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7주간 목요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요한 17,20-26)

2015. 5. 20. 오후 7:59:33

글자

 

<부활 제7주간 목요일>(2015. 5. 21. 목)(요한 17,20-26)

 바오로 전도 : 바오로의 생애와 사상

 세 차례의 선교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바오로는 보수적인 유다인들과 다시 충돌한다. 일부 유다인들은 바오로가 율법과 성전을 모독하고 그리스인을 성전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거룩한 곳을 부정하게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그를 고발하여, 그는 최고 의회에 출두하여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여기서 바오로는 부활과 천사와 영에 관한 교리에서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이용하여 슬기롭게 대처하여 위기를 넘긴다.(사도22,30; 23,6-11)

복음에서는 대사제이신 예수님의 기도가 이어진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증언을 듣고 당신을 믿게 될 이들이 하나가 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신다.(요한17,20-26)

 시편 16(15),1-2ㄱ과 5.7-8.9-10.11(◎ 1)
 ◎ 하느님,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께 피신하나이다. (또는 ◎ 알렐루야.)
○ 하느님,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께 피신하나이다. 주님께 아뢰나이다. “당신은 저의 주님.” 주님은 제 몫의 유산, 저의 잔, 당신이 제 운명의 제비를 쥐고 계시나이다. ◎
○ 저를 타이르시는 주님 찬미하오니, 한밤에도 제 양심이 저를 깨우나이다. 언제나 제가 주님을 모시어, 당신이 제 오른쪽에 계시니 저는 흔들리지 않으리이다. ◎
○ 제 마음 기뻐하고 제 영혼 뛰노니, 제 육신도 편안히 쉬리이다. 당신은 제 영혼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께 충실한 이에게 구렁을 보지 않게 하시나이다. ◎
○ 당신이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고, 당신 오른쪽에서 길이 평안하리이다. ◎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요한 17,20-26)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거룩하신 아버지, 20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21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22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23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24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도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어 저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25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지만 저는 아버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6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 앞으로도 알려 주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기도하시는 예수님 기독교이미지 기도하시는 예수님

“거룩하신 아버지,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신 예수님의 이 기도는 교회 일치 운동에서 자주 인용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우리 인간은 과연 분열이나 분파를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존재일까요? 사실 같은 하느님, 같은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는 현실은 믿는 모든 이가 하나가 되기를 아버지께 기도하신 예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며,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에 입문하는 데 커다란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는 예수님의 기도는 그리스도인 모두의 일치를 위한 기도일 뿐만 아니라 더 작은 공동체들, 가톨릭 교회와 각 교구, 본당, 단체, 가정을 위한 기도라는 사실을 마음에 간직하면서 오늘도 일치를 위한 작은 노력, 행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화요일부터 오늘까지 사흘 동안 우리는 요한 복음 17장의 ‘대사제의 기도’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에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목전에 둔 당신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셨으며, 제자들이 하나가 되고 하느님께서 친히 그들을 지켜 주시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제자들뿐 아니라 멀리 있는 사람들, 미래에 당신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게 될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주신 영광을 제자들에게도 주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의 영광이란 바로 그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을 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러 차례 살펴보았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영광! 오늘 독서도 바오로 사도가 예수님처럼 고난을 받고 있음을 전하면서 주님을 증언하는 사람들은 모두 주님과 같은 운명임을 강조합니다. 바리사이들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 바오로를 주님께서 찾아오시어 그가 용기와 결단을 내리도록 도와주시면서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는 새로운 사명도 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주님의 뜻에 따라 로마로 올라가게 됩니다. 사명을 수행하게 될 로마에서도 십자가가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도하시는 예수님모습(성화)와기도 이미지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송영진 모세 신부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요한 17,20-21)." 

지금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이 모두 하나가 되기를,또 믿는 이들이 아버지와 예수님 안에 있게 되기를, 또 세상이 예수님을 믿게 되기를 바라시면서 아버지께 기도를 바치십니다. 믿는 이들이 모두 하나가 되는 것은 아버지와 예수님의 일치에 참여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아버지와 예수님 안에 있기 위해서입니다.

이 말을 "믿는 이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야" 아버지와 예수님의 일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믿는 이들이 분열되어서 제각각 따로(개별적으로) 예수님과 일치를 이룰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참으로' 믿는다면 당연히 형제와 일치를 이루게 될 것이고, 그 상태로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형제를 미워하면서, 또 형제와 분열된 채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제대로 믿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아버지와 예수님 안에 있게 된다는 말은,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받아서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라는 기도는,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기를 바란다는 기도입니다. 겉으로만 보면,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세 가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 가지이고, 그것은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이 모두 하나가 되는 방법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사랑'은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신분증 같은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랑이 없다면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은, "너희가 나를 믿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라는 뜻이고,다시 이 말은, "너희의 믿음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 될 것이다." 라는 뜻이 되고, 동시에 "너희가 믿고 있는 '나를' 증언하는 일이 될 것이다." 라는 뜻도 됩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사랑'은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이기도 하고, 신앙을 고백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시면서"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은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신' 사랑입니다(요한 15,13).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우리의 사랑도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죽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놓는 사랑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이 모두 하나가 되는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아버지와 예수님이) 하나인 것처럼"이라고 말씀하십니다(요한 17,22). 아버지와 예수님의 일치는 '사랑으로' 완전히 하나가 된 일치입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는 일도 그렇게 사랑으로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일입니다.

또 '사랑'은 '섬김'입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4-15)."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종합하면, 우리가 모두 공동체로서 하나가 되려면, 그래서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려면, 서로 사랑, 양보, 희생, 겸손, 섬김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나는' 사랑, 양보, 희생, 겸손, 섬김을 실천하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혼자서 마음대로 행동한다. 왜 나만 손해를 보아야 하는가?" 라고 말하게 되는 경우가 실제로 생길 때가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경우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는 주님이며 스승의 입장에서 "너희는 모두" 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내가' 라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너는 나를 섬기지 않아도 나는 너를 섬긴다."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겸손입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내가' 먼저 실천하면서 그가 변화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만일에 "나는 겸손하게 너를 섬기는데, 왜 너는 겸손하게 나를 섬기지 않는가?" 라고 비난한다면? 그런 말 자체가 자기가 겸손하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는 말이 될 뿐입니다. 진짜로 겸손한 사람은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만일에 "나는 이렇게 희생하고 양보하면서 너를 사랑하는데, 왜 너는 그렇게 하지 않고 항상 이기적으로 행동하는가?" 라고 비난한다면? 그런 말 자체가 사랑이 아닙니다.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은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묵묵히 사랑을 실천할 뿐입니다. 

사랑, 양보, 희생, 겸손, 섬김은 남에게 강요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강요할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남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Take My Hand Precious Lord / Ricky Van Shelton 

학교에 다닐 때, 집합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전체집합, 부분집합, 공집합, 교집합이 있었습니다. 수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자연수, 유리수, 무리수, 짝수, 홀수, 소수가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이끌어주는 통합된 진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들은 저마다 소중한 개성과 자유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집합의 종류는 서로 틀린 것이 아니고, 서로 다른 개념입니다. 수의 종류역시 서로 틀린 것이 아니고, 서로 다른 개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쉽게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분과 전체를 이해하게 되고, 함께 공유한 것을 알 수 있고, 서로 다른 것들의 자리를 인정하게 됩니다.

들의 꽃들도, 하늘의 새들도, 바다의 고기들도 다 이런 이치를 알기에 남을 비난하거나, 탓하지 않습니다. 자신만이 최고라고 우기지도 않습니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원망하지도 않고,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억압하거나, 죽이지도 않습니다. 이 우주에 지구는 하나의 부분집합입니다. 이 지구에 살아가는 모든 것들은 지구의 부분집합입니다. 살아있다는 공통점이 있고, 삶의 방식에서는 차이점이 있을 뿐입니다.

광주에서 있었던 민주화 운동이 있었습니다. 어느덧 35년이 지났습니다. 1년에 한번 광주에서 기념식을 하게 됩니다. 1365일에 많은 기념일과 기념식이 있습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고단한 삶을 살아야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도 일상의 한 부분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으로 부르던지, 제창으로 부르던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민주화 운동의 당사자들이 원하고, 국회에서도 여와 야가 합의를 했다면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습니다.

제 안에서 분노와 원망이 독버섯처럼 자랄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좀 더 얻으려고 욕심을 부렸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에는 다양한 기능을 하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머리에는 눈, , , 입이 있어서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를 맡습니다. 손과 발이 있어서 도구를 사용하기도 하고, 원하는 곳으로 이동을 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우리 몸의 지체들은 한 몸을 이루어서 원활하게 생활 할 수 있도록 서로 도움을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우리 몸의 지체가 한 몸을 이루듯이 우리들 신앙인 모두가 한 몸을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아버지, 당신이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모두 하나 되게 하소서. 당신이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되리이다.”

건강하던 우리 몸에 이상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것은 입니다. 암은 우리 몸의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른 세포들은 자신의 영양분을 다른 세포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적당한 크기를 유지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암세포는 자신의 영양분을 다른 세포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고 혼자만 간직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성장하게 되며 주변의 세포들에게 피해를 주고 결국은 암세포도 죽게 된다고 합니다. 암세포의 비극은 자신의 영양분을 나누어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암세포가 치유되는 것은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서 자신의 영양분을 주변의 다른 세포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을 때입니다.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누는 것입니다. 조건 없이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빵이 되셔서 우리들에게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사를 통해 주님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나눔은 우리가 하나 되는 지름길입니다.

날씨는 점점 무더워 질 것입니다. 주변에 우리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일들도 줄어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신앙 안에서 주님과 하나 될 수 있다면 그런 모든 것들도 기쁨으로 변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재형 신부

 

기도하시는 예수님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 17,22)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가 하나가 되도록 해주십사 하느님께 간곡히 기도하셨습니다.

어느 공동체이든
참으로 하나 되기가 힘들지요?
좀 되는 것 같다가 늘 분란이 생기고 갈라지고 상처입는 것이 우리네 경험이지요.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은 없을까요?
물론 하나가 된다는 것이 똑같아진다는 것은 아닐 겁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어떻게 똑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예수님은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고
여러분도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하시네요.

그 비결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영광을 나누어 주면 됩니다.
내가 누리는 모든 영광은 다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이기에
그 영광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주기만 하면 모두 하나가 된다는 거지요.

우리는 보통 내가 받은 영광은 움켜쥐고
다른 사람이 받은 영광을 내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참으로 하나가 되기 어렵겠지요.

부부가 하나가 된다함은
서로에게 좋은 것을 주고싶어 함으로써 가능하겠지요.
남북이 하나가 되는 길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베풀어주는 마음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자, 오늘
울 가정이 하나가 되고 우리 공동체가 하나가 되도록
나부터 내가 받은 모든 좋은 은혜와 영광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봅시다.

왜 나만 손해봐야 하냐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 주님께서 나에게 거저주신 것이니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모든 영광과 축복을 남과 나누라고 주신 것이지
나 혼자 움켜쥐고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니니까요.

오늘 좀 손해봅시다!
즐거운 마음으로!

[출처] 2015.05.21.|작성자 알타반

 

 

사랑에 사랑을 더하는 것이 중요 반영억 라파엘 신부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많은 기도를 받고 또 기도를 부탁하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기도하는 것은 방법이 다를 뿐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에 상관없이 삶 안에 젖어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생각해 보면 ‘무엇을 해 달라’는 기도가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하느님의 은혜로움에, 그분 처분에 맡기고, 마음 깊은 곳에서 그분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라고 알고 있지만 막상 기도를 시작하면 나의 바람만을 쏟아놓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참되게 기도하기위해서는 먼저 침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의 침묵 없이는 제대로 기도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많이 생각하는 데에 있지 않고, 많이 사랑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 증언하는 말을 듣고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기도의 핵심은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17,26). 하고 말씀하셨듯이 사람들이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을 온전히 깨닫고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바로 그 사랑을 가지고 세상에 사랑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은 사랑의 관계 안에서 예수님 안에 머물게 되고 예수님께서도 그들 안에 머물러 사시게 됩니다. 결국 예수님의 기도는 사랑의 관계를 확고히 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도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어 저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요한17,24) 하고 간절히 기도한 것은 바로 당신이 누리는 영광을 믿는 이들에게도 전해주고자 하는 사랑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기도는 사랑이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도 정성어린 기도를 봉헌하되 이기적인 기도를 벗어나 사랑의 기도를 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기도는 오직 사랑에 사랑을 더하는 것이 중요하고 사랑을 일깨워 주는 것들을 생활 실천으로 옮겨야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성요한 비안네는 말합니다 “기도를 잘 하기 위해서 말을 많이 할 필요는 없습니다. 감실 안에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그분께 마음을 열며 거룩하신 하느님이 그곳에 계시기 때문에 한 없이 기뻐하는 것, 이것이 가장 훌륭한 기도입니다.”

“기도란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여 그분과 대화하고 그분을 바라보는 것”(오리게네스).이고, “기도는 지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비록 잘못에 떨어졌다 할지라도 기도하기를 그쳐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그 잘못됨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힘은 꾸준히 계속되는 기도를 통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예수의 성녀 데레사). 더 많이 사랑하여 기도의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http://cafe.daum.net/rom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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