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8주간 토요일] 예수님의 권한 (마르 11,27-33)

2015. 5. 30. 오전 6:51:32

글자
 

<연중 제8주간 토요일>(2015. 5. 30. 토) (마르 11,27-33)

솔로몬의 지혜 - 아이의 '진짜' 엄마는 누구인가?

 집회서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자신의 체험을 언급한다. 젊어서부터 그는 하느님께 지혜를 청하였고, 평생 지혜를 찾았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인 율법 안에서 지혜를 발견했고 그 지혜를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집회서51,12ㄷ-20ㄴ)

 복음은 예수님께서 수난을 앞두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뒤 셋째 날의 일을 전한다. 유다 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쫓아내신 일에 대하여 추궁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도리어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시어 그들이 할 말을 잃게 만드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이러한 일들을 하시는지 그들에게 알려 주지 않으신다, (마르 11,27-33)     

 지식과 지혜란 무엇인가?

시편 19(18),8.9.10.11(◎ 9ㄱㄴ)
◎ 주님의 규정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네.
○ 주님의 법은 완전하여 생기 돋우고, 주님의 가르침은 참되어 어리석음 깨우치네. ◎
○ 주님의 규정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님의 계명 밝으니 눈을 맑게 하네. ◎
○ 주님을 경외함 순수하니 영원히 이어지고, 주님의 법규들 진실하니 모두 의롭네. ◎
○ 금보다 순금보다 더욱 값지며, 꿀보다 참꿀보다 더욱 달다네. ◎


[◆루가복음 성서쓰기] 20장/예수님의 군한을 문제 삼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마르 11,27-33)   
그 무렵 예수님과 제자들은 27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수님께서 성전 뜰을 거닐고 계실 때,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이 와서, 28 예수님께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또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소?”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에게 한 가지 물을 터이니 대답해 보아라. 그러면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30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아니면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대답해 보아라.” 31 그들은 저희끼리 의논하였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말할 터이니, 32 ‘사람에게서 왔다.’ 할까?” 그러나 군중이 모두 요한을 참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군중을 두려워하여, 33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콜럼버스의 달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해답을 보면 모두들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답을 찾아내려면 세상을 한 바퀴 돌아야 할 경우가 있지요. 집회서도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집회서는, 지혜가 어디서 오는지 깨닫는 책입니다. 집회서의 마지막 장에서 시라의 아들 예수는 자신이 어디서 지혜를 찾아냈는지 말해 줍니다. “기도 가운데 지혜를 구하였다.” 지혜는 하느님에게서, 율법의 가르침을 통하여 온다는 것입니다. 당연하게 들리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집회서는 기원전 2세기의 책입니다. 이전에 오랫동안 사람들은 인간 이성의 능력으로 지혜를 찾으려고 애를 써왔습니다. 사람이 가 볼 수 있는 곳까지 찾아가 보고, 파헤칠 수 있는 것은 모두 파헤쳐 보았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진리가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인간의 이성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한계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다른 길을 찾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지혜는 인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있다는 진리입니다.


그 전환점을 이루는 책이 집회서입니다. 문화사적으로 찬란했던 이집트 사람들의 지혜를 탐구하고 그리스 철학을 만나게 된 바로 그 시점에, 시라의 아들 예수는 인간적인 지혜의 한계를 이미 넘어서서 참된 지혜는 하느님 말씀 안에 있다고 가르칩니다.


집회서에서 말하는 지혜에 도달하려면 배우는 마음, 겸손하게 듣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내가 절대로 옳다고 고집하는 사람은 인간 지혜의 한계 그 이상을 넘어설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부류의 사람들을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만납니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이 절대 진리 자체이신 당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적인 질문을 제기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세례자 요한이 어디에서부터 권한을 받고 세례를 베푸는지 되물으셨습니다. 난처한 상황에 직면하자 그들은 진실과 진리에 대하여 입을 다물고 침묵으로 일관하였습니다.


진리 또는 옳고 그름에 대하여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까. 하느님의 말씀, 곧 진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말과 주장과 아집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은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한 [◆루가복음 성서쓰기] 20장/예수님의 군한을 문제 삼다.

<예수님의 권한을 문제 삼다.>  송영진 모세 신부

 

"그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수님께서 성전 뜰을 거닐고 계실 때,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이 와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또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소?'(마르 11,27-28)"

'이런 일'은 좁은 뜻으로는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신 일과 사람들을 가르치시는 일을 가리키는데, 넓은 뜻으로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가리킵니다.

지금 사제들과 학자들과 원로들이 하는 말은, "우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왜 마음대로 '이런 일'을 하는가? 하지 마라."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권한이 궁금해서 질문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일들이 자기들의 권한을 침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 일들을 막으려는 것이 그들의 의도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에게 한 가지 물을 터이니 대답해 보아라. 그러면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아니면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대답해 보아라.'(마르 11,29-30)"

이 말씀은, 당신의 권한이 하늘에서 왔다는 것을 암시하시는 말씀입니다. 또 이 말씀에는, 세례자 요한의 증언을 믿었다면 당신을 믿게 되었을 것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너희는 요한이 하느님의 예언자라는 것을 믿었어야 했다. 그리고 그의 증언도 믿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너희는 나를 믿게 되었을 것이다."

또 예수님의 말씀에는 "너희는 왜 요한이 하는 일을 막지 않고 내버려 두었느냐?"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도 나처럼 당국의 공식 허락을 받지 않고 활동했다. 그러나 너희는 그를 막지 않았다. 그런데도 왜 내가 하는 일은 막으려고 하는가?"

"그들은 저희끼리 의논하였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말할 터이니, `사람에게서 왔다.` 할까?' 그러나 군중이 모두 요한을 참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군중을 두려워하여,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마르 11,31-33ㄱ)."

지금 여기에 등장한 사제들과 학자들과 원로들은 요한이 하느님의 예언자라는 것을 안 믿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고 싶은 진짜 대답은 "사람에게서 왔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군중을 두려워해서 모르겠다고 대답합니다.

군중을 두려워했다는 것은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뜻이 되는데, 이것은 "요한은 참예언자가 아니다." 라는 생각이 거의 확신처럼 굳어져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고, 그들이 하느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이라는 것을, 즉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마음대로 사는' 자들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군중을 두려워했을까? 마태오복음과 루카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실 때에 있었던 일로 되어 있기 때문에(마태 21,23; 루카 20,1)

군중이 둘러싸고 이 대화를 듣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멀게만 느껴지는 하느님의 심판보다는 당장 눈앞의 폭력을 더 두려워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군중이 요한을 참예언자로 여기고 있는데, 그것을 부정해 버리면 군중은 그들에게 돌을 던졌을 것입니다.)

그들은 요한이 활동할 때 왜 그것을 막지 않고 내버려 두었을까? 아마도 자기들에게 별로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면 요한의 활동 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점도 이유가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 쪽에서 어떤 위협을 느껴서 뭔가 조치를 취할 생각을 했더라도, 그러기 전에 헤로데가 먼저 요한을 죽였으니 아마도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 입장에서는 헤로데를 고맙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왜 예수님의 일들은 자기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요한복음에 나옵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요한 11,47-48)." 이 말은 예수님 때문에 자기들이 모든 기득권을 잃게 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아주 위험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떻든 모르겠다는 그들의 말은 대답이 될 수 없고, 대답을 회피하는 말입니다. 이 말을 '관심 없다.'는 뜻으로 한 말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주 관심사는 하느님도 아니고, 구원도 아니고, 세속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몇 년 뒤에 잃게 될 것을 지키느라고 애를 쓴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마르 11,33ㄴㄷ)"

예수님의 이 말씀을 겉으로만 보면 대답을 회피하시는 말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앞의 말씀이 당신의 권한은 하늘에서 왔다는 것을 암시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지금 이 말씀은, "요한이 이미 나를 증언했고, 내가 하는 일들도 나를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너희는 믿지 않을 것이다." 라는 뜻이 됩니다(요한 10,25 참조).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들이 있고(요한 20,29), 보면서도 안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구원, 생명 등에는 아예 관심이 없고, 멀리 떨어져서 구경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하시는데,그 은총은 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만 받게 되고, 안 받겠다고 하는 사람은 못 받게 됩니다.

 

 지혜서 18, 1~8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또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소?”> 마르 11,28)

여러분은
자격증을 얼마나 갖고 계시나요?
오늘날은 소위 '자격증의 시대'라서
많은 사람들이
스펙을 쌓는데 열심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증을
살펴봅니다.
주민등록증이 있고
운전면허증이 있네요.
석사학위증이 있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습니다.
아주 옛날 학창시절에
주산 1단, 부기 2급 자격을 취득했었는데
아예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러고보니
자격증이 별로 없네요.
아~ 건강보험증도 있는데
없어도 상관 잆더군요.

실제로 이용되고 있는 건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 밖에 없네요.
그러고보니 사실 별다른 증이 없어도
지금까지 살아오는데
아무 문제도 없었네요.

그러니 권한과 자격을
너무 따질 필요도 없고
그놈의 화려한 스펙 쌓는다고
너무 애쓸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살아보니 꼭 필요한 것은
사람답게 살 자격을 갖추고
사랑할 자격을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게 될 테니까요.

오늘 나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 자격증을 따기 위해
무슨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출처] 2015.05.30.|작성자 알타반

 

 [◆루가복음 성서쓰기] 20장/예수님의 군한을 문제 삼다.

이번 주부터 성무일도가 연중 주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삼종기도도 부활 삼종기도에서 보통 삼종기도로 바뀌었습니다. 카톡으로 좋은 글을 보내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좋은 글을 쓰는 분도 놀랍고, 그런 좋은 글을 찾아내는 분도 놀랍고, 또 매일 그렇게 좋은 글을 이웃들에게 전하는 분도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며칠 전에 카톡으로 전해진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박 노해 시인의 글입니다.

 

어두운 길을 걷다가 빛나는 별 하나 없다고

절망하지 말아라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구름 때문이 아니다

불운 때문이 아니다 

지금까지 네가 본 별들은 수억 광년 전에 출발한 빛

 

길 없는 어둠을 걷다가

별의 지도마저 없다고 주저앉지 말아라

가장 빛나는 별은 지금

간절하게 길을 찾아 너에게로 빛의 속도로 달려오고 있으니

 

후배 신부님들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예전에 30일 피정을 함께 했던 인연이 있습니다. 신부님들께서는 앞이 잘 안 보인다고 하십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등대처럼 앞을 환하게 비출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인류의 지성이 모인 책을 가까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만나는 사람들을 사랑의 눈으로 보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매일 1시간씩 기도하자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어떤 분은 등대 같은 분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위로와 힘이 되어주는 분을 만나게 됩니다. 어떤 분은 꽃과 같은 분입니다. 지나간 자리는 늘 향기가 있습니다.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 옆에 있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어떤 분들은 바위 같습니다.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이 있으면 삶의 중심을 잡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질문에 정확한 대답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저는 성서에서 말하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성서는 예수님에게서 대해서 4가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첫째는 어린양입니다. 어린양은 유대인들의 종교관습에 의하면 죄를 대신하여 희생하는 제물입니다. 그 유래는 모세의 출애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재앙을 내리셨고, 이스라엘 백성의 문지방에는 양의 피를 바르도록 하셨습니다. 희생된 양의 피는 하느님의 재앙을 막아 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희생된 양의 피를 보시고 건너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파스카입니다. 성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분이 우리 인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신 어린양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어린양은 순결해야 하고, 흠이 없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흠이 없고 순결하신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고난 받는 야훼의 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번에 걸친 유배생활을 하였습니다. 유배생활은 힘들고 괴로운 것입니다.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고, 낯선 곳에서 힘들게 벌어야 했고, 핍박과 조롱을 받아야 했습니다. 예전에 북간도로 떠나야 했던 우리 선조들을 생각하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고난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유배생활이 끝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와서 참된 예배를 드릴 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유배가 끝나면 사막에 샘이 솟아나고, 늑대와 어린양이 함께 뛰놀고, 사자와 어린이가 함께 춤을 출 것이란 생각을 하였습니다. 고난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는 반드시 하느님께서 보상을 해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그것은 모두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기도를 하였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세 번째는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처럼 사람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복음서를 보면 사람의 아들이란 표현을 자주 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이란 무슨 뜻인가요? 마지막 날에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모든 이를 심판하는 사람입니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시고, 참된 생명의 길을 알려 주시는 분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유한한 틀을 깨시는 분이고, 모든 것을 정리해 주시는 분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초대교회에서 사도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부를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네 번째는 요한복음 사가가 이야기 하였듯이 예수님은 말씀이셨습니다. 말씀은 태초부터 있었고, 말씀은 하느님이셨고, 말씀은 진리였습니다. 요한복음 사가는 예수님에 대해서 아름답게 찬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은 맨 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만물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겨났고 생겨난 것치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빛이 어둠 속에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말씀이 참된 빛이셨으니 그 빛이 세상에 오시어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이는 예수님에 대한 엄청난 신앙 고백입니다.

우리는 성서에서 전해주는 예수님의 4가지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분은 한 없이 약하고, 순결하신 어린양이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희생되신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겸손함과 정결함, 순수함을 배워야 합니다. 그분은 모든 고난과 고통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죽음의 순간에서도 하느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었고,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모습에서 참된 신앙의 길을 배워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한 구원자이시고, 그분이 걸어가신 길이 생명의 길이였으며, 그분의 권위는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주어지고 있음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분이 또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구원자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조재형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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