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7주간 수요일]진리로 거룩하게 (요한 17,11ㄷ-19)

어제 독서에 이어서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에게 특별히 그들의 직무 수행에 관하여 권고한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돌보라고 맡기신 원로들은 양 떼를 지켜야 한다. 하느님 은총의 말씀에 의지하여 진리를 왜곡하는 이들을 막아 내야 하며, 약한 이들을 거들어 주어야 한다.(사도20,28-38)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신다. 제자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으며, 세상은 제자들을 미워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바라지 않으시고, 그들을 악에서 지켜 주시기를 기도하신다. (요한17,11ㄷ-19)
시편 68(67),29-30.33-35ㄱ.35ㄴㄷ과 36ㄷ(◎ 33ㄱㄴ)
◎ 세상의 나라들아, 하느님께 노래하여라. (또는 ◎ 알렐루야.)
○ 하느님, 당신의 권능을 베푸소서. 하느님,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소서, 우리 위하여 이루신 그 권능을. 예루살렘의 당신 성전을 위하여, 임금들이 당신께 조공을 바치게 하소서. ◎
○ 세상의 나라들아, 하느님께 노래하여라. 주님을 찬송하여라. 하늘로, 태초의 하늘로 오르신다. 보라, 그분이 목소리 높이시니 그 소리 우렁차네. 하느님께 권능을 드려라. ◎
○ 그분의 존엄은 이스라엘 위에 있고, 그분의 권능은 구름 위에 있네. 하느님은 찬미받으소서. ◎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요한17,11ㄷ-19)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11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12 저는 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켰습니다. 제가 그렇게 이들을 보호하여,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말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13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14 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이들을 미워하였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5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16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17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18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19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친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저희 가족을 한 사람씩 따로 부르시고는 “우리 집안에 믿을 사람은 너밖에 없단다.” 하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전해 들었습니다. 모두에게 같은 말씀을 하셨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는 미소를 짓기도 했습니다만, 저마다 모두 그런 마음으로 살기를 바라셨던 것이 이 집안을 지켜 오시다가 마지막 작별을 하시는 할머니의 진심이었다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계시는 동안 그들을 지켜 주셨습니다. 이제 그들을 떠나 아버지께 돌아가시면서,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나약함을 잘 아셨으나 하느님께서 그들을 이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기도하지 않으시고 시련과 유혹에서 지켜 주시도록 간청하셨습니다. 아울러 아버지와 예수님께서 하나이듯이 제자들도 하나가 되게 해 주시고 또한 악의 세력으로부터 지켜 주시도록 아버지 하느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힘만 믿고 인생을 살아갈 때 좌절과 실망을 체험하겠지만, 우리를 위해서 늘 아버지께 간청하시는 주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궁극적인 위로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그가 에페소에 머무는 동안 밤낮 쉬지 않고 신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이 그들을 돌볼 수 없기에 그 교회의 원로들에게 양 떼를 잘 돌보라고 간곡히 당부하면서 작별 인사를 합니다. 오늘 독서를 묵상하면서 ‘만남과 이별도 성령의 이끄심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바오로 사도처럼 남김없이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려면 시련이 따르기도 하고 책임을 져야 할 일도 많을 것입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는 진정한 만남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작별이 필요 없는 영원한 만남을 신앙 안에서 기약하면서 바오로는 에페소 교회 원로들과 뜨거운 눈물로 인사를 나누며 헤어집니다.
이와 같이 오늘 독서와 복음의 간절한 말씀 안에는, 맡겨진 이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배어 있습니다. 온 정성과 혼신의 힘을 다하여 그들을 위해 헌신하신 다음 떠나가시면서 그들의 앞날을 염려하시는 예수님과 바오로 사도에게서, 자녀를 낳아 기르는 부모와 같은 모습이 보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에게 권고하듯이, 교회 안에서 공동체를 돌보는 이들의 모습도 이러해야 할 것입니다. 그가 에페소 교회에서 보여 주었던 모범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종으로서 교회의 직무를 맡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과 같은 ‘착한 목자’의 정신과 자세가 필요합니다.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송영진 모세 신부
"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이들을 미워하였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요한 17,14)."
예수님의 이 기도를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바꿔서 생각하면,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더라도 하느님의 뜻만 실행하면서 살아라."가 될 것입니다. "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복음과 구원의 진리 등을 가르쳐 주셨음을 뜻합니다. 신앙인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세상의 미움을 받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신앙인의 삶은 세상 사람들의 삶과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 앞에서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요한 15,19)."
'세상에 속한 사람'은 하느님을 안 믿고, 예수님도 안 믿고, 사탄의 지배 아래에서 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신앙인들을 미워하고 박해합니다. 자기들과 같은 편이 아니라고, 즉 자기들의 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마태 10,16)." 악에 물들어 있는 세상은 '이리 떼'이고, 신앙인들은 '양들'입니다. 이리 떼는 자기들 가운데에 있는 양들을 잡아먹으려고 할 것입니다.
양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이리 떼'를 '양들'로 변화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복음화' 사업입니다.) 이것은 양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 이리 떼를 구원하기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양들이 이리 떼와 같은 힘과 방식으로 맞서 싸우는 방법도 있고, 이리 떼와 타협을 하거나, 이리 떼에게 굴복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것은 모두 살아남는 방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방법들은 모두 '세속화'입니다.) 양들이 이리 떼와 같은 힘과 방식으로 맞서 싸우는 것은 양으로서 살기를 포기하고 이리 떼가 되어서 이리 떼와 싸우는 것일 뿐이고, 타협하거나 굴복하는 것도 사실상 양으로서 살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양'이 '양으로서' 살기를 포기하는 것은 죽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인과 교회의 세속화는 구원 대신에 멸망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아무리 신앙인들을 미워하고 적대시한다고 해도 신앙인들 쪽에서는 세상을 그렇게 대하면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적이 아니라 구원의 대상이고, 사랑해야 할 이웃입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하고, 그래서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그들을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신앙인들끼리만 고립되어서 살면 안 됩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 세상 안에서 건설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앙인들이 세상 안에서 살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거룩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17-19)."
이 기도를 신앙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바꾸면, "너희는 우선 먼저 나를 본받아서 너희 자신부터 하느님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가 될 것입니다. 거룩하게 사는 것은 모든 면에서 예수님을 닮는 생활을 하는 것이고, 그래서 세상 안에서 살지만 세상과 다르게 사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사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랑'입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마태 5,44-45)." 안 믿는 사람들도 사랑을 실천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합니다(마태 5,46). 그러나 신앙인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고, 박해자를 위해서도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라는 계명을 주신 다음에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루카 6,36)."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이 강조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말씀은,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9,2)." 라는 명령과 연결됩니다. 완전한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지름길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긴 겉옷을 입고 다니고(루카 20,46), 기도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는(마태 6,5) 등의 행동을 하면서 자기들이 거룩한 사람이라는 것을 과시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요즘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룩한 척 하는 '위선'이었을 뿐이고, 진짜로 거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진짜로 거룩한 사람이 되려면 진리로 거룩해져야 합니다(요한 17,17). 진리로 거룩해지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입니다(마태 7,21). 하느님의 뜻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마르 12,28-34).

세상에 발을 붙이고 반영억 신부
세상에 발을 붙이고 있는데 천국을 살라고 하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그게 말하는 것같이 쉬운지 아십니까? 정말 어렵습니다. 신부님은 자꾸 하늘을 보라고 하시는데 하늘을 보니 제가 땅에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땅에 있으니 땅의 처지대로 살아야겠습니다. 저도 먹고 살아야지 어찌합니까! 그래도 하느님은 이해하실 것입니다. 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실 테니까요!
주님을 믿고 산다는 것은 진리 안에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는 곧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면 세상이 그를 미워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어둠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둠은 빛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빛으로 나아가는 길을 방해합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습니다.(요한1,5) 그러므로 두려워 마십시오. 지금 당장 힘에 겹더라도 반드시 빛의 진가는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갑니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요한3,21)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1티모2,4) 그리고 육화를 통하여 인간이 되신 진리인(요한14,6)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이들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인정받는 사람으로, 부끄러울 것 없이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는 일꾼으로 하느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2티모2,15) 사실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을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나는 그분을 안다.”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1요한2,3-4)
우리가 비록 땅에 발을 붙이고 있지만 진리를 거슬러 살 수는 없습니다. 세상이 험해지면 험해질수록, 어두워지면 어두워질수록 믿는 이들이 진리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은 남의 탓이 아니라 내가 빛나는 삶을 살지 못한 까닭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상에 속하지 않으신 주님의 뒤를 이어 세상에 있으면서도 이미 천상을 사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의 어둠을 탓합니다. 믿는 이들이 제대로 살지 못한다고 불평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모순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나만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못 마땅한 것이 보이면 보일수록 더 많이 사랑하고 모두를 품을 수 있는 마음을 키워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련의 고통 속에서도 아버지와 깊은 일치를 이루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온전히 순명하셨습니다. 그 그리스도의 거룩함으로 인해 제자들이 거룩해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주님과의 일치 안에서 거룩함을 잃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혹 죄에 떨어졌다면 주님의 거룩함에 온전히 맡겨드려 다시 거룩함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복음의 기도는 ‘하나가 되게 하소서.’ ‘악에서 지켜 주소서.’ ‘진리로 거룩하게 하소서’로 요약 됩니다. 그 기도가 풍성하게 열매 맺기를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이제 나는 하느님과 그분 은총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을 굳건히 세울 수 있고, 또 거룩하게 된 모든 이와 함께 상속 재산을 차지하도록 여러분에게 그것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사도 20,32)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 원로들에게 고별인사를 하면서 두 가지를 당부합니다.
그 첫 번째는
하느님의 은총의 말씀에 의지하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열심히 일하고 받기보다 주기를 좋아하는 가난한 사목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사실 바오로 사도는
그 누구보다도 이 두 가지에 충실했던 분이기에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말로 "나를 본받으라"고 합니다.
말씀묵상을 매일 나누면서도
그만 두고 싶은 유혹이 일 때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사도 바오로의 이 말씀은 그래서는 안된다고 채찍질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말씀은
나 자신을 더 굳건히 세워줄 뿐만 아니라 내가 하늘나라의 상속을 받도록 해주고
다른 이들도 그럴 수 있도록 나누어주는 가장 큰 은혜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도 바오로처럼
하느님 말씀에 의지하고 가난한 사목자가 되는 것이
참 생명을 얻고 다른 이들도 참 생명을 초대하는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오늘 나는 무엇으로
참 생명을 얻어누릴지 생각해 보는 날 되시길 빕니다.
[출처] 2015.05.20.|작성자 알타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