 속에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봄을 좋아하고 어떤 이는 여름, 가을을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은 화창한 날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비오는 날을 뛸 듯이 좋아합니다. 어둠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둠이 빛을 더 빛나게 하고 그래서 그의 소중함도 더해지기도 합니다. 이렇듯 상대적인 것을 통하여 새로운 깨우침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새로운 깨우침을 얻는다는 것은 모르는 것을 새로 아는 것이 아니라 잊고 있던 것을 새롭게 기억하는 것입니다. 빛은 빛으로써 존재하고 있었고 어둠은 어두움대로 있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요한16,7).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떠나는 것이 이롭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이 진실하다는 것을 보호자 성령께서 증언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을 비롯하여 사람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였지만 예수님은 여전히 당신의 일을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떠나시면 세속의 권력자들이 하느님의 정의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예수님을 죄인으로 심판하려고 하려고 한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심판은 지금 새로운 법을 만든 잣대로 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잘못된 것을 지금 알게 해주는 것일 뿐입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이야기(루카15,11-32)를 보면 재산을 챙겨 집을 나갔던 둘째 아들은 모든 것을 탕진하고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아버지의 집’을 기억하게 되었고 아버지집의 충분하고 넉넉한 풍요로움을 새롭게 깨우쳤습니다. 그는 집을 나가서 밑바닥에 떨어져서야 비로소 아버지를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깨달아 안다는 것은 잊었던 것을 새롭게 기억하는 것입니다. 사실 떠나 보면 알게 됩니다. 자기 삶의 자리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것은 한 발 물러서 있을 때입니다. 그러니 한 발 물러서보십시오. 지금 자리를 집착하거나 안주하지 말고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여유를 간직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지금 처지에서 감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꽃자리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어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묶여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구상-

 

성령님의 숨은 크신 사랑 28 기본교리 - 5. 성령 하나님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요한 16,7)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했던가요.
사실 세상은 내가 없어도 돌아갑니다.
우리 회사, 우리 공동체,
우리 본당 모두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갑니다.
그런데 마치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양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양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마저도
당신이 없어야 한다네요.
내가 떠나야 너희에게 더 이롭다네요.
내가 가야만 진리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신다네요.

형제들이여
오늘은 내가 없는 듯 한번 살아봅시다.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생각해보고 나를 내려 놓읍시다.
그래야 더 좋은 일이 생깁니다.
그래야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십니다.

아,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오상선 신부

 

 성령(Holy Spirit) 이미지  성령 강림 대축일 聖靈 降臨 大祝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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