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9주간 목요일>(2015. 6. 4. 목)(마르 12,28ㄱㄷ-34)
[토비야와 대천사 라파엘]
토빗은 아들 토비야를 보내어, 라게스에 가서 자신이 맡겨 둔 돈을 찾아오도록 한다. 이때 라파엘 천사가 나타나 토비야의 길잡이를 하겠다고 자청하는데, 엑바타나에 이르자 토빗에게 사라와 혼인하라고 권고한다. 토빗은 그 권고에 따라 사라를 아내로 맞는다.(토빗6,10-11; 7,1.9-17; 8,4-9ㄱ)
한 율법 학자가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인지 묻자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일러 주신다. 그 말씀을 받아들인 율법 학자는 하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마르코12,28ㄱㄷ-34)
시편 128(127),1-2.3.4-5(◎ 1ㄱ 참조)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모든 사람!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 네 손으로 벌어 네가 먹으리니, 너는 행복하여라, 너는 복을 받으리라. ◎
○ 너의 집 안방에 있는 아내는 풍성한 포도나무 같고, 너의 밥상에 둘러앉은 아들들은 올리브 나무 햇순 같구나. ◎
○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렇듯 복을 받으리라. 주님은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너는 한평생 모든 날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리라. ◎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28ㄱㄷ-34
그때에 28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사라와 토비아의 결혼], 1668-70년헤르초크 안톤 올리히 미술관, 브라운슈바이크
오늘 독서는 긴 본문 가운데 가려 뽑아 읽었기 때문에 줄거리에서 생략된 부분이 있습니다. 잠시 보충해 가면서 묵상하겠습니다.
엑바타나에 이르러 라파엘이 토비야에게 사라와 결혼하라고 했을 때 토비야는 두려워합니다(6,15). 사라가 결혼할 때마다 남편이 죽었으니, 그 역시 사라와 결혼하게 되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불길한 예감이 스쳐갔을 것입니다. 사라의 아버지 라구엘도 주저합니다. 토비야와 사라가 혼인하던 날, 라구엘은 혹시라도 토비야가 죽을 경우에 대비하여 아무도 모르게 묻어 버리려고 무덤을 팝니다(8,9). 토비야가 이렇게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라와 결혼하는 것은 신명기에서 명하는 대로 그것이 친족의 의무였기 때문입니다(6,12).
혼인날 밤에 토비야는 물고기의 염통과 간을 태워 악귀를 쫓아냅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간청하며 기도한 것을 보면(8,4), 그들을 지켜 준 것은 약을 태우는 냄새만은 아니었습니다.
사라와 토비야의 결혼에는 이렇게 위험이 따랐습니다. 그렇지만 토비야는 사라 곁에 있기를 선택했습니다. 아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와 닮은 협력자를 우리가 만들어 주자.”(8,6)는 하느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토비야는, 스스로 사라의 “협력자”, 그와 함께 있는 이가 되어 주는데, 그것이 바로 사라를 치유하는 진정한 치료약이었습니다.
토빗 8,21에서 장인 라구엘이 토비야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나는 네 아버지고 아드나는 네 어머니다. 우리는 너와 네 아내 곁에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영원히 곁에 있어 주는 가족이 바로 하느님의 치유이고 하느님의 도우심임을 토빗기의 이 부분은 웅변적으로 말해 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확인되듯이 이스라엘에는 613개의 율법 조항이 있는데 이것은 10계명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10계명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압축됩니다. 이웃 사랑 가운데서 무엇보다도 가족에 대한 사랑이 절실한 요즈음, 토비야의 이야기는 감동적입니다. 이웃 사랑의 첫걸음은 ‘곁에 있어 주는 것’입니다.
<계명, 사랑> 송영진 모세 신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마르 12,28)"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 12,29-31)."
율법 학자들은 계명 가운데에서 무엇이 첫째가는 계명인가, 무엇이 가장 중요한 계명인가? 에 대해서 자주 토론했습니다. 이것을 거꾸로 생각하면, 무엇이 덜 중요한 계명인가? 에 대해서 토론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이런 토론을 한 것은, 중요한 계명은 먼저 지키고, 덜 중요한(또는 중요하지 않은) 계명은 나중에 지키거나 무시하려는 속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율법 학자의 질문 속에 있는 '첫째' 라는 말과 예수님의 말씀에 있는 '첫째' 라는 말은 뜻이 다릅니다. 율법 학자는 '가장 중요한'이라는 뜻으로 사용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근본정신'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간단하게 줄이면, "계명의 근본정신은 사랑이다."가 됩니다. 이 말을 "계명은 곧 사랑이다.", 또는 "계명 실천은 곧 사랑 실천이다." 라고 바꿀 수도 있습니다.
마태오복음에 있는 '산상 설교'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모든 계명과 율법'은 전부 다 똑같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마태 5,18-19)."
이 말씀에서 '가장 작은 것'이라는 말은, "인간들이 가장 작다고 생각하는 것"을 뜻합니다.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는 "자기 마음대로 가장 작은 것이라고 생각해서 무시하고, 어기고, 소홀히 여기고"입니다. 따라서 예수님 말씀의 뜻은 "계명과 율법 가운데에서 작은 것은 없다."입니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라는 말씀은,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사랑에 관한 말씀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사랑 가운데 작다고 무시해도 되는 사랑은 없다."가 됩니다. 큰 사랑과 작은 사랑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랑은 다 똑같이 중요하고 위대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 큰 사랑과 작은 사랑이 있다는 뜻이 아닌가?" 라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의 뜻은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사랑해야 한다."이지 더 큰 사랑과 더 작은 사랑을 구분하신 것은 아닙니다.
사랑이란, 목숨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내놓는 것'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하느님 사랑'도, 또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이웃 사랑'도 목숨을 포함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내놓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요한 14,21)."
앞에서 말한, "계명 실천은 곧 사랑 실천이다."를 이 말씀에 적용하면, 이 말씀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사람은 하늘나라의 구원과 생명을 받을 것이다."가 됩니다. 이 말씀은,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라는 말씀과 곧바로 연결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곧 예수님(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구원과 생명을 받는 길입니다.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라는 말씀은, 하늘나라의 구원과 생명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계명은 곧 하느님의 사랑이다.
2) 모든 사랑이 다 똑같이 중요하고 위대한 것처럼 모든 계명은 다 똑같이 중요하고 위대하다.
3) 계명을 실천하는 것은 곧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4) 하느님 사랑과 예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하나다.
5) 우리가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은 사랑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서 주일을 지키는 일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하느님과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일을 지킵니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사랑으로 지키게 됩니다.) 만일에 사랑 없이 지킨다면, 그것은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즉 몸으로만 지키고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다면, 그것은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그것도 주일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요한 13,34).
이웃에 대한 사랑도 관심도 없고, 이웃을 외면하고 있다면, 아무리 성실하게 주일을 잘 지킨다고 해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 13,2).
사랑은 능력입니다 반영억라파엘 신부
식물인간이 되어 혼수상태로 있던 사람이 열흘 만에, 어떤 사람은 2년 만에, 어떤 사람은 무려 28년 만에 의식을 회복한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주변을 보면 하나같이 누군가가 지극한 정성으로 그를 돌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의식은 없지만 살아있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사랑을 쏟았던 사람들은 결국 그 사랑의 헌신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랑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무한한 능력입니다.
저는 청주성모병원 행정부원장과 청주상당노인복지관장을 겸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양다리 걸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곳도 충실할 수 없는 상황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그러면서 가끔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식사할 겨를조차 없이 바쁘셨는데 나는 아직 주님의 일을 하느라 식사를 거른 적은 없지 않은가? 매일같이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서 신자들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지 않고 개인적인 일을 계획한다면 위선이 아닌가? 주님의 일이 아니라면 바쁘다는 소리를 하지 말자!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진정한 사랑은 결코 한가로울 수 없는 것, 한가로운 사랑은 벌써 잘못되었다는 표시인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일을 하는데 게으름 피우지 않기를 다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12,30.31).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외적으로 강제되는 의무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하느님 사랑에 대한 감사의 응답으로 하느님을 자발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느님과 인간관계의 기반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마음과 목숨, 힘을 다한 존재 전체로 먼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구체적인 이웃 사랑을 통해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을 똑바로 인식하고 바르게 사랑해야 합니다. 내 자신에게 너그럽고 시간을 내고 관심을 쏟고 변명을 하고 행복한 생활을 바라는 것같이 이웃에게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야말로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1요한3,18)하는 그런 사랑을 해야 합니다.
유다교에는 계명이 많았습니다. 무려613개 조항의 계명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248개 조항은 명령, 365조항은 금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계명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지에 대한 논의가 자연스럽게 생겨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잡다한 계명들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요약하고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은 불가분의 관계임을 선언하셨습니다. 주님의 기도의 핵심정신을 보면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도 그렇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이웃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신 헌신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머리로 아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 아직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그 앎이 온몸에 배어서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하느님나라에 온전히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온 몸으로 사랑하십시오. 그리하면 더 큰 사랑의 능력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이신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이 우리를 재촉하는 오늘입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마르 12,34)
여러분은 천국을 바라고
극락을 바라시겠지요?
그럼 지금 현재는 어떠세요?
천국에 가까운 삶을 살고 계시나요?
아니면 지옥같은 삶인가요?
그것도 아니면 연옥인가요?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고 희망하는 것이
천국이고 극락이라면
죽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천국이 가까워져야 하겠지요.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살이란
연옥에서 천국으로 향해가는 여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지긋지긋한 지옥과도 같은 이집트의 압제에서 벗어나
젖과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향해가는 여정처럼.
그 길이 결코 쉽지는 않겠지요.
때로는 그만두고 싶은 유혹이 일기도 하고
뒤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불평할 일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하느님 사랑하고 이웃사랑하며 살다보면
어느새 젖과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가까이 와 있지 않을까요?
조금만 힘내십시오.
이제 천국이 가까웠습니다.
가나안 땅이 저너머에 보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 나라에서 결코 멀리있지 않답니다.
저 언덕만 넘으면 보인답니다.
함께 어깨동무하고
조금만 더 걸읍시다.
산티아고 꼼포스텔라 순례길도 걷지 않습니까?
제주 올레길도 걷고싶고
지리산 둘레길도 걷고싶지 않습니까?
오늘도 길을 걷지만
'정처없는 나그네 길'이 아니라 '천국을 향한 순례자의 길'이길
축원합니다.
[출처] 2015.06.04.|작성자 알타반
지난주에 ‘혼배면담’을 하였습니다. 자매가 함께 왔습니다. 언니는 대학 동문과 혼인을 한다고 하였고, 동생은 유학 중에 만난 외국인과 혼인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혼인면담은 주로 서류를 확인하는 것이지만, 제가 주례를 하게 될 경우에는 당사자들에게 메일을 보내 주도록 부탁을 합니다.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혼인을 하는 지금의 마음은 어떠한지,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편지를 보내달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제게 편지를 보내면서 혼인을 하는 당사자들이 ‘혼인’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혼인은 3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단일성’입니다. 한 배우자를 선택했으면 다른 사람과의 혼인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혼인을 한 사람은 이제 자신의 배우자에게 충실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불가 해소성’입니다. 혼인은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시는 성사이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는 헤어질 수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혼인을 할 때 ‘성하거나, 병들거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사랑하도록 다짐을 받습니다. 세 번째는 ‘자녀의 출산’입니다. 혼인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부부는 사랑의 결실로 주어지는 자녀를 하느님의 사람으로 키워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성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오늘 성서 말씀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철학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찾고, 종교는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찾지만 사랑은 그 두 가지에 대한 해답이다. 가장 미련한 것은 사랑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고 가장 슬픈 것은 사랑을 해보지 못하는 것이며 가장 불행한 것은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랑에 있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자존심이다. 깃대에 깃발이 없으면 무의미하다. 깃발에 바람이 없으면 더 무의미하다. 방황은 사랑의 깃발에 부는 바람이다.
진정한 사랑은 마음으로 나누는 사랑이고
가치 있는 사랑은 오직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며
헌신적인 사랑은 되돌려 받을 생각 없이 하는 사랑이다.
아름다운 사랑은 두 영혼이 하나가 되는 사랑이며
용기 있는 사랑은 사랑하고픈 사람과 나누는 사랑이며
순간의 사랑은 마음이 배제된 사랑이고
영원한 사랑은 마음이 합치된 사랑이며
끝없는 사랑은 죽음에 이르러서까지 나누는 사랑이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는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주님!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 계명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신명기 6장의 내용으로 대답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의 답변입니다.
‘사랑은 행동이며, 결심입니다.’
사랑은 고정된 ‘틀’이 아닙니다. 사랑은 역동적이고 적극적입니다. 사랑은 거저 베푸는 것이며, 되받지 않아도 기뻐하는 마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하고 풍요롭게 합니다. 우리를 만드신 하느님께서 사랑이시고, 자유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욕망을 채우려는 사랑은 집착입니다. 그러기에 채워지지 못하면 더욱 실망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조건으로 주고받는 사랑은 거래입니다. 거래는 조건이 맞지 않으면 깨지기 마련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채우는 사랑이 아니라,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조건을 보고 하는 사랑이 아니라, 그럼에도 하는 사랑입니다. 주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은 바로 그런 사랑입니다.
조재형라파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