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티아 사도 축일>(2015. 5. 14. 목)(요한 15,9-17)

마티아 사도는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배신자 유다의 자리를 메우려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에 사도로 뽑힌 인물이다(사도 1,21-26 참조). 그는 예수님의 공생활 초기부터 다른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가르침을 받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까지 목격한 이로 예수님의 일흔두 제자(루카 10,1-2 참조)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 마티아 사도의 활동과 죽음에 관해서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없으나, 예루살렘에서 선교 활동을 펼친 데 이어 이방인 지역, 특히 에티오피아에서 선교하였다고 전해진다.
사도행전의 첫 부분에서는 유다 이스카리옷을 대신할 한 명의 사도를 뽑는다. 빈자리를 이어받을 사도를 뽑는 것은, ‘열두’ 사도라는 숫자의 상징적 의미 때문이다. 후계자를 선출할 때 사도들은 사람들의 선택 기준을 따르지 않고, 하느님께서 어떤 사람을 뽑으셨는지 알 수 있도록 제비를 뽑는다. (사도1,15-17.20-26)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당신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그들을 뽑아 세우셨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친구라 부르시며 아버지께 들으신 것을 그들에게 모두 알려 주신다. (요한15,9-17)
시편 113(112),1ㄴㄷ-2.3-4.5-6.7-8(◎ 8 참조)
◎ 주님은 그를 당신 백성의 귀족들과 한자리에 앉히셨네. (또는 ◎ 알렐루야.)
○ 찬양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양하여라, 주님의 이름을.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
○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까지, 주님의 이름은 찬양받으소서. 주님은 모든 민족들 위에 높으시고, 그분의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네. ◎
○ 누가 우리 하느님이신 주님 같으랴? 드높은 곳에 좌정하신 분, 하늘과 땅을 굽어보시는 분. ◎
○ 억눌린 이를 흙먼지에서 일으켜 세우시고, 불쌍한 이를 잿더미에서 들어 올리시는 분. 귀족들과, 당신 백성의 귀족들과 그를 한자리에 앉히시네. ◎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요한15,9-1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부부든 신앙 공동체든, 혈육을 나눈 부모 형제가 아닌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특히 출신 지역과 직업과 사회적 여건이 다양한 사도들의 공동체가 그랬을 것입니다.
오늘은 마티아 사도 축일을 맞이하여 사도행전에서 마티아가 사도로 선출되는 과정을 전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독서의 초점은 뽑힌 마티아 사도보다는 선출하는 사도단에 있는 것 같습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나 빈자리가 생겼지만 왜 한 사람을 더 뽑아야 했을까요?
여기서 ‘열둘’은 하느님께서 흩으신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뜻하는데, 그들을 한데 모으시어 새 이스라엘을 이루시겠다는 구약 성경의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사도들은 서로 다른 지방을 찾아가 복음을 선포하게 되었고 시간이 더 흘러 복음을 전하다가 많은 사도가 순교하게 되어 ‘열둘’이라는 숫자가 무너지기 시작했지만, 앞에서 말씀 드린 그러한 의미가 덜 부각되어 더 이상 사도들을 뽑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집단을 이루어도 다툼과 불화는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구심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살펴보면 사도들이 스스로 예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하나로 묶어 주셨습니다.
마티아가 사도로 불린 것은 부활의 증인, 곧 예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도 그분의 제자가 되려면 주님의 부활을 우리 삶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또한 독서의 말씀은 예수님과 함께 생활한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사도가 될 수 있음을 천명합니다. 이를 통하여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날마다 주님을 모시고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한결같은 신앙인이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송영진 모세 신부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6)."
이 말씀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내가 너희를 제자로 삼은 것은 너희에게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서이다."입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으신 일은 무상으로 베풀어 주신 은총이고 선물이라는 것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물론 제자들 쪽에서도 원했던 일입니다. 그러나 선택권과 결정권은 예수님 쪽에 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는 제자들이 스승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제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래도 마티아는 사도들이 선출한 사도가 아닌가?
마티아가 사도로 뽑히는 장면을 보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에 사도들과 신자들이 모여서 회의를 합니다(사도 1,15). 그리고 요셉과 마티아 두 사람을 후보로 정한 다음에 기도를 했고(사도 1,23-24), 제비를 뽑아서 마티아를 사도로 정합니다(사도 1,26).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제비뽑기'가 이상하게 보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 사도들과 신자들이 모여서 기도를 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기도를 보면, "이 둘 가운데에서 주님께서 뽑으신 한 사람을 가리키시어(사도 1,24)" 라는 말이 들어 있는데, 이 말은, 마티아가 사도로 뽑힌 일은 사도들의 기도에 주님께서 응답하신 일이 아니라 주님의 선택에 사도들이 응답한 일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마티아는 사도들이 선출한 사도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뽑으신 사도라는 것이 우리 교회의 믿음입니다.
부르심과 응답은 사도들뿐만 아니라 모든 신앙인에게도 해당되는 일입니다. 자기가 종교를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생각은 착각이고, 예수님께서 신앙인들을 부르시고 뽑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맨 처음에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시작된 일입니다. 아브라함은 원래 하느님을 몰랐던 사람이고, 다른 신들을 섬겼던 사람입니다(여호 24,2). 그런 사람을 하느님께서 부르셔서 신앙인의 조상으로 삼으셨습니다(창세 12,1-3).
바오로 사도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차지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2테살 2,14)." 그런데 이 말을 "하느님께서는 신자들만 부르셨다." 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이 신앙인이 됩니다.
자기가 여러 신들 가운데에서 하느님을 선택했다는 생각은, 또는 여러 구세주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선택했다는 생각은, 또는 여러 종교와 신앙들 가운데에서 그리스도교를 선택했다는 생각은 '오만'이고 '어리석음'입니다.
1) 하느님은 여러 신들 가운데 한 신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오직 한 분이신 분, 유일신입니다. 믿든지 안 믿든지를 선택할 수는 있지만, 여러 신들 가운데에서 한 신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2) 예수님은 여러 구세주 가운데 한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구세주(메시아)는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님만 믿어야 하고, 예수님의 복음만 받아들여야 합니다. "실제로 다른 복음은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을 교란시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물론이고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갈라 1,7-8)."
3) 하느님은 유일신이고,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세주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교는 유일한 참 종교이고 참 신앙입니다. 지금 여기서 다른 종교에 대해서 말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인의 입장에서 자신의 종교와 신앙이 유일하고 참되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4) 우리는 하느님(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섬깁니다. '주님'이라는 말은 모든 주권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느님(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에 대한 '생살여탈권'을 비롯해서 우리의 운명에 대한 모든 선택권과 결정권이 주님에게만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5) 자기가 자신의 종교와 신앙을 선택했다는 생각은 자기가 자신의 종교와 신앙을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되기도 합니다. 그 생각도 '오만'이고 '어리석음'입니다. 물론 자신의 자유의지로 버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잃는 일이기 때문에 결과를 놓고 보면, 자기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버림을 당하는 일'이 됩니다.(자기가 '버린' 일이 아니라 '버림 당하는 쪽'을 선택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을 구원하신 것은 예수님 쪽에서 아쉬워서 하신 일이 아닙니다. 아쉬운 것은 예수님 쪽이 아니라 우리 쪽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생명은 사랑이고 자비이고 은총이고 선물인데, 받기 싫다고 하면서 안 받는 사람에게 억지로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르사빠스라고도 하고 유스투스라는 별명도 지닌 요셉과 마티아 두 사람을 앞에 세우고, 이렇게 기도하였다“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 이 둘 가운데에서 주님께서 뽑으신 한 사람을 가리키시어, 유다가 제 갈 곳으로 가려고 내버린 이 직무, 곧 사도직의 자리를 넘겨받게 해 주십시오.”(사도 1,23-25)
우리나라 정치에서는 보궐선거가 자주 있습니다.
자주 있다는 것이 비정상적이지요.
여하튼 어떻게 하면
보궐선거를 잘하는 것일까요?
12사도 자리에서
예수님을 배반하고 죽은 유다의 자리가 비어 보궐선거가 실시됩니다.
두 사람이 천거됩니다.
한 사람은 새누리당에서 천거하였고
한 사람은 새민련에서 천거하였다고 합시다.
한 사람은 직함도 많고 잘 알려진 사람이고
한 사람은 그렇게 잘 알려진 사람은 아닙니다.
사도들이라면 이렇게 하겠네요.
두 사람을 앞에 세우고 이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합니다.
누가 되어도 하느님께서 택하신 사람으로 인정하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리고나서 제비뽑기를 합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돈도 안들고
싸움도 안하고
부정선거 논란도 없고
누가 되든 서로에게 승복합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바르사빠스, 유스투스라는 별명과 화려한 직함을 지닌 요셉이 아니라
아무 직함도 없는 마티아가 선출되었답니다.
우리도 이렇게 선거하면 어떨까요?
오상선바오로 신부

억지로 하면 헛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반영억라파엘 신부
무슨 일을 하든 억지로 마지못해 의무감으로 하면 기쁨을 갖지 못합니다. 그러나 똑 같은 일을 하면서도 자발적으로 하면 보람과 기쁨이 큽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명령이나 의무에 의해 한다면 진정한 사랑을 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나 계명을 내리는 분의 뜻을 알기 위해 또 그분과 하나 되기 위해 지킨다면 그 의미가 풍요로워집니다. 사실 진정한 사랑을 한다는 것은 그만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자기를 먼저 생각하는 부족한 사랑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많은 사랑을 받아야 하고 또 많이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고 사랑 받는 것이 우리 존재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 ‘사랑 안에 머물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머물러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그들을 위한 당신의 사랑이 선행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신 것과 같은 사랑으로 제자들을 사랑하였습니다. 아버지께 받은 사랑은 제자들을 위한 사랑의 기초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아들 예수님께서 받으셨고 예수님의 사랑을 제자들이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제자들 서로 간에 사랑을 하는 것에 머물지 말고 이웃 사람에게로 사랑의 손길을 펴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요한13,35).
예수님께서 사랑 안에 머무르시라고 당부하는 것은 당신의 기쁨을 제자들에게 전해 주고 그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쁨은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만이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충만한 기쁨을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에서 얻게 될 것입니다. "아닌 척 해도 있는 사랑을 오래 감출 수 없고, 없는 사랑을 있는 척 속일 수 없습니다."
혹계명을 억지로 지키는 사람은 헛고생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계명을 지키십시오. “마음 속 깊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도 그를 아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채비가 갖추어져 있는 만큼 그는 하느님을 사랑합니다.”(디아도쿠스주교)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더 사랑 받는 존재가 됩니다”(작은 거인들에서). 망설이지 말고 사랑을 위한 사랑을 함으로써 주님의 계명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기억합니다. "여러분이 서로 사랑하면 그것을 보고 여러분이 나의 제자임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이웃 사랑이 생겨나고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하느님사랑이 자랍니다."
오늘 기억하는 마티아 사도는 유다의 빈자리를 채우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가 선택될 때 사도들은 요셉과 마티아 두 사람을 앞에 세우고. 기도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 이 둘 가운데에서 주님께서 뽑으신 한 사람을 가리키시어, 유다가 제 갈 곳으로 가려고 내버린 이 직무, 곧 사도직의 자리를 넘겨받게 해 주십시오.”(사도123-25) 사도들은 ‘주님께서 뽑으신 사람’을 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요한15,16)는 주님의 말씀을 알아들었습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주님께서 뽑아 쓰신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더욱 더 겸손해야 하겠습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