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8주간 수요일>제베대오의 두아들 (마르 10,32-45)

2015. 5. 27. 오전 7: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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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8주간 수요일>제베대오의 두아들 (마르 10,32-45)

 집회서에서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이 하느님을 알게 되기를 기도한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어 흩어진 이스라엘을 다시 모으시고 예루살렘을 회복시켜 주실 때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될 것이다. (집회서 36,1-2.5-6.13-22)

복음은 주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세 번째 예고를 전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고 계실 때에도 제자들은 서로 윗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툰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에게, 세상의 통치자들을 본받지 말고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마르코10,32-45)

 시편 79(78),8.9.11.13(◎ 집회 36,1 참조)
◎ 주님, 당신 자비의 빛을 저희에게 비추소서.
○ 선조들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마소서. 어서 빨리 당신 자비를 저희에게 내리소서. 저희는 너무나 불쌍하게 되었나이다. ◎
○ 저희 구원의 하느님, 당신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를 도우소서. 저희를 구하소서. 당신 이름 위하여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 ◎
○ 포로들의 탄식이 당신 앞에 이르게 하소서. 죽을 운명에 놓인 이들을 당신의 힘센 팔로 보호하소서. ◎
○ 저희는 당신의 백성, 당신 목장의 양 떼. 끝없이 당신을 찬송하고, 대대로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마르코10,32-45)
그때에 제자들이 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 서서 가고 계셨다. 그들은 놀라워하고 또 뒤따르는 이들은 두려워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고 가시며, 당신께 닥칠 일들을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33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34 조롱하고 침 뱉고 채찍질하고 나서 죽이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35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 저희가 스승님께 청하는 대로 저희에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하였다.
3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37 그들이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39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도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도 받을 것이다. 40 그러나 내 오른쪽이나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정해진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41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을 불쾌하게 여기기 시작하였다. 42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43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44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4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마르코 복음은 예수님의 일생을 십자가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겠다는 결심은 예수님께서 혼자 결정하신 것 같습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주저함이 없이 죽음의 장소로 묵묵히 올라가시는 그분의 결단과 고독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옳고 곧은 결정을 내리려고 하니, 고독 속에서 결단을 내려야 할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혼자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반면 제베대오의 두 아들은 야심이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삯꾼을 고용할 정도의 경제적인 능력이 있었던 점을 감안할 때 야고보와 요한은 다른 제자들보다 조금 나은 환경에서 성장한 것 같습니다. 이 작은 우월함이 세속적인 욕망을 초래하여 오늘 예수님께 좋은 자리를 부탁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는 …….” 이보다 더 명확한 말씀은 없겠지요.
백성 위에 군림하고 세도를 부리는 세상의 통치자들을 우리가 비난하기는 쉽지만, 우리의 사고방식에도 어느새 이 세상의 논리가 들어와 있음을 발견합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경쟁에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원하건 원치 않건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커 보이려고 안간힘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하철에서 어린 자녀들의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어머니들 가운데 한 분은, 아이를 이런저런 학원도 보내고 닦달을 하고 있는데 과연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의문이 드는 경우가 매우 많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넋두리합니다. 직장을 퇴직하신 어느 분은, 무한 경쟁에 내몰려 평생 다른 사람을 이기려고만 애를 쓰다가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게 되어서 나름대로 복음을 실천하면서 살 수 있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교직에 평생 계시다가 오래 전에 은퇴하신 분도, 학교에 있을 때에 공부 잘하고 착한 학생들만 예뻐하며 살았던 것이 죄스럽다고 말씀하십니다.
과연 어쩔 수 없는 것일까요? 다를 수 없을까요? 또는 다르면 안 되는 것일까요?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송영진 모세 신부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2-45)."

이 말씀의 뜻은, "너희는 높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서로 섬기는 사람이 되어라. 너희는 첫째가 되려고 하지 말고 서로 종이 되어라."입니다. 이 말씀은 높은 사람이 되는(첫째가 되는) 방법론이 아닙니다. 다스리는 일은 곧 섬기는 일이고, 높은 자리는 군림하고 세도를 부리는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자리이고, 첫째 자리는 종의 자리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지금 이 가르침은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서 전체를 다스리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아주 작은 모임의 장들에게도 해당되고, 형제와의 관계에서 조금이라도 우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모두 해당되는 가르침입니다. 종말의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높은 자리와 낮은 자리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힘이 있는 사람과 힘이 없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갑을 관계'가 아니더라도 '위아래' 관계는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가르침이 됩니다.

옛말에 불의하고 포악한 권력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말이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힘이 있다면 그 힘으로 군림하고 세도를 부리는 것을 좋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이 세상을 약육강식의 세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포식자들과 같은 자들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그런 자들만 살아남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그런 자들만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아 왕국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이사 11,6-8)." 

이 예언은 힘 있는 자들에게 회개하라고 촉구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메시아 왕국에서 살고 싶다면 맹수의 본성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사자라고 해도 소처럼 여물을 먹으라는 것.) 높은 자리에 앉더라도, 또 힘이 있더라도, 세도를 부리고 싶은 욕망을 버리라는 것. "그렇다면 누가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할까?" 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 텐데, 높은 자리에 앉았다면 당연히 군림하고 세도를 부려야 한다는 그 생각 자체를 버리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섬기고 봉사하겠다고 말하면서 직책을 맡겠다고 스스로 나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속의 정치인들이 다 그런 경우입니다. 선거 때 보면, 군림하고 세도를 부리겠다고 말하는 후보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전부 다 섬기고 봉사하겠다는 말만 합니다.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하는 정치인이, 또 당선된 뒤에 실제로 그렇게 실천하는 정치인이 몇 명은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그런 말을 하고, 당선되면 섬기지도 않고, 봉사하지도 않습니다. 높은 자리와 권력을 얻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기는 자격이 안 된다고 말하면서 어떤 직책을 사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그것이 진짜 '겸손'인지, 아니면 겸손한 척 하는 '위선'인지, 아니면 섬기고 봉사하는 것을 싫어하는 '교만'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만일에 그 '자리'만 생각하고 '섬김'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래서 사양하는 척 하면서 사실은 거절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겸손'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진짜로 겸손한 사람이라면 '자리'는 생각하지 않고, '섬김'만 생각하면서 그 직책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속 사람들의 모습을 말씀하신 뒤에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높은 자리든지 낮은 자리든지 간에, 아니면 아예 직책이 없더라도(직책과 상관없이), 신앙인은 항상 형제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인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섬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요구하셨기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기꺼이 하는 일입니다. 이 말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섬김'을 실천하면서도, 만일에 형제에게 "내가 너를 섬기니까 너도 나를 섬겨라."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섬김'이 아닙니다. 형제가 나를 섬기지 않더라도 나는 형제를 진심으로 섬기는 것, 그것이 진짜 '섬김'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나만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들과 자존심을 모두 극복해야 합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섬기고 봉사함으로써,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는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함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지금은 그런 경우가 별로 없지만 예전에는 차량에서 검은 매연이 나오곤 하였습니다. 차는 겉모습도 중요하지만 속에 있는 것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자주 점검을 해 주어야 합니다. 엔진 오일, 브레이크 페달, 휠터, 냉각수와 같은 것들은 정해진 때에 갈아 주고 보충해 주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곳은 세차도 하고, 고치려고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잊어버리곤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배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좋은 자리를 청하고 있습니다. 교구장의 자리를 청하는 것일 수도 있고, 회사의 사장 자리를 청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면적인 영성을 키워야 합니다.” 내면적인 영성이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메말라 있습니다. 교회는 영적인 메마름을 채워주려는 노력을 게을리 했습니다. 며칠 전에 읽은 책에서 한국 교회의 현실진단을 보았습니다. 한국 교회는 외형적으로 성장을 하였지만,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크게 네 가지라고 이야기 합니다.

첫째는 교회 성장에만 몰두하여, 하느님의 뜻과 진리를 가르치고 실천하는 일은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재정의 3.88%만 불우 이웃돕기와 사회에 대한 봉사에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둘째는 교회가 총체적인 인간과 세계의 해방을 위한 하느님 나라 운동을 해야 하는데, 영적인 구원을 위한 기관과 조직으로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 율법과 제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셋째는 기복적이며 내세지향적인 신앙으로 인해 개인의 영혼 구원에 치중하면서 세상에서의 책임과 공동체적인 의무를 소홀히 하고 있는 점입니다. 사회적인 모순과 구조적인 악에 대해서 교회는 공동선을 추구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넷째는 예수 그리스도는 영혼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분으로 경배될 뿐, 우리도 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가야 하는 삶의 모델로는 이해되지 않고 있습니다.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두 제자는 어쩌면 하느님 나라를 위한 헌신과 희생 그리고 박해와 순교보다는 하느님 나라에서 얻을 영광에 더 큰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다른 제자들도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결실과 영광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충실하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니면 그곳이 길이 되는 것입니다. 길이 있어서 사람들이 다니는 것은 아닙니다. 희생의 길, 봉사의 길, 사랑의 길, 나눔의 길을 가다보면 저 멀리서 하느님 나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조재형가브리엘 신부

부활하신 예수님 그림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마르 10,38)

제자들은 예수님께 청합니다.
"스승님, 저희가 청하는 대로 꼭 이뤄주세요, 네?"
"그래 뭔데 그러니?"
"우리 얘가 반에서 1등하게 해 주세요."
"허허, 글쎄다.
그만큼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되겠지.
남보다 더 열심히 노력한다면야 그리 될거야."

우리는 때때로
엄청난 것을 주님께 이루어주십사 청합니다.
그에 상응하는 노력은 쥐꼬리만하게 하면서 말입니다.
그건 요행수를 바라는 것이겠지요?

오늘 여러분은
주님께 무엇을 청하시겠습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기울이고나서 그분의 도우심을 청해야 하지 않을까요?
누군가 나에게 큰 도움을 청하면서
자신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나라도 그걸 들어주고 싶겠어요?

주님 보시기에 나의 노력과 정성이 갸륵해서
어떻게하면 그리 되게 해줄까 생각하시지 않을 수 없게 해드리면
그 일은 꼭 성취될 겁니다.
요행수만 바란다고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하루 되시길 축원합니다.
[출처] 2015.05.27.|작성자 알타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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