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0주간 월요일>참 행복 (마태 5,1-12)

2015. 6. 8. 오전 8:10:56

글자

 

<연중 제10주간 월요일>(2015. 6. 8. 월)(마태 5,1-12)

 

두 주간 동안 코린토 2서를 묵상한다. 이 서간에서는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로부터 받은 반대와 배척과 그 뒤에 얻게 된 위로가 소개된다. 서간의 첫머리에서 바오로는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는 하느님을 찬미한다.(코린토 2서 1,1-7)

또한 마태오 복음을 묵상하기 시작하는데, 다섯 설교 가운데 첫 번째인 산상 설교의 첫 말씀을 봉독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는 이들에게 행복하다고 선포하신다. 그 행복은 가난한 이들, 박해받는 이들이 누리는 역설적인 행복이다.(마태 5,1-12)

 

 시편 34(33),2-3.4-5.6-7.8-9(◎ 9ㄱ)
◎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
○ 나와 함께 주님을 칭송하여라. 우리 모두 그 이름 높이 기리자. 주님을 찾았더니 응답하시고, 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 ◎
○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
○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그 둘레에, 그분의 천사가 진을 치고 구출해 주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 ◎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마태 5,1-12)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11 산상설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행복하여라”를 뜻하는 그리스 말 단어는 ‘복된, 행복한, 부유한’을 지칭하는 형용사로서 주로 신들에게 사용되었습니다. 고통과 시련 속에 살아가는 사람과 구별하여 신들은 복되고 자유로운 분들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신들은 우리 인간이 겪게 되는 절박함이나 노동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분들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 문화권에서는 죽은 영웅들에게도 신과 동일한 이 복된 상태를 부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 안에서 이 단어는 특별히 하느님 나라의 구원에 참여한 사람에게서 분출되는 특수한 기쁨을 표현하는 데 사용됩니다. 행복한 사람은 기뻐서 뛰노는 사람들이고, 이 내적 기쁨은 스스로 자제할 수 없기 때문에 저절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살면 나중에 복을 누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너는 지금 행복하다.”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군중에게, 마음이 가난하고 슬퍼하며 온유하기 때문에,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르기 때문에, 자비롭고 마음이 깨끗하기 때문에, 평화를 이루며,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훗날 행복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행복하다는 예수님의 말씀,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특히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행복 선언은 이 세상을 거슬러 가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행복의 조건은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하늘 나라이기에, 지금 그들은 슬퍼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 나라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리고 목마르고 가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아직은 하늘 나라가 아니며, 이 세상도 결코 우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 말씀대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와 명예를 좇아 경쟁하는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과연 행복하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경제와 부유함을 최고의 가치로 신봉하는 이 세상의 가치관에 매몰되어 근심 걱정 없이, 그것이 전부인 양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행복할까요? 그러나 복음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지금 현세에서도 행복합니다. 그가 헛것을 추구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복 선언에 담긴 예수님의 말씀은 물질의 소유와 집착에서 자유로울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싸워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선사되고 우리가 주워 모을 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물질이 아니라 하느님과 의존적인 관계 안에서 생각하며 살아갈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불행하게 될 것입니다.

 

 진복팔단 ( 산상설교 )

<하늘나라의 행복>     송영진 모세 신부

 6월 8일의 복음 말씀은, '참 행복'(마태 5,1-12)인데, "참 행복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한 가르침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고난과 시련을 겪고 있는 신앙인들을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라는 '행복론'은 아닙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이 말씀은, "참 행복을 얻으려면 '영으로'(마음으로) 가난해져라."로 해석할 수도 있고, "가난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어도 하늘나라의 참 행복을 믿고 인내하여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재물에 관해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하느님만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은 재물에서 마음이 떠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간 세상에서 부자로 살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서 부자로 살려면, 돈을 벌고, 모으고, 불리고, 관리하는 등의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하느님보다 재물을 더 신경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 모습도 하느님보다 재물을 더 섬기고 사랑하는 모습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 19,23-24)." 부자들은 부유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다가 하늘나라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단순히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못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일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물을 지키고 불리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부자들이 그렇습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못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안 들어갑니다. 물론 부자들 가운데에도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를 희망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정말로 희망하고 노력한다면, 그 사람은 부유함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그것은 부유하게 사는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부자들은 그렇고... 그러면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함' 자체를 '선'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단순히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가난하기 때문에 재물에 대한 집착이 부자들보다 더 심한 경우가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보다 가난에서 벗어나서 부자가 되는 것을 더 희망하고, 부자가 되려는 노력만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탐욕스러운 부자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정리하면, 예수님 말씀의 강조점은 '가난'이 아니라, '하늘나라'이고, 예수님 말씀의 뜻은 "행복을 재물에서 찾지 말고, 하늘나라에서 찾아라."입니다. 사실 '가난과 굶주림'은 우리가 모두 함께 마음을 모아서 극복해야 할 고통이고, 빈부 차별과 양극화는 물리쳐야 할 '악'입니다. 우리는 그 고통을 극복하고, 그 '악'을 물리쳐서 모두가 똑같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행복이 완성된 세상이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마태 5,11-12)." 

'모욕, 박해, 거짓으로 하는 온갖 사악한 말' 자체가 행복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악'이고, 고통이고, 시련입니다. 그런 '악'은 물리쳐야 합니다. (단, 방법은 '선'과 '사랑'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일을 겪어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는, 또는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하늘에서' 상을 받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는다면 지금 고난과 시련을 겪어도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무조건 참으라는 것은 아니고, 아무리 힘들어도 '선, 믿음, 희망, 사랑'을 실천하면서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나라의 참 행복'은 죽어야만 얻을 수 있는, 또는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종말이 되어야만 얻을 수 있는 행복이 아닙니다. '지금' 신앙인으로서 누리는 행복입니다. 

또 우리를 위로하시는 예수님의 말씀들은 '막연한 희망' 속에서 지금의 고통을 그냥 참고 견디라는 뜻이 아닙니다. 만일에 그런 뜻이라면, 예수님의 말씀들은 치료 효과는 없고 잠깐 통증을 잊게 만드는 진통제가 될 뿐인데, 그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통제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 치료제를 주시는 분, 진짜로 구원과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참 행복'에 관한 말씀들은, "우리가 구원과 생명을 얻어서 참으로 행복하게 되는 하늘나라를 완성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지침"입니다. 

하늘나라는 예수님과 함께 우리가 건설하는 나라입니다. (죽은 다음에 가는 저승이 아니라, 지금의 인간 세상 안에서.) 그 나라가 실현되고 완성되기를 바란다면, 아무것도 안 하면서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안 됩니다. 적극적으로, 또 능동적으로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실천해야 합니다.

 

 산상설교 성화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2코린 1,3-4)

여러분은
누구로부터 위로를 받은 적이 많이 있겠지요?
특히 내가 어렵고 힘들 때
작은 손길을 내어주며 위로해 준 사람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경험을 해 본 사람은
같은 어려움과 위기를 겪는 사람을 보면
위로의 손길을 내밀지 않을 수 없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받은 위로의 원천은 하느님이시라네요.
하느님께서 우리가 어려울 때 당신의 천사(누구)를 보내어
친히 위로해 주신 거랍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면
내가 곧 그사람의 천사가 되는 것이지요.
하느님께서 나를 움직여 그사람을 위로하신 것입니다.

오늘 내가 받았던 큰 위로의 순간들을 떠올려보며
하느님과 그분이 보내신 천사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나도 하느님의 천사가 되어
어려운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를 보내면 어떨까요?

[출처] 2015.06.08.|작성자 알타반

 

 

 

참된 행복     반영억 신부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소망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행복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세상에서의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하나가 채워지면 또 하나가 채워지길 원하여 결코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서 헤매게 됩니다. 참된 행복은 천상의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곁에 있는 것,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일이 곧 행복입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하느님을 뵈려고 애쓰고, 하느님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함을 안타까워할 때가 행복의 순간”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행복을 선언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자비로운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5,48). ‘그리하면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는 과연 어느 사람으로 행복한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또한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줍니다. 이 세상에서의 막연한 기대를 접을 수 있고 이 세상에서의 고달픔과 시련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지금 힘들고 어렵다 하더라도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이 곡식 단 들고 올 때 춤추며 노래하리라” 했던 말씀이 나에게서 성취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지금 내 안에 모시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행복을 어디서 찾습니까? 세상의 풍요 안에서 찾는 사람은 그 모든 것을 얻었다 할지라도 결국은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차지한 사람은 비록 지금 세상의 풍요를 누리지 못한다 할지라도 모두를 얻은 사람입니다. 풍족하지만 결핍의 삶을 살아가는 불안한 현대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은 진실한 사랑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하느님 안에서 행복하시기 빕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늘 사람들로 분주하던 명동거리가 주말임에도 한산했습니다. 연일 음식을 팔기에 바쁘던 거리의 노점상들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길을 다니는 관광객들도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메르스가 가져온 환경의 변화입니다. 계속되는 뉴스와 정부의 늦장 대응은 시민들에게 공포와 불안을 심어 주었습니다.

     

    남의 일만 같았던 메르스가 제게도 결정을 내리도록 하였습니다. 중 서울 지역의 엠이 모임이 취소되었습니다. 복음화 학교의 기도회와 미사도 취소하였습니다. 예비 신학생들의 특강과 미사도 취소를 결정하였습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메르스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 내린 결정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가 이렇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하루속히 메르스의 터널을 벗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조심은 하되, 너무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십니다. 행복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부족한 것들이 채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행복은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입니다. 행복은 작은 것에라도 만족할 때 시작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전에 읽은 글이 있습니다. ‘행복은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길과 같다. 길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다니면서 길이 되는 것이다.’ 행복도 그와 비슷합니다. 우리가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행복의 길이 우리 곁에 생겨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행복한 마음으로 살지 못하면 행복의 길도 금세 근심과 걱정의 잡풀이 자라나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메르스 때문에 격리된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환자를 치료하다가 감염된 의료인들의 헌신에 감사를 드릴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확진 판정을 받고서 치료 중에 있는 분들이 치유될 수 있도록 기도할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탓하거나 비난하기 전에 함께 연대하고, 이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지혜를 모을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한 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곧 사라지고 말 것을 채우기 위해서 애쓰는 것도 필요하지만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들을 채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한 주간되시기 바랍니다.

    조재형 신부

     

    † 찬미 예수님! 조재형 신부님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교중미사때에 성수도 치워 벼렸어요. 메르스~~넌 뭐냐? 성수까지도 덮어버리게 하는~~~~
    많이 생각합니다. 하루빨리 성수를 찍으며 성호경을 그을수 있기를~~~
    김종업님(rlawhddjq) 2015-06-08 09:06:14

    메르스 환자 23명 늘어 87명..삼성서울병원서 17명 추가

    사우디 이어 세계 2위 메르스 환자 발생 대책본부 "이번 주 계기로 환자 정체·감소 전망"    연합뉴스  2015.06.08. 07:19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자가 23명 추가돼 전체 환자 수가 87명으로 늘었다고 8일 밝혔다.
    이날 확진자가 23명이나 늘면서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메르스 2위 발병 국가 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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