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9주간 월요일](2015. 6. 1)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마르 12,1-12)

2015. 6. 1. 오전 6:5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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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9주간 월요일](2015. 6. 1)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마르 12,1-12)

 

 유스티노 성인은 100년 무렵 팔레스티나 나블루스의 그리스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진리를 찾는 구도자의 자세로 그리스 철학에 몰두하던 그는 마침내 그리스도교에서 참된 진리를 발견하고 입교하여 신앙의 설교자로 활동하였다. 성인은 에페소에서 유다인 트리폰과 종교 토론을 하고 이를 토대로 『트리폰과 나눈 대화』를 저술하였으며, 로마 황제와 원로들에게 그리스도교를 변호하는 책도 펴냈다. 로마에 교리를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기도 한 성인은 165년 무렵 다른 6명의 동료와 함께 순교하였다.  

이번 주간 평일에는 토빗 이야기를 묵상한다. 토빗은 북왕국 이스라엘 출신으로서 니네베로 유배를 갔다. 그가 이스라엘 땅에 살 때에는 율법 규정에 따라 예루살렘을 순례하곤 하였으나, 이국땅에 살면서는 동족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으로 신앙을 실천한다.(토빗1,3; 2,1ㄴ-8)

 예수님께서는 포도밭 소작인들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이 비유에서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포도밭 주인의 아들을 죽인 소작인들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한 유다 지도자들을 나타낸다.(마르 12,1-12)  

 

시편 112(111),1ㄴㄷ-2.3-4.5-6(◎ 1ㄴ)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계명을 큰 즐거움으로 삼는 이! 그의 후손은 땅에서 융성하고, 올곧은 세대는 복을 받으리라. ◎
○ 부귀영화 그의 집에 넘치고, 그의 의로움 길이 이어지리라. 올곧은 이들에게는 어둠 속에서 빛이 솟으리라. 그 빛은 너그럽고 자비로우며 의롭다네. ◎
○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 주고, 자기 일을 바르게 처리하는 이! 그는 언제나 흔들리지 않으리니, 영원히 의인으로 기억되리라. ◎    

 

 [마르코복음 성서쓰기] 12장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 )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에게 1 비유를 들어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2 포도 철이 되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 소작인들에게서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 오라고 하였다. 3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를 붙잡아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4 주인이 그들에게 다시 다른 종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쳐서 상처를 입히고 모욕하였다. 5 그리고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더니 그 종을 죽여 버렸다. 그 뒤에 또 많은 종을 보냈지만 더러는 매질하고 더러는 죽여 버렸다. 6 이제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만 남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7 그러나 소작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8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9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 10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11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12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 그분을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오늘의 묵상>

 역사서에 속하지만 역사 기록이라기보다 교훈적 이야기를 전하는 토빗기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멀리 떨어진 이국땅에서 살아가는 모범적인 이스라엘인의 모습을 제시합니다. 이번 주간에는 이 토빗의 이야기를 묵상하게 됩니다.
이 책에서 크게 강조되는 덕목은 자선입니다. 토빗은 자신이 평생 진리와 선행의 길을 걸어왔고 유배지에서는 자선을 베풀었다고 고백합니다. 유배 오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하는 등 율법과 규정에 따라 열심히 살아왔지만, 유배를 가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선과 같은 애덕 행위를 기쁘게 실천합니다. 토빗은 아들 토비야에게 “자선을 베푸는 모든 이에게는 그 자선이 지극히 높으신 분 앞에 바치는 훌륭한 예물이 된다.”(4,11)고 가르칩니다.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유일한 장소인 예루살렘 성전에 갈 수 없는 그가 유배지에서 신앙을 실천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자선과 사랑의 실천뿐이었습니다.
토빗은 잔칫상을 차려 놓고 가난한 이들을 초대합니다. 그러나 동족이 살해되어 장터에 버려졌다는 말을 듣고서는 잔치 음식을 그대로 두고 가서 그를 묻어 주고 슬퍼합니다. 그에게 자선은 사람을 초대하여 음식을 나누거나 재산의 일부를 조금 떼어 가난한 이들에게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살해되어 죽은 이를 묻어 주려고 잔치 자리를 걷고 일어나는 토빗의 모습은, 의롭게 살아가려는 이들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를 알려 줍니다. 나의 행복에만 도취되어 그것을 즐기기보다는 우는 이들,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의 손을 잡아 주고 위로해 주는 것, 이것이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이스라엘을 포도밭으로 지칭하는 비유가 많이 발견되는데 오늘 복음도 같은 내용을 다룹니다. 이 비유는 포도밭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당신 종들인 예언자들을, 포도밭인 이스라엘과 포도밭 소작인인 지도자들에게 자주 보내셨지만 백성과 지도자들은 그들을 붙잡아 때리고 모욕하고 죽이기까지 하다가 마침내 하느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님마저 죽였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는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넘겨주시어 가꾸도록 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소작인들의 무례에 비해, 주인의 호의와 인내와 배려가 돋보입니다. 여기서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신뢰와 관대함과 인내를 시험하면서 악용하고 있지만 하느님의 정의와 심판이 궁극적으로 승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목숨을 걸고 자선과 사랑을 실천하는 토빗의 모범과, 목숨을 내주면서까지 관대한 주인에게 못할 짓을 하는 악한 소작인의 만행을 비교해 보면 좋겠습니다.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마르 12,1-12/전원 신부 강론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송영진 모세 신부

6월 1일의 복음 말씀은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마르 12,1-12)입니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포도 철이 되자 소작료를 받아오라고 종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종들을 때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면서 소작료 내는 것을 거부합니다. 주인은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내는데, 소작인들은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그 아들을 죽여 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하신 다음에, 주인은 그 소작인들을 없애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이야기에서 소작인들이 종들을 때리거나 죽이는 것은언자들을 박해한 이스라엘 역사를 가리키고, 주인의 아들을 죽이는 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주인이 포도밭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라는 말씀은, 선택 받은 민족이라는 이스라엘의 특별한 지위가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에게로 넘어갈 것이라는 예언이기도 하고, 늦기 전에(그렇게 되기 전에) 회개하라는 경고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경고는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에게도 해당됩니다.)

이야기 속에서 소작인들이 종들을 때리거나 죽이는 것은 주인에게 소작료를 내지 않고 자기들이 포도밭의 소출을 전부 다 차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 이스라엘이 예언자들을 박해한 이유는 다릅니다. 하느님께 바쳐야 할 것을 바치지 않고 자기들이 차지하기 위해서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인 것은 아닙니다.

구약시대 예언자들은(세례자 요한도)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는 하느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말씀이 듣기 싫어서 예언자들을 박해했습니다.

1) 사람들은 자기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고, 자기들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회개하라는 말씀을 듣기 싫어한 것입니다. (소작료를 잘 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자꾸만 내라고 하니까 소작인들이 화를 내는 것과 같은 상황.)

2) 사람들은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이 듣기 싫어서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였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불행을 예언하는 예언자들은 환영받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하느님의 복을 받기만을 바라는데, 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고, 심판과 처벌과 멸망을 예언하기 때문에 예언자들을 미워한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들의 죄는 생각하지 않고 예언자들 탓만 한 것입니다.

3) 회개하고 구원을 받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눈앞의 쾌락만 중요하게 생각해서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인 경우도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을 죽인 헤로데와 헤로디아가 그런 경우입니다. 그런 자들은 하느님의 심판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이 없고, 예언자들의 경고를 부당한 간섭이고 참견이라고만 생각합니다.

비유 속에서 소작인들이 주인의 아들을 죽인 것은 포도밭을 자기들이 완전히 차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또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려고 예수님을 죽인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느님께 충성을 바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몰라서 그런 것이라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알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자기들이 직접 눈으로 본 것도 안 믿으려고 했고, 다른 사람들의 증언도 안 받아들였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점점 더 하느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유대인들과는 아주 대조적인 유대인들이 나옵니다. "그곳(베로이아) 유다인들은 테살로니카 유다인들보다 점잖아서 말씀을 아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였다. 그리하여 그들 가운데에서 많은 이가 믿게 되었다(사도 17,11-12)."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이야기 속에서는 종들이 소작인들에게 간 것은 소작료를 받아내기 위해서였지만(주인의 이익을 위해서였지만), 실제 역사에서 예언자들이 사람들에게 가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 것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서였다는 점입니다. 회개하고 구원을 받는 것은 인간들 자신들을 위한 일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주인의 아들이 소작인들에게 간 것은 심판하고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타이르고 설득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냥 내버려두면 멸망하게 될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기들을 구원하려고 오신 분을 배척하고 죽였습니다. 이것은 구원받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혹시라도 모르고 그랬다면 나중에라도 믿고 회개하면 되는데... 모르고 그랬다가 나중에 믿고 회개한 사람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바오로 사도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가르침을 생생하게 하시려고 주인과 소작인으로 표현하셨지만, 실제로는 하느님과 우리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하느님의 '상속 재산'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기 위한 일입니다. 상속자가 될 수 있는데도 싫다고 하면서 거부하면 상속 재산을 받지 못합니다. 안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시는 것을 안 받아서 못 받는 것입니다.

 

 >7<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모퉁이의 머릿돌

사람 나고 돈 났다고     반영억 신부

살아가면서 많은 재물은 아니라 하더라도 재물은 꼭 필요합니다. 재물이 없으면 위축되고 또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할뿐더러 해야 할 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재물이 없어서 사람구실을 제대로 못한다고 하는 분도 계십니다.

반면에 돈만 있으면 처녀 불알도 산다고 합니다. 돈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하고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재물은 소유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재물보다 사람이 먼저 입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재물에 눈이 어두워서 그리고 재물을 담보 삼아 사람을 무시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어진 사람은 재물로 몸을 일으키고 어질지 못한 사람은 몸으로 재물을 일으킨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사실 사람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던 사람들이 재물을 위해 사람을 죽이게 되면 그 세상은 끝장난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졌고 또 지금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포도밭 주인이 밭을 일구어 소작인에게 주고 멀리 떠났다가 포도 철이 되자 종을 보내어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주인이 보낸 종을 매질하고, 어떤 종은 죽이고 결국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보낸 주인의 아들까지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상속자가 죽었으니 그 포도밭이 자기들 것이 되려니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돌아오면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분명 그 주인은 상응하는 배상을 요구하고 포도밭을 다른 이에게 넘겨줄 것입니다.

여기서 주인은 하느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자비와 은총의 신이고 사랑과 진실이 넘치는 신, 분노에 더디시고 항구하게 사랑하시며 신의를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자비하신 하느님의 뜻을 잘 헤아리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만약 종을 몇 차례 보내고 아들까지 보내며 기다려 주는데도 불구하고 구태의연하게 행동하면 결국은 파국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끝없이 인내하시며 변덕스러운 우리들을 참고 계십니다.

받은 은총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잃어버립니다. 하느님께서 거두어 가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잃는 것입니다. 잃어 놓고는 하느님을 야속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소작인이라면 포도밭을 맡겨 준 주인에게 감사하고 최선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야말로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17,10)하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받은 은혜가 얼마나 많습니까? 또 지금도 여전히 베풀어 주시고 계신데 전혀 아닌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베풀어 주신 은혜에 걸 맞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사람 나고 돈 났다. 고 말하면서도 돈 나고 사람 난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느님을 내 삶의 첫 자리에 모셔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우리 삶의 구심점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한그루 1500송이 포도나무 부농일군 &apos;특허 재배법?&apos;

오늘은 6월의 첫날입니다. 1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잘 사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1달을 충실하게 살기도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하루를 기쁜 마음으로 사는 것은 해볼 만한 일입니다. 6월의 첫날을 기쁨 마음으로 보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하루를 기쁘게 사는 사람이 한 달을 또 기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충만한, 성심의 사랑이 가득한 6월이 되시기를 바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성인이 되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로마를 떠나서 사목방문을 많이 하셨습니다. 우리나라에도 2번이나 찾아 주셨습니다. 교황님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 하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 재물이 많아서 행복하신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권력이 많아서 행복했던 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건강해서 행복했던 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종으로서 달릴 길을 열심히 달렸기 때문에 행복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교황님께서는 권력자들과 기업가들을 만나면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를 자주하셨습니다. 부유한 나라는 가난한 나라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기업가들은 굶주린 이들의 것을 잠시 빌린 것이니,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주교님들과 사제들을 만나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자주하셨습니다. 강도를 만나서 피를 흘리는 사람이 있다면 아무런 조건 없이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성직자들의 책임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자신에게 총을 쏜 젊은이를 찾아가셨습니다. 젊은이를 용서하셨고, 사랑으로 보듬어 주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십시오. 저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교황님께서는 교회가 인류와 역사 앞에서 잘못한 일들에 대해서도 겸허하게 용서를 청하였습니다.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변명과 책임전가를 하려는 우리들에게 참된 삶의 자세를 보여주셨습니다.

지금의 교황님께서도 정의, 사랑, 가난, 나눔을 이야기 하십니다. ‘영적인 세속성에 대해서도 주의할 것을 당부하십니다. 교회는 비록 흙탕물이 묻을지라도 가난한 이들, 불쌍한 이들, 아픈 이들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신자유주의는 양심, 가치, 헌신, 나눔, 정의를 삼켜 버립니다. 그리고 재물, 권력, 경쟁, 욕망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토빗을 보았습니다. 토빗은 외로운 타향살이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지치고 힘든 이웃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아갑니다. 잔치가 있으면 가난한 이들을 초대합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있으면 장례를 준비해 줍니다. 그런 토빗이 있기에 사람들은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성인이 되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토빗과 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지금의 교황님께서도 토빗의 삶을 따르고 계십니다. 우리 시대에 이런 교황님을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쁜 소작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지구라는 별에 잠시 있다가 가는 존재입니다. 이 지구는 우리만 사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우리의 후손들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지구가 우리의 소유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환경을 훼손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들을 힘들게 합니다.

사제들도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사제들은 착한 소작인처럼 지내고 떠나갑니다. 하지만 일부 사제들은 착각하면서 살다갑니다. 떠난 자리가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제들이 계시고, 떠난 자리가 냄새가 나는 분들도 계십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과연 착한 소작인인지, 못된 소작인인지 돌아봅니다.

조재형 신부

 

 

 건축자의 버린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나니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11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마르 12, 10-11)

우리는
어떤 것은 귀하게 여기고 어떤 것은 천하게 여기지요.
물건도 그렇고
직업도 그렇고
심지어 사람도 그렇게 여김받습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귀천의 기준이 올바른 걸까요?
어떤 물건이 아무리 값비싼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어울리는 곳에 있을 때 그 가치가 있지
그렇지 않다면 애물단지가 되기도 합니다.
그저께 어느 분이 안쓰는 고급소파를 기증해 주셔서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소파가 워낙 커서
작은 방에 어울리지 않아 어쩔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거실이 넓은 집이면 귀하게 취급받을텐데
원룸식 작은 집에는 그야말로 애물단지랍니다.

사람도 그렇고
직업도 그렇지 않을까요?

오늘 나는 정말 귀한 존재인지
아니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애물단지는 아닌지
한번 살펴봅시다.

내가 과연 있을 자리에 있다면
나는 언제나 귀한 존재가 되지 않을까요?
내가 서 있을 자리는 어디입니까?

[출처] 2015.06.01.|작성자 알타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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