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9주간 화요일>(마르 12,13-17)
토빗은 자선을 베풀며 의롭게 살았지만 그에게는 불행한 일들이 잇달아 닥쳐온다. 그는 네 해 동안 시력을 잃은 채 지내게 되었는데, 그동안 그의 아내 안나가 품을 팔아야 했다. 고통과 역경 속에서도 토빗은 조금도 흠이 없는 삶을 추구하지만, 그의 아내와 주위 사람들은 그가 선행으로 얻은 것이 불행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토빗 2,9ㄴ-14)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 올무를 씌우려고,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한지 묻는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잔꾀를 무색케 하는 지혜로운 대답으로 대처하신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드릴 일이다. (마르 12,13-17))
시편 112(111),1ㄴㄷ-2.7-8.9(◎ 7ㄴ 참조)
◎ 의로운 마음 굳게 주님을 신뢰하네.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계명을 큰 즐거움으로 삼는 이! 그의 후손은 땅에서 융성하고, 올곧은 세대는 복을 받으리라. ◎
○ 나쁜 소식에도 그는 겁내지 않고, 그 마음 굳게 주님을 신뢰하네. 그 마음 굳세어 두려워하지 않으니, 마침내 적들을 내려다보리라. ◎
○ 가난한 이에게 넉넉히 나누어 주니, 그의 의로움은 길이 이어지고, 그의 뿔은 영광 속에 높이 들리리라. ◎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르 12,13-17))
그때에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은 13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냈다. 14 그들이 와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다오.” 16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그들은 예수님께 매우 감탄하였다.
서기 6년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로마 황제는 총독을 시켜 어린이와 노인을 제외하고는 유다와 사마리아 주민 모두에게 주민세를 걷도록 하였습니다. 그러자 갈릴래아 출신 ‘유다’라는 사람이 열혈당원을 모아 납세 거부와 독립 운동을 전개하며 로마와 투쟁하였습니다.
바리사이들이 이 문제를 예수님께 질문하였으나, 그 질문의 저의는 예수님께서 세금을 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 그분을 민족의 배반자로, 내지 말라고 하시면 그분을 국사범으로 고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신을 떠보려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세금으로 바치는 데나리온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주민세는 로마 은화로 한 데나리온을 납부하였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벌이에 해당하는 금액으로서, 티베리우스 황제 때 은화 한 면에는 황제의 흉상과 글자가, 다른 면에는 황제의 어머니 초상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주민세를 납부하는 것도 문제가 되었지만, 그 돈에 새겨진 신처럼 숭배하는 황제의 흉상과 쓰인 내용 때문에 더욱더 혐오감을 느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고 하셨습니다. 황제의 흉상이 박힌 데나리온은 황제의 것이지만 하느님의 모습을 지닌 사람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황제에게는 그가 만든 은화만 돌려주면 되겠지만, 하느님께는 온 마음과 정신과 생각과 힘을 다하여 흠숭과 사랑을 드려야 합니다.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던 예수님 시대의 팔레스티나 상황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세금을 내지 않는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성직자도 수도자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납세의 의무가 있습니다. 세금은 당연히 내야 하지만, 세상이나 국가 권력이 정의나 공동선에 위배되는 것을 강요하거나 요구할 때, 그 지배에 무작정 내어 맡긴다면,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우리가 자가당착에 빠지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것, 황제의 것> 송영진 모세 신부
"그 뒤에 그들은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냈다. 그들이 와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 스승님은...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마르 12,13-14)"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라는 말은, 예수님을 진퇴양난의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다는 뜻입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세금을 바치라고 대답하셨다면, 그들은 "예수는 민족을 배반했다." 라고 선전했을 것이고, 바치지 말라고 대답하셨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로마 당국에 고발했을 것입니다.
당시에 로마 황제의 통치권을 부정하고, 세금 납부를 거부한 열성적인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열혈당'입니다. 열두 사도 가운데 '시몬'이 열혈당원이었습니다(마르 3,18).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의 정치 체제와 경제 질서에 순응하면서 살고 있었고, 세금 문제로 고민하지도 않았습니다.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도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도 따르지도 않던 자들입니다. 그래서 지금 세금 문제로 고민하는 척 하는 것도 '위선'이고, 예수님께 올무를 씌우려고 질문하면서 아첨하는 말을 하는 것도 '위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다오.'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그들은 예수님께 매우 감탄하였다(마르 12,15-17)."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의 질문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한 질문이지만, '하느님을' 시험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지금 예수님과 사람들이 주고받는 질문과 답변은 하느님의 주권과 황제의 통치권 사이의 문제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시험하는 태도 자체가 죄입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라는 예수님 말씀은, 황제와 하느님을 대등한 위치에 놓으신 말씀도 아니고, '황제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구분하신 말씀도 아닙니다. 그 어떤 인간도 하느님과 대등한 위치에 있을 수 없습니다. 또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느님의 것'입니다. '하느님의 것'이 아닌 '황제의 것'은 없습니다. 황제 자신도, 황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도 모두 다 '하느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 말씀의 뜻은, "세금을 바치는 일이 하느님의 주권을 거스르는 일인지, 아닌지 잘 판단하여라."입니다. 하느님의 주권을 거스르는 일이 아니라면, 즉 신앙과 상관없는 일이라면, 세금을 바치면 되고, 하느님의 주권을 거스르는 일이라면 바치면 안 됩니다. 지금 이 가르침은 세금 문제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가 하느님의 뜻에 맞게 잘되고 있다면 협조하면 되지만, 만일에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악한 쪽으로 간다면, 신앙인은 당연히 그것을 막아야 하고, '정치'가 올바른 쪽으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은 정치 참여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선과 정의와 평화를 실현시키기 위한 신앙 행위입니다. (악을 보면서도 방관한다면, 그 방관도 악입니다.)
당시에는 아직 황제의 신격화가 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황제의 신격화와 숭배가 심해졌고, 그것이 종교 박해로 이어졌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은 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순교했습니다.
그러면 데나리온에 새겨져 있는 초상과 글자가 황제의 것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 초상과 글자가 황제의 것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이 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의 것이냐?" 라고 물으셨을 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말씀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너희는 돈에 새겨진 초상과 글자만 보고 이 돈은 황제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것도 아니고, 누구의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로마제국의 식민 지배를 긍정하시는 말씀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세금 문제에 대해서 질문하고 있으니 그 문제에 대해서 대답하신 것뿐이고, 로마제국의 지배가 정당한가? 는 지금 이 내용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특히 묵시록에서는 로마제국을 바빌론으로, 즉 악마의 부하로 보고 있습니다.) 통치자들이 군림하고 세도를 부리는 것 자체를 싫어하신 예수님입니다(마르 11,42-43).
이 내용을 개인의 신앙생활에도 적용해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것'과 '나의 것'을 구분할 수 있는가?" 없습니다. '나의 것'은 모두 다, 목숨까지도 '하느님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잠깐 동안 나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악하게 사용하면 안 됩니다.
오직 하느님의 뜻에 맞게 선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모두 다 하느님께 돌려 드려야 합니다. (봉헌은 '나의 것'을 하느님께 바치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것 가운데 일부를 하느님께 돌려 드리는 일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고 어리석음입니다. 그 오만과 어리석음은 죄와 악으로 가는 첫 걸음이 됩니다.
빚을 지고 사는 나 반영억 신부
국가경영에 있어서 세금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권력자들은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여 더 많은 사업을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세금을 내야 하는 많은 국민은 어떻게 하면 적게 낼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사실 어느 사회에서나 세금 문제는 골칫거리입니다.
경제민주화니 창조경제니 하는 소리를 밤낮으로 한다고 해서 서민 경제가 나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보편복지를 외쳐도 실제적으로 재원마련대책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더 내고 덜 받는 연금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습니다. 눈앞에 것만 보아서도 안 되고 기금을 이용해 먹어서도 안 됩니다.
식민지 체제의 유다에서 세금문제는 야훼 하느님만을 유일한 왕으로 인정하는 그들의 신앙과 결부되어 더욱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들에게 세금은 곧 로마의 법에 복종해야 하는가 하느님의 법을 좇아야 하는가의 문제였습니다.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은 납세를 거부하며 반란을 일으켰으나 유혈 진압되고 말았고 그 후 억지로 세금을 냈습니다. 그러나 각자의 처지나 주장은 아주 달랐습니다. 바리사이들은 납세를 로마의 노예를 드러내는 혐오스런 짓이며 유일하신 이스라엘의 주님이신 야훼 하느님께 불충하는 짓으로 여겼으나 현실적으로 로마의 막강한 군사력 때문에 마지못해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반면에 로마에 의지하고 있는 헤로데 당원들은 당연히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납부하여 로마의 평화와 안정을 누려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실로 납세는 민중 정서와 로마권력이라는 양날을 지닌 날카로운 칼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일본과 맞서는 독립군이 있었고 일본의 권력에 빌붙어 사는 친일파가 있었습니다. 독립군에게 있어서 공출을 당하는 것은 치욕적인 일이니 그에 응할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러나 친일파는 자기의 잇속만을 챙기는 파렴치한 모습으로 민족을 배반하였습니다. 일제의 권력에 세금을 바쳐야 합니까? 거부해야 합니까?
이런 상황에서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은 아첨을 하면서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마르12,14) 하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는 어느 쪽을 선택하여도 예수님은 다치게 되어있는 물음이었습니다. “세금을 내라”고 하면 민족주의자들인 군중을 실망케 하고 분노하게 할 것이며 , “내지 말라” 고 말한다면 로마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처벌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길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데라니온 한 닢을 가져오라하여 “이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시고, 반대자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르12,17).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돌려주라는 말은 빚을 갚거나 배상금을 지불한다는 뜻입니다. 결국 국가라는 공동선을 위해 세금을 납부하라는 말씀입니다.
황제가 만든 은화는 그에게 돌려주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이니 우리 안에는 하느님의 초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전 존재를 하느님께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황제에게는 돈만 주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자신을 봉헌해야 합니다. 사실,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으니 모든 사람은 다 하느님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은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할 빚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은 자기 속을 숨긴 채 올가미를 씌우려 했지만 속을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께서는 황제도 결국 하느님의 피조물이므로 하느님께 속한 사람으로 하느님께 충성을 드려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셨습니다.
우리의 생애에서 물질의 세금보다도 하느님께 드려야 할 세금을 제대로 바치고 있는가? 돌아보는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기도와 희생의 봉헌,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그리고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돌려드림으로써 기뻐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느님께로부터 서로 다른 탈란트를 받았습니다. 그 모두를 그분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마르 12,17)
여러분은 월급이 얼마나 되세요?
많지도 않은 월급에 세금 떼고 이것저것 내고 나면 참 씁쓸하죠?
저도 명색이
직원이 60명이나 되는 복지시설의 장인데도
이것저것 떼고나니 250만원 전후 되는 것같아요.
저야 얼마받든 수도원 살림으로 다 들어가 버리고
용돈 받아쓰니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런데 부모님 부양하고 자식 키우는 직원들 보니 참으로 힘들겠구나
여길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뿐입니까?
신앙생활 하는데도 또 하느님께 세금을 바쳐야지요.
주일헌금에, 개신교는 십일조에,
또 거의 매주 걷는 2차헌금에, 이런저런 후원금에...
그래도 살아가는 걸 보면
참으로 용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말이죠.
우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다 여기는 것 실제로는 내 것이 아닙니다.
한 나라의 백성이기에 나라에 세금을 내어야 하고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기에 교회에 세금을 내어야 합니다.
그 나머지로
내 가족도 먹여 살리고
여력이 있으면 이웃도 먹여 살려야 합니다.
결국 내 것이 아니니까요.
이렇게 내가 가진 것을 모두 내어놓고 빈손이 되어야
하느님의 가난한 종이 됩니다.
그는 가난하지만 하느님 나라가 그의 것이니 진짜 부자랍니다.
여러분은 가난뱅이입니까?
부자입니까?
[출처] 2015.06.02.|작성자 알타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