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6주간 토요일]청하여라 (요한 16,23ㄴ-28)

2015. 5. 16. 오전 8: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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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6주간 토요일]청하여라 (요한 16,23ㄴ-28)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6월 29일)  바오로 사도의 전도 여행-바올로사도의 삶 이해

코린토를 떠난 바오로 사도는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가 거기에서 다시 제3차 선교 여행을 시작하여 여러 지방에서 신자들을 격려한다. 그 사이에 아폴로가 에페소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한다. 그는 성경에 정통한 달변가로서 성경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논증하여 신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사도18,23-28)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시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나오셨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오셨다가 이제 다시 아버지께 가신다. (요한 16,23ㄴ-28)    

 

시편 47(46),2-3.8-9.10(◎ 8ㄱ)
◎ 하느님이 온 누리의 임금이시다. (또는 ◎ 알렐루야.)
○ 모든 민족들아, 손뼉을 쳐라. 기뻐 소리치며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주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 경외로우신 분, 온 세상의 위대하신 임금이시다. ◎
○ 하느님이 온 누리의 임금이시니, 찬미의 노래 불러 드려라. 하느님이 민족들을 다스리신다. 하느님이 거룩한 어좌에 앉으신다. ◎
○ 뭇 민족의 귀족들이 모여 와, 아브라함의 하느님 그 백성이 된다. 세상 방패들이 하느님의 것이니, 그분은 지극히 존귀하시어라. ◎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24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25 나는 지금까지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비유로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 너희에게 비유로 이야기하지 않고 아버지에 관하여 드러내 놓고 너희에게 알려 줄 때가 온다. 26 그날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청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27 바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28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  (요한 16,23ㄴ-28)


성령이란 무엇인가-바오로사도의 편지(에페소)와 요한복음,토마스머튼주의보!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지도층은 사도들과 순회 설교가들과 선교사들로 구성되었는데, 이들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람들을 계속 격려하고 가르치면서 그들이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도록 보살폈습니다. 그러나 코린토 교회에는 저마다 “나는 바오로 편이다. 나는 아폴로 편이다. 나는 케파 편이다.”(1코린 1,12) 하면서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는 바오로 사도의 증언을 살펴볼 때, 오늘 독서에 등장하는 언변이 좋은 아폴로는 아마도 여러 가지로 그를 궁지에 몰아넣거나 바오로에게 어려운 문제를 던져 주어 공동체의 일치를 위협하던 한 집단의 우두머리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 독서에 따르면 그는 과거를 청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복음의 협조자가 되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신앙 공동체 안에서 힘을 얻습니까, 아니면 본당 공동체 안의 삶이 짐스럽고 지치게 합니까?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되어 줍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듭니까? 주님 안에서 같은 신앙을 고백하면서 하나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이지만,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삶은 그리 녹록치만은 않은 것 같아 걱정입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약점 때문에 실망하거나 당혹스러워하는 우리에게 오늘 독서의 말씀은 커다란 위로와 희망을 줍니다.
오늘 독서의 분위기를 살펴보면, 부활과 복음의 기쁨으로 공동체에 활력이 넘쳐흐릅니다. 서로에게 그 기쁨과 활력을 전해 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전해 주는지 살펴봅시다. 바오로는 갈라티아와 프리기아 신자들의 힘을 북돋아 주고, 아폴로는 에페소에서 열정을 가지고 가르치며 담대하게 설교합니다. 프리스킬라와 아퀼라가 아폴로에게 가르침을 주고 형제들도 그를 격려합니다. 격려를 받은 아폴로는 다시 아카이아에서 신자들에게 도움을 줍니다. 이와 같이 초기 공동체는, 사도나 선교사만 신자들을 가르치고 독려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모두 서로 격려하면서 믿음을 키워 주고 가꾸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복음에서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면 무엇이든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것이기 때문에, 갈등과 분열의 조짐이 보이는 공동체라 하더라도 사도들처럼 문제를 해결하려고 먼저 그분께 겸허하게 간청하고 서로 격려하면서 노력한다면, 보호자 성령의 도우심에 힘입어 이 모든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복음 말씀대로 우리 기쁨은 충만해질 것입니다.
아울러 이 기회에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 줍니다.”(『복음의 기쁨』 첫머리)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쁨이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 힘과 용기와 희망과 활력을 줄 수 없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일 것입니다. 그런 이는 복음을 믿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    송영진 모세 신부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 (요한 16,28)."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라는 말씀에는, 예수님은 한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신 분이라는 뜻과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요한 8,58)."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요한 3,34)."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 라는 말씀은 '승천'을 암시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루카 24,51)."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요한 20,17)."

'예수님의 승천'은 예수님께서 인간 세상을 아주 떠나서 하느님 곁으로 가신 일이 아니라, 예수님의 존재 방식이 바뀐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가신다는 말씀은, 제자들을 떠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승천 전에는 '사람'으로서 제자들과 함께 지내셨지만, 승천 후에는 '하느님'으로서 제자들 가운데 (우리 가운데) 현존하신다는 뜻입니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그날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청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겠다는 말이 아니다(요한 16,26)." 라는 말씀을 해석하면,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으로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겠다는 뜻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 14,14)."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런 약속은 하느님이신 분만 하실 수 있는 약속입니다.

승천 전까지는 제자들은 아버지 하느님께만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승천 후부터는(지금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기도하기도 하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께 기도하기도 하고, 예수님께 기도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모두 사실상 한 가지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아버지 하느님께서 들어 주시든지 예수님께서 들어 주시든지 간에 사실상 한 가지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예수님은 완전히 일치되어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30)."

그런데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라는 말씀은 좀 더 해석이 필요합니다. 이 번역은 예수님께서 옆에서 지켜보시기만 하겠다는 뜻으로 오해할 수 있는 번역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이 기도할 때 관여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이 아니라, 더 이상 '중개자'의 역할은 필요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사람으로서 제자들과 함께 지내실 때에는 하느님과 제자들 사이에서 중개자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승천 후에는 중개자가 아니라 하느님으로서 직접 제자들의(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기도와 그냥 예수님께 청하는 기도는 우리 입장에서는 사실상 같은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예수님 쪽에서 생각하면, 당신이 하느님이신 분이라는 것을 암시하신 말씀인데, 제자들 쪽에서 생각하면, "예수님은 하느님이신 분"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는 것과 그냥 사람으로만(위대한 예언자로만)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사람을 위해서 사람으로 오신 하느님이신 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종파가 있고, 인정하더라도 하느님이 아닌 위대한 예언자 정도로만 생각하는 종파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와 그들 종파는 단순히 교리만 약간 다를 뿐인가?

만일에 예수님이 하느님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면, 예언자들 가운데에서 가장 위대한 예언자라고 하더라도, 우리 입장에서는 예수님을 존경하기는 해도 믿을 수는 없게 됩니다.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들이 별로 의미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우리 사이는 굉장히(완전히) 멀어지게 됩니다. 인간의 구원을 다른 인간을 통해서 시키신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구약시대의 연장이 될 뿐입니다.

탈출기를 보면, 백성들이 하느님을 무서워해서 모세에게 중개를 요청하는 내용이 있습니다(탈출 20,18-21). 당시 백성들에게 하느님은 아버지가 아니라 무서운 임금이었습니다. 사랑은 없고 공포심만 있는 종교라면 옥황상제를 믿는 종교와 다를 것이 없게 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신 분입니다. 사랑이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일입니다. 인간들을 사랑하신 하느님께서는 직접 사람이 되셔서 사람 가운데에서 사람으로 사셨습니다. (아버지 하느님과 아들 예수님의 구분은 삼위일체 교리로서 따로 생각할 일이고...)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주 하느님을 믿는 신앙에서 '사랑'을 빼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폭군 같은 존재에 대한 두려움만 남게 될 것입니다.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반영억 신부

 

믿고 바라고, 믿고 감사하고, 믿고 기뻐하고, 믿고 사랑하자! 그냥 입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믿음으로 ‘되는 기도’, ‘열매를 맺는 기도’를 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요한16,24).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이들의 기도는 다 받아들여지고 그래서 기쁨이 충만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믿는 이들의 기도라는 말에는 주님의 뜻에 맞는 청원이라는 뜻이 전제되고 있습니다. 주님의 뜻에 맞기만 하면 다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헛된 기도를 하지 않기 바랍니다. 많은 경우 주님께 매달린다고 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청하고 있음을 부끄러워합니다.

 

토마스 아 겜피스는

주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는다면 무슨 좋은 일이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면 문제될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과 함께하면서 가난할지언정

주님을 떠나 부요해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주님과 함께 이 세상에서 순례자의 길을 걸을지언정

주님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곳이 천국이요,

주님을 떠난 그 자리가 죽음이며 지옥입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바라는 모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부르짖으며 마음으로부터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외에 저를 도와줄 이 아무도 없습니다.

믿고 의지할 분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도 간절한 기도를 하되 믿음으로 열매 맺는 기도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이는 "기도는 오아시스 없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주님과 함께하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청하여라, 주실 것이다.”-김태식- 청하여라 주실 것이다/권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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